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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곰은 모르는 이야기 ㅣ 신나는 새싹 52
구스타보 롤단 지음, 김지애 옮김 / 씨드북(주)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빠 곰은 모르는 이야기> 구스타보 롤단 저/ 42쪽/ 12,000원 / 씨드북 2017/원제 cueontos de osos
'글 쓰는 아빠, 의견주는 아들'
<아빠 곰은 모르는 이야기>는 문학성이 높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아빠곰과 작가란 대중이 원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들곰의 다른 생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빠곰은 ‘곰의 감수성, 서정성, 섬세함’을 모두 쏟아부으며 어마어마하게 많은 글을 쓴다. 이야기를 완성할 때마다 출판사에 보내지만 매번 출간 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거절통지를 받는다. 아빠곰은 자기 글을 두고 자평하기를 너무 섬세해서 다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아들곰은 조금만 들어도 잠들 정도로 지루하기 때문에 아빠 글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기 글 스타일을 고집하는 아빠곰을 보다 못한 아들곰은 밤에 몰래 가서 완성된 아빠의 글을 조금씩 고친다. 수정된 원고를 받은 출판사는 서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잔인한 면을 잘 드러냈다면서 출간하고 싶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아빠곰은 몹시 기뻐한다. 아빠곰은 이제 어떤 글을 쓰게 될까?
작가는 검은색과 주황색만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아빠곰은 코, 아들곰은 코, 입, 혀, 아빠와 아들이 쓴 문장은 주황색이다. 아빠는 주황색으로 색칠한 귀를 통해 들어온 감각에만 의지해 글을 쓴다. 아들곰의 코끝과 날름거리는 혀의 주황색, 주황색 꽃, 주황색 이불은 아빠보다 미각, 후각, 시각 면에서 훨씬 더 발달했다는 걸 강조한다. 아들곰은 아빠에게 이어받은 서정성과 섬세함에다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는 능력을 갖췄다. 아들은 아빠의 글에 향기를 부여하고, 색채를 입힌다. 아들곰은 글을 고치고 나서 ‘훨씬 낫네’라고 평을 하는데 아빠곰은 잔인성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들곰은 소통하려고 노력해도 아빠곰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작가는 글을 쓰거나 읽어주지 않을 때 아빠곰이 얼마나 아들곰과 잘 놀아주는지를 몸을 굴리는 그림으로 여러 번 보여주었다. 아빠곰에게 받은 사랑은 아들곰을 문학 세계로 들어가게 움직인다. 아들곰은 촛불 아래에서 밤새도록 글을 고치면서 아빠의 힘든 작업을 이해한다. 작가는 글을 쓰는 공간인 동굴의 겉면을 펜대로 섬세하게 그리고, 동굴의 내부는 선명한 주황색으로 표현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아빠곰의 글쓰기에 아들곰의 톡톡 튀는 의견이 덧붙여져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생각의 차이가 큰 세대라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른 생각을 존중하는 길을 알려준다고도 볼 수 있다.
문학성이 높은 글에 대중성을 가미하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수정전과 후로 문장을 보여준 부분이 흥미롭다. 아이들과 함께 문학성 높은 아빠곰의 글을 아들곰처럼 바꿔보는 연습하면서 글쓰기를 놀이처럼 다뤄봐도 좋겠다. 책을 출간 후에도 아빠곰이 잔인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면서 예상해봐도 재미있겠다. 독자가 원하지 않는 그림책을 쓴다고 괴로워하는 작가가 본다면 대중성 추가에 대한 영감을 얻을 지도 모른다. 다른 그림책에 비해 글의 비중이 많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빈칸을 채워가는 그림책을 선호하는 독자라면 다소 밋밋하게 느낄 수 있다. 문학성과 대중성 중 무엇을 더 중시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 싶은 이에게도 추천한다.
아르헨티나 작가 구스타보 롤단의 그림책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된 그의 작품은 아르헨티나 어린이·청소년 문학 협회 어너 리스트에 네 차례, 뮌헨 국제어린이도서관에서 선정하는 화이트 레이븐스 도서 목록에 두 차례 올랐다. 프랑스 국제 어린이·청소년 문학 연구 센터에서 수여하는 옥토고노상, 카탈루냐 일러스트레이터 협회에서 수여하는 훈세다상도 수상했다. 앞으로 한국에 롤단의 작품이 더 소개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