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 자장가 내 손에 그림책
지시우 지음 / 계수나무 / 202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육아책에서 그런 글을 읽은 적 있다. 어린 아이들이 잠을 잘 못자는 이유는 내일을 인식하지 못해서라 한다. 눈을 뜨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고 눈을 감으면 세상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에게는 잠드는 것이 곧 '죽음'의 느낌처럼 받아들여 질 것 아닌가.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히 맞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이 왜 쉽게 못 자는지 납득이 되는 주장이다.


5살이 된 우리 아이도 잠 자는 걸 참 싫어한다. 다른 집 이야기 들어보면 10시쯤 되면 초등학생들도 잔다는데, 우리집 5살 어린이는 자정을 넘어도 도통 잘 생각을 안한다. 어쩔 때는 눈이 무거워 갸우뚱 거리면서도 끝끝내 잠에 들지 않으려고 버티는 모습도 봤다. 한번은 궁금해서 물어봤다. 왜 잠을 안자?하고. "더 놀고 싶어, 심심해" 가슴이 짠하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더 놀고 싶다는 아이. 티비는 틀어 달라고 졸라도 부모가 안 틀어 주니, 거실에서 그냥 장난감만 가지고 혼자서 놀고 있는 우리 아이. 역시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 놀고 해야되는데 땀도 흘리고 숨도 차고 하면서 몸을 많이 쓰면 밤에 잠이 잘 들텐데 이 시대의 어린이들은 여러 이유로 나의 시대와는 다르니 안타깝게 느껴졌다. 또 형제가 있으면 덜할텐데 혼자라서, 체력 못 따라주고 할 것 많은 부모는 아이의 놀이 본능을 충분히 맞춰주질 못하니 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최근 우리 아이가 빠져있는 만화는 '신비아파트'로 수많은 '귀신'들이 나온다. 무슨 귀신들이 그렇게도 많은지 발음도 어려운 귀신들 이름을 신기하게도 우리 아이는 하나하나 다 꿰고 있다. 그렇게 무서워하면서도 보는 것은 마치 매운 떡볶이 안먹어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 먹고있는 그런 심리인가, 계속 보고싶다 한다. 불꺼진 내 방이 무서워 그 앞도 못 지나치는 아이가 귀신이 나오는 만화는 엄청 좋아한다. 잠들기 전에 아이가 꿈에 귀신이 어쩌고 저쩌고 무서워하는 걸 볼 때마다 귀신은 없다고 말해주고 설사 있다하더라도 '아빠가 귀신 물리쳐줄게' 라고 하지만 그래도 무서워한다. 원래 잠에 잘 안드는데다가 귀신 만화로 공포심을 더 키우고 있는 것 같아 아이 수면에는 더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는 것 같아 걱정도 되지만 저렇게 좋아하니 매몰차게 막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서 대신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본다. 잠드는 것은 키도 크게 해주고 몸을 쉬게 해주는 좋은 것이라 설명도 해주고 TV에는 공룡이 나오더라도 실제로는 공룡이 없는 것처럼 귀신도 사실 없고 꿈도 가짜라고 계속 말해준다. 언젠가는 하도 무서워하니 인터넷 검색해서 귀신 쫒아 주는 '부적'을 그려주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솔잎 자장가>를 만났다. 책 소개글에서 무서운 꿈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아이, 더 놀고 싶어서 잠들지 못하는 아이, 여러 이유로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편안한 밤을 선물하고 싶다는 말이 눈길을 잡아 당겼다. 더 놀고 싶어서, 잠들기 무서워서 잠 못드는 아이, 딱 우리 아이 이야기다. 이 책의 효용성을 제쳐 두고라도 우리 아이의 상황을 다른 이의 글을 통해 만나게 되니 이것이 우리집 만의 일도 아니라는 것에 위안이 되고 또 같은 상황을 다른 누군가와 공감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책의 내용은 등장하는 여러 동물들이 제각기 어떤 이유로 못 자고 있을 때 소나무가 자신이 고민을 해결해줄테니 이제 그만 걱정말고 자라는 말을 해주는 내용이다. 책에 나오는 동물들의 고민을 보면서 아이의 마음을 추론해본다. 자신이 자는 동안 누가 도토리를 가져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다람쥐의 고민에서는 좋아하는 장난감들을 기어코 안방으로 싸그리 다 들고와 머리맡에 두고서야 잠드는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다가 무서운 꿈을 꾸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초록뱀에도, 자다가 목이 마르면 어쩌나 걱정하는 오소리, 깜깜한 것을 무서워하는 아기곰에서도 우리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그런 적어도 아이에게는 엄청난 걱정거리들을 소나무는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괜찮다, 괜찮다' 토닥여준다.


책의 전면 커버에 그림이 참 예쁘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책 도입부에 그 그림의 완전판이 나오는데 참 아름답다. 아이를 키우는 덕에 아이들 그림책을 보게 되는데 다들 어떻게 그렇게 아기자기 하고 예쁜 그림을 그리는지, 아이들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어른들에게 시와 시집이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그림과 그림책이 있다. 그래, 글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에게 '그림책'은 그림으로 쓴 시가 담긴 '아이들을 위한 시집'이다.



꼭 이 책 때문만이겠냐마는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줄 때 아이가 하품을 했다. 책을 지은 작가의 마음과, 책을 읽어주는 부모의 마음,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모든 이의 마음을 아이는 느꼈을까. 그림도 따뜻하고 글도 따뜻하고 내용도 따뜻하고 그래서 마음도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