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법정 스님의 말은 이상하게 소리가 크지 않다.
누군가를 훈계하는 말투도 아니고 인생을 정답처럼 정리해주는 문장도 아니다.
그런데 조용한 문장인데도 꽤 오래 남는다.
읽는 순간보다는 읽고 나서 설거지를 하거나 멍하니 앉아 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식이다.
그게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아닐까 싶다.
책을 읽다 보면 결국 법정 스님이 말하는 건 대단한 성공이나 거창한 깨달음이 아니다.
덜어내는 것, 늦추는 것, 나를 먼저 돌아보는 것, 그리고 남 탓을 조금 덜 하는 것.
말로 쓰면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막상 이걸 제대로 하며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도 그렇다.
피곤하면 괜히 말이 거칠어지고, 남과 비교하다가 마음이 허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쓸데없이 예민해진다.
그러니 이런 책을 읽으면 새삼 내가 별로 고요하지도 않고 단단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좀 웃기긴 하다. 제목부터 이미 내가 아닌 사람의 상태 같다.
인상 깊었던 건 결국 모든 문제의 출발점을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서 찾게 만드는 점이었다.
행복도 누가 갖다주는 것이 아니라 내 태도에서 자라고, 불행도 남을 원망하는 그 마음 자체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은 아주 뻔한 말 같으면서도 막상 들으면 뜨끔하다.
사람은 자꾸 상황 탓, 환경 탓, 타인 탓을 하고 싶어지니까.
그런데 법정 스님의 문장은 그걸 조용히 잘라낸다.
네가 지금 어디를 보고 사는지부터 다시 보라고 한다.
사실 이런 말이 제일 아프다.
대단한 위로보다 더 정확하게 들어오니까.
관계에 대한 내용도 꽤 오래 남았다.
수많은 사람과 부대끼며 살다 보면 인간관계는 넓어졌는데 정작 마음은 더 좁아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가까울수록 기대가 커지고, 기대가 커질수록 서운함도 커진다.
책에서는 인연을 함부로 다루지 말라고 하고, 상처를 오래 붙들수록 내가 먼저 지친다고 말한다.
용서는 남을 위한 자비심이라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거두어들이는 일이라는 문장은 특히 마음에 남았다.
용서를 무슨 성인군자처럼 해야 하는 일로 생각했는데, 결국 나를 위해서라도 놓아야 하는 것이구나 싶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미워하는 것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
나이 들수록 그 체력도 아깝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행복을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은 완벽한 하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하루 속에서 기쁨을 알아차리는 태도라고 한다.
이런 문장을 읽으면 괜히 마음이 좀 느슨해진다.
늘 뭔가를 더 이뤄야 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행복도 결과처럼 생각하게 되는데, 법정 스님의 말은 그 방향을 바꿔놓는다.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시선이라는 말이 참 맞는 것 같다.
결국 어떤 세상을 사는지는 오늘 내가 고른 시선이 정한다는 문장도 같은 맥락일 텐데, 이건 정말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
책 속에 나온 질문들도 꽤 괜찮았다.
내 감정의 시선으로 남의 말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지금 어떤 평온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가,
검색과 강의로 많이 보고 듣고 있지만 정작 나는 무엇을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들 말이다.
요즘은 워낙 남의 생각을 쉽게 보고 듣는 시대라 내 생각 없이 아는 척만 하며 살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좋은 문장을 읽게 하는 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삶을 슬쩍 점검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읽다가 몇 번은 그냥 책을 덮고 멍하니 있게 된다.
뭘 대단히 반성했다기보다는 그냥 내 말투나 표정이나 태도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 책이 의외로 많지 않다.
법정 스님의 말은 따뜻하지만 물렁하지는 않다.
위로는 해주는데 마냥 감싸주기만 하지는 않는다.
결국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힘은 말을 잘하는 데서가 아니라, 옳다고 믿는 걸 오늘 한 번이라도 몸으로 실천해보는 데서 나온다고 한다.
이건 참 뻔한데 가장 어려운 말이다.
좋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말을 표정과 말투와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아마 그래서 더 자주 이런 책이 필요한 것 같다.
읽고 나면 당장 사람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함부로 살고 싶지는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평을 마치며 -
책을 다 읽고 나니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마음속 먼지가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삶이 복잡할수록 자꾸 더 많은 정보, 더 빠른 답,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되는데 정작 필요한 건 이런 조용한 문장 몇 개일지도 모르겠다.
법정 스님의 말은 세상을 이기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법을 조금씩 보여준다.
그게 지금 같은 시기에 더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싶다.
괜히 잘 살아야지 하고 이를 악물게 되는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오늘 하루를 조금 덜 거칠게, 조금 덜 시끄럽게, 조금 더 정성스럽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읽고 나서 당장 산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거나 무소유를 실천해야겠다는 거창한 결심이 드는 건 아니다.
다만 말 한마디를 조금 덜 날카롭게 해야겠다는 생각,
비교를 조금 덜 해야겠다는 생각,
지금 가진 평온을 좀 알아차려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그 정도면 이런 책 한 권이 할 일은 충분히 다 한 것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