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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히어로들에게도 재수 없는 날이 있다 ㅣ I LOVE 그림책
셸리 베커 지음, 에다 카반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0년 5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슈퍼 히어로들에게도 재수 없는 날이 있다>이 아이들에게 주는 교훈은 어쩌면 아이들이 배워야 할 교훈 중 가장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 교훈은 바로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감정을 잘 조절해야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니까.
책에는 8명의 슈퍼 히어로들이 나온다. 각각은 모두 엄청나게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 캐릭터를 보면 '마블'사의 슈퍼 히어로들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들을 패러디 한 것으로 보인다. 덩치크고 초록색 몸의 힘 쎈 '비스티', 얼음을 자유롭게 다루는 '찡', 힘 쎈 여전사 '스래시', 눈에서 레이저가 나가는 '레이저맨', 슈퍼맨의 빼박 '마니맨', 공기에 진동을 일으켜 공격하는 '소리질러', 바람 원소 마스터 '태푸니', 누가봐도 스파이더맨 '끈끄니키'. 뒤에서 말하려 한 건데 아이는 이 책이 가르쳐 주려는 교훈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고 나에게 캐릭터의 이름을 되묻기 바빴다. 아이들은 이런 영웅 캐릭터에 본능적으로 끌리게 되어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처음부터 낯설은 광경이 펼쳐진다. 정의의 슈퍼맨 아니, 마니맨이 거리의 소화전을 발로 차 날려버린다. 옆에 있던 사람은 물이 터져 놀란다. 이를 시작으로 슈퍼 히어로들이 '깽판'치는 장면들이 나온다. 슈퍼 파워로 발길질 하고, 주먹으로 휘두르고, 고함을 치며 악을 쓰고 있다. 심지어는 강도들이 무사히 은행을 털도록 도와주는 가하면 버스, 트럭을 집어 던지고 건물을 박살내고 산불을 낸다. 완전 악당의 모습이다. 그러나 반전은 '그럴수도 있다'는 것이다.
제 뜻대로 안되서 슬프고, 화가 났거나, 재수 없을 때 그들은 슈퍼 파워를 나쁘게 쓸 수 있는 '반면에' 사람들을 구하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에 힘을 써서 기쁨과 보람으로 극복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슬프고 화가 날 때는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웃음과 기쁨을 만드는 일에 슈퍼 파워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악의 무리를 무찌르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 슈퍼 파워를 쓰는 것이 진정한 슈퍼 히어로니까.
그러나 또 '하지만'이 나온다. 슈퍼 히어로들은 기분이 안좋을고 마음이 상할 땐 나쁜 상황을 만들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는 것이다. 회오리 바람이나 눈보라를 일으키고 거미줄로 사람들을 공격하고 악당들이 판을 쳐도 모른척 내버려 둔다. 하지만 그런 충동이 든다는 것이지, 그럴수 있다는 뜻이지, 그러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슈퍼 히어로니까.
책에서는 마음이 안 좋을 때는 나쁜 행동을 하고 싶은 충동을 잘 다스리고 슬픔과 분노를 바라보며 감정이 사그라들기를 기다리라고 가르쳐준다. 이 내용이 나오는 장면에서 모든 슈퍼 히어로는 명상을 하고 있다. 때로는 충동에 질 때도 있어서 분노와 슬픔의 마음으로 인해 그들의 슈퍼 파워를 나쁘게 쓸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혹시나 아이에게 '충동'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아이는 '몰라'라고 대답했다. 마음에 대한 책이다 보니 '재수 없는 날', '충동', '감정의 인식'과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나온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읽어 줄 때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나는 '재수 없는 날'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날'로, '충동'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감정의 인식'은 '내 마음이 어떤지를 아는 것'으로 번역해 줬다. 쉬운 말로 바꾸고 보니 모두 '마음'이란 낱말이 들어간다. 이 책이 마음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여기서도 알수 있다.
인간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다. 사람을 저 멀리 있는 달로 보낼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을 병마로부터 구할 약을 만들어 내기도 하며, 우주 저 멀리 태양보다 큰 별을 관찰하기도 하고 동시에 원자보다도 작은 소립자의 세계를 연구하기도 한다. 세세하게 나열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능력을 가진 우리는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에 따라 천사가 될수도 있고 악마가 될수도 있다. 이 책은 제 뜻대로 안되는 상황과 마주한 아이들이 부정적 충동에 쉽게 동요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긍정적 행동을 통해 슬픔과 분노를 기쁨과 행복으로 바꿀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마음도 습관이라 한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하지 않던가. 어려서부터 습관을 잘 들여야 나중에 커서 고생을 덜한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고 나쁜 충동에 휩쓸리면 나쁜 결과가 나에게 돌아온다는 이치와 불안과 분노를 어떻게 해소하는지를 어려서부터 가르쳐 줄 수 있다면 그들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유아때부터 아이의 조기 교육에 돈과 열정을 쏟아 붓는 부모님들이 더러 보인다. 그런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어렸을 때 아이가 제대로 배워야 할 1순위가 있다면 영어도 수학도 아닌 '마음 알고 다스리기'가 아닐까. 언제나 행복은 영어나 수학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주는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