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 나라 - 마의태자의 진실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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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 <김의 나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중국 청나라의 황족이 신라의 왕족의 직계 후손이고 그 신라의 왕족은 거슬러 올라가면 흉노의 후예라는 이야기. 어쩌면 청나라의 역사는 우리 역사의 연장선일 수 있으며, 청나라는 후금이라하여 금나라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이는 중국 역사의 일부가 우리의 역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황하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한 한족과 그들이 오랑캐라 부르는 주변 이민족들간 중국 중원을 뺏고 빼앗기는 반복의 역사다. 대표적으로 이민족이 세운 나라로는 거란의 요나라, 몽골의 원나라, 여진족의 금나라, 청나라가 떠오른다. 중국의 주류는 분명 한족이며 그들의 생물학적 민족성을 떠나 의식적 측면으로 볼 때도 중국의 주류는 한족이다. 이는 중국 근현대사를 보면 잘 드러나는데 중화민국 수립시 주장했던 기조가 멸청흥한(만주족의 청나라를 멸하고 한족을 부흥하자)인 것을 보더라도 현재의 중국은 뿌리부터가 한족이 주류인 나라라는 것을 알수 있다. 한족과 한족이 아니면 오랑캐라는 의식은 과거를 넘어 현재까지 잔재해있는데, 금나라가 남송을 침략했을 때 금나라 장수 올출의 공격을 막아 남송을 지켜낸 악비가 중국에서는 역사적 영웅으로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처럼 추앙받는 것을 생각해보자. 금도 중국의 역사이고 남송도 중국의 역사라면 왜 한족의 나라를 지켜낸 자가 중국의 대표적인 영웅이 되는가. 중국에서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역사적 영웅 중 한족이 아닌 사람이 있는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호락하지 않은 중국은 한족의 중국만을 너무 강조할 경우 현재 그들의 영토 중 상당부의 정통성이 사라질 위험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당장 중국의 만리장성이 어디에 있는지 떠올려본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북방유목민족들을 막기 위해 한족의 왕조가 만든 성벽이 만리장성이다. 이 만리장성은 현재 중국 영토의 우측 끝이 아니라 3분의 1지점에 있다. 즉 북동쪽을 기준으로 봤을 때 현재 중국 영토의 서남쪽 3분의 2를 지키기위해 세운 것이 된다. 한족에 너무 치중되어 버린다면 중국 동북지역은 오랑캐의 땅이 였기에 여기서는 한족 영토의 정통성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온 것이 2002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이는 현재 중국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프로젝트로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고 있다. 이것에 따라 위에서 언급된 송나라의 악비가 한족의 영웅이 되면 그가 막아낸 금나라는 외세가 되며 금나라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청나라도 외세가 되기에 중국 당국은 중국 역사의 영웅 악비가 더 이상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는 고등중학교 역사 헌장을 발표한다.


서두가 길었다. 다른 나라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없는 역사도 만들어내고 남의 역사를 훔쳐올 만큼 역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에 반해 얼마나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의 나라>가 다루는 내용을 나는 과거 TV에서 역사프로그램에서 한번 마주한 경험이 있다. 경주에 가면 신라 문무대왕릉이 바다에 있다. 삼국 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문무왕은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는 동해 바다에 뿌려졌다. 바로 그의 문무대왕비에는 자신의 시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신라 왕족의 시조가 김알지가 아니라 '투후 김일제'임을 밝히고 있다.


한나라 유방의 아들인 무제가 흉노족에게 굴욕 당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훈제국(흉노족)을 멸망시켰다. 그때 전사한 훈제국의 마지막 왕, 휴저왕의 아들이 바로 김일제다. 한나라의 포로가 된 김일제가 무제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그때 '김(金)'이라는 성을 하사 받는다. 바로 이 '김'이 문무대왕 김법민의 그 '김'이다. 김일제의 손자 김망은 쿠테타를 일으켜 한나라를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우게 된다. 하지만 신나라는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한의 세력에게 망하게 된다. 한나라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조조에 의해 망하기까지 4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신나라에 의해 잠시 망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앞을 전한, 뒤를 후한이라고 부른다.



신나라가 망하면서 황족인 김씨는 모두 몰살당했으나 그 중 살아남은 소수가 뱃길을 따라 한반도 남쪽으로 넘어오게 되는데, 그 중 일부가 가야 지역으로 가서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되며 나머지는 신라 지역으로 가서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신라라는 이름은 신나라(新)를 다시 펼친다(羅)고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한다. 경주 김씨의 신라는 왕건의 고려에 의해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을 끝으로 망한다. 신라를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고려에 갖다바친 나약한 경순왕에게는 그와 정반대의 성격의 태자가 있었는데 그가 마의태자로 유명한 김일이었다. 결국 신라가 망하고 마의태자는 그를 따르는 화랑들과 함께 북으로 올라가 여러 여진 부족과 요나라에게 망한 발해 유민들을 규합하여 세력을 형성하였고 죽으면서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는 애신각라(愛新覺羅)를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그의 후손들은 세력을 더욱 키워나가고 금나라를 세워 요나라를 무너뜨리고, 송나라를 공격하여 남송으로 쪼그라뜨려 버린다. 이후 몽골의 원나라에 의해 금나라와 남송이 망하고, 그 원나라는 명나라에 망한다. 그 사이 변방의 만주지역에서 다시 힘을 키우던 금나라의 잔재세력들이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나라를 세웠으니 이를 후금이라하고 곧 청으로 이름을 고친다.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순식간에 전개되어 혼란스러울 것도 같다. 이 모든 이야기는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이었던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이의 전체 이름이 '애신각라 부이'라는 데에서 시작한다. '애신각라'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생각하라. 애신각라는 청나라 황실의 성이었고 이는 '김(金)'과 함께 사용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청나라 황실의 성이 왜 신라일까, 그리고 그 성을 '김'과 함께 사용하는 것에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분명 이 책은 '소설'이며 앞에서 '이야기'라고 표현했지만 <김의 나라>는 단순한 소설로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책에 담긴 내용중의 상당부는 역사적 증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모든 사실이 반드시 기록으로 남는 것은 아니며 기록으로 남지 않았다고 해서 있었던 사실이 없던 것이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남아 있는 역사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10년동안 추적하였으며 조각난 퍼즐처럼 산재되어 있는 사료들과 몇몇 기록으로 남지 않거나 확인할 수 없는 빈틈은 소설의 허구성을 빌어 하나의 완전한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김의 나라>를 읽고 있으면 우리의 뿌리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아직 더 연구되어야겠지만 사실 확인을 위한 연구는 동북공정에 의해 가로막혀 있다. 발해, 고구려, 여진족의 무대가 현재 중국 동북3성으로 중국의 영토에 있고 그들은 이에 대한 연구를 막고 있으니 연구가 진척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미 채증된 사료들을 바탕으로도 위 이야기는 상당한 진실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것은 우리나라 역사학자들에게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책에서도 약간 언급되고 있지만 동북공정으로 인한 충분한 연구가 어렵다는 것과 과거 식민사관의 잔재 외에도 이것이 정설이 될 경우 우리의 뿌리는 단군이라는 것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와 불편함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본다. 소설에서 작가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우리 학자들의 연구 제한 조치에 대해 우리는 역사를 통해 영토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책의 제일 마지막에는 "역사적 진실은 누가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자리에서 진실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나오는데, 진실은 가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낯익은 기분이 들어 생각해보니 과거 김진명 작가의 소설에서 느꼈던 기분이다. 스스로를 반도에 가두고 강대국을 사대하고 자신을 얕잡아 보던 오랜 열등의식을 타파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켜주는 김진명의 소설 말이다. 우리의 과거 우리 민족은 광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대제국을 건설하였었고 중원을 위협했던 웅장한 역사가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역사는 한반도에 갇혀 만주와 중원을 넘보던 역사는 도외시되고 있다. 영토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의 뿌리를 제대로 알아 우리의 정체성을 깨닫고 선조들의 역사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역사에 밝혀져야 할 부분은 아직도 많이 남은 것 같다. 과거 내가 역사를 배울 때 '통일신라시대'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발해를 포함하여 '남북국시대'라 부른다. 이는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제 자리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결과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먼 것 같다. 일제 35년 동안 뿌리깊게 박힌 식민사관의 흔적은 아직도 학계에 남아 있으며 우리의 역사적 열등감 또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주변국들은 있는 역사는 왜곡하며 없는 역사는 만들어내고, 남의 역사까지 훔쳐가는데 우리는 있는 무얼하고 있을까. 우리는 있는 역사도 제대로 지켜내고 있을까. <김의 나라>를 읽으며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에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되어 희망적이고 설레이기도 한다. 앞으로 한국사 분야에 더 많은 연구와 지원이 이루어져서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김의 나라>와 같은 내용을 더 이상 소설이 아닌 국사책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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