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 자장가 내 손에 그림책
지시우 지음 / 계수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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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육아책에서 그런 글을 읽은 적 있다. 어린 아이들이 잠을 잘 못자는 이유는 내일을 인식하지 못해서라 한다. 눈을 뜨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고 눈을 감으면 세상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에게는 잠드는 것이 곧 '죽음'의 느낌처럼 받아들여 질 것 아닌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히 맞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왜 쉽게 못 자는지 납득이 되는 주장이다.


5살이 된 우리 아이도 잠 자는 걸 참 싫어한다. 다른 집 이야기 들어보면 10시쯤 되면 초등학생들도 잔다는데, 우리집 5살 어린이는 자정을 넘어도 도통 잘 생각을 안한다. 어쩔 때는 눈이 무거워 갸우뚱 거리면서도 끝끝내 잠에 들지 않으려고 버티는 모습도 봤다. 한번은 궁금해서 물어봤다. 왜 잠을 안자?하고. "더 놀고 싶어, 심심해" 가슴이 짠하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더 놀고 싶다는 아이. 티비는 틀어 달라고 졸라도 부모가 안 틀어 주니, 거실에서 그냥 장난감만 가지고 혼자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 역시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 놀고 해야되는데 땀도 흘리고 숨도 차고 하면서 몸을 많이 쓰면 밤에 잠이 잘 들텐데 이 시대의 어린이들은 여러 이유로 나의 시대와는 다르니 안타깝게 느껴졌다. 또 형제가 있으면 덜할텐데 혼자라서, 체력 못 따라주고 할 것 많은 부모는 아이의 놀이 본능을 충분히 맞춰주질 못하니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최근 우리 아이가 빠져있는 만화는 '신비아파트'로 수많은 '귀신'들이 나온다. 무슨 귀신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발음도 어려운 귀신들 이름을 신기하게도 우리 아이는 하나하나 다 꿰고 있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보는 것은 마치 매운 떡볶이 안먹어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먹고있는 그런 심리인가, 계속 보고싶다 한다. 불꺼진 내 방이 무서워 그 앞도 못 지나치는 아이가 귀신이 나오는 만화는 엄청 좋아한다. 잠들기 전에 아이가 꿈에 귀신이 어쩌고 저쩌고 무서워하는 걸 볼 때마다 귀신은 없다고 말해주고 설사 있다하더라도 '아빠가 귀신 물리쳐줄게' 라고 하지만 그래도 무서워한다. 원래 잠에 잘 안드는데다가 귀신 만화로 공포심을 더 키우고 있는 것 같아 아이 수면에는 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아 걱정도 되지만 저렇게 좋아하니 매몰차게 막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본다. 잠드는 것은 키도 크게 해주고 몸을 쉬게 해주는 좋은 것이라 설명도 해주고 TV에는 공룡이 나오더라도 실제로는 공룡이 없는 것처럼 귀신도 사실 없고 꿈도 가짜라고 계속 말해준다. 언젠가는 하도 무서워하니 인터넷 검색해서 귀신 쫒아 주는 '부적'을 그려주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솔잎 자장가>를 만났다. 책 소개글에서 무서운 꿈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아이, 더 놀고 싶어서 잠들지 못하는 아이, 여러 이유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편안한 밤을 선물하고 싶다는 말이 눈길을 잡아 당겼다. 더 놀고 싶어서, 잠들기 무서워서 잠 못드는 아이, 딱 우리 아이 이야기다. 이 책의 효용성을 제쳐 두고라도 우리 아이의 상황을 다른 이의 글을 통해 만나게 되니 이것이 우리집 만의 일도 아니라는 것에 위안이 되고 또 같은 상황을 다른 누군가와 공감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책의 내용은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이 제각기 어떤 이유로 못 자고 있을 때 소나무가 자신이 고민을 해결해줄테니 이제 그만 걱정말고 자라는 말을 해주는 내용이다. 책에 나오는 동물들의 고민을 보면서 아이의 마음을 추론해본다. 자신이 자는 동안 누가 도토리를 가져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다람쥐의 고민에서는 좋아하는 장난감들을 기어코 안방으로 싸그리 다 들고와 머리맡에 두고서야 잠드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다가 무서운 꿈을 꾸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초록뱀에도, 자다가 목이 마르면 어쩌나 걱정하는 오소리, 깜깜한 것을 무서워하는 아기곰에서도 우리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그런 적어도 아이에게는 엄청난 걱정거리들을 소나무는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괜찮다, 괜찮다' 토닥여준다.


책의 전면 커버에 그림이 참 예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책 도입부에 그 그림의 완전판이 나오는데 참 아름답다. 아이를 키우는 덕에 아이들 그림책을 보게 되는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아기자기 하고 예쁜 그림을 그리는지, 아이들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른들에게 시와 시집이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그림과 그림책이 있다. 그래, 글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그림으로 쓴 시가 담긴 '아이들을 위한 시집'이다.



꼭 이 책 때문만이겠냐마는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줄 때 아이가 하품을 했다. 책을 지은 작가의 마음과,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마음,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모든 이의 마음을 아이는 느꼈을까. 그림도 따뜻하고 글도 따뜻하고 내용도 따뜻하고 그래서 마음도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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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 - 청년 정치인의 현실 정치 브리핑
이동수 지음 / 이담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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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취업준비로 고생인 막내를 불러 격려차 밥한끼 사주었다. 그때 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하다가 곧 선거라 투표 꼭 하러가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시작으로 자연스레 정치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동생이 대뜸 보수가 뭐고 진보가 뭐냐고 묻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그 단어들에 담겨진 여러 리앙스들을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해 하다가 보수는 유지하고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고 진보는 변화하고 개혁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 입장이라는 뻔한 국어사전 같은 스스로도 불만족스러운 답을 해버렸다.


그 질문은 나에게 막연한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던 보수, 진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볼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사전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보수의 실제 의미는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극우와 우리나라의 극우의 비교다. 보수하면 국가의 이익을 다른 가치보다도 중요시하는 자국우선주의나 국수주의 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그런 보수 성향의 극단이 극우다. 한미일 삼각공조에서 씁쓸하지만 힘의 논리로 보면 미국에게는 한국보다는 일본이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고 정치적으로 더 가까운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일본 극우라도 성조기는 흔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극우는 성조기를 넘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든다. 보수나 남의 나라 국기를 흔드는 게 이상하지 않는가.


그리고 얼마전 일본 수출규제 조치는 사실상 한국에 대한 일본의 경제적 침략이었다. 보수, 특히 극우라면 억지 논리를 만들어서라도 자국을 지켜내고 타국에 맞서야 할텐데 우리나라 보수는 국제법을 위반한 일본을 옹호하고 합법적 대응을 하는 우리정부를 비난했다. 이런 것을 볼 때 일본의 '보수'와 우리의 '보수'를 나라만 다를뿐 같은 '보수'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보수만 예를 들어 이야기 했지만 진보 또한 그렇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정책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 진보는 중도나 심지어 보수에 가까워보이기도 한다.


특히 진보를 공격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종북좌빨, 소위 빨갱이 라는 말을 쓴다. 보수의 아버지라 불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종북좌빨 남로당 출신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과연 우리나라 정치에 애시당초 정확히 보수라고 진보라고 절대적으로 말할 어떤 기준이 있는가. 아니면 그저 진영논리에 따라 이편, 저편을 나누기 위한 상대적 개념, 이름에 불과한가. 이런 생각들을 하던차에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라는 책이 내 눈에 띄였다.



저자도 자신이 보수냐, 진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고 한다. 그럴때 그는 그런 뭉떵거리(?) 단어에 말려 들어가지 않고 '정책에 따라 다르다'고 답한다. 저자는 교육은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 복지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하고 좋아하는 정치인은 오세훈, 원희룡, 홍준표(여기까지는 보수 정치인), 유시민, 노무현(여기까지 진보 정치인) 이라고 했다. 똑똑한 저자는 진영논리에 말려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이 어떻게 다 나쁘거나 다 좋을 수 있을까. 보수라서 보수 정치인만 좋아해야하고 진보라서 진보 정치인만 좋아해야해서 마치 반대의 경우라도 생기면 배신자가 되는 것인냥 하는 풍토에서 저자는 당당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정치인과 그의 어떤 부분에 끌렸는지를 분명하게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진보와 보수라는 말로 우리를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누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어느 진영, 어느 정당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놓는 정책이 중요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참으로 동의한다. 대부분 진보 정책을 지지하지만 안보는 보수를 지지할 수도 있고 대부분 보수 정책을 지지하지만 통일문제는 진보를 지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청소년 의회에 참여했었고 그때부터 정당이나 정치인들을 만나며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학교는 언론학과에 입학하여 기자 인턴도 했었고 정치인 비서로 일한 경험도 소개한다. 이렇게 그는 어려서부터 정치와 언론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직간접적인 경험을 쌓아온 사람이다. 지금은 '청년정치크루'라는 정치모임을 만들어 청년을 위한 좋은 정책을 만드는 활동을 하고 있다.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는 그가 정치활동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바를 기록해놓은 에세이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치, 정당, 선거, 입법에 관련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인턴이지만 기자 생활도 했었고 국회의원실에서 일할 때도 글담당 비서로 일했던 이력이 말해주듯 그의 글은 정갈하고 세련되고 거침없다. 그의 글을 읽으며 최근 몇년간 있었던 정치적 이슈들이 한번에 정리되는 느낌이다. 정치판에 가까이 있으면서 단순히 뉴스로만 접하는 일반인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보고 경험한 것이 있기에 저자의 이야기는 생생한 현장감과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볼수 없었던 부분까지도 담아낸다.


기억나는 이야기 중 하나는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 소위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며 보수정당의 선거를 대승으로 이끌었던 유능한 정치인이였다. 저자도 학생시절 박근혜 대표를 만났던 기억을 회상한다. 청소년 의회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과 제 1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단다. 당직자 한 명이 나와 건성으로 응대했던 열린우리당과는 달리 한나라당에서 보여준 모습은 인상적이다. 당대표인 박근혜 대표가 직접 나와 청소년들을 맞이했고 교육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행사진행을 직접 했으며 돌아가는 길에는 쿠키 한 상자씩까지 선물했다 한다. 저자를 포함한 친구들이 한나라당에 가졌을 호감이 눈에 선했다.



그렇게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잘 알고 선거에 이기는 법도 잘 알았던 유능했던 그녀가 대통령이 되어 청와대에 들어가고 나서는 비선실세 국정농단의 헌정사상 첫 탄핵 대통령이 되어버린 것이다. 분명 같은 박근혜인데 당대표 할 때는 유능했지만 대통령 할 때는 무능해졌을까. 저자는 이것의 원인을 시스템에서 찾는다. 정당은 아무리 당대표라 해도 원내대표, 최고위원 같은 선출된 국회의원들과 당직자, 당원들까지 모두 시스템 하에서 서로의 눈이라는 감시가 있고 시스템적으로 당헌당규에 따라 견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개인이 마음대로 하거나 비선실세가 실력행사를 하기 어려운 구조지만 청와대 내에서는 일단 대통령의 힘을 견제할 세력이 없기에 모든 것이 개인의 마음대로 가능해진다. 이런 시스템적인 차이로 주변 감시와 견제의 시스템에서는 유능했던 사람이 폐쇄와 독단의 시스템에서는 무능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과 권한이 집중되어있는 제왕적 대통령제 시스템에서는 훌륭한 대통령이 구조적으로 나오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가지 인상적이 었던 것이 나는 이번에 기초의원 공천을 지역위원장 또는 당협위원장이 한다는 것을 처음알았다. 소위 해당지역의 잠재적 국회의원 후보자가 그 지역의 기초의원 후보자를 공천한다는 것인데 공천권이라는 것은 사실상 절대반지 같은 것 아닌가. 당대표의 궁극적인 힘도 결국 공천권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국회의원 잘 모셨다고 공천받는 기초의원이면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아니면 정당 사무처가 직접 공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 솔직히 자기 지역구 국회의원은 대게 잘 알지만 자기 지역구 구의원, 시의원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즉 국회의원은 언론과 시민에게 출마 때부터 엄중한 검증을 거칠수 밖에 없고 임기 내에도 엄청난 주목으로 늘 감시와 견제를 받게된다. 하지만 기초의원은 관심과 주목도가 떨어지므로 저자도 이런 풍토로 인해 과거 한 기초의원은 골프채로 아내를 폭행해 사망하게 하고 또 어떤 기초의원은 외유성 해외연수를 갔다가 가이드를 폭행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지금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면 하는 일은 없고 문제만 야기하며 숫자는 많아 국민의 세금을 축내는 기초의원을 없애버리자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댓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라는 플라톤의 명언을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저자도 정치에서 멀어질수록 결국 우리가 손해 본다는 것을 강조한다. 책 제목처럼 <진보도 싫고, 보수도 싫은데요>라며 정치에 무관심하자고 이 책이 나온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이 하나의 '정치입문서'로서 젊은 친구들이 정치를 조금이라도 더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뜻에서 이 책을 썼다고 했다. 21대 총선이 이제 2주 남았다. '그 놈이 그 놈'이라며 정치를 외면하면 결국 가장 되지 말하야 할 사람들이 당선될 것이다. 여태 정치가 보여준 부족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선거자료를 꼼꼼히 읽어보고 미디어에서 나오는 인터뷰나 기사 내용들을 잘 참고해서 누가 우리지역 주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정치에 반영해 줄 것인가를 판단한 후 소중한 한표를 행사했으면 좋겠다. 그러자니 도통 아는 것이 없어 막막한 심경이라면 이 책이 첫발을 뗄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청년' 작가가 '청년' 독자를 위해 딱딱하지 않고 어떤 정치적 편향도 없이 솔직하게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에 자기도 몰랐던 자기안의 정치본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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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겠지만 빅뱅 똑똑한 책꽂이 17
카타리나 소브럴 지음, 이지유 옮김 / 키다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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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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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Big Bang)은 우주가 매우 작은 점에서 엄청나게 큰(Big) 폭발로 펑(Bang)하고 생겨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I'm so sorry, But I love you, 다 거짓말' 노래 불렀던 아이돌 그룹도 지금은 어찌 되었든 당시는 이름을 '빅뱅'으로 하여 시작은 작았지만 우주처럼 큰 존재가 되고 싶은 그들의 염원을 담고자 했을 것이다. 아무튼 <믿을 수 없겠지만 빅뱅>은 우주의 생성을 설명하는 빅뱅이론에 대한 그림책이다. 작가는 우주의 생성이라는 다소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지는 과학적 사실을 아이들의 눈에 맞추어 그림책으로 만들어놓았다.


어렸을 때 학교에는 천문학 동아리 같은게 있어서 선생님과 혹은 그네들 끼리 천체망원경을 가지고 달과 별을 관찰하러 다니는 걸 지켜본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떤 이들은 어렸을 때 하늘과 우주에 관심이 많았는데 나는 오히려 커서 물리학을 배우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고 망원경을 사고 관측소를 시간내서 가고 하는 것은 아니었고 우주에 관한 서적을 찾아보고 시골에 내려가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정도였다. <믿을 수 없겠지만 빅뱅>을 고른 이유는 5살 짜리인 우리 아들이 별과 달에 관심을 보여 우주에도 흥미를 느낄 것 같아 선택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 책의 그림은 좋아했지만 내용은 별로 안들리는듯 했다. 아마도 내가 사용한 접근법과 설명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믿을 수 없겠지만 빅뱅>의 처음에는 아이들이 친숙할 만한 것들이 여럿 그려져 있다. 공룡, 고래, 지렁이, 화산, 벌, 나무, 수박...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점에서 시작되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동화책 읽어주기 방법 중 '시간끌기' 전략을 구사하는 나는 책에 나오는 그림 하나하나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다음 장면은 138억년 전 빅뱅이 일어나기 전 우주가 한 점이었던 것이 나온다. 이때 나는 아이가 어디에 꽂힐지 예상했고 바로 적중했다. 최근 숫자에 부쩍 관심을 가지는 아이는 '백'이라는 숫자가 엄청나게 큰 숫자인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아이에게 '백삼십팔'을 읽어주었으니(사실은 뒤에 '억'이 더 엄청난 거지만) "에~에~" 하며 동그래진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런데 '우주'라는 말을 하면서 순간 아이가 '우주'를 알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막상 '우주'를 어떻게 설명해줘야 할지 턱 막혀버렸다. 너무도 당연하게 써오던 말이라 더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이 엄습했다. 다행이 다음 장에 참 간단하지만 명확하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우주는 이 세상 모든 것이야!"라고.


내가 이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고 있는데 아내는 고개를 흔든다. 책 내용이 자기가 듣기도 어렵게 느껴진다는 뜻이다. 과거 나는 스티븐호킹이 쓴 <짧고 쉽게 쓴 시간의 역사>라는 책을 읽은 적 있다. 이 역시 우주에 관한 책이다. 우주가 팽창한다는 증거를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모두가 한번쯤 들어봤을 '허블 망원경'의 바로 그 '허블'님이다. 1929년 허블은 우주가 팽창한다는 증거를 세상에 내놓았고 그 결과는 '허블의 법칙'이라 불린다. 그 전까지만 해도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헛소리에 불과했다. 심지어 20세기 최고의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까지도 정적우주론을 내세웠다. 더 재밌는 것은 허블로 우주팽창의 사실이 밝혀지기 전 바로 그 아인슈타인이 만든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이미 몇몇 과학자들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유도해냈음에도 정작 아인슈타인은 그들을 실력없는 물리학자들로 개무시해버렸다는 것이다. 후에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업적 중 가장 큰 실수가 된다. 어쨌든 우주가 지금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은 밝혀진지 100년도 안된 따끈한 '팩트'이며 이는 빅뱅이론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야기가 새는 것 같지만 우주가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막 알게된 사람도 있을 것 같아 몇 줄 더 나가본다. 스티븐호킹의 책에서 그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부분이 있는데 나에게는 잘 통했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해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간단히 언급해본다. 내용은 간단하다. 모든 질량을 가진 물체는 상호간에 서로 당기는 힘, 중력이 작용한다. 그래, 바로 뉴턴의 사과말이다. 우주의 은하도 별도 모두 질량이 있으므로 중력, 서로 당기는 힘(인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에 맞설 서로 밀어내는 힘(척력)이 없어 우주가 정적이었다면 벌써 다 부딪혀서 박살이 났어야 한다. 그럼에도 박살이 안난 것은 중력을 무시할 정도의 속도로 팽창이 되고 있다면 가능해진다. 우주탐사로켓이 지구이탈속도 이상이 되면 중력을 벗어날 수 있듯이 말이다. 아무튼 지구가 팽창하지 않았다면 벌써 우리 모두는 짜부가 됬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아주 오래전 한 점에 불과한 우주가 빅뱅이라는 엄청나게 큰 폭발로 팽창해서 지금의 우주가 되었고 그때 같이 튀어져 나온 입자들로 별도 생기고 태양도 생기고 지구도 생겼다 설명한다. 그리고 그 지구에서 공룡도 나고 나무도 생기고 고래도 생기고 우리도 생겨났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를 포함한 모든 것은 우주에서 날아온 입자, 우주먼지라는 관점에서 같은 물질로 되어 있고 최초 한 점에서 출발했으므로 같은 장소에서 시작되었다고 결론짓는다.


얼마전 다른 책에서도 우리는 우주의 먼지로 생겼다는 표현을 읽었는데 참 아름다운 말인 것 같다. 우리는 모두가 다르다고 하지만 결국 이 다른 모든 것은 같은 한 점에서 나왔다. 사람들은 별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하기도 하고 더 이상 보지 못하는 사람을 그리며 별이 되었을거라고 믿곤 한다. 빅뱅으로 나온 입자가 은하계의 수많은 별들을 만들어냈고 그 별들은 수많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다 그 중 하나인 태양계도 생겼고 지구가 생겼고 우리가 생겼다. 결국 우리 몸의 입자는 별에서 왔으므로 우리는 한 때 별이었다는 논리적 전개가 가능해진다. 별처럼 아름답다고 아이들에게 말할 것이 아니라 너는 정말 한 때 별이라고 말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빅뱅을 설명하고 있지만 작가는 어쩌면 빅뱅 자체보다 아이들에게 '너희는 정말로 저 밤 하늘의 아름다운 별처럼 소중하고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가슴에 새겨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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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집권 경제학
한성안 지음 / 생각의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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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대생 출신이다. 학교를 벗어나 직장을 다니면서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직 학생인 막내동생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험과 취업에 바빠서 정치, 사회에 무관심한 것을 느낀다. 사실 나도 그랬다. 과거 민주화시절은 '학생운동'의 시대라 할 만큼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 정치를 향한 관심과 참여가 높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그럴 여력이 없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보고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늘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있다. 바로 경제다. 하지만 빈약한 경제학적 지식으로 인해 이해는 커녕 관련 용어조차 모르는 것이 많아 네이버 백과사전을 뒤져보기 바빴다. 그러다보니 늘 마음 한구석에 어떤 갈증이 있어 대학생 때 왜 경제학개론 같은 과목을 교양으로 들어놓지 않았던가 후회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 문제를 친기업적 성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보수'의 가치 보다는 성장의 결과를 공정하게 분배하자는 '진보'의 가치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경제적 관점에서 나는 진보적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경제학 지식에 대한 갈증과 경제적 '진보'성향으로 <진보 집권 경제학>에 끌렸다.


저자는 사회민주주의체제가 잘 정착 된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지금은 경제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소개에는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경제학을 비판하는 동시에 마르크스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제도경제학을 그 대안으로 내세우는 경제학자다'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진보 집권 경제학>에서 '제도경제학'을 중심으로 다른 경제학들을 소개하고 비교하고 있다.


<진보 집권 경제학>은 참 잘 짜여진 '교과서'다. 많은 경제 관련 교양 서적들은 경제용어 설명이나 경제현상 평론을 주로 다루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TEXT'다. 오랜만에 대학교 전공서적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공학 교과서도 바로 공학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수학 및 기초과학 이론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이 책도 경제학의 출발인 인문학과 자연과학에서부터 시작하여 경제학을 유도해가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동일한 경제현상에 대해 다른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인식을 가짐으로써 크게 보수의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진보의 케인스 경제학, 제도 경제학이 나온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체계적인 교과서같은 구성이라는 말에 겁이 날지 모르겠지만 서두에 저자는 비전공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썼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래서 전문지식을 최대한 비전공자인 일반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고 했다. 전문서적은 사전지식이 없으면 읽기도 어렵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위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학이지만 본류인 인문학에서부터 출발하기에 나처럼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도 인내심만 구비하고 있다면 이해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이 아닌 것은 인정하며 나도 읽다가 가끔 꾸벅꾸벅 졸음에 빠지기도 했고 어떤 용어는 검색도 해가며 읽었지만 어렵게 읽어낸 만큼 남는 것도 많았다.



현정부의 정책기조가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것은 다들 들어 알 것이다. 가계의 임금과 소득을 늘려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내용이다. 딱 이정도까지 내가 인터넷 기사로 알고 있는 전부다. 더 깊이는 잘 모르니 경제기사를 읽어도 이해의 한계가 있고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능력도 부족했다. 이 책에서 밀고 있는 진보의 경제학인 '제도 경제학'은 크게는 4개의 경제학파를 모아 놓은 연합군 같은 건데, 그 중 하나가 포스트케인지안 경제학이다. 이 포스트케인지안 경제학의 '케인지안'이 바로 그 유명한 뉴딜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경제학자 케인즈다. 포스트케인지안 경제학의 대표적인 정책이 '임금주도성장'인데 우리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도 여기서 왔다. 이 책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의 동작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기존 보수가 지향한 이윤주도성장과 비교하여 단순한 경제지식 충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경제정책의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뉴스기사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우리나라만 하고 있고 '듣보잡' 정책으로 보도되곤 했는데 책에서는 1930년 세계대공황 이후 기존의 신고전주의 경제 정책의 한계를 느낀 많은 선진국들에서 실제 이 정책을 도입해 왔음을 설명한다.


이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에우다니모니아', '좋은 삶'이라는 뜻으로 중용의 미덕을 지키고,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삶이다.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다. 저자는 '제도 경제학'의 목표는 바로 이 '에우다니모니아'에 있다고 했다. 반복지적 혁신경제와 3분의 2사회로 요약되는 '헬조선'을 중용의 미덕, 평등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리는 '좋은' 경제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문화적 성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교정주체는 오직 시장이다.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정부다. 그러나 제도 경제학에서는 정부와 '깨어있는 시민'이다. 내가 본 이 책의 결론은 좋은 삶(에우다니모니아)를 구현하기위서는 민주정부뿐만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의 사회적 행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책도 깨어있는 시민들을 위해 썼노라 말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로써 '깨어있는 시민'을 강조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이 책의 제목이 '진보집권경제학'이지만 마냥 정치적 진보진영을 편들기 보다는 꾸지람, 질책에 가까운 언급도 많다. 현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잘못된 비판과 오해에 대해 객관적 반박과 논리적 해명도 하지만 정권의 경제정책의 한계도 지적한다. 그리고 보수경제이론이 주류경제이론이다보니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 조차도 보수경제이론에 젖어있고 진보경제이론에는 무지한 것을 두고 진보진영이 '자신의 경제학적 족보도 모르는 후레자식'이 되었다는 강한 표현과 함께 그래서 이 책이 '진보의 지적 진공상태'를 해소하고자 썼다는 뚜렷한 집필의도를 드러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경제에서는 늘 성장만이 옳다고 배워왔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경제성장률을 이야기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도 경제성장률 몇 프로 달성할거냐를 주요과제로 내건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을 이야기하며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었건만 여전히 성장을 외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이라면서 왜 여전히 헬조선이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고 세 모녀 자살사건처럼 생활고로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는 걸까. 이쯤되면 우리가 해오던 성장우선 경제정책에 의심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자본과 성장의 보수 경제학이 아니라 분배와 공정의 진보의 경제학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공리주의로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강요되는 보수의 가치가 아니라 소수의 행복도 존중되는 진보의 가치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 시점에 <진보 집권 경제학>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학문적 이론과 정책적 대안을 제공해준다.



리영희 선생님이 그러지 않던가, '새는 좌우 날개로 나는 것'이라고. 인식의 차이로 인해 방법론적 입장에서 진영논리에 따라 비록 보수와 진보가 나뉘지만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본의는 같다고 믿고있다. 본인을 진보성향이라고 한다면 진보정책의 밑바탕 되는 진보 경제학을 알아야 정책도 제대로 이해하고 타인을 설득도 할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중도나 보수성향이라고 하더라도 진보정책의 뿌리를 이해함으로써 제대로 된 비판과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어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더 좋은 사회(에우다니모니아)를 구현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두 구절을 소개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품고 있는 목적함수의 내용은 '지식과 기술의 도구적 활용에 힘입어 기본소득이 확보된 상태에서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고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실천을 통해 좋은 삶을 누리는 것이며, 이로써 인류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재창조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깨어 있는 시민들이 지적인 자신감을 회복하여, 지극히 편향한 주류 경제학자들과 저 무식한 정치모리배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기를 바란다. 만민이 함께 잘 사는 '좋은 경제'에 대한 발걸음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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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
강혜은 지음 / 하영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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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즘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난리다. 5살 우리 아들은 코로나로 인한 어린이집 휴원으로 벌써 한 달 넘도록 계속 집에만 있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너무 심심해 하고 아내는 아이와 놀아주느라 지쳐있다. 새로운 장난감을 사주는 것도 하루 이틀, 금새 질려버리고 그렇다고 매일 장난감을 새로 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심심한 아이는 계속 유튜브를 틀어 달라고 조르지만 우리는 너무 많이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와 일단 틀어주면 조용해진다는 달콤한 유혹 사이를 왔다갔다 하고 있던 차에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를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에서는 일상속에서 발생하는 재활용품과 쉽게 구할수 있는 종이, 가위, 테이프와 같은 문구류를 이용해서 아이의 장난감을 만드는 방법이 담겨있다. 우리집 분리수거는 내가 한다. 매주 비닐, 플라스틱, 종이, 유리, 캔 같은 생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면서도 한번도 그것들을 가지고 아이와 놀아준다는 생각은 못했었다. 이 책으로 마치 내 머리속에서 전혀 관계 없던 두 단어 '분리수거'와 '장난감'을 이어주는 신경회로가 생성된 기분이다.


책에서는 총 50가지의 장난감을 만드는 방법이 나온다. 장난감마다 저자의 짧은 소개글이 실려있고 준비물과 완성된 모습, 단계별 설명과 친절한 사진이 수록되어 있으며 마지막에는 그 장난감으로 저자는 아이와 어떻게 놀았는지, 어떻게 놀면 좋을지 언급되어 있다. 단순히 만들면 끝이 아니라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만들면서 한번 놀고, 다 만든 장난감을 가지고 '이렇게 놀아요'에서 소개된 방식이나 또는 본인만의 방식으로 또 한번 놀수 있도록 되어 있다. 어렸을 때 TV유치원에서 김영만 아저씨가 나와서 색종이나 박스 같은 것들로 재밌는 장난감을 만들던 장면이 떠올랐다.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에서는 만들기 방법 외에도 저자가 아이를 키우며 고민해서 찾은 팁이 실려있다.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 가이드', '내 아이의 건강한 스마트폰 사용 습관을 위한 Tip 10'이 그것이다. 엄마표 놀이 가이드에서는 '오직 놀이를 위한 놀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과 '아이가 잘 따라주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내 방식을 지우고 아이가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려라'는 말에 깊이 공감했다. 왠지 모르게 아이와 놀 때 조금이라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는 놀이를 하려고 하게 되는데, 사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재미가 없어서 잘 안 따라주곤 한다. 그럴 때 욕심을 버리고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해주라는 말에서 뜨끔했다. 그래, 주고 싶은 걸 주는 게 아니라 받고 싶은 걸 줘야하는 것이다.



저자는 특히나 책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아이에게 책 읽는 즐거움을 가르쳐 줄 것을 강조하며 만약 아이가 책 읽기를 싫어한다면 그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내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독후활동'이라는 것이다. 한번 씩 책을 읽어주긴 했는데 그게 다였다. 하지만 저자의 '독후활동'은 읽은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놀이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하는 연장활동을 하는 것이다. 듣고보면 그런 걸 할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지만 듣기 전엔 전혀 그럴 생각을 못했었다. 육아로 피곤한데 굳이 만들기까지 할 여력이 없다하는 경우, 아이와 책을 읽고 나서 이면지 하나 준비해 사인펜으로 책에 나왔던 동물이나 주인공을 그려보는 것도 좋다. 실제로 그림을 그려봤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 이것은 책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요즘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 '신비아파트'에 나오는 캐릭터를 같이 그려보는 것도 반응이 좋았다. 이 책의 'Part 5'에서도 이런 독후활동을 적용하여 동화책을 소개하고 그 이야기와 관련된 만들기를 수록해 놓았다.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는 궁극적으로는 만들기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한 엄마의 아이를 향한 따뜻한 마음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이 없었다고 고백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놀이는 사랑'이라는 저자는 이 책의 곳곳에 아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묻혀 놓았다. 그녀가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의 행복을 고민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육아일기와 사진을 양장본 책으로 만들어 놓은 정성도 대단했다. 그래서 피곤하다며 아이와 놀아주는 것에 소홀했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고 아이의 행복을 위해 더 분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해 준 책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5살 아이에게 이 책과 포스트잇 플래그를 주면서 만들고 싶은 걸 표시해 놓으면 같이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퇴근하고 나니 6개의 플래그가 붙어있었다. '신나는 풀숲 놀이터', 귀염둥이 버섯 인형', 페트병으로 장난감 컵 만들기', '뒤집개로 기린을 만들어요', '시끌벅적 동물농장', '트리케라톱스를 만들어요'가 아이에게 선택받아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타는 '배'도 하고 싶다 했다.


문득 '뗏목'이 생각나서 분리수거 바구니에 있던 페트병들을 가져와 테이프로 고정해 '뗏목' 바닥을 만들고 파이프 보온커버와 탁구채를 합쳐 '노'를 만들었다. 금방 만들었지만 만드는 동안 아이에게 페트병 잡아주기, 가위로 테이프 잘라주기 같은 임무를 주었는데 아이는 자신의 역할이 있어 너무 좋아했다. 사실 가위는 위험할까 걱정되어 안주려다 하고싶어하는 게 보여 큰 맘먹고 줬는데 너무 좋아하는 걸 보니, 너무 방어적으로 못하게만 하지 말고 되도록 아이에게 기회를 많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접한 뗏목이긴 했지만 집에 있던 물건들로 아이와 함께 만든 장난감으로 같이 놀았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아이에게는 장난감이 재활용품인지 기성품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호기심을 느낄 수 있고 엄마, 아빠와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걸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을 계기로 독후활동이라는 것도 해보고 재활용품으로 집에서 만들기도 해볼 수 있어 좋았다.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왕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면 그 상황이라서 좋은 점에 집중하자는 뜻이다. 원래 저녁시간은 바빴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회식 같은 바깥 활동이 제한되었고 아이도 어린이 집 안가고 집에 있다보니 코로나 덕분에 오히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늘었다. 이럴 때 그동안 아이에게 소홀했던 부분을 만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싶다. 아이와 뭘 하고 놀까가 고민인 부모님들이라면 <스마트폰보다 엄마표 놀이>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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