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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인간 -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
김기헌.장근영 지음 / 생각정원 / 2020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험인간>은 시험으로 만연한 우리 사회와 그 속에서 너무 익숙해져버린 우리 모두에게 따끔한 경종을 울린다. 시험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시험인간>은 수험생과 취준생을 통해 보여준다.
고3 수험생이라는 말이 하나의 신분이 되어버리고 수능날에는 온 나라가 시험에 맞추어 돌아간다. 학원들이 넘쳐나고 과외 광고들이 즐비하다. 아이 뒷바라지에 조금이라도 더 보태겠다고 집에 있던 엄마들은 요구르트 아줌마가 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교육환경을 위한다는 믿음 하에 아빠들은 기러기가 되었다.
수능시험 후에는 결과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처음 듣는 소식은 아니고 잠은 죽어서 실컷자라며 4당 5락, 즉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폭력적인 일과가 아이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시험인간>은 적나라게 드러낸다. 얼마전 'SKY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액 과외나 고액 컨설팅은 그런 상류사회의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며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교수 부모들이 서로의 자녀들을 공동저자로 넣어주는 이른바 '스펙 품앗이'는 열심히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말이고 부모 잘 만나는 것 조차도 하나의 스펙이되는 씁쓸한 사회상을 보여준다.
저렇게 잠도 못자고 돈도 많이 들고 그렇게 고생해서 수능의 관문을 잘 넘었다 치자, 그게 끝이 아니다. 통계에서는 한해 취업자의 60프로에 해당하는 인원들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고 한다. 뉴스에서 수 십만의 응시자가 몰리고 수 백대 일의 경쟁률이 어쩌고 하는 기사들도 이젠 낯익다. 서울 노량진에서 탄생한 '컵밥'에는 미래를 꿈꾸며 청춘을 저당잡힌 수많은 공시생들의 슬픈 이야기가 베어있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공시생들은 독서실 총무같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 온라인 강의 아이디를 공유하고 스마트폰을 처분하고 다시 폴더폰으로 바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유치원때부터 경쟁하고 학원을 들어가기 위해서 시험을 치고 학교에서 모의고사에 수능시험에, 또 대학가면 각종 자격증 시험, 토익시험, 중간, 기말 학부시험에 졸업하고는 입사시험... 거기서 끝이면 또 좋으련만 피라미드식 구조라는 일자리 시장은 위로 가면 갈수록 좁아드니 경쟁이 치열해 계속 스펙을 쌓고 승진시험을 넘어야 한다. 머리가 히끗히끗해지고 퇴직할 때 즈음에는 공인중개사 시험, 경비원 시험, 아파트 관리사 시험... 노후마져도 시험이란 녀석은 무섭게 따라다닌다. 이런 우리 사회에 <시험인간>은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이대로 괜찮은가? 대안은 없는가?' 처절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에 관해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시험인간>의 저자는 사회학 박사와 심리학 박사다. 두 사람은 현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청소년 관련 정책에서 교육은 핵심주제이고 교육 정책은 현실적으로 입시를 벗어나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아마도 그 둘은 시험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나 보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시험이 결국은 학생 때의 시험만으로 끝나지 않고 고구마 줄기 딸려오듯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험에서 시작해서 시험으로 끝나는 시험중심의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까지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회학자와 심리학자가 사회학 이론과 심리학 이론, 그리고 여러 신뢰할 만한 통계와 여러 과제를 맡으며 만났던 인터뷰 데이터를 근거로 사회문제를 풀어나가고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전문영역이라 어렵고 딱딱할 수 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과학적인 자료들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때리는 것은 저자의 필력이 반이고 저자가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심하고 고민했던 진정성이 반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시험이 팽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태를 정리해주고 지필시험으로 대부분이 평가되면서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거론한다.
저자도 강조하듯 시험 그 자체는 인류가 교육을 위해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유용하고 좋은 교육 방법이다. 시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시험을 통해 단지 학습능력에서 부진한 부분을 찾아내고 건강한 학습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정도라면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험의 결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서 모든 폐단이 발생한다.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데서 일한다'는 식의 말이 시험이 순수한 교육적 기능으로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부당함을 정당화 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아까도 언급했듯 저자는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다. 따라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험이 갈라놓는 불만과 문제점들을 각각의 미시적인 개인의 차원에서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그 개인이 모여 구성된 거시적인 사회의 차원에서는 사회학적 개념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개념들은 생소할지 모르겠으나 그 개념들을 이용해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기에 잘 이해된다.
어쨌든 시험이라는 것이 누구도 신뢰할 수 있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유일한' 평가방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회에 어떻게 불신, 불공정, 차별이 발생하는지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의 가치를 오지선다의 OMR카드로 과연 온전히 평가할수 있는가. 한번의 시험으로 그 사람의 12년 학습과정을 판단하고 수학능력이 제대로 갖추어졌는지 다 판단할 수 있는가.
정시고 아니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학생부종합평가라는 학종과 수시확대는 그렇다고 충분한 대안이 되던가. 정시중심의 대입전형이 수시의 비율을 확대해가며 여러 논술시험과 입시컨설팅이라는 사교육의 또 다른 시장의 문을 열어주었고 지식보다 역량을 평가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시험말고 봉사활동, 공모전, 대외수상 같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할 거리만 늘어났다. 이젠 또 다시 학종의 문제점, 수시의 문제점이 드러나니 국민들은 정시 비율을 높이자고 하고 정부는 여론에 따라 정시확대를 발표했다.
시험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는 사회가 가지는 문제 중 하나는 획일화이다. 사실 시험이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것은 저자도 인정한다. 교육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여 국민교육수준을 끌어올렸다. 시험이라는 방식은 답이 정해져있다. 그래서 소수의 교육자로 다수의 학생을 길러내고 평가하는데 너무나도 편리한 도구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절 시험은 훌륭한 도구였다. 그런데 시험에는 항상 답이 정해져있고 그 답을 따르는 사람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것이 획일화를 낳는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메뉴얼 사회라는 말이다. 모든 것을 메뉴얼화 시키는 것으로는 세계에서 일본이 가장 유명하고 그다음으로 일본의 교육시스템 많은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다. 업무에 쓰이는 메뉴얼도 있지만 메뉴얼이라는 것이 결국엔 행동양식의 정규화, 획일화를 뜻한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낳는다는 관점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정적 시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오직 아이를 낳고 정부의 인구정책에 기여하기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결혼적령기 같은 보이지 않은 메뉴얼이 정해져 있어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노총각, 노처녀가 되고 명절때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는 신세가 된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해본 사람은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이라 해서 정형화되고 공식화된 결혼식의 메뉴얼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죽어서도 과거와 달리 요즘은 모두 상조회사에 연락해서 거기서 장례지도사가 시키는 메뉴얼 대로 따를 뿐이고 다른 방식은 선택지에 없다. 이러한 획일화는 사람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저자는 이런 행동양상도 시험중심인 사회에서 기인한 것임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답이 정해져 있는 사회, 그 답을 잘 맞추는 것을 훈련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되는 사회에서 시험은 굉장한 권력이 되고 통치의 수단이 된다.
책에서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다. 어떤 시험 문제에 답을 할때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지만 본인이 충분히 생각해낸 좋은 답안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자신의 답을 쓸 것인가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답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설사 자신만의 좋은 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답을 쓰겠다고 답한다. 우리 사회에 시험을 통해 선별되고 성공을 향해 가까이 가있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하기보다는 사회가 정한 답을 찾는 기술에 능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생각하지 않을 수록 점수는 높아진다는 아이러니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말을 한다.
이렇게 책은 전방위적으로 고부담 시험이 만들어내는 문제점을 고발하고 이런 것이 산업화과정에서는 유용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우는 지금의 시대와 앞으로의 미래에서는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그 대안이 될 만한 '단서'들을 제시하며 '탈시험인간'만이 우리 사회가 도태하지 않고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모두 함께 노력하고 고민하자고 호소한다.
교육부가 교육정책을 바꾼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노동부가 노동정책을 바꾼다고 될일 도 아니다. 단순히 정부만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니라 온 국민의 의식과 사고가 바뀌어야 가능한 것임을 <시험인간>은 시사한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오래 살고 너무도 적응해 있다보니 이러한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해결을 하려면 일단 문제를 알아야 한다. <시험인간>은 그 명확한 대안과 분명한 해답까지는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서 모두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래서 집단지성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한다.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다. 그래서 더욱이 우리는 '나는 이제 입시도 지났고 취업도 했어'라고 뒷짐질 상황이 아니다. 모두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시험인간>을 통해 익숙해서 잘못된 것인 줄 몰랐던 불편한 사실들을 마주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보면 좋겠다. 문제의식이 없다면 해결 가능성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