구멍가게 이야기 -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박혜진.심우장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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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직업은 개인택시 운전기사였다. 언니 둘과 여동생 둘, 그리고 나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아빠에게 인사를 함과 동시에 두손을 예쁘게 포개어 앞으로 내밀었다. 출퇴근할때 항상 가지고 다니시는 동전 주머니에서 100원 동전 5개를 꺼내서 한사람 한사람 손위에 올려주셨다. 언니들은 학교 갔다 와서, 동생과 나는 아침을 먹고 쪼로록 구멍가게에 가서 20원하는 달고나를 시작으로 야무치게 100원의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동생들과 가끔 옛날 이야기를 하면 구멍가게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방학때마다 시골 큰집에 가서 본 구멍가게 이미지는 담배라는 글자와 빨간색 우체통이 기억에 남는다. 농사일을 함께 하셨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만나는게 쉽지 않아서 헛걸음으로 돌아온적도 많았다. 이것저것 달라고 하면 주판알을 튕기며 계산해주시던 할아버지가 그립다.

현지답사는 2011년 1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거의 매주 진행했고, 답사 지역은 전라남도로 한정했다. 구멍가게가 쇠로에 접어든 지 오래라지만 상대적으로 변화의 속도가 느린 농촌에는 아직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어서 오래된 가게가 남아 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년여에 걸쳐 전남 지역 스물두 개 시군에 위치한 구멍가게 백여 곳을 방문했다.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 마을과 일상을 함께해온 가게라야 의미가 있기 때문에 최소 이삼십 년 이상 한자리를 지켜온 가게에 주목한 결과, 최종적으로 오십여 곳에서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P.17)

구멍가게하면 왠지 따뜻하고 정겹게 느껴지지만 모든 곳이 그렇지 만은 않았다고 한다. 매정하게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하고, 내쫓기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환대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그 세월의 이야기를 풀어내셨다고 한다. 구멍가게는 참 많은 역할을 했다. 전화가 귀하던 시절 공중전화를 이용하할 수도 있었고, 버스표를 판매하고 버스를 기다리는 대기실 역할도 했다. 학교앞 구멍가게는 문방구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는 작은 마트가 되기도 했다. 책과 문제집을 살 수 있는 작은 서점도 되었다. 딱지와 구슬을 사서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놀기도 하고, 오락기와 뽑기 기계에 옹기종기 모여서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손 버릇이 나쁜 아이에겐 작은 학교가, 마을 사람들의 정보와 소식을 공유하는 곳이 되기도 했지만 간혹 뒷담화가 난무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간이은행, 간이약국, 주막의 역할도 했다.

요즘은 시골에 하나로마트, 편의점이 입점되면서 많은 구멍가게가 문을 닫았다. 가격 경쟁에서 질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어쩔수 없는 상황인 것 같다. 구멍가게를 이용한 많은 분들이 마트에는 없지만 구멍가게에는 있는 관계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

이 책은 현장답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각종 매체와 문헌 자료를 검토하면서 얻은

구멍가게에 관한 새로운 생각들을 정리한, 일종의 구멍가게 답사보고서다.(P.19)

인터뷰를 통한 구멍가게에서의 희노애락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구멍가게와 슈퍼 등의 역사적인 자료가 첨부되어 있어서 한편으로는 구멍가게에 대한 논문을 읽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삶의 애환이 있던 자리에 몇년이 지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모습을 대할때면 씁쓸함이 남기도 했을 것이다. 한국의 문화를 깊이있게 접할 수 있었던 공간인 구멍가게에서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서 남편과 한참을 이야기하게 했던 책이기도 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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