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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세대 - 그러니까, 우리
이묵돌 지음 / 생각정거장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갈라파고스 세대>는 이 시대에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걱정과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94년생인 작가는 90년대생들을 '갈라파고스 세대'로 정의하고 있다. 갈라파고스는 에콰도르에 있는 군도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준 섬이다. 각 섬들의 격리된 환경적 특성은 독자적인 진화를 이룬 고유종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90년대생의 특징을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것으로 보고 세대 내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것을 갈라파고스에 비유했다. 과거 세대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그 세대의 공통된 특징을 담고 있다면 '갈라파고스'는 공통된 특징이 없다는 특징을 의미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많은 것이 풍족해지고 편리해졌지만 그것은 양적인 발전이었지 질적인 발전은 아닌 것 같다. 책에서는 요즘 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SNS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때 요즘 사람들은 만나서 커피를 시켜 놓고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대신에 핸드폰을 바라보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람과도 문자로 대화한다는 말이 있었다. 책에서도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서 감자탕을 먹었는데 서로 음식 사진 찍어서 SNS에 올리기 바쁘고 다들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놓고 집에 가서 올라온 SNS글에는 음식사진과 함께 굉장히 즐거웠던 시간이었떤 '척'을 해놓는다. 작가는 이를 현실의 일상이 가상의 일상의 장식물로 전락했다고 지적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얼마전 유명 아이돌 연예인 두 명이 자살했다. 둘다 악성댓글로 인한 안타까운 일이었다. 현피라는 말도 있는데, 온라인에서 낯선 사람과의 갈등이 현실에서 실제 싸움이 되는 것을 뜻한다. 이런 것들은 인터넷이 가져온 부정적인 효과들이다. 작가는 소통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어 물리적인 소통 상황은 좋아졌지만 이것이 정서적인 소통까지 보장하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지적한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있듯, SNS상 숫자 1이 사라지지 않아 읽고 씹히는 것이며 영혼없는 축하문자 메세지가 정서적인 소통의 친밀함 마저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젊은 세대들의 큰 걱정거리 중 하나인 취업에 대해서도 나온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대학만 나오면 취업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학력인플레로 다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걱정인 시대다. 어느 기사에는 공무원인 환경미화원을 뽑는데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이 지원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다. 취업이 어렵다보니 자연히 결혼도 출산도 늦어지며 아에 이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은 시대다. 공무원 지원율은 매년 사상 최대를 갈아치우고 노량진 공시생들이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시대. 사회는 발전이 사회적 불안은 해소해주지 못하고 있다.
거기다 흙수저, 금수저로 보이지 않는 계급은 사실상 존재해 없는 집 자식들은 학자금 대출로 힘겹게 얻은 대학졸업장에도 취업이 안되는데 있는 집 자식들은 아빠 찬스, 엄마 찬스같은 여러 찬스가 있어 경쟁의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열정페이, 유리천장, 유리바닥 같은 불안의 단어들이 가득한 세대, 하지만 그들에게 기성 어른 세대들은 '나때는 말이야'라는 일방적인 말로 젊은 세대의 고충을 약해빠진 정신력과 배부른 소리 쯤으로 치부해버린다.
과거에도 분명 세대갈등은 존재했겠지만 지금처럼 강한 시기가 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책 속에 나오는 중소기업 이사와 신입사원간에 대화도 고용주와 근로자간의 갈등이지만 이것 또한 의식은 세대갈등은 깔고 있다. 120만원의 보수가 너무 적다고 신입사원이 당돌하게 문제 제기를 하자, 이사는 120만원치의 일을 하고 있느냐고 되묻는다. 신입사원은 120만원 가지고 당신이라면 살 수 있겠냐 반문한다. 맞고 틀림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양측 모두 이해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이 책에서는 부모와 자식간의 문자 소통 상황극이 많이 나온다. 멀리 공부하러 간 자식이 궁금한 부모는 자식이 걱정되어 연락을 하지만 자식들의 답은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느리고 짧다. 답이 없다고 걱정하고 집에 자주 안온다고 걱정하고 공부는, 취업준비는 잘 되가냐는 부모님의 연락에 자식은 답이 없고 부모는 답답하다. 세대간의 갈등은 집안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 자식도 나름의 고충이 있는 것이다. 자식세대는 SNS에 긴 글을 사용하지 않는다. 단어조차도 줄여서 쓰는 시대다. 그러니 내용이 아닌 형식에서도 소통 방식이 다르다.
작가가 요즘 세대들의 특징 중 한 가지는 '육체적 욕구와 정신적 욕구의 분리'라 말한 것이 인상적이다. 과거에 비해 확실히 성에 대해서 많이 개방적인 사회가 되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섹스를 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히 단축되는 것은 물론 원나잇 스탠드도 특별한 것이 아닌 시대인 것을 언급한다. 남녀칠세부동석이라 손만 잡아도 책임져라 했던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백프로는 아니겠지만 과거에는 사랑이 있어야 섹스가 가능했고 섹스가 먼저라 하더라도 사랑이 곧 뒤따르게 되었다면 지금은 그 사랑 따로 섹스 따로가 가능하다. '프렌드위드베네핏'이란 단어도 그런 시대상이 반영된 단어일 것이다. 이런 육체적 욕구와 정신적 욕구의 분리를 잘 보여주는 다른 예는 음식이다. 과거에는 배가 고파야 멋었지만 지금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맛을 위해 배가 부른대도 먹기도 한다. 어쩌면 과거에 비해 비만인구의 증가도 이런 행동 패턴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적으로 남녀는 더 가까워졌지만 모순적이게도 지금 이 시대에 두드러지는 것이 있었으니 '한남충', '김치녀' 같은 젠더 갈등과 더 심하게는 젠더 혐오 현상이다. 취업을 할 때 여성들이 받는 여성 쿼터나 여성 가산점도 이런 갈등의 원인이 되었는데 군대를 다녀온 남자는 가산점을 안주면서 왜 여자들은 가산점을 주냐는 역차별 논란도 발생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젠더 혐오의 끝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과거보다 젠더간 갈등도 심해지고 있다.
이야기가 정리가 잘 안된다. 아무튼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 세대들은 '자기 때에 비하면 뭐가 힘드냐'고 말하지만 분명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느낀 감정은 슬픔이었다. 책임을 져야할 때는 너희도 어른이라 그러고 권리를 누릴 때는 어린 것들이 뭘 아냐고 무시 받는 젊은 세대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직은 자리 잡지 못한 이들이 많은 세대들. 꿈과 희망은 산타할아버지같이 허구의 존재이며 실제 세상은 돈과 권력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아버린 세대들. 분명 잘 배고프진 않는데 뭔가 마음이 고픈 세대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세상에 희망을 느끼지 못해 게임에 매달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카톡 같은 채팅방의 형식을 빌어 실제 가족, 친구, 연인과의 짤막한 대화가 나온다. 때로는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보여주는 것이 훨씬 더 이해가 잘 되는 경우가 있다. 젠더문제든, 세대갈등이든, 취업문제든, 열정페이든 여러가지 갈라파고스 세대가 겪고 있는 비참하고 힘든 현실들이 그 대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어 공감이 많이 갔다. 또 각 파트별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력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책의 내용 중에서 '돈보다 계속 살아갈 의미를 달라'는 문장이 나온다. 더 이상 과거 보릿고개처럼 배고픈 사람은 없다. 그렇게 양적으로 풍부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사람에게는 이룩할 가치나 이상향이 필요하다.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철학자가 되겠다는 말도 있지 않나. 과거 세대에는 그 시대의 청년들이 이룩할 가치들이 뚜렷했다. 1900년의 전반의 가치는 독립이었고 후반의 가치는 민주화와 산업화였다. 하지만 지금의 청춘들은 어디에서 살아갈 의미를 찾을까 막막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그 뒷문장처럼 '살아갈 의미가 될 만큼의 돈이라도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의 삶도 평탄치는 않았던 것 같다. 기초생활수급으로 살았고 돈이 없어 대학교도 중퇴했다. 스타트업에 도전했지만 망하고 빚이 남았다. 힘들어 자살도 시도했다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암울하다. 글에서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느낌도 받는다. 섬처럼 서로서로 떨어지고 고립되고 외로운 세상, 세대. 하지만 작가는 그러게 끝을 맺지 않는다. 힘들고 외롭고 어려운 시대이지만 그래서 내가 더 힘들고 니가 더 힘들고 말할 것 없이 분명 우리 모두 힘든 시대가 맞기에 서로 힘이 되어주자는 희망적인 결론을 선언한다. 아참, 책표지가 홀로그램처럼 빛나는데 참 예쁘다. 이 말을 잊을 뻔 했다.
작가의 마지막 말로 글을 친다.
"같은 시대에 살지만 각자 다르게 힘들고 외롭다는 얘기를 중언부언 써대다가 보니 책 한 권이 돼 있었다. 누구 한쪽이 더 슬픈 세대인지 보다 오늘의 세계가 어떻게 슬픈 시대인지를 이야기하면 좋겠다. 섬이라고 항상 외로우라는 법은 없다. 당신과 나 사이에도 섬이 있다. 나는 당신의 섬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