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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 - 우리가 늘 똑같은 생각만 하는 이유와 세상에 없는 생각을 만드는 5가지 방법
이화선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시작하는 생각 인문학>은 '창의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에 대한 책이다. 바야흐로 창의력이 강조되는 시대다. 과거 산업혁명 이래로 기계는 인간의 육체적 기능을 앞질렀고 대신해왔다. 그러나 정신적 기능은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져왔으나, 최근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등장하면서 빅데이터, 머신러닝 같은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AI)의 구현은 성역이었던 인간의 정신적 기능을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6년 바둑의 신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은 과거 인공지능이 공상과학영화이나 아이들 장난감 수준으로 간주되었던 시대의 상식을 박살내고 전세계 사람들에게 충격과 동시에 공포와 두려움 또한 안겨주었다. 그러면서 20~30년 후 현재의 일자리 중 상당부는 사라질 것이라는 학계 논문과 관련 서적들이 발행되면서 그 불안은 더 커져갔다. 이에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창의력'이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 '창의력'에 주목하고 있고, 나도 그런 관심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선 창의력을 어떻게 기르고, 창의적인 삶을 어떻게 살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바로 그 '창의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학술적 정의는 '새롭고 가치로운 산물을 창출하는 인간의 능력'이라 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창의력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어떤 개념을 정의해버리는 순간 그 정의가 개념을 구속하기에 이를 양날에 비유하며 직접적인 정의 내리기에 조심스러워 한다. 하지만 책의 중간중간 창의력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드러낸다. 나는 그 중에서 '창의력'이라는 것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능력'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책에서 '창의력'이란 표현보다는 '창의적인 삶'이라는 표현을 더 즐겨 쓰는데 이는 앞의 표현처럼 이를 하나의 능력으로 규정짓기 보다는 삶의 방식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창의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5가지 요소를 삶에 녹여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5가지는 '관찰', '모방', '몰입', '실행', '함께'이다. 각 장에서는 앞의 요소들을 하나씩 다루기에 이 책은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들어가며'라는 머릿말이 다른 책에 비해 좀 길게 쓰여졌다. 머릿말을 읽으면 책을 다 읽은 듯한 기분일 들 정도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엑기스처럼 농축되어 담겨 있다. 창의적인 삶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는 가르치는 업을 하는 사람답게 요약도 잘해 놓아 머릿말은 이 책의 다이제스트 판처럼 느껴진다. 책을 다 읽고 머릿말을 다시 읽어봤는데 책을 한번 더 읽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은 각 장에서 다뤄진 창의적인 삶의 5가지 요소, 관찰, 모방, 몰입, 실행, 함께를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첫째, 열린 마음과 호기심의 눈을 갖고 일상을 낯설게 바라볼 줄 아는 삶, 즉 세상을 풍요롭게 경험하는 '관찰'하는 삶입니다." 첫번째 주인공은 '관찰'이다.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는가.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다. 이는 우리 뇌의 정보처리에 대한 효율성 때문인데, 뇌의 정보처리 능력은 제한되어 선택과 집중을 해야한다. 그러다보니 과거 뇌에서 처리했던 익숙한 대상에 집중하여 처리량을 줄이고 신속한 반응을 할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이런 편리한 '바로가기' 기능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인식은 어렵게 한다는 부작용도 있다. 이래서 우리 모두는 자기식대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인식하는데 익숙한 삶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는 것은 너무도 자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잘 '관찰'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우리가 매일 다니는 길, 매일 보는 얼굴들, 매일 하는 일에서도 '열린 마음과 호기심의 눈으로 낮설게 바라본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것들이 '창조'의 좋은 재료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관찰'을 다룬 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저자가 하는 말들에 전적으로 공감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만 본다. 여기서 '본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저자도 강조했듯 '관찰'이란 시각에 국한되지 않는다. 관찰은 오감을 다 동원해서 느껴야 한다. 우리는 일상적인 삶을 지루하고 식상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그래서 늘 휴가철만 기다리고 해외여행을 고대한다. 그런 것들에 딴지를 거는 것이 아니나 저자가 말하는 '관찰'하는 삶을 산다면 더 이상 일상이 지루하고 식상한 것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류시화 시인이 말한 '시인의 눈'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는 일상속에서 특별함을 보는 것이 시인의 눈이라 했다. 시인의 눈이라는 것은 시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구별을 여행하고 있는 방랑시인인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류시화 시인이 말한 '시인의 눈'과 저자가 말하는 '관찰하는 삶'은 서로 맥이 닿아있다. 관찰하는 삶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더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고 이는 삶을 더 풍요롭게 한다.
"둘째,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모방'하고 연결해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펼치는 삶입니다." 두번째 주인공은 '모방'이다. 흔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한다. 하지만 '하늘아래 어떤 것도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명구처럼 실은 모두 유에서 유가 나온 것을 알수있다. 이는 화학에서 말하는 '어떤 물질도 새로 생기거나 사리지지 않고 다만 변형되어 존재한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보더라도 사실이다. 세상에 그 어떤 위대한 과학자나 발명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성과가 자신만 지식이나 경험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모두 앞서 살았던 이들의 지식과 경험의 탑에 자신의 돌 하나 더 얹진 것이다. 그렇기에 창조란 결국 '무'에서 '유'가 아닌 '유'에서 '유'가 나온 것이다. 소위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접근은 매우 합리적이다. 따라서 창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것들을 모방하며 조금 바꾸거나 덧대어 조금 더 좋게 만든 것으로 모방없는 창조는 있을 수 없다. 모방은 창의의 필요 조건이다. 그래서 모방의 창조의 어머니라 했다.
하지만 모방은 자칫 '베끼기'로 인식되어 '표절', '도용'과 같은 부정적인 어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그럼 어떤 것이 창조적인 모방과 벳끼기 모방을 갈라놓는가. 저자의 답이 기가막히다. 바로 보는 사람이 눈치채기 어려울수록 창조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눈치채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 관계없는, 관계가 먼 곳에서 가지고 온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 곳에 있는 것들간에 연결짓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것을 알아야한다. 이런 맥락으로 저자는 학부시절 전공공부에 치중한 나머지 교양은 도외시했던 것을 후회하는데, 공대 출신인 나도 사회나와 직장생활 하면서 비슷한 것을 느꼈던 적이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과 문과라는 개념이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기회를 많이 날려버리게 했음을 생각해본다. 이야기가 잠시 샜다. 어쨌든 다양한 것들을 인식하고 그 사이의 관계를 찾는 것, 결국 모방도 잘 관찰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창의적 삶의 시작이 관찰이라 했던 것이다.
"셋째, 자신이 추구하는 창조의 가치와 목적을 분명히 인식하고, 여려운 과제에 즐겁게 '몰입'하는 삶입니다." 몰입은 즐겁게 하는 것을 뜻한다. 하는 것이 고역이라면 몰입이 될 수 없다. 언제 끝나나 하고 시계만 들여다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게으른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길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수 없다'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즐겁게 하지 못하면 오래 할수 없다. 저자는 몰입하면 인체생물학적으로도 스트레스를 경감해주고 즐거움을 느끼게하는 호르몬이 분비가 된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몰입은 우리가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며 이는 창조의 결과를 앞당겨주는 요소가 된다.
"넷째, 새로운 생각을 펼쳐내는 도전과 실패를 반복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실행'하는 삶입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관찰을 통해서 훌륭한 모방을 했다 하더라도 실행없이 결과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실행의 중요성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실행하는 삶에서 강조되는 것은 실패를 실패로 보지 않는 관점에 있다.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일수록 그 이전에 수많은 실패를 지나온 것을 알수있다. 실패없이 한번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것과 같다. 그것은 누구나가 아니라 운명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만 가능한 것이다. 특정사람만 가능한 것이라면 누구나를 위한 이런 강의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장에서 저자는 실패에 대한 마음가짐을 강조한다. 특히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내 능력을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을 성장시켜주는 일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라는 말이 와닿았다. 실패를 자산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기저는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소개되는데, 같은 성과를 낸 아이들에게 한쪽은 그 '결과'를 칭찬하고 한쪽은 그 '과정'을 칭찬했는데 후에 결과를 칭찬한 아이들은 결과를 지켜내기에 급급해 새로운 것에 소극적으로 반응한 반면, 과정을 칭찬한 아이들은 새로운 것에 도전적으로 반응했다는 것이다. 잠깐 이야기가 새지만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에게 칭찬을 해줄 때도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섯째, 나의 가치를 사회와 연결하는 '함께'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함께'라는 것은 창의적인 삶은 혼자서는 어렵다, 즉 협동을 강조한 말이다. 대단한 과업을 오직 한 사람이 이뤄낸 사례를 찾기란 어렵다. 우리는 협력을 통해 발전해왔다. 위에서 이야기한 모방에서 서로 관계없는 것들을 잘 연결해야 창의적인 것이라 했다. 관계없는 것들을 한 사람이 모두 알수는 없다. 이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협업에서 가능하다. 저자는 '함께'를 어울려 협업하는 것으로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런 것도 생각해본다. 우리가 아무리 창조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창조적이고 창의적이라 부를 수 있을까. 창의적으로 탄생한 생산물이 모두가 함께 필요로 하고 관심을 가지고 유익한 것이라야 한다는 의미도 저 '함께'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만, 소수에게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좋은 것, 그래야 창의적이라 평가해줄 사람도 더 많지 않을까.
이렇게 전반적으로 이 책에 대해 살펴봤다.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지만 나의 부족한 주저리와는 다르게 책의 내용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간결하고 명료했다. 때로는 긴 설명보다 짧은 물음이 우리에게 큰 자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저자는 각 장 마다 스스로에게 되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을 실어놓았다. 그 질문들은 짧지만 그 장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잘 담아내고 있다. 어떤 질문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요소별로 질문 한가지 씩을 꼽아본다. '관찰'에서는 '일상을 낯설게 보려고 노력하는가?', '모방'에서는 '나는 사물을 볼 때 그것이 무엇일까 보다 무엇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가?', '몰입'에서는 '나는 나에게 의미있는 일을 찾으려 노력하는가?', '실행'에서는 '나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사람인가?', '함께'에서는 '나는 내 능력을 알아주는 곳을 스스로 찾으려 하는가?'. 위의 질문들을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잠시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겠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창의력을 기른다는 것을 뭔가 지식적이고 생산적인 능력을 배우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키워주려는 것도 똑똑하고 경쟁력있는 아이로 길러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을까. 이렇게 창의력하면 생산적이고 능력있는 그런 것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는 창의력에 대해 조금 생각이 바뀐 것을 느낀다.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 내는 능력이 창의력이라면 내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며 산다는 창의적인 삶이란 잘 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의력이란 잘 사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행복한 삶 아닐까. 다시 창의적인 삶의 5가지 요소로 되돌아가보자.
'관찰'을 통해 세상을 더 풍요롭게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많은 것을 보려고 소유하려 하는 것도 결국 풍요롭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굳이 많은 것을 가지지 않더라도 이미 있는 것들에서 제대로 보고, 느끼고, 충분히 누리며 살수 있는 것, 그것은 '만족', 이는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다.
'모방'의 관점에서는 무엇일까 보다 무엇이 될수 있을까를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과거에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삶에 대한 질문은 왜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 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우리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왜 살까에 대한 답은 궁극적으로 찾을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어떻게 살까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같은 대상에 대해 질문은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답을 찾을 수도 있고 못 찾고 헤매게 될 수도 있다. '왜 살까'하는 질문은 삶에 허무함을 느끼게 하지만 '어떻게 살까'는 질문은 삶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이런 맥락에서 '모방'이 던진 질문, '무엇일까'의 '왜'는 이미 정해진 답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무엇이 될수 있을까'의 '어떻게'는 내가 그 답을 만들어 낼 수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떠올린다. 외부에서, 타인이, 세상이 정한 답을 강요받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답을 찾아 사는 자유로운 삶. '자유', 이도 행복의 조건이다.
'몰입'은 어떤가. 왜 사람들이 게임에 빠지는가? 그것은 몰입이 주는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유익한가, 해로운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대상이 무엇이든 몰입하는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기쁨', 이것도 행복의 조건이다.
'실행'에서는 실패에 대한 마음가짐이 나왔다. 실패를 통해 배우는 삶, 실패마저도 나를 괴롭힐수 없는 삶의 태도. 여기에는 긍정이 들어있다. 긍정적인 삶의 관점이 없다면 실패를 자산으로 만들수 없기 때문이다. '긍정'도 행복의 조건이다.
'함께'를 볼까. 홀로왔다 홀로가기에 인간은 본래 외롭다 할수 있겠으나, 오고 갈때만 혼자이지 그 외에는 늘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도 사실이다. 산 속에서 고독하게 수행하는 수행승도 일정기간 정진을 위해 홀로 있을 뿐 대부분 '승단'이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홀로 사는 것은 정서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비효율적이며 자연적이지도 않다. 가끔씩 갈등도 있고 다툼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함께 산다. 그것은 함께 사는 것이 주는 이점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함께 살아가며 주고 받는 '공감', 이것도 행복의 조건이다.
그렇게 보니 '관찰', '모방', '몰입', '실행', '함께'라는 창의적인 삶의 5가지 요소는 '만족', '자유', '기쁨', '긍정', '공감'이라는 행복한 삶의 5가지 요소로 치환되는 것을 알수있다. 나는 이 책을 보고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창의'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나는 창의적인 삶이라는 말을 들으면 행복한 삶을 떠올릴 것 같다. 이 책은 창의력을 계발하는 자기계발서인 동시에 행복을 가르쳐주는 마음수양서로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내 멋대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