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배신 - 아직도 공감이 선하다고 믿는 당신에게
폴 블룸 지음, 이은진 옮김 / 시공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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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를 공부하면서 중요한 것들이 몇가지 있었는데 그중에서 '공감하기'는 빠지지 않았다. 내담자의 아픔과 문제를 충분히 듣고 공감해서 서로에게 신뢰감을 충분히 느낄때 다음단계로 넘어가야 상담의 결과가 좋은쪽으로 이루어진다고 배웠다. 그래서 공감하는것은 상담가의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되었다.

"공감의 배신"은 나의 생각에 돌을 던지고, 내가 공부한 것들을 지우고 있는듯한 느낌을 들게 했다. 책표지에 있는 '아직도 공감이 선하다고 믿는 당신에게'라는 글이 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과연 폴 블롬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은걸까? 문자 그대로 공감은 선한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먼저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공감을 생각하는 보편적이 생각이 아닐까? 폴 블룸은 만약 착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이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공감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한다. 공감은 편견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도덕적 판단을 왜곡한다. 공감은 특정인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다. 수많은 사람이 연루된 사건을 접했을 때 공감이 조금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그중 한 사람에게만 공감한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공감은 많은 사람 중에서 한 사람에게 마음이 흘들이게 할 수 있다. 특정인에 대한 공감보다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연민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폴 블룸이 바라보는 공감에 대한 생각이다. 아직도 공감이 선하지 않을수 있다는 것에 100% 동의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의 생각이 많이 깨진것 맞다.

나의 아이가 잘못한 행동을 하고 있을때 그 행동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것보다 잘못된 것을 바로 고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 맞다. 그 자녀를 진정 사랑하고 바르게 양육하고 싶다면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기 보다 이성적으로 접근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 맞다. 사랑과 지성과 연민이 필요한 순간에 공감능력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공감이 선하지 않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상대방이 느끼는 괴로움을 굳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그가 고통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인지적 공감'은 다른 사람이 느끼는것을 그냥 느끼는 것과는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정확하게 판단해서 좁게 보지 않고, 넓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공감은 상대방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것이라고만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그 상대방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가 이해하는 사람, 나와 가까운 사람에 국한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고, 그들에게 공감했을때 다른 이들에게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 한 사람에 공감해서 돕는 것으로 다른 이들을 공감하지 못함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지 못했다는 것을 알지못했다. 공감의 감정보다 도덕적 이성을 갖추어서 상대방에게 더 효과적인 도움과 더 크게 바라볼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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