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 낯선 길에서 당신에게 부치는 72통의 엽서
변종모 지음 / 꼼지락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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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는 저자가 전세계를 누비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시, 수필, 편지, 사진의 형태로 담아놓은 여행 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을 두고 '사람들에게 부치는 엽서'라고 했다. 글의 길이도 실제 엽서에 담길 만한 정도다. 온전한 감정을 담아내는데 사실 긴 말이 필요 없다. 작가는 여행을 하며 마주친 감정들을 72장의 엽서에 채집해 이 책을 엮어냈다.


표지를 보면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바다, 구름, 하늘. 이런 대상은 경이로움, 무한함, 영원함을 떠올린다. 구름은 하얀색이 아닌 붉은 빛을, 바다는 파란색이 아닌 노란 빛을 띄어 노을녘임을 짐작케하고 상단부의 홀로그램에 반사된 프리즘 편광이 무지개를 보고 있는 듯 하다. 이 디자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아마도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당장 쉽게 떠날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의 끝에 이 책을 들었을 때 만큼이라도 드넓은 바다와 무한히 펼쳐진 하늘을 보며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표지에 담긴 것은 아닐까. 여행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여유의 눈길로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인용이나 주석으로 채워진 책의 끝부분에는 작가가 여행하며 함께했던 노래 목록이 실려있다. 곡들을 눈으로 훑으니 세계를 다니는 여행가답게, 제목에 한국어 말고도 영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도 보인다. 내가 아는 노래들이 더러 보여 반갑다. '월량대표아적심'은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였고, 'Quando, Quando, Quando'는 영화 <화양연화>의 주제가였다. 작가도 나처럼 옛날 홍콩영화를 좋아했나보다. 가사가 없는 노래 중에는 '인생의 회전목마'처럼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가도 있다. 가사가 있는 노래도, 가사가 없는 노래도 다양하게 보인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곡은 얼마전 카페에서 우연히 알게되어 좋아하게 된 노래다. 이 책을 읽으며 여기 소개된 곡들을 하나씩 들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책 디자인이 아름답다고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더 아름답다. 남성 여행 작가지만 그 속에는 감수성 터지는 십대 소녀가 있는지 글은 너무도 서정적이어서 시집을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책의 구성은 72편의 글을 4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책을 넘기면 좌측에 글이 우측엔 사진이 위치하고 있고, 때로는 지면이 우측으로 넘어가거나 좀더 극적인 효과를 느끼도록 앞 두면은 글로 뒷 두면에 사진을 싣는 구성을 취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글들이 독자들의 마음이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글 속에는 한때 내가 느껸던 나의 마음도 들어있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책은 시집과도 같아서 작정하면 하루만에 다 읽어낼 양의 글자이지만 그렇게 책을 봤다면 봐도 본 것이라 할수 없을 것이다. 말로 차마 다 담아 낼수 없는 감정들을 짧은 글 속에 압축시켜 놓았기 때문에 암호를 풀듯 읽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암호를 푸는 열쇠는 나의 기억에 있다.


이것은 마치 열린 결말의 영화와 같다. 작가가 던지는 짧은 글은 모두 우리 기억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 메타포다. 글은 작가가 썼지만 읽고 있는 글은 더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작가의 글을 빌어 과거 내가 갔던 곳들, 거기서 느꼈던 에피소드나 감정들, 내 추억들을 읽고 있는 것이다. 열사람이 본다면 열사람 다 다르게 읽혀질 책이다. 그래서 짧은 글임에도 작은 책임에도 내용이 풍성하다 할 수 있다. 타인이 쓴 글이지만 오래된 나의 일기를 읽는 기분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혼자라도 외로울 일 없으니 어디든 떠날 수 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외롭거나 두렵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자신의 첫 여행을 떠올린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의 초등학교 입학. 작가는 여행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길을 찾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다스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입학전 아이는 매사 엄마와 함께 했고 엄마 없이 집을 떠난 적이 없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며 혼자 등교하고 스스로 친구를 사귀며 자기만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간다. '스스로' 말이다. 우리는 여행이 휴가를 내고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작가는 결국 스스로에 의지해서 살아가야하는 삶 자체를 여행으로 본다. 홀로 여행하는 것이 외롭거나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되묻고 싶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야하는 인생도 어차피 외롭고 두려운 일들의 연속이 아니던가요? 그럼에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당신이기에 언제든 여행도 두려워할 것 없이 떠날 수 있습니다' 라고.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어디든 떠날 자격이 있다. 그러니 그대여 너무 걱정하지 말라.


"결국은 여행도 사람이다."

같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그곳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여행으로 오는 감흥이 장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으로 판가름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 때 배낭여행을 가면 호텔은 언감생심,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직장을 다녀 주머니가 더 두터워 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싼 값이 아니라 사람들과 벽없이 말날수 있는 아지트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게스트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금방 친구가 된다. 좋은 음식도 필요없다. 공짜로 나온 식빵과 잼을 앞에 두고 한참을 이야기 할수도 있다. 그렇게 만난 이들과 다음날 하루를 함께 다니고, 그 하루는 그 이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 중 몇몇은 일주일 함께 했던 인연으로 10년 넘게 이어지는 이들도 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해도 여행은 늘 혼자 떠났다. 혼자 공항에서 시작해서 혼자 공항에서 끝나는 여행이었다. 사람들은 혼자 외롭지 않냐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여행은 시작과 끝만 혼자일 뿐 과정에서는 늘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했다. "홀로 길을 떠난 사람들아. 혼자가 좋아서라는 말은 하지 마라. 당신은 오늘도 누군가 돌아올 자리를 비워놓고 길을 나선다." 그렇다.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처럼 우리는 여행을 떠나며 여행지에서 만날 낯선 인연을 꿈꾸지 않던가, 그게 연인이든, 친구이든. 그러니 쿨하게 혼자 떠나는 사람도, 두려움에 주저하는 사람도 떠나라, 그러면 곁에 누구든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오직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이 가능한 이곳은 불편을 여러 번 지나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

이 문장은 저자가 베트남 사파의 한 숙소에서 쓴 글이다. 사파는 해발 1650m에 있는 고원지대로 저자가 누워있는 숙소 아래에는 구름이 안개처럼 스믈스믈 떠다닌다. 저자는 숙소에 누워 담배를 피우며 '구름 위에 누워 구름 같은 연기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옆에 금연 딱지는 있지만 그 아래 주인이 갖다 놓은 재떨이 또한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과거 인도 기차 안에서 피웠던 담배가 기억난다. 목적지까지 12시간이 소요된다던 기차는 연착에 12시간, 정차에 12시간, 총 목적지까지 36시간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전으로 밤새 서다 가다를 반복하던 기차에 고개를 내민 햇살이 부시시 나를 깨우던 아침, 낮은 기온과 새벽 이슬에 유리는 없고 창틀만 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정면으로 나를 때리고 주변 사람들은 얇은 천을 휘둘러감고 얼굴만 쏙 빼놓은 채 하얀 눈과 치아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알수 없는 호기심 가득한 청년들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기차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광경이 사뭇 낯설지만 괜찮다는 그들의 말에 우리 일행들은 담배 한대 씩을 물고 불을 붙였다. 창문으로 들어온 먼지에 까맣게 된 서로의 얼굴은 그야말로 몰골이었고 담배연기로 웃음을 가린다고 가렸으나 가렸을리 만무했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은 여러 불편을 지나와야만 해볼 수 있는 곳은 사파가 아니가 인도 기차안에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어라 요구하지 않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좋은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숨을 가다듬고 나면, 삶에 치여 잠시 자신을 잊고 사는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조차 버릇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안다."

"그 어딘가는 어디에 있지 않다. 바로 지금 곁이거나 내 안에 있다."

연거푸 세 문장을 가져왔다. 위의 문장들은 각각 다른 세 편의 글에서 가지고 온 것인데, 모두 마음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어 묶어봤다. 여행을 다닌 시간과 거리만큼 인생의 통찰도 생기는 것일까. 작가는 마음을 쿡쿡 터트리는 글들을 아무렇지 않게 글 중간중간에 던져놓았다. 요구하지 않고 사는 삶은 바라지 않는 삶, 모든 갈등은 바람, 요구에서 온다. 그래서 모든 현자들은 그토록 바라는 마음과 욕심을 경계하라 했던 것이다. 숨을 가다듬으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은 명상을 떠올린다. 쫒기듣 살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호흡을 매개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것은 명상의 정의가 아니던가. 놀란 가슴을 쓸어 낼릴 때도, 분만을 코 앞에 둔 초초한 임산부도 본능적으로 깊은 호흡이 우리의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을 강조한 마지막 문장도 존경받는 고승들의 법문에서 얼마나 많이 마주했던 내용이던가. 하고싶은 일, 가고싶은 곳, 바라던 꿈, 해야겠다는 많은 것들을 우리는 늘 '다음에, 다음에', '이거 끝나면, 저거 끝나면' 단서 달고 차일피일 미루며 살아가지만 끝내 못했던 일들, 기억은 나는가.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에 있다. '이번 생은 조졌으니, 다음 생에서...'라는 것은 없다. 어딘가는 어디에도 있지 않고 언젠가는 언제까지나 오지 않는다. 오직 지금, 여기에서 하고 찾아야 한다.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깊은 울림들이 조금은 전해지는가.


이렇게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전에 들었던 이야기, 읽었던 책들의 구절구절들이 생각나고 내가 갔던 과거 여행지들의 기억들도 소환된다. 작가의 글에 내 글을 덧대니 마치 작가의 엽서에 답장을 쓰는 기분마저 든다. 작가가 책 머리에 누군가의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내 마음의 이야기들이 책의 피릿소리 맞추어 꿈틀거리며 솟아올랐다. 여기에서 다 다룰수 없어 못했지만 엄마의 사랑을 해를 건져올리는 것에 비유한 것과, 마을의 불빛이 어느 다른 행성에서는 별로 비춰질 것이라는 비유들은 상상력 마져 돋보인다. 여행하는 음유시인이 되려면 감성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아야 하나보다.


"과거를 만드는 유일한 일은 피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도 벽에 걸어두고 싶은 글이었다.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왔던가. 일어난 일이 분명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이 될수 없음에도 어리석은 우리들은 그런 일을 일어나지 말았어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전히 상처 가득한 과거가 현재를 잠식하도록 내버려 둔다. 과거를 더 이상 현재의 생명을 주지 말자. 과거를 과거로 사라지게 내버려 두자. 직시된 과거는 제아무리 혹독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림 속의 호랑이가 나를 헤칠수 없듯이 그저 과거이게 된다. 작가는 내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길게 풀어놓은 말을 저렇게 예쁜 한 문장에 담아놓았다.



지혜로운 말을 무심한듯 툭툭던지는 작가도 왜 괴로운 일이 없고, 오래도록 혼자서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다고 한들 왜 외로움이 없겠는가. 머리로는 아닌 것을 백번 알아도 마음의 충동 한번 이기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2만km 지구 반대편은 자유롭게 다녀도 머리와 가슴사이 고작 1m 남짓 거리를 마음대로 좁히지 못하는 게 사람인 걸 어떡하나. 작가의 "아! 지랄 같음 마음이여"라는 탄식 속에 저 모든 감정의 괴리와 번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말이나 글로는 누구라도 예수고 부처다. 하지만 진짜는 실천에 있다. 사람들이 어제도 그제도 술로, 약으로 세상을 잊으려 애쓰는 것도 이성과 감성사이, 머리와 가슴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 그런 것 아니던가. 저자는 남이 내 마음 알아주기도 욕심, 내가 남 마음 알아주기도 욕심, 그저 평생 내가 내 마음 제대로 알고 살아도 잘 산것이라 말한다. 그래, 평생 그렇게 아둥바둥 살지마는 결국 죽을 때는 두 가지, 자기 마음 알고 죽는 사람, 자기 마음도 모르고 죽는 사람 둘 뿐이지 않을까.


나는 술을 못마신다. 내가 술을 마실수 있다면 상 하나 깔아 두고 맞은 편에 이 책을 놓고 소주한잔 마시며 다시 한장 한장 읽어보고 싶다. 만약 마음 맞는 술친구가 있다면 이 책의 한장 한장 이야기를 안주거리 삼아 추억과 알콜에 뒤엉켜 여행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득한 허세도 부려보고 싶다. 비록 다음날 깨고 나면 회색 빛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하더라도. 작가의 말 처럼 "더난 줄 모르게 떠났다가, 돌아온 줄도 모르게 나타나" 지난 밤 허세를 용기삼아 "일상을 힘껏 껴안"아 보고싶다. 그리고 잊지말았으면 좋겠다. 그 어딘가는 그 어디에도 있지 않듯, 여행지에도 결국 여행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여행하고 있으니까,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P.S. 엉뚱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고 싶다.<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라는 제목에서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를 살펴보자. '함부로'나 '수시로'나 '주저함 없이 자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어감이 비슷하다. 하지만 '함부로'에는 '조심성 없이 마구마구'라는 의미가 있다. 사랑앞에 너무 주저해서도 안되겠지만 무책임하게 마구마구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사랑하고 함부로 떠나다'라는 말로 뒤바꿔 보고싶다. 연인의 사랑에 국한됨 없이 나와 인연된 모든 것들을 '수시로 사랑'할 것이며 장소의 떠남에 국한됨 없이 나를 괴롭히고 얽매는 모든 집작과 욕심으로부터 마구마구 '함부로 떠날'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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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 - 우리가 늘 똑같은 생각만 하는 이유와 세상에 없는 생각을 만드는 5가지 방법
이화선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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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은 '창의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책이다. 바야흐로 창의력이 강조되는 시대다. 과거 산업혁명 이래로 기계는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앞질렀고 대신해왔다. 그러나 정신적 기능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왔으나,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면서 빅데이터, 머신러닝 같은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AI)의 구현은 성역이었던 인간의 정신적 기능을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6년 바둑의 신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은 과거 인공지능이 공상과학영화이나 아이들 장난감 수준으로 간주되었던 시대의 상식을 박살내고 전세계 사람들에게 충격과 동시에 공포와 두려움 또한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20~30년 후 현재의 일자리 중 상당부는 사라질 것이라는 학계 논문과 관련 서적들이 발행되면서 그 불안은 더 커져갔다. 이에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창의력'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창의력'에 주목하고 있고, 나도 그런 관심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선 창의력을 어떻게 기르고, 창의적인 삶을 어떻게 살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바로 그 '창의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학술적 정의는 '새롭고 가치로운 산물을 창출하는 인간의 능력'이라 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어떤 개념을 정의해버리는 순간 그 정의가 개념을 구속하기에 이를 양날에 비유하며 직접적인 정의 내리기에 조심스러워 한다. 하지만 책의 중간중간 창의력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드러낸다. 나는 그 중에서 '창의력'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능력'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책에서 '창의력'이란 표현보다는 '창의적인 삶'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쓰는데 이는 앞의 표현처럼 이를 하나의 능력으로 규정짓기 보다는 삶의 방식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창의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5가지 요소를 삶에 녹여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5가지는 '관찰', '모방', '몰입', '실행', '함께'이다. 각 장에서는 앞의 요소들을 하나씩 다루기에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들어가며'라는 머릿말이 다른 책에 비해 좀 길게 쓰여졌다. 머릿말을 읽으면 책을 다 읽은 듯한 기분일 들 정도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엑기스처럼 농축되어 담겨 있다. 창의적인 삶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는 가르치는 업을 하는 사람답게 요약도 잘해 놓아 머릿말은 이 책의 다이제스트 판처럼 느껴진다. 책을 다 읽고 머릿말을 다시 읽어봤는데 책을 한번 더 읽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은 각 장에서 다뤄진 창의적인 삶의 5가지 요소, 관찰, 모방, 몰입, 실행, 함께를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첫째, 열린 마음과 호기심의 눈을 갖고 일상을 낯설게 바라볼 줄 아는 삶, 즉 세상을 풍요롭게 경험하는 '관찰'하는 삶입니다." 첫번째 주인공은 '관찰'이다.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 뇌의 정보처리에 대한 효율성 때문인데, 뇌의 정보처리 능력은 제한되어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그러다보니 과거 뇌에서 처리했던 익숙한 대상에 집중하여 처리량을 줄이고 신속한 반응을 할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런 편리한 '바로가기' 기능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인식은 어렵게 한다는 부작용도 있다. 이래서 우리 모두는 자기식대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인식하는데 익숙한 삶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잘 '관찰'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우리가 매일 다니는 길, 매일 보는 얼굴들, 매일 하는 일에서도 '열린 마음과 호기심의 눈으로 낮설게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창조'의 좋은 재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관찰'을 다룬 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하는 말들에 전적으로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만 본다. 여기서 '본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저자도 강조했듯 '관찰'이란 시각에 국한되지 않는다. 관찰은 오감을 다 동원해서 느껴야 한다. 우리는 일상적인 삶을 지루하고 식상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그래서 늘 휴가철만 기다리고 해외여행을 고대한다. 그런 것들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나 저자가 말하는 '관찰'하는 삶을 산다면 더 이상 일상이 지루하고 식상한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류시화 시인이 말한 '시인의 눈'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는 일상속에서 특별함을 보는 것이 시인의 눈이라 했다. 시인의 눈이라는 것은 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구별을 여행하고 있는 방랑시인인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류시화 시인이 말한 '시인의 눈'과 저자가 말하는 '관찰하는 삶'은 서로 맥이 닿아있다. 관찰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더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고 이는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둘째,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모방'하고 연결해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치는 삶입니다." 두번째 주인공은 '모방'이다. 흔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한다. 하지만 '하늘아래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명구처럼 실은 모두 유에서 유가 나온 것을 알수있다. 이는 화학에서 말하는 '어떤 물질도 새로 생기거나 사리지지 않고 다만 변형되어 존재한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보더라도 사실이다. 세상에 그 어떤 위대한 과학자나 발명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성과가 자신만 지식이나 경험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모두 앞서 살았던 이들의 지식과 경험의 탑에 자신의 돌 하나 더 얹진 것이다. 그렇기에 창조란 결국 '무'에서 '유'가 아닌 '유'에서 '유'가 나온 것이다.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접근은 매우 합리적이다. 따라서 창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들을 모방하며 조금 바꾸거나 덧대어 조금 더 좋게 만든 것으로 모방없는 창조는 있을 수 없다. 모방은 창의의 필요 조건이다. 그래서 모방의 창조의 어머니라 했다.

 

하지만 모방은 자칫 '베끼기'로 인식되어 '표절', '도용'과 같은 부정적인 어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럼 어떤 것이 창조적인 모방과 벳끼기 모방을 갈라놓는가. 저자의 답이 기가막히다. 바로 보는 사람이 눈치채기 어려울수록 창조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눈치채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 관계없는, 관계가 먼 곳에서 가지고 온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 곳에 있는 것들간에 연결짓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것을 알아야한다. 이런 맥락으로 저자는 학부시절 전공공부에 치중한 나머지 교양은 도외시했던 것을 후회하는데, 공대 출신인 나도 사회나와 직장생활 하면서 비슷한 것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과 문과라는 개념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많이 날려버리게 했음을 생각해본다. 이야기가 잠시 샜다. 어쨌든 다양한 것들을 인식하고 그 사이의 관계를 찾는 것, 결국 모방도 잘 관찰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창의적 삶의 시작이 관찰이라 했던 것이다.

 

"셋째, 자신이 추구하는 창조의 가치와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여려운 과제에 즐겁게 '몰입'하는 삶입니다." 몰입은 즐겁게 하는 것을 뜻한다. 하는 것이 고역이라면 몰입이 될 수 없다. 언제 끝나나 하고 시계만 들여다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길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수 없다'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즐겁게 하지 못하면 오래 할수 없다. 저자는 몰입하면 인체생물학적으로도 스트레스를 경감해주고 즐거움을 느끼게하는 호르몬이 분비가 된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몰입은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며 이는 창조의 결과를 앞당겨주는 요소가 된다.

 

"넷째, 새로운 생각을 펼쳐내는 도전과 실패를 반복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실행'하는 삶입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관찰을 통해서 훌륭한 모방을 했다 하더라도 실행없이 결과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실행의 중요성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실행하는 삶에서 강조되는 것은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는 관점에 있다.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그 이전에 수많은 실패를 지나온 것을 알수있다. 실패없이 한번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그것은 누구나가 아니라 운명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만 가능한 것이다. 특정사람만 가능한 것이라면 누구나를 위한 이런 강의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실패에 대한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특히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능력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을 성장시켜주는 일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실패를 자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기저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소개되는데, 같은 성과를 낸 아이들에게 한쪽은 그 '결과'를 칭찬하고 한쪽은 그 '과정'을 칭찬했는데 후에 결과를 칭찬한 아이들은 결과를 지켜내기에 급급해 새로운 것에 소극적으로 반응한 반면, 과정을 칭찬한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도전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잠깐 이야기가 새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칭찬을 해줄 때도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섯째, 나의 가치를 사회와 연결하는 '함께'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함께'라는 것은 창의적인 삶은 혼자서는 어렵다, 즉 협동을 강조한 말이다. 대단한 과업을 오직 한 사람이 이뤄낸 사례를 찾기란 어렵다. 우리는 협력을 통해 발전해왔다. 위에서 이야기한 모방에서 서로 관계없는 것들을 잘 연결해야 창의적인 것이라 했다. 관계없는 것들을 한 사람이 모두 알수는 없다. 이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협업에서 가능하다. 저자는 '함께'를 어울려 협업하는 것으로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런 것도 생각해본다. 우리가 아무리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창조적이고 창의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창의적으로 탄생한 생산물이 모두가 함께 필요로 하고 관심을 가지고 유익한 것이라야 한다는 의미도 저 '함께'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만, 소수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좋은 것, 그래야 창의적이라 평가해줄 사람도 더 많지 않을까.

 

이렇게 전반적으로 이 책에 대해 살펴봤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지만 나의 부족한 주저리와는 다르게 책의 내용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간결하고 명료했다. 때로는 긴 설명보다 짧은 물음이 우리에게 큰 자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저자는 각 장 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을 실어놓았다. 그 질문들은 짧지만 그 장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잘 담아내고 있다. 어떤 질문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요소별로 질문 한가지 씩을 꼽아본다. '관찰'에서는 '일상을 낯설게 보려고 노력하는가?', '모방'에서는 '나는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일까 보다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가?', '몰입'에서는 '나는 나에게 의미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하는가?', '실행'에서는 '나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사람인가?', '함께'에서는 '나는 내 능력을 알아주는 곳을 스스로 찾으려 하는가?'. 위의 질문들을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잠시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겠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창의력을 기른다는 것을 뭔가 지식적이고 생산적인 능력을 배우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키워주려는 것도 똑똑하고 경쟁력있는 아이로 길러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이렇게 창의력하면 생산적이고 능력있는 그런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창의력에 대해 조금 생각이 바뀐 것을 느낀다.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 내는 능력이 창의력이라면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산다는 창의적인 삶이란 잘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의력이란 잘 사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행복한 삶 아닐까. 다시 창의적인 삶의 5가지 요소로 되돌아가보자.

 

'관찰'을 통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보려고 소유하려 하는 것도 결국 풍요롭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굳이 많은 것을 가지지 않더라도 이미 있는 것들에서 제대로 보고, 느끼고, 충분히 누리며 살수 있는 것, 그것은 '만족', 이는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다.

 

'모방'의 관점에서는 무엇일까 보다 무엇이 될수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과거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삶에 대한 질문은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우리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왜 살까에 대한 답은 궁극적으로 찾을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어떻게 살까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같은 대상에 대해 질문은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답을 찾을 수도 있고 못 찾고 헤매게 될 수도 있다. '왜 살까'하는 질문은 삶에 허무함을 느끼게 하지만 '어떻게 살까'는 질문은 삶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모방'이 던진 질문, '무엇일까'의 '왜'는 이미 정해진 답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무엇이 될수 있을까'의 '어떻게'는 내가 그 답을 만들어 낼 수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떠올린다. 외부에서, 타인이, 세상이 정한 답을 강요받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답을 찾아 사는 자유로운 삶. '자유', 이도 행복의 조건이다.

 

'몰입'은 어떤가. 왜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는가? 그것은 몰입이 주는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유익한가, 해로운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대상이 무엇이든 몰입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쁨', 이것도 행복의 조건이다.

 

'실행'에서는 실패에 대한 마음가짐이 나왔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삶, 실패마저도 나를 괴롭힐수 없는 삶의 태도. 여기에는 긍정이 들어있다. 긍정적인 삶의 관점이 없다면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수 없기 때문이다. '긍정'도 행복의 조건이다.

 

'함께'를 볼까. 홀로왔다 홀로가기에 인간은 본래 외롭다 할수 있겠으나, 오고 갈때만 혼자이지 그 외에는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도 사실이다. 산 속에서 고독하게 수행하는 수행승도 일정기간 정진을 위해 홀로 있을 뿐 대부분 '승단'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홀로 사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비효율적이며 자연적이지도 않다. 가끔씩 갈등도 있고 다툼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함께 산다. 그것은 함께 사는 것이 주는 이점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며 주고 받는 '공감', 이것도 행복의 조건이다.

 

 

그렇게 보니 '관찰', '모방', '몰입', '실행', '함께'라는 창의적인 삶의 5가지 요소는 '만족', '자유', '기쁨', '긍정', '공감'이라는 행복한 삶의 5가지 요소로 치환되는 것을 알수있다. 나는 이 책을 보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창의'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나는 창의적인 삶이라는 말을 들으면 행복한 삶을 떠올릴 것 같다. 이 책은 창의력을 계발하는 자기계발서인 동시에 행복을 가르쳐주는 마음수양서로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내 멋대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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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나라 - 마의태자의 진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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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김의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중국 청나라의 황족이 신라의 왕족의 직계 후손이고 그 신라의 왕족은 거슬러 올라가면 흉노의 후예라는 이야기. 어쩌면 청나라의 역사는 우리 역사의 연장선일 수 있으며, 청나라는 후금이라하여 금나라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이는 중국 역사의 일부가 우리의 역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황하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한 한족과 그들이 오랑캐라 부르는 주변 이민족들간 중국 중원을 뺏고 빼앗기는 반복의 역사다. 대표적으로 이민족이 세운 나라로는 거란의 요나라, 몽골의 원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청나라가 떠오른다. 중국의 주류는 분명 한족이며 그들의 생물학적 민족성을 떠나 의식적 측면으로 볼 때도 중국의 주류는 한족이다. 이는 중국 근현대사를 보면 잘 드러나는데 중화민국 수립시 주장했던 기조가 멸청흥한(만주족의 청나라를 멸하고 한족을 부흥하자)인 것을 보더라도 현재의 중국은 뿌리부터가 한족이 주류인 나라라는 것을 알수 있다. 한족과 한족이 아니면 오랑캐라는 의식은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 잔재해있는데, 금나라가 남송을 침략했을 때 금나라 장수 올출의 공격을 막아 남송을 지켜낸 악비가 중국에서는 역사적 영웅으로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처럼 추앙받는 것을 생각해보자. 금도 중국의 역사이고 남송도 중국의 역사라면 왜 한족의 나라를 지켜낸 자가 중국의 대표적인 영웅이 되는가. 중국에서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역사적 영웅 중 한족이 아닌 사람이 있는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호락하지 않은 중국은 한족의 중국만을 너무 강조할 경우 현재 그들의 영토 중 상당부의 정통성이 사라질 위험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당장 중국의 만리장성이 어디에 있는지 떠올려본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북방유목민족들을 막기 위해 한족의 왕조가 만든 성벽이 만리장성이다. 이 만리장성은 현재 중국 영토의 우측 끝이 아니라 3분의 1지점에 있다. 즉 북동쪽을 기준으로 봤을 때 현재 중국 영토의 서남쪽 3분의 2를 지키기위해 세운 것이 된다. 한족에 너무 치중되어 버린다면 중국 동북지역은 오랑캐의 땅이 였기에 여기서는 한족 영토의 정통성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이 2002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이는 현재 중국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프로젝트로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고 있다. 이것에 따라 위에서 언급된 송나라의 악비가 한족의 영웅이 되면 그가 막아낸 금나라는 외세가 되며 금나라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청나라도 외세가 되기에 중국 당국은 중국 역사의 영웅 악비가 더 이상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는 고등중학교 역사 헌장을 발표한다.


서두가 길었다. 다른 나라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없는 역사도 만들어내고 남의 역사를 훔쳐올 만큼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에 반해 얼마나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의 나라>가 다루는 내용을 나는 과거 TV에서 역사프로그램에서 한번 마주한 경험이 있다. 경주에 가면 신라 문무대왕릉이 바다에 있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은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동해 바다에 뿌려졌다. 바로 그의 문무대왕비에는 자신의 시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신라 왕족의 시조가 김알지가 아니라 '투후 김일제'임을 밝히고 있다.


한나라 유방의 아들인 무제가 흉노족에게 굴욕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훈제국(흉노족)을 멸망시켰다. 그때 전사한 훈제국의 마지막 왕, 휴저왕의 아들이 바로 김일제다. 한나라의 포로가 된 김일제가 무제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그때 '김(金)'이라는 성을 하사 받는다. 바로 이 '김'이 문무대왕 김법민의 그 '김'이다. 김일제의 손자 김망은 쿠테타를 일으켜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신나라는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한의 세력에게 망하게 된다. 한나라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조조에 의해 망하기까지 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신나라에 의해 잠시 망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앞을 전한, 뒤를 후한이라고 부른다.



신나라가 망하면서 황족인 김씨는 모두 몰살당했으나 그 중 살아남은 소수가 뱃길을 따라 한반도 남쪽으로 넘어오게 되는데, 그 중 일부가 가야 지역으로 가서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며 나머지는 신라 지역으로 가서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신라라는 이름은 신나라(新)를 다시 펼친다(羅)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한다. 경주 김씨의 신라는 왕건의 고려에 의해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을 끝으로 망한다. 신라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고려에 갖다바친 나약한 경순왕에게는 그와 정반대의 성격의 태자가 있었는데 그가 마의태자로 유명한 김일이었다. 결국 신라가 망하고 마의태자는 그를 따르는 화랑들과 함께 북으로 올라가 여러 여진 부족과 요나라에게 망한 발해 유민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형성하였고 죽으면서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는 애신각라(愛新覺羅)를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그의 후손들은 세력을 더욱 키워나가고 금나라를 세워 요나라를 무너뜨리고, 송나라를 공격하여 남송으로 쪼그라뜨려 버린다. 이후 몽골의 원나라에 의해 금나라와 남송이 망하고, 그 원나라는 명나라에 망한다. 그 사이 변방의 만주지역에서 다시 힘을 키우던 금나라의 잔재세력들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세웠으니 이를 후금이라하고 곧 청으로 이름을 고친다.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순식간에 전개되어 혼란스러울 것도 같다. 이 모든 이야기는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이었던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이의 전체 이름이 '애신각라 부이'라는 데에서 시작한다. '애신각라'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 애신각라는 청나라 황실의 성이었고 이는 '김(金)'과 함께 사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청나라 황실의 성이 왜 신라일까, 그리고 그 성을 '김'과 함께 사용하는 것에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분명 이 책은 '소설'이며 앞에서 '이야기'라고 표현했지만 <김의 나라>는 단순한 소설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책에 담긴 내용중의 상당부는 역사적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모든 사실이 반드시 기록으로 남는 것은 아니며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고 해서 있었던 사실이 없던 것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아 있는 역사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10년동안 추적하였으며 조각난 퍼즐처럼 산재되어 있는 사료들과 몇몇 기록으로 남지 않거나 확인할 수 없는 빈틈은 소설의 허구성을 빌어 하나의 완전한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김의 나라>를 읽고 있으면 우리의 뿌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아직 더 연구되어야겠지만 사실 확인을 위한 연구는 동북공정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발해, 고구려, 여진족의 무대가 현재 중국 동북3성으로 중국의 영토에 있고 그들은 이에 대한 연구를 막고 있으니 연구가 진척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미 채증된 사료들을 바탕으로도 위 이야기는 상당한 진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에게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책에서도 약간 언급되고 있지만 동북공정으로 인한 충분한 연구가 어렵다는 것과 과거 식민사관의 잔재 외에도 이것이 정설이 될 경우 우리의 뿌리는 단군이라는 것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와 불편함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소설에서 작가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우리 학자들의 연구 제한 조치에 대해 우리는 역사를 통해 영토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책의 제일 마지막에는 "역사적 진실은 누가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자리에서 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나오는데, 진실은 가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낯익은 기분이 들어 생각해보니 과거 김진명 작가의 소설에서 느꼈던 기분이다. 스스로를 반도에 가두고 강대국을 사대하고 자신을 얕잡아 보던 오랜 열등의식을 타파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켜주는 김진명의 소설 말이다. 우리의 과거 우리 민족은 광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대제국을 건설하였었고 중원을 위협했던 웅장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역사는 한반도에 갇혀 만주와 중원을 넘보던 역사는 도외시되고 있다. 영토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고 선조들의 역사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역사에 밝혀져야 할 부분은 아직도 많이 남은 것 같다. 과거 내가 역사를 배울 때 '통일신라시대'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발해를 포함하여 '남북국시대'라 부른다. 이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제 자리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결과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먼 것 같다. 일제 35년 동안 뿌리깊게 박힌 식민사관의 흔적은 아직도 학계에 남아 있으며 우리의 역사적 열등감 또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주변국들은 있는 역사는 왜곡하며 없는 역사는 만들어내고, 남의 역사까지 훔쳐가는데 우리는 있는 무얼하고 있을까. 우리는 있는 역사도 제대로 지켜내고 있을까. <김의 나라>를 읽으며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에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희망적이고 설레이기도 한다. 앞으로 한국사 분야에 더 많은 연구와 지원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김의 나라>와 같은 내용을 더 이상 소설이 아닌 국사책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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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들에게도 재수 없는 날이 있다 I LOVE 그림책
셸리 베커 지음, 에다 카반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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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들에게도 재수 없는 날이 있다>이 아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어쩌면 아이들이 배워야 할 교훈 중 가장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 교훈은 바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감정을 잘 조절해야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니까.


책에는 8명의 슈퍼 히어로들이 나온다. 각각은 모두 엄청나게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캐릭터를 보면 '마블'사의 슈퍼 히어로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들을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덩치크고 초록색 몸의 힘 쎈 '비스티', 얼음을 자유롭게 다루는 '찡', 힘 쎈 여전사 '스래시',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레이저맨', 슈퍼맨의 빼박 '마니맨', 공기에 진동을 일으켜 공격하는 '소리질러', 바람 원소 마스터 '태푸니', 누가봐도 스파이더맨 '끈끄니키'. 뒤에서 말하려 한 건데 아이는 이 책이 가르쳐 주려는 교훈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고 나에게 캐릭터의 이름을 되묻기 바빴다. 아이들은 이런 영웅 캐릭터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처음부터 낯설은 광경이 펼쳐진다. 정의의 슈퍼맨 아니, 마니맨이 거리의 소화전을 발로 차 날려버린다. 옆에 있던 사람은 물이 터져 놀란다. 이를 시작으로 슈퍼 히어로들이 '깽판'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슈퍼 파워로 발길질 하고, 주먹으로 휘두르고, 고함을 치며 악을 쓰고 있다. 심지어는 강도들이 무사히 은행을 털도록 도와주는 가하면 버스, 트럭을 집어 던지고 건물을 박살내고 산불을 낸다. 완전 악당의 모습이다. 그러나 반전은 '그럴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 뜻대로 안되서 슬프고, 화가 났거나, 재수 없을 때 그들은 슈퍼 파워를 나쁘게 쓸 수 있는 '반면에'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에 힘을 써서 기쁨과 보람으로 극복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슬프고 화가 날 때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웃음과 기쁨을 만드는 일에 슈퍼 파워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의 무리를 무찌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슈퍼 파워를 쓰는 것이 진정한 슈퍼 히어로니까.



그러나 또 '하지만'이 나온다. 슈퍼 히어로들은 기분이 안좋을고 마음이 상할 땐 나쁜 상황을 만들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회오리 바람이나 눈보라를 일으키고 거미줄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악당들이 판을 쳐도 모른척 내버려 둔다. 하지만 그런 충동이 든다는 것이지, 그럴수 있다는 뜻이지, 그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슈퍼 히어로니까.


책에서는 마음이 안 좋을 때는 나쁜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을 잘 다스리고 슬픔과 분노를 바라보며 감정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라고 가르쳐준다. 이 내용이 나오는 장면에서 모든 슈퍼 히어로는 명상을 하고 있다. 때로는 충동에 질 때도 있어서 분노와 슬픔의 마음으로 인해 그들의 슈퍼 파워를 나쁘게 쓸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혹시나 아이에게 '충동'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아이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마음에 대한 책이다 보니 '재수 없는 날', '충동', '감정의 인식'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나온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재수 없는 날'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로, '충동'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감정의 인식'은 '내 마음이 어떤지를 아는 것'으로 번역해 줬다. 쉬운 말로 바꾸고 보니 모두 '마음'이란 낱말이 들어간다. 이 책이 마음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여기서도 알수 있다.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 사람을 저 멀리 있는 달로 보낼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을 병마로부터 구할 약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우주 저 멀리 태양보다 큰 별을 관찰하기도 하고 동시에 원자보다도 작은 소립자의 세계를 연구하기도 한다. 세세하게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능력을 가진 우리는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에 따라 천사가 될수도 있고 악마가 될수도 있다. 이 책은 제 뜻대로 안되는 상황과 마주한 아이들이 부정적 충동에 쉽게 동요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긍정적 행동을 통해 슬픔과 분노를 기쁨과 행복으로 바꿀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마음도 습관이라 한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지 않던가. 어려서부터 습관을 잘 들여야 나중에 커서 고생을 덜한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고 나쁜 충동에 휩쓸리면 나쁜 결과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이치와 불안과 분노를 어떻게 해소하는지를 어려서부터 가르쳐 줄 수 있다면 그들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유아때부터 아이의 조기 교육에 돈과 열정을 쏟아 붓는 부모님들이 더러 보인다. 그런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어렸을 때 아이가 제대로 배워야 할 1순위가 있다면 영어도 수학도 아닌 '마음 알고 다스리기'가 아닐까. 언제나 행복은 영어나 수학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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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세대 - 그러니까, 우리
이묵돌 지음 / 생각정거장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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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세대>는 이 시대에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걱정과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94년생인 작가는 90년대생들을 '갈라파고스 세대'로 정의하고 있다.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에 있는 군도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섬이다. 각 섬들의 격리된 환경적 특성은 독자적인 진화를 이룬 고유종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90년대생의 특징을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것으로 보고 세대 내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갈라파고스에 비유했다. 과거 세대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그 세대의 공통된 특징을 담고 있다면 '갈라파고스'는 공통된 특징이 없다는 특징을 의미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이 풍족해지고 편리해졌지만 그것은 양적인 발전이었지 질적인 발전은 아닌 것 같다. 책에서는 요즘 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SNS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요즘 사람들은 만나서 커피를 시켜 놓고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대신에 핸드폰을 바라보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도 문자로 대화한다는 말이 있었다. 책에서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감자탕을 먹었는데 서로 음식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기 바쁘고 다들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놓고 집에 가서 올라온 SNS글에는 음식사진과 함께 굉장히 즐거웠던 시간이었떤 '척'을 해놓는다. 작가는 이를 현실의 일상이 가상의 일상의 장식물로 전락했다고 지적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얼마전 유명 아이돌 연예인 두 명이 자살했다. 둘다 악성댓글로 인한 안타까운 일이었다. 현피라는 말도 있는데, 온라인에서 낯선 사람과의 갈등이 현실에서 실제 싸움이 되는 것을 뜻한다. 이런 것들은 인터넷이 가져온 부정적인 효과들이다. 작가는 소통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어 물리적인 소통 상황은 좋아졌지만 이것이 정서적인 소통까지 보장하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적한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있듯, SNS상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아 읽고 씹히는 것이며 영혼없는 축하문자 메세지가 정서적인 소통의 친밀함 마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젊은 세대들의 큰 걱정거리 중 하나인 취업에 대해서도 나온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대학만 나오면 취업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학력인플레로 다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걱정인 시대다. 어느 기사에는 공무원인 환경미화원을 뽑는데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취업이 어렵다보니 자연히 결혼도 출산도 늦어지며 아에 이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은 시대다. 공무원 지원율은 매년 사상 최대를 갈아치우고 노량진 공시생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시대. 사회는 발전이 사회적 불안은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흙수저, 금수저로 보이지 않는 계급은 사실상 존재해 없는 집 자식들은 학자금 대출로 힘겹게 얻은 대학졸업장에도 취업이 안되는데 있는 집 자식들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같은 여러 찬스가 있어 경쟁의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열정페이, 유리천장, 유리바닥 같은 불안의 단어들이 가득한 세대, 하지만 그들에게 기성 어른 세대들은 '나때는 말이야'라는 일방적인 말로 젊은 세대의 고충을 약해빠진 정신력과 배부른 소리 쯤으로 치부해버린다.


과거에도 분명 세대갈등은 존재했겠지만 지금처럼 강한 시기가 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책 속에 나오는 중소기업 이사와 신입사원간에 대화도 고용주와 근로자간의 갈등이지만 이것 또한 의식은 세대갈등은 깔고 있다. 120만원의 보수가 너무 적다고 신입사원이 당돌하게 문제 제기를 하자, 이사는 120만원치의 일을 하고 있느냐고 되묻는다. 신입사원은 120만원 가지고 당신이라면 살 수 있겠냐 반문한다.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양측 모두 이해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이 책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의 문자 소통 상황극이 많이 나온다. 멀리 공부하러 간 자식이 궁금한 부모는 자식이 걱정되어 연락을 하지만 자식들의 답은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느리고 짧다. 답이 없다고 걱정하고 집에 자주 안온다고 걱정하고 공부는, 취업준비는 잘 되가냐는 부모님의 연락에 자식은 답이 없고 부모는 답답하다. 세대간의 갈등은 집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자식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이다. 자식세대는 SNS에 긴 글을 사용하지 않는다. 단어조차도 줄여서 쓰는 시대다. 그러니 내용이 아닌 형식에서도 소통 방식이 다르다.


작가가 요즘 세대들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육체적 욕구와 정신적 욕구의 분리'라 말한 것이 인상적이다. 과거에 비해 확실히 성에 대해서 많이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섹스를 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는 것은 물론 원나잇 스탠드도 특별한 것이 아닌 시대인 것을 언급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손만 잡아도 책임져라 했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백프로는 아니겠지만 과거에는 사랑이 있어야 섹스가 가능했고 섹스가 먼저라 하더라도 사랑이 곧 뒤따르게 되었다면 지금은 그 사랑 따로 섹스 따로가 가능하다. '프렌드위드베네핏'이란 단어도 그런 시대상이 반영된 단어일 것이다. 이런 육체적 욕구와 정신적 욕구의 분리를 잘 보여주는 다른 예는 음식이다. 과거에는 배가 고파야 멋었지만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맛을 위해 배가 부른대도 먹기도 한다. 어쩌면 과거에 비해 비만인구의 증가도 이런 행동 패턴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적으로 남녀는 더 가까워졌지만 모순적이게도 지금 이 시대에 두드러지는 것이 있었으니 '한남충', '김치녀' 같은 젠더 갈등과 더 심하게는 젠더 혐오 현상이다. 취업을 할 때 여성들이 받는 여성 쿼터나 여성 가산점도 이런 갈등의 원인이 되었는데 군대를 다녀온 남자는 가산점을 안주면서 왜 여자들은 가산점을 주냐는 역차별 논란도 발생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젠더 혐오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과거보다 젠더간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이야기가 정리가 잘 안된다. 아무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 세대들은 '자기 때에 비하면 뭐가 힘드냐'고 말하지만 분명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책임을 져야할 때는 너희도 어른이라 그러고 권리를 누릴 때는 어린 것들이 뭘 아냐고 무시 받는 젊은 세대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직은 자리 잡지 못한 이들이 많은 세대들. 꿈과 희망은 산타할아버지같이 허구의 존재이며 실제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아버린 세대들. 분명 잘 배고프진 않는데 뭔가 마음이 고픈 세대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세상에 희망을 느끼지 못해 게임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카톡 같은 채팅방의 형식을 빌어 실제 가족, 친구, 연인과의 짤막한 대화가 나온다. 때로는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이해가 잘 되는 경우가 있다. 젠더문제든, 세대갈등이든, 취업문제든, 열정페이든 여러가지 갈라파고스 세대가 겪고 있는 비참하고 힘든 현실들이 그 대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공감이 많이 갔다. 또 각 파트별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력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책의 내용 중에서 '돈보다 계속 살아갈 의미를 달라'는 문장이 나온다. 더 이상 과거 보릿고개처럼 배고픈 사람은 없다. 그렇게 양적으로 풍부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사람에게는 이룩할 가치나 이상향이 필요하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철학자가 되겠다는 말도 있지 않나. 과거 세대에는 그 시대의 청년들이 이룩할 가치들이 뚜렷했다. 1900년의 전반의 가치는 독립이었고 후반의 가치는 민주화와 산업화였다. 하지만 지금의 청춘들은 어디에서 살아갈 의미를 찾을까 막막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그 뒷문장처럼 '살아갈 의미가 될 만큼의 돈이라도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의 삶도 평탄치는 않았던 것 같다. 기초생활수급으로 살았고 돈이 없어 대학교도 중퇴했다. 스타트업에 도전했지만 망하고 빚이 남았다. 힘들어 자살도 시도했다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암울하다. 글에서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느낌도 받는다. 섬처럼 서로서로 떨어지고 고립되고 외로운 세상, 세대. 하지만 작가는 그러게 끝을 맺지 않는다. 힘들고 외롭고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래서 내가 더 힘들고 니가 더 힘들고 말할 것 없이 분명 우리 모두 힘든 시대가 맞기에 서로 힘이 되어주자는 희망적인 결론을 선언한다. 아참, 책표지가 홀로그램처럼 빛나는데 참 예쁘다. 이 말을 잊을 뻔 했다.


작가의 마지막 말로 글을 친다.

"같은 시대에 살지만 각자 다르게 힘들고 외롭다는 얘기를 중언부언 써대다가 보니 책 한 권이 돼 있었다. 누구 한쪽이 더 슬픈 세대인지 보다 오늘의 세계가 어떻게 슬픈 시대인지를 이야기하면 좋겠다. 섬이라고 항상 외로우라는 법은 없다. 당신과 나 사이에도 섬이 있다. 나는 당신의 섬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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