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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 - 청년 정치인의 현실 정치 브리핑
이동수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전 취업준비로 고생인 막내를 불러 격려차 밥한끼 사주었다. 그때 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곧 선거라 투표 꼭 하러가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정치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동생이 대뜸 보수가 뭐고 진보가 뭐냐고 묻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그 단어들에 담겨진 여러 리앙스들을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해 하다가 보수는 유지하고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고 진보는 변화하고 개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 입장이라는 뻔한 국어사전 같은 스스로도 불만족스러운 답을 해버렸다.
그 질문은 나에게 막연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던 보수, 진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사전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의 실제 의미는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극우와 우리나라의 극우의 비교다. 보수하면 국가의 이익을 다른 가치보다도 중요시하는 자국우선주의나 국수주의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그런 보수 성향의 극단이 극우다. 한미일 삼각공조에서 씁쓸하지만 힘의 논리로 보면 미국에게는 한국보다는 일본이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고 정치적으로 더 가까운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일본 극우라도 성조기는 흔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극우는 성조기를 넘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든다. 보수나 남의 나라 국기를 흔드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
그리고 얼마전 일본 수출규제 조치는 사실상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침략이었다. 보수, 특히 극우라면 억지 논리를 만들어서라도 자국을 지켜내고 타국에 맞서야 할텐데 우리나라 보수는 국제법을 위반한 일본을 옹호하고 합법적 대응을 하는 우리정부를 비난했다. 이런 것을 볼 때 일본의 '보수'와 우리의 '보수'를 나라만 다를뿐 같은 '보수'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보수만 예를 들어 이야기 했지만 진보 또한 그렇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정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진보는 중도나 심지어 보수에 가까워보이기도 한다.
특히 진보를 공격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종북좌빨, 소위 빨갱이 라는 말을 쓴다. 보수의 아버지라 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종북좌빨 남로당 출신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우리나라 정치에 애시당초 정확히 보수라고 진보라고 절대적으로 말할 어떤 기준이 있는가. 아니면 그저 진영논리에 따라 이편, 저편을 나누기 위한 상대적 개념, 이름에 불과한가. 이런 생각들을 하던차에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라는 책이 내 눈에 띄였다.
저자도 자신이 보수냐, 진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그럴때 그는 그런 뭉떵거리(?) 단어에 말려 들어가지 않고 '정책에 따라 다르다'고 답한다. 저자는 교육은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 복지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좋아하는 정치인은 오세훈, 원희룡, 홍준표(여기까지는 보수 정치인), 유시민, 노무현(여기까지 진보 정치인) 이라고 했다. 똑똑한 저자는 진영논리에 말려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이 어떻게 다 나쁘거나 다 좋을 수 있을까. 보수라서 보수 정치인만 좋아해야하고 진보라서 진보 정치인만 좋아해야해서 마치 반대의 경우라도 생기면 배신자가 되는 것인냥 하는 풍토에서 저자는 당당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과 그의 어떤 부분에 끌렸는지를 분명하게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진보와 보수라는 말로 우리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누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어느 진영, 어느 정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놓는 정책이 중요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참으로 동의한다. 대부분 진보 정책을 지지하지만 안보는 보수를 지지할 수도 있고 대부분 보수 정책을 지지하지만 통일문제는 진보를 지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청소년 의회에 참여했었고 그때부터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만나며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학교는 언론학과에 입학하여 기자 인턴도 했었고 정치인 비서로 일한 경험도 소개한다. 이렇게 그는 어려서부터 정치와 언론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직간접적인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다. 지금은 '청년정치크루'라는 정치모임을 만들어 청년을 위한 좋은 정책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는 그가 정치활동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기록해놓은 에세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치, 정당, 선거, 입법에 관련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인턴이지만 기자 생활도 했었고 국회의원실에서 일할 때도 글담당 비서로 일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글은 정갈하고 세련되고 거침없다. 그의 글을 읽으며 최근 몇년간 있었던 정치적 이슈들이 한번에 정리되는 느낌이다. 정치판에 가까이 있으면서 단순히 뉴스로만 접하는 일반인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보고 경험한 것이 있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생생한 현장감과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볼수 없었던 부분까지도 담아낸다.
기억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 소위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며 보수정당의 선거를 대승으로 이끌었던 유능한 정치인이였다. 저자도 학생시절 박근혜 대표를 만났던 기억을 회상한다. 청소년 의회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제 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단다. 당직자 한 명이 나와 건성으로 응대했던 열린우리당과는 달리 한나라당에서 보여준 모습은 인상적이다. 당대표인 박근혜 대표가 직접 나와 청소년들을 맞이했고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행사진행을 직접 했으며 돌아가는 길에는 쿠키 한 상자씩까지 선물했다 한다. 저자를 포함한 친구들이 한나라당에 가졌을 호감이 눈에 선했다.
그렇게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잘 알고 선거에 이기는 법도 잘 알았던 유능했던 그녀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가고 나서는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분명 같은 박근혜인데 당대표 할 때는 유능했지만 대통령 할 때는 무능해졌을까. 저자는 이것의 원인을 시스템에서 찾는다. 정당은 아무리 당대표라 해도 원내대표, 최고위원 같은 선출된 국회의원들과 당직자, 당원들까지 모두 시스템 하에서 서로의 눈이라는 감시가 있고 시스템적으로 당헌당규에 따라 견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이 마음대로 하거나 비선실세가 실력행사를 하기 어려운 구조지만 청와대 내에서는 일단 대통령의 힘을 견제할 세력이 없기에 모든 것이 개인의 마음대로 가능해진다. 이런 시스템적인 차이로 주변 감시와 견제의 시스템에서는 유능했던 사람이 폐쇄와 독단의 시스템에서는 무능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과 권한이 집중되어있는 제왕적 대통령제 시스템에서는 훌륭한 대통령이 구조적으로 나오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가지 인상적이 었던 것이 나는 이번에 기초의원 공천을 지역위원장 또는 당협위원장이 한다는 것을 처음알았다. 소위 해당지역의 잠재적 국회의원 후보자가 그 지역의 기초의원 후보자를 공천한다는 것인데 공천권이라는 것은 사실상 절대반지 같은 것 아닌가. 당대표의 궁극적인 힘도 결국 공천권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국회의원 잘 모셨다고 공천받는 기초의원이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정당 사무처가 직접 공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 솔직히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은 대게 잘 알지만 자기 지역구 구의원, 시의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즉 국회의원은 언론과 시민에게 출마 때부터 엄중한 검증을 거칠수 밖에 없고 임기 내에도 엄청난 주목으로 늘 감시와 견제를 받게된다. 하지만 기초의원은 관심과 주목도가 떨어지므로 저자도 이런 풍토로 인해 과거 한 기초의원은 골프채로 아내를 폭행해 사망하게 하고 또 어떤 기초의원은 외유성 해외연수를 갔다가 가이드를 폭행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지금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면 하는 일은 없고 문제만 야기하며 숫자는 많아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기초의원을 없애버리자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댓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명언을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저자도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결국 우리가 손해 본다는 것을 강조한다. 책 제목처럼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라며 정치에 무관심하자고 이 책이 나온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이 하나의 '정치입문서'로서 젊은 친구들이 정치를 조금이라도 더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뜻에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21대 총선이 이제 2주 남았다.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정치를 외면하면 결국 가장 되지 말하야 할 사람들이 당선될 것이다. 여태 정치가 보여준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선거자료를 꼼꼼히 읽어보고 미디어에서 나오는 인터뷰나 기사 내용들을 잘 참고해서 누가 우리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정치에 반영해 줄 것인가를 판단한 후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으면 좋겠다. 그러자니 도통 아는 것이 없어 막막한 심경이라면 이 책이 첫발을 뗄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청년' 작가가 '청년' 독자를 위해 딱딱하지 않고 어떤 정치적 편향도 없이 솔직하게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에 자기도 몰랐던 자기안의 정치본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