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집권 경제학
한성안 지음 / 생각의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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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대생 출신이다. 학교를 벗어나 직장을 다니면서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직 학생인 막내동생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시험과 취업에 바빠서 정치, 사회에 무관심한 것을 느낀다. 사실 나도 그랬다. 과거 민주화시절은 '학생운동'의 시대라 할 만큼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사회, 정치를 향한 관심과 참여가 높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그럴 여력이 없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관심을 가지고 뉴스를 보고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늘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있다. 바로 경제다. 하지만 빈약한 경제학적 지식으로 인해 이해는 커녕 관련 용어조차 모르는 것이 많아 네이버 백과사전을 뒤져보기 바빴다. 그러다보니 늘 마음 한구석에 어떤 갈증이 있어 대학생 때 왜 경제학개론 같은 과목을 교양으로 들어놓지 않았던가 후회하곤 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만났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 문제를 친기업적 성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보수'의 가치 보다는 성장의 결과를 공정하게 분배하자는 '진보'의 가치에 동의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경제적 관점에서 나는 진보적이라 하겠다. 그러기에 경제학 지식에 대한 갈증과 경제적 '진보'성향으로 <진보 집권 경제학>에 끌렸다.


저자는 사회민주주의체제가 잘 정착 된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지금은 경제학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소개에는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주의경제학을 비판하는 동시에 마르크스경제학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제도경제학을 그 대안으로 내세우는 경제학자다'라고 되어 있는 것처럼 <진보 집권 경제학>에서 '제도경제학'을 중심으로 다른 경제학들을 소개하고 비교하고 있다.


<진보 집권 경제학>은 참 잘 짜여진 '교과서'다. 많은 경제 관련 교양 서적들은 경제용어 설명이나 경제현상 평론을 주로 다루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TEXT'다. 오랜만에 대학교 전공서적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공학 교과서도 바로 공학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수학 및 기초과학 이론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이 책도 경제학의 출발인 인문학과 자연과학에서부터 시작하여 경제학을 유도해가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동일한 경제현상에 대해 다른 인문학적, 자연과학적 인식을 가짐으로써 크게 보수의 신고전주의 경제학과 진보의 케인스 경제학, 제도 경제학이 나온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체계적인 교과서같은 구성이라는 말에 겁이 날지 모르겠지만 서두에 저자는 비전공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썼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래서 전문지식을 최대한 비전공자인 일반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고 했다. 전문서적은 사전지식이 없으면 읽기도 어렵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위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학이지만 본류인 인문학에서부터 출발하기에 나처럼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도 인내심만 구비하고 있다면 이해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럼에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적이 아닌 것은 인정하며 나도 읽다가 가끔 꾸벅꾸벅 졸음에 빠지기도 했고 어떤 용어는 검색도 해가며 읽었지만 어렵게 읽어낸 만큼 남는 것도 많았다.



현정부의 정책기조가 '소득주도성장론'이라는 것은 다들 들어 알 것이다. 가계의 임금과 소득을 늘려서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내용이다. 딱 이정도까지 내가 인터넷 기사로 알고 있는 전부다. 더 깊이는 잘 모르니 경제기사를 읽어도 이해의 한계가 있고 기사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능력도 부족했다. 이 책에서 밀고 있는 진보의 경제학인 '제도 경제학'은 크게는 4개의 경제학파를 모아 놓은 연합군 같은 건데, 그 중 하나가 포스트케인지안 경제학이다. 이 포스트케인지안 경제학의 '케인지안'이 바로 그 유명한 뉴딜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경제학자 케인즈다. 포스트케인지안 경제학의 대표적인 정책이 '임금주도성장'인데 우리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도 여기서 왔다. 이 책에서는 소득주도성장의 동작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기존 보수가 지향한 이윤주도성장과 비교하여 단순한 경제지식 충족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 정부경제정책의 심층적인 이해를 돕는다. 뉴스기사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우리나라만 하고 있고 '듣보잡' 정책으로 보도되곤 했는데 책에서는 1930년 세계대공황 이후 기존의 신고전주의 경제 정책의 한계를 느낀 많은 선진국들에서 실제 이 정책을 도입해 왔음을 설명한다.


이 책에서 많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에우다니모니아', '좋은 삶'이라는 뜻으로 중용의 미덕을 지키고,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는 삶이다. 이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다. 저자는 '제도 경제학'의 목표는 바로 이 '에우다니모니아'에 있다고 했다. 반복지적 혁신경제와 3분의 2사회로 요약되는 '헬조선'을 중용의 미덕, 평등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리는 '좋은' 경제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깨어 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문화적 성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교정주체는 오직 시장이다. 포스트케인지언 경제학에서는 정부다. 그러나 제도 경제학에서는 정부와 '깨어있는 시민'이다. 내가 본 이 책의 결론은 좋은 삶(에우다니모니아)를 구현하기위서는 민주정부뿐만 아니라 '깨어있는 시민'의 사회적 행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이 책도 깨어있는 시민들을 위해 썼노라 말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도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말로써 '깨어있는 시민'을 강조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이 책의 제목이 '진보집권경제학'이지만 마냥 정치적 진보진영을 편들기 보다는 꾸지람, 질책에 가까운 언급도 많다. 현정권의 경제정책에 대한 잘못된 비판과 오해에 대해 객관적 반박과 논리적 해명도 하지만 정권의 경제정책의 한계도 지적한다. 그리고 보수경제이론이 주류경제이론이다보니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 조차도 보수경제이론에 젖어있고 진보경제이론에는 무지한 것을 두고 진보진영이 '자신의 경제학적 족보도 모르는 후레자식'이 되었다는 강한 표현과 함께 그래서 이 책이 '진보의 지적 진공상태'를 해소하고자 썼다는 뚜렷한 집필의도를 드러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경제에서는 늘 성장만이 옳다고 배워왔다. 뉴스와 신문에서는 연일 경제성장률을 이야기하며 정부를 비판하고 정부도 경제성장률 몇 프로 달성할거냐를 주요과제로 내건다. 하지만 그렇게 성장을 이야기하며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열었건만 여전히 성장을 외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이라면서 왜 여전히 헬조선이라는 말은 사라지지 않고 세 모녀 자살사건처럼 생활고로 죽어가는 사람이 생기는 걸까. 이쯤되면 우리가 해오던 성장우선 경제정책에 의심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자본과 성장의 보수 경제학이 아니라 분배와 공정의 진보의 경제학에 주목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공리주의로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이 강요되는 보수의 가치가 아니라 소수의 행복도 존중되는 진보의 가치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 시점에 <진보 집권 경제학>은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학문적 이론과 정책적 대안을 제공해준다.



리영희 선생님이 그러지 않던가, '새는 좌우 날개로 나는 것'이라고. 인식의 차이로 인해 방법론적 입장에서 진영논리에 따라 비록 보수와 진보가 나뉘지만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본의는 같다고 믿고있다. 본인을 진보성향이라고 한다면 진보정책의 밑바탕 되는 진보 경제학을 알아야 정책도 제대로 이해하고 타인을 설득도 할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중도나 보수성향이라고 하더라도 진보정책의 뿌리를 이해함으로써 제대로 된 비판과 생산적인 논쟁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정치적 성향을 뛰어넘어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더 좋은 사회(에우다니모니아)를 구현하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유익하고 의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두 구절을 소개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한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품고 있는 목적함수의 내용은 '지식과 기술의 도구적 활용에 힘입어 기본소득이 확보된 상태에서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고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실천을 통해 좋은 삶을 누리는 것이며, 이로써 인류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재창조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깨어 있는 시민들이 지적인 자신감을 회복하여, 지극히 편향한 주류 경제학자들과 저 무식한 정치모리배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기를 바란다. 만민이 함께 잘 사는 '좋은 경제'에 대한 발걸음을 우리는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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