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 귀신고래야! - 동해에서 사라진 귀신고래를 찾아서 우리 땅 우리 생명 5
신정민 지음, 정지윤 그림, 허영란 도움글 / 파란자전거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고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 아이 때문이었다. 생물에 관심이 많은 우리 아이는 바다생물을 좋아하고, 그 중 특히 고래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각종 고래 피규어들이 많다. 아이가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하나 씩 사주다 보니 많아 졌다. 그러면서 그냥 통칭으로 고래로 알고 있던 것을 향유고래, 긴흰수염고래, 혹등고래, 밍크고래, 범고래 같은 세부 이름들도 기억하게 되었다. <돌아와, 귀신고래야!>를 선택하게 된 것도 순전히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고래가 주인공이라서다.


귀신고래의 이름에 '귀신'이 붙어 무섭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귀신 같이 수면 위로 올라 왔다가 귀신 같이 사라진다'해서 '귀신'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돌아와, 귀신고래야!>의 배경은 울산 장생포다. 울산하면 떠오르는 것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 암각화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에서 오래전부터 고래를 목격할 수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울산에서 고래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돌아와, 귀신고래야!>의 배경인 일제시대 정도로 거슬러 올라만 가도 한해 200마리의 고래를 포획할 정도로 고래가 많았다고 한다. 위에 언급한 암각화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 고래가 특히 눈에 띄는 것이 고래가 큰 동물이다 보니 크게 그려진 이유도 있겠지만 그 옛날 고래의 종류에 따라 세밀하게 구분하여 그려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암각화의 추정연대가 기원전 7000년 정도 된다고 하니 지금으로 부터 약 1만년 전에 울산지역에 살았던 신석기 인류때부터 이곳 한반도에서 인간과 고래의 오랜 인연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인간과 고래의 인연이라는 것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다. 19세기 말 석유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까지 고래의 기름은 인류에게 대체불가한 필요 자원이었다. 우리에게는 <백경>으로 더 잘 알려진 1851년에 나온 소설 <모비딕>에서도 고래를 사냥하는 것이 큰 비지니스이며 많은 돈이 투자되고 많은 사람들의 생계가 달려있고 경제계 뿐아니라 정치권도 주목하고 있는 그 시절 핵심 산업이라는 것이 나온다. 서구권에서 먼저 고래잡이가 유행하고 그에 따라 고래 개체수가 많이 줄어들자 외국의 고래잡이 배들은 동양으로 그리고 우리나라까지도 오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고래 잡이가 성행하는 시기는 일제시대로 일본인들이 동해에 고래가 많이 출몰하는 것을 알고 장생포를 고래잡이의 본거지로 자리 잡는데서 시작한다. 그 당시 해마다 200마리의 큰 고래를 잡았다고 알려진다. 고래를 사냥하는 방식은 참 잔인하다. <돌아와, 귀신고래야!>에서도 고래를 잡는 그림이 나오는데 일단 고래를 잡으면 그 출혈된 피가 온 바다를 덮어 섬뜩해 보인다. 고래를 잡을 때 작살포라는 작살이 달린 총을 쏘아 잡는데 15~16미터에 45톤 정도에 다다르는 큰 고래를 작살만으로 죽이기 쉽지 않다보니 끝에 폭약을 설치해 쏘게 된다. 따라서 고래의 몸을 꿰뚫고 들어간 작살 끝의 폭약은 고래의 몸속에서 터져 고래의 피와 살이 온사방으로 튀어나가게 된다. 작살에 맞은 것도 괴로운데 몸 속에서 폭탄이 터져버린 고래를 상상해보라. 얼마나 잔인한가.


크기가 작아 기름도 적게 나오고 맛도 떨어진다는 밍크고래보다 사냥꾼들은 크기가 커서 기름도 많이 나오고 고기 맛도 뛰어나다는 귀신고래와 참고래를 선호한다. 사실 가장 사냥꾼들이 잡고 싶어 하는 고래는 향고래라고도 불리는 향유고래다. 고래는 바다에 살지만 아가미로 호흡하는 물고기와는 다르게 허파로 숨을 쉬는 포유류다. 따라서 일정시간 물 속에 있다가 숨을 쉬러 물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향고래는 1시간 넘게 오랫동안 숨을 참을 수 있어 사냥하기 어렵다. 그래서 큰 고래 중에서는 귀신고래와 참고래가 고래사냥꾼들에게는 주 목표물이 된다.


<돌아와, 귀신고래야!>에서 나오는 귀신고래라는 이름이 귀신같이 나왔다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향유고래는 고래기름의 향이 은은하고 좋아서 '향'자가 들어가고, 특히나 향유고래의 똥은 '용현향''이라 하여 바다의 보물로 금보다 비싸다고 한다. 귀신고래와 더불어 사냥꾼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참고래의 이름이 붙여진 경위도 씁쓸하다. 고래는 덩치가 커서 보통 죽으면 가라 앉는다. 하지만 참고래의 경우 죽으면 사체가 바다에 뜨기에 '참' 잡기 좋다는 의미에서 '참'고래가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참'은 참고래의 영문 이름이 'Right Whale'에서 딱(Right)잡기 좋다는 'Right'에서 왔다. 이렇게 고래는 이름 조차도 고래의 동물학적 특징보다는 포획 용이성과 용도에 따라 붙여졌다는 것이 불쌍하게 여겨진다.



<돌아와, 귀신고래야!>는 고래 사냥꾼 '장군이'와 귀신고래 '삐딱이'와의 종을 뛰어넘는 우정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고래와 인간이 친구가 될수 있을까. 고래라는 동물은 신비의 대상이었고 영험함의 상징이자 신령스러운 동물이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고래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와 전설이 전해지는 것을 알수 있다. 그 중 신라시대의 연오와 세오 이야기도 <돌아와, 귀신고래야!>에 실려있다. 연오가 고래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고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하지만 인간과 고래가 오래전 부터 교감을 나눠왔다고는 할수 있지 않을까. 지능이 높은 동물로 돌고래를 떠올리듯 고래라는 종은 지능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소설 <모비딕>에서도 인간과 고래가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나오지 않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래와 인간의 교감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어쨌든 아기 고래 '삐딱이'는 엄마 '꽃님'이와 추운 겨울이 되어 따뜻한 동해바다로 오게 되었는데 사냥꾼에 의해 엄마 고래는 죽게된다. 엄마 잃은 어린 '삐딱이'는 무서워 길을 잃고 해안가 주변을 서성이는데 고래 사냥꾼의 아들 '장군이'를 만나게 되고 장군이는 다른 사람들 몰래 '삐딱이'가 안전한 곳으로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된다. 그렇게 둘은 한번의 만남이지만 뜨거운 눈빛을 교감하며 친구가 되고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장군이'이는 고래 사냥꾼의 아버지 피를 그래도 이어받아 고래 사냥에 탁월함을 드러내게 되고 나중에는 고래잡이배에서는 선장보다 높은 서열이라는 포수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후에 안타깝게도 '삐딱이'는 아내 '별님'이 마저 인간들의 손에 잃게 되어 좌절하지만 새끼고래 '달님'이를 봐서라도 억척같이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다시는 고향바다 동해로 가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늙은 고래가 된 '삐딱이'는 수구초심 때문이었을까 이젠 엄마 고래가 된 딸 '달님'과 손자 고래와 함께 생의 마지막 여정으로 동해에 간다. 평생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장군이'를 생각하고 '장군이' 또한 늘 '삐딱이'를 생각한다. '장군이'는 늘 고래 사냥을 괴로워했다. 잡혀온 고래가 해부장에게 해체되는 장면을 보면서 동정과 죄책감도 느꼈다. 하지만 배운 게 고래잡이였고 먹여 살려야할 식구들이 있다보니 생계의 문제로 뜻하지 않게 고래잡이를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늘 마음 한구석에서 내적인 갈등이 있었다. 일본인 포수가 결정적으로 고래를 잡으려는 순간 고래를 살려주기 위해 방해하다가 얻어맞는 장면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죽기전 고향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딸과 손주를 데리고 고향바다 동해에 온 '삐딱이'는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장군이'가 포수로 있는 고래잡이배를 맞딱드리게 된다. '장군이'이도 이젠 머리가 희끗한 늙은 포수가 되어 있다. 딸과 손주가 안전한 거리까지 도망간 것을 확인한 '삐딱이'는 추격해 오는 고래잡이배 앞에 떡하니 버텨 선다. 어서 작살을 쏘라는 주변 선원들의 재촉에도 '장군이'이는 아량곳 하지않고 고래만 바라볼 뿐 가만히 있다. 옆에서 지켜보던 선장이 자신이라도 작살을 쏘겠다며 작살을 던지려 하지만 '장군이'는 완력으로 선장을 제압한다. 그리고 '장군이'와 '빠딱이'이는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서 서로를 알아보며 눈을 마주한 채 한참을 말없이 교감한다. 그리고 잠시후 '장군이'는 결국 작살을 던진다. 둘 사이에 우정이 있다면 왜 죽이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책에 그 이유가 있으니 궁금한 사람들은 읽어보길 권한다.


아이들 동화이지만 어른인 내가 봐도 인간과 동물이 서로 교감하는 장면에서는 짠한 마음의 감동이 느껴진다. 흰 종위에 널부러진 검정 기호들이 사람의 감정을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것이 문학의 힘이고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하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한다. <돌아와, 귀신고래야!>에는 중간마다 고래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어 있어 고래에 관해 궁금할 법한 내용들이나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해준다. 그리고 투박하지만 따뜻하게 그려진 삽화는 글에는 다 담기지 못한 부분을 시각적으로 보완되도록 하여 동화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1977년 이후로 공식으로 우리 동해바다에서는 더 이상 귀신고래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다. 고래가 멸종위기동물로 지정되면서 세계적으로 고래를 보호하는 운동들이 일어났고 고래잡이를 금지하는 법도 제정되었다. 그러한 노력으로 캘리포니아에 주로 나타나던 캘리포니아계 북동 태평양 귀신고래는 개체수가 2만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많이 볼수 있었던 한국계 북서 태평양 귀신고래도 다시 울산 앞바다에서 볼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고래가 멸종하는 데에는 무분별한 포획과 바다환경의 악화가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모두가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환경실천을 꾸준히 해나간다면 하루 빨리 우리나라에서도 고래를 볼수 있게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은애숙 지음 / 상상마당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은 소설가 은애숙 작가의 소설집으로 중편 2편([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기다림]), 단편 5편([낙원 새마음운동], [내 안의 호수], [떼소로 미오], [아득한 꿈], [진혼의 노래])이 실려있다. 소설집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소설 제목 때문이었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말이 풍기는 그 구슬픈 정서가 마음에 전해져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에 나오는 소설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메세지는 저자가 서두에 밝혔듯 늘 남성들의 주변적인 존재에 불과한 여성들, 그들이 중심이 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즉 페미니즘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꿈을 소재로 많이 사용했고(3편) 종교와 관련된 인물(3편)과, 이탈리아의 배경(2편)도 하나 이상의 소설에서 쓰인다. 작가 인용하는 이야기로는 한나 아렌트와 추호의 이야기도 두 편의 소설에서 등장한다. 아무래도 7편의 소설을 읽었지만 그 소설을 쓴 작가는 한 사람이다보니 작가가 평소에 즐겨쓰는 이야기, 주인공, 배경이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그 소설들을 연속해서 읽어보는 독자의 눈에는 그런 부분들이 포착된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은 환타지 소설이다. 작가인 홍루나가 평소에 작가계의 대선배로서 존경하던 조선시대 문신 서포 김만중을 만나는 이야기다. 김만중은 한글소설 [구운몽]의 저자로 우리에게 더 유명할 것이다.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홍루나를 중심으로 홍루나가 꿈 속에서 김만중을 마나는 형식이라면 2부에서는 김만중을 중심으로 홍루나가 타이머신으로 과거로 김만중을 찾아오는 형식을 취한다. 꿈 속 이야기라면 그런데로 있을 법도 하지만 타이머신을 타고 미래의 작가가 과거의 작가를 찾아가 작품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설정은 특이하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김만중과 인증샷을 찍고 귀향살이로 만성소화 불량에 시달리는 김만중에게 소화제를 선물하는 설정은 엉뚱하면서도 재밌다. 김만중은 숙종 때 사람으로 귀양살이를 많이 했다. 우리는 숙종보다 어쩌면 장희빈을 더 잘 알것이다. 장희빈의 남자가 숙종이다. 장희빈은 남인계열을 정치적 바탕으로 두고 있었고 김만중은 서인계열이었다. 장희빈과 그 일파가 권력을 위해 숙종의 눈과 귀를 홀렸을 때 김만중은 충심으로 직언을 한다. 하지만 그런 충신의 고언이 들리지 않는 숙종은 김만중을 귀향보내버린다. 아무튼 김만중은 다시 환국으로 돌아 오지만 또 다시 1년도 안되어 정치적 모략으로 귀향을 가게 된다. 김만중의 [구운몽]도 귀향살이할 때 불효하는 아들로써 노모를 기쁘게 해드릴 방도를 찾가다 탄생한 것이다. 아무튼 역사를 다 알고 있는 홍루나는 김만중에게 자객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귀뜸도 해준다. 김만중과 나누는 대화에서 원자폭탄, 커피, 한류 같은 단어들도 나와 소설이 산으로 간다는 느낌을 살짝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만나고 싶은 과거의 인물을 타임머신을 타고가서 만난다는 설정 자체가 재밌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의 페미니즘 적인 요소가 있다 했는데 여기서는 특히 미래에서 온 홍나루가 김만중에게 조선시대 양반이 일부다처제로써 여러 여인들을 첩으로 두고 산 것에 대해 질책하는 부분으로 나온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라는 제목은 김탁환 작가가 김만중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기원으로 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기다림]

[기다림]에서는 판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내에게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을 쉽게 행하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인내심이 강하고 가족을 위해 모진 희생을 다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시대의 아내다. 사람은 잘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더 잘해줘야 할텐데 어찌된 것인지 잘해주는 사람에게 더 모질게하는 성향이 있다. 판수의 성질과 폭력에 못이겨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간다. 가부장적이고 남을 잘 의심해서 주변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판수는 아내가 없어지자 당장 밥도 제대로 차려먹지 못한다. 주변 이웃도 마음을 트고 지는 이들이 없어 외롭기까지하다. 그러다 술에 취해 객사할 뻔한 일이 생기는데 지나가던 천주교 신부에 의해 목숨을 구하고 그 인연으로 종교에 귀의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내가 돌아온다면 정말 잘해주리라 다짐하지만 자식들도 아내가 어딨는지 모르고 아내의 행방은 묘연하다. 어느날 쓰러지는데 암판정을 받는다. 다행히 종교의 힘으로 마음은 평화롭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아내는 마지막까지 돌아오지 않고 소설은 끝난다. 아내한테 있을 때 잘하라는 이야기다. [기다림]은 판수가 칠십 평생 아내에게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늦었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오면 정말 잘하겠노라 다짐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제목에 담았을 것이다. [기다림]에서 중간에 옥수라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그 사연이 참 슬프다. 부잣집 손주가 잠시 데리고 놀다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치제높은 부잣집 손주의 창창한 앞길이 머슴딸로 발목 잡힐 수 없다는 판단으로 버림 받게되고 결국 옥수는 자살한다. 판수는 그것을 목격하는데 최부자의 돈으로 사건은 덮혀버린다. 남성의 권위와 돈의 힘 앞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늘 희생하고 참아야만 했던 여성의 삶을 작가는 조명하고 있다.



[낙원의 새마음운동]

[낙원의 새마음운동]도 판타지 소설이다. 루저같이 살고 있는 주인공 이도궁에게 어느날 꿈에 신이 나타나서 일주일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린다면 정치를 할 수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약속을 한 이도궁은 정말로 하나씩 물건을 버리게 되고 무소유을 실천하게 된다. 그런 행위를 통해 얼마나 불필요 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절제를 배우게 된다. 절제로 탐욕이 힘을 잃게 되자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낙원은 군 이름이다. 이도궁은 낙원군의 군수 후보로 출마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마법같이 후원금이며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는 결국 군수가 된다. 그가 필요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 미담으로 알려지고 사람들도 그에 감동받고 동조하여 필요없는 물건들을 나누는 운동에 동참하다. 이렇게 나온 물건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팔아 수익을 얻고 다시 그 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기금으로 쓰이게 된다. 이런 긍정적 시너지가 선순환을 이루며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해지고 어려운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낙원군은 이름대로 낙원되어간다. 하지만 이도궁도 명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교만의 싹이 트고 권력욕이 솟구친다. 그러다 사고로 한 소녀가 죽게 되고 이도궁은 생명보다는 권력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신이 나타나 이도궁의 모든 것을 빼앗아갈 운명에 처한다. [낙원의 새마음운동]에서도 작가의 아이디어가 참 돋보인다. 신이 필요없는 물건들을 버리라고 하자 주인공은 처음에는 어색해 한다. 하지만 정치인이 되기위해 비자발적이지만 불필요한 물건 나누기를 실천하면서 점점 비움에서 오는 긍정적인 영향들을 체험하게 되자 점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된다. 작가는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많은 자원을 아낄 수 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낙원 새마음운동]은 그 시물레이션 쯤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실제로 몇몇 환경단체나 시민단체에서는 이런 자원공유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모델을 개발해나가고 있다.


[내 안의 호수]

주인공은 일찍 엄마를 잃는다. 다행이 엄마에 대한 마음의 빈 자리를 채워준 사람이 있었으니 엄마와 잘 알고 지내던 권사 아줌마였다. [기다림]에서 신부님이 나왔다면 여기서는 권사 아줌마가 주인공을 도와준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새엄마를 구한다. 주인공은 새엄마에게는 정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계속 권사 아줌마를 엄마처럼 따르고 있었는데, 새엄마가 권사 아줌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 이후부터 아줌마는 주인공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사회적기업에 다니던 주인공은 새로 직원으로 사람이 그때 권사 아줌마인 것을 알게 되고 둘은 오랜만에 재회한다. 성인이 되었지만 어려서 엄마 없이 자라 생긴 마음의 공허함이 그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주인공은 아줌마와 함께 있을 때면 그것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둘의 나이는 30세 이상 차이나지만 점차 엄마뻘 되는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고 급기야 고백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러나 결국엔 아줌마의 둘째 딸과 사귀어 장모, 사위 관계로 인연을 이어가기로 한다. [내 안의 호수]를 읽으며 서른 살 위의 여성에게서 이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사위와 장모의 관계 정도로 소설에서는 마무리 되지만 작가는 그 이후 이야기를 독자의 상상력에 여지를 열어두었다.


[떼소로 미오]

[떼소로 미오]는 로마를 배경으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두 여성의 이야기다. [떼소로 미오]에서는 가부장적인 주인공의 남자친구와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나온다. 거기서 나오는 한국 남자의 모습은 다소 부정적이지만, 이탈리아 남자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와 자연스레 비교가 된다. [떼소로 미오]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어머니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자기 없는 삶을 살아오다 자식들이 모두 성장해서 자리를 잡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혼 이혼을 선언한다. 늘 희생하고 억눌려 살아온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주인공이 엄마가 한국인인 이탈리아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저돌적이고 뜨겁게 들이대는 이탈리아식 사랑법에 많은 여성독자들이 설레일 것 같다. 떼소로 미오는 '내 사랑'이라는 뜻이다.



[아득한 꿈]

[아득한 꿈]은 한 교수의 이야기로 그는 원래 비정규직 시간강사였으나 힘있는 교수의 사위가 되어 승승장구하여 결국 교수가 된다. 아내와는 깊은 사랑의 감정은 없지만 그럭저럭 살아간다. 유산후 아내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단순히 유산에 따른 스트레스인 것으로 알았지만 후에 남편이 싫어하는 행동을 해서 이혼을 하기 위한 아내의 작전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 아내는 자신이 원래 사랑했던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이혼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아내는 노골적으로 교수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며 직접적으로 이혼을 요구한다. 아내에게 뒷통수를 맞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의 수업을 듣고 있는 미모의 여대생 연두는 그의 아들에게 개인과외를 해주고 있었다. 아내의 통보로 멘붕이 된 주인공에게 연두는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고 외로운 주인공은 안되지 하면서도 그녀의 도발적인 대시에 넘어 가게된다. 아내는 떠났지만 더 젊고 아름다운 연두가 있어 희망이 있던 그는 우연히 연두가 친구들 앞에서 자신과 잔 것을 떠벌리며 자신을 이용한 것을 알고는 충격을 먹게 된다. 분에 넘치는 이성이 너무 쉽게 다가올 때 '웬 떡이냐'며 좋아하지 말자. 꽃뱀이다.


[진혼의 노래]

[진혼의 노래]는 13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데 지체높은 부잣집 딸에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여성이 그 많은 고관대작의 자식들이 구애해와도 거들떠 보질 않다가 한 거렁뱅이 수도승에게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 나섰다가 이단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다. 교황청의 폐단이 극에 달하고 카톨릭이 썩을대로 썩어버려 이에 많은 개혁적인 성직자들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하게 된다. [전혼의 노래]에서는 돈에 눈이 먼 기득권 종교가 면죄세라는 것을 만들어 돈을 주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며 신을 팔아넘기는 장사치로 전락하는 장면도 나온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종교는 등장하지만 주류가 아니라면 [진혼의 노래]는 종교를 중심 주제로 삼은 소설이다. 거렁뱅이 수도승의 이름은 돌치노(Dolcino)인데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이단으로 나온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기득권인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혁명가인 돌치노는 나쁜 놈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돌치노에 대한 부정적 기록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단으로 기록되는 돌치노에 대해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긍정적인 모습을 그려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일본의 역사에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로 기록되었다고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처럼 돌치노에 대한 정사의 설명만으로는 그를 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 점을 염두하여 [진혼의 노래]를 쓴 것 같다.


소설집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책은 한권이지만 이 속의 이야기는 다른 7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글이 길어진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은 작가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뚜렷한 목적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가족을 위해서 늘 희생하고, 헌신하고, 자기자신은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을 환히 비춰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전해진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을 읽으며 재미도 느끼고, 한편으로는 차별 받았던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난 나와 함께 갈 거야 꼬마도서관 6
라켈 디아스 레게라 지음, 정지완 옮김 / 썬더키즈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얼마전 읽은 책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의 차이를 정의하는 데 기억에 오래 남는다.


'자신감'은 내가 뭔가를 잘 할 수 있을 거란 마음이고

'자존감'은 내가 뭔가를 잘 못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들일 수 있는 마음이다.


사회는 끝없이 경쟁을 강요하고 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우리는 늘 경쟁하고 또 경쟁해야한다. 최근 읽은 책에서는 과거에는 중학생 때부터 시험으로 경쟁이 이뤄졌지만 사교육이 확산되고 선행학습이 너도나도 일반화 되어가면서 중학생에서 초등학생으로, 초등학생에서 유치원으로, 심지어는 유아들까지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그 경쟁의 무대에 내몰려있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낙오자를 만든다. 낙오되지 않고 도태되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감 속에서 늘 나를 채찍질 해야한다. 나의 행복, 나의 가치, 나만의 목표, 삶의 여유 같은 것을 돌아보기 힘들다. 늘 외부의 잣대에 나를 맞추고 적응해서 이겨야한다. 그러는 사이 나의 기준보다는 사회가, 타인이 원하는 기준을 자연스레 나의 가치로 삼게 된다. 그 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탓하고 스스로를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며 종국에는 '자기혐오'까지 전이되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와 같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이어지고 최악에는 자살로까지 연결되는 슬픈 일들이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과거에 비해 교육은 일반화 되었다. 평등교육이 실현되어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며 곧 고등학교까지 확대될 것이다. 과거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똑똑하다. 그리고 과학기술을 진보로 과거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더 많은 것을 할 수있다. 스케치북이 없어 그리고 싶어도 그릴 수 없고, 공책이 없어 쓰고 싶어도 쓸수 없는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이제 없다. 더 비싼 것을 먹고 더 좋은 것을 먹고의 차원이지 못먹어 굶고 부족해서 배고픈 것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충분히 똑똑하고 충분히 가졌으며 충분히 능력있다. 하루하루 지나면서 비교해야 할 것은 '엄마 친구 아들'이 아니라 '어제의 나'정도면 충분하다. 비교하고 경쟁하는 생활이 너무 일반화 되니 습관처럼 굳어져버려 스스로에 대한 바로 그 자. 존. 감. 이 너무 결여되어 있다.


정보화사회를 넘어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시대라는 요즘, 돈, 명예, 지식, 인기와 같은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대상 중 제일 강조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행복'의 든든한 지지대는 바로 '자존감'이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 들일 수 있는 그 마음 말이다.


동화책의 서평을 쓴다는 사람이 무슨 이런 딴소리를 하냐는 책망이 들리는 듯하다. <난 나와 함께 갈 거야>는 아이에게 자존감을 키워주기 위해 나온 책이다. 주인공이 누군가를 좋아한다. 그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들을 하나 둘 씩 포기한다. 그러는 사이 늘 자기와 함께 있던 친구(새)들도 주인공을 떠난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한 친구의 충고는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 다음 친구의 충고는 안경을 벗는 것, 또 그 다음 친구의 충고는 너무 크게 웃는 게 보기 안좋으니 작은 미소정도로 웃으라는 것... 이렇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남의 말들을 듣고 내 모습을 거기에 끼워 맞추다가 마지막엔 처음의 그 좋아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자신도, 자신과 늘 함께 해주던 새들도 없다.


다행히 주인공은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원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나다운 것'이 가장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된다. 나는 '나'와 잘 어울린다. 나는 '나'일 때 가장 좋은 것이다. <난 나와 함께 갈 거야>는 아이들에게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자존감은 '행복'과 '사랑'의 필수준비물인 것이다.



<난 나와 함께 갈 거야> "내 일부분만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날 보세요. 내 모습 그대로 온전하게."라는 글귀로 시작한다. <난 나와 함께 갈 거야>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 있나요? 그 사람이 당신의 마음을 모른다면 그에게 잘 보이려 애를 쓰겠죠. 그렇다고 그에게 맞춰 모든 걸 바꿀 건가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요?"라는 글귀로 끝을 맺는다. <난 나와 함께 갈 거야> 전체에 걸쳐 관통하는 가치, 교육은 바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설사 부족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것' 바로, 자존감이다.


나는 우리 아이가 다른 그 어떤 능력보다도 자존감이 충만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희망한다. 어떤 절망에 빠지더라도 자존감이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책에서 "난 마틴이 좋아"라는 말이 9번 연속해서 나오는 페이지가 있다. 책의 내용과는 조금 엇나가지만 '마틴'이라는 이름에 우리 아이 이름을 넣어 읽어줬다. 아이들은 반복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안녕"이라는 일상적인 말도 계속하면 재밌어한다. 그 반복되는 말이 자신이 좋다는 말이라면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지 더 말할 것도 없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아이는 그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자기 이름을 넣어 읽어달라 한다. 한글책도, 영어책도, 숫자책도 좋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의 자존감을 길러주는 <난 나와 함께 갈 거야>와 같은 책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나도. 살다보면 참 잘도 깜빡깜빡한다. 늘 잊지 말자. 지금 우리 모습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 봄 국민서관 그림동화 233
케나드 박 지음, 서남희 옮김 / 국민서관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봄이 왔다. 집 근처에 붉은 동백꽃이 커다랗게 피었고 출근길 길가에 분홍빛 매화와 노오란 산수유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벚꽃은 꽃봉오리가 맺혀 출발선 앞에 대기중인 달리기 선수처럼 만개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로 어린이 집은 휴원하고 아이는 밖에도 잘 나오질 못하고 답답하게 집에만 있다. 아이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싶어도 함께 데리고 나가질 못하던 차에 <안녕, 봄>이라는 책이 보였다.


<안녕, 봄>은 제목 그대로 봄에 관한 동화책이다. 작가는 드림웍스와 월트디즈니에서 영상개발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런 영향에서인지 <안녕, 봄>는 그림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5살인 우리아이처럼 아직 글에 익숙치 않은 아이들에게는 글보다 그림이 중요하다. <안녕, 봄>의 그림은 정말 예뻐서 단번에 아이를 빠져들게 한다.


<안녕, 봄>의 시작은 겨울밤에서 시작한다. 밤이 긴 겨울은 춥고 어둡다. 주인공은 소년과 강아지인데 겨울밤에게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눈에게도 인사하고 얼어붙은 연못, 그 속의 물고기, 온실하우스, 시내, 나무, 둥지, 겨울 폭풍에게 인사하고, 인사를 받은 친구들은 자신들을 소개하며 인사를 받아준다.



<안녕, 봄>은 공간적으로 보면 소년이 집 밖에서 인사를 하며 점점 이동하고 종국에는 집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불이 꺼진 깜깜한 집, 밖은 아무도 없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도 없는 밖, 불 꺼진 집, 소년이 깰라 눈도 조용히 내리고, 겨울 폭풍도 잠잠 해졌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고요한 적막을 숨죽이고 쳐다보게 된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저 멀리서 발그레한 아침노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햇살이 비추고 눈들은 녹고 겨울잠 자던 다람쥐도 깨어나 초록 들판을 달린다. 새들과 여우도 봄 햇살을 맞으며 노닌다. 꽃도 피고 녹색 풀잎도 인사한다. 그리고 완전한 봄날의 아침을 맞이하며 소년은 겨울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안녕, 봄>에서 그림 전개가 순행적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계절의 변화를 색감으로 잘 표현하고 있어 마치 짧은 영상을 보는 느낌이 든다. 우리 아이는 불이 꺼진 어둠을 무서워해 잠을 재울 때도 늘 작은 불을 켜줘야 한다. 초반에 캄캄한 겨울밤이 나오는데 자기가 그 속에 있는 것을 상상했는지 무서워했다. 그래서 무서울 게 하나도 없다고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그림을 너무 사실적으로 잘 그려도 이런 문제가 생길수 있구나.


책을 다 읽어주고 아이가 책 뒷면을 본다. 뒷 면에는 <안녕, 가을>, <안녕, 겨울>이 소개되어 있다. 아이는 책이 마음에 들었는지 '가을', '겨울'도 보고싶다고 한다. 이제 막 새 책이 와서 한번 읽어줬을 뿐인데 다음 책을 사달라는 말에 우리 부부는 살짝 당황하여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다. 그리고는 "지금은 봄이니까 <안녕, 봄>을 봤으니, 가을되면 <안녕, 가을>을 보여주고, 겨울되면 <안녕, 겨울>을 보여 줄게"라고 다음을 약속했다.


아이에게 물었다.

"<안녕, 봄> 재밌었어? 좋았어?"

"응, 좋았어."

"뭐가 좋았어?"

"계속 '안녕'해서 좋았어."



<안녕, 봄>에서는 계속 '안녕'이라는 말이 나온다. 생명이 있든 생명이 없든 등장하는 모든 존재에게 소년이 '안녕'인사를 한다. 그래서 '안녕'이라고 계속 읽게 되는데, 아이는 그게 좋았나보다.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보며 또 하나 배운다. 아이들은 반복을 좋아한다. 단순한 반복에 아이들은 재밌어 한다. 두 번째 읽어줄 때, '안녕'이 나올 때마다 아이 이름을 붙여 '안녕'을 읽어주었다. 아이가 참 좋아한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또 하나 배운다. 화창한 봄 날은 왔지만 코로나로 마냥 설레일 수 만은 없는 이 시기, <안녕, 봄>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소년이 겨울에게 해준 말을 코로나에게 해 줄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잘가, 코로나. 반가워, 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험인간 - 불신과 불공정, 불평등이 낳은 슬픈 자화상
김기헌.장근영 지음 / 생각정원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험인간>은 시험으로 만연한 우리 사회와 그 속에서 너무 익숙해져버린 우리 모두에게 따끔한 경종을 울린다. 시험공화국이 되어버린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시험인간>은 수험생과 취준생을 통해 보여준다.


고3 수험생이라는 말이 하나의 신분이 되어버리고 수능날에는 온 나라가 시험에 맞추어 돌아간다. 학원들이 넘쳐나고 과외 광고들이 즐비하다. 아이 뒷바라지에 조금이라도 더 보태겠다고 집에 있던 엄마들은 요구르트 아줌마가 되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교육환경을 위한다는 믿음 하에 아빠들은 기러기가 되었다.


수능시험 후에는 결과를 비관해 자살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처음 듣는 소식은 아니고 잠은 죽어서 실컷자라며 4당 5락, 즉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폭력적인 일과가 아이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불편한 현실을 <시험인간>은 적나라게 드러낸다. 얼마전 'SKY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고액 과외나 고액 컨설팅은 그런 상류사회의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보여주며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교수 부모들이 서로의 자녀들을 공동저자로 넣어주는 이른바 '스펙 품앗이'는 열심히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옛말이고 부모 잘 만나는 것 조차도 하나의 스펙이되는 씁쓸한 사회상을 보여준다.


저렇게 잠도 못자고 돈도 많이 들고 그렇게 고생해서 수능의 관문을 잘 넘었다 치자, 그게 끝이 아니다. 통계에서는 한해 취업자의 60프로에 해당하는 인원들이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다고 한다. 뉴스에서 수 십만의 응시자가 몰리고 수 백대 일의 경쟁률이 어쩌고 하는 기사들도 이젠 낯익다. 서울 노량진에서 탄생한 '컵밥'에는 미래를 꿈꾸며 청춘을 저당잡힌 수많은 공시생들의 슬픈 이야기가 베어있다.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는 공시생들은 독서실 총무같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경제적 부담을 줄이려 온라인 강의 아이디를 공유하고 스마트폰을 처분하고 다시 폴더폰으로 바꾸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유치원때부터 경쟁하고 학원을 들어가기 위해서 시험을 치고 학교에서 모의고사에 수능시험에, 또 대학가면 각종 자격증 시험, 토익시험, 중간, 기말 학부시험에 졸업하고는 입사시험... 거기서 끝이면 또 좋으련만 피라미드식 구조라는 일자리 시장은 위로 가면 갈수록 좁아드니 경쟁이 치열해 계속 스펙을 쌓고 승진시험을 넘어야 한다. 머리가 히끗히끗해지고 퇴직할 때 즈음에는 공인중개사 시험, 경비원 시험, 아파트 관리사 시험... 노후마져도 시험이란 녀석은 무섭게 따라다닌다. 이런 우리 사회에 <시험인간>은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가? 이대로 괜찮은가? 대안은 없는가?' 처절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에 관해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시험인간>의 저자는 사회학 박사와 심리학 박사다. 두 사람은 현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청소년 관련 정책에서 교육은 핵심주제이고 교육 정책은 현실적으로 입시를 벗어나 이야기할 수 없다. 그래서 아마도 그 둘은 시험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나 보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시험이 결국은 학생 때의 시험만으로 끝나지 않고 고구마 줄기 딸려오듯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험에서 시작해서 시험으로 끝나는 시험중심의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까지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사회학자와 심리학자가 사회학 이론과 심리학 이론, 그리고 여러 신뢰할 만한 통계와 여러 과제를 맡으며 만났던 인터뷰 데이터를 근거로 사회문제를 풀어나가고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전문영역이라 어렵고 딱딱할 수 있으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과학적인 자료들이 머리가 아닌 가슴을 때리는 것은 저자의 필력이 반이고 저자가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심하고 고민했던 진정성이 반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시험이 팽배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실태를 정리해주고 지필시험으로 대부분이 평가되면서 발생하는 사회 전반의 문제점을 거론한다.


저자도 강조하듯 시험 그 자체는 인류가 교육을 위해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유용하고 좋은 교육 방법이다. 시험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시험을 통해 단지 학습능력에서 부진한 부분을 찾아내고 건강한 학습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정도라면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시험의 결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에서 모든 폐단이 발생한다.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데서 일한다'는 식의 말이 시험이 순수한 교육적 기능으로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부당함을 정당화 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아까도 언급했듯 저자는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다. 따라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시험이 갈라놓는 불만과 문제점들을 각각의 미시적인 개인의 차원에서는 심리학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그 개인이 모여 구성된 거시적인 사회의 차원에서는 사회학적 개념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 개념들은 생소할지 모르겠으나 그 개념들을 이용해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이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기에 잘 이해된다.


어쨌든 시험이라는 것이 누구도 신뢰할 수 있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유일한' 평가방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회에 어떻게 불신, 불공정, 차별이 발생하는지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한 사람의 가치를 오지선다의 OMR카드로 과연 온전히 평가할수 있는가. 한번의 시험으로 그 사람의 12년 학습과정을 판단하고 수학능력이 제대로 갖추어졌는지 다 판단할 수 있는가.


정시고 아니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면 학생부종합평가라는 학종과 수시확대는 그렇다고 충분한 대안이 되던가. 정시중심의 대입전형이 수시의 비율을 확대해가며 여러 논술시험과 입시컨설팅이라는 사교육의 또 다른 시장의 문을 열어주었고 지식보다 역량을 평가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시험말고 봉사활동, 공모전, 대외수상 같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할 거리만 늘어났다. 이젠 또 다시 학종의 문제점, 수시의 문제점이 드러나니 국민들은 정시 비율을 높이자고 하고 정부는 여론에 따라 정시확대를 발표했다.


시험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는 사회가 가지는 문제 중 하나는 획일화이다. 사실 시험이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것은 저자도 인정한다. 교육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여 국민교육수준을 끌어올렸다. 시험이라는 방식은 답이 정해져있다. 그래서 소수의 교육자로 다수의 학생을 길러내고 평가하는데 너무나도 편리한 도구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절 시험은 훌륭한 도구였다. 그런데 시험에는 항상 답이 정해져있고 그 답을 따르는 사람은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것이 획일화를 낳는다.


그러한 대표적인 예가 메뉴얼 사회라는 말이다. 모든 것을 메뉴얼화 시키는 것으로는 세계에서 일본이 가장 유명하고 그다음으로 일본의 교육시스템 많은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다. 업무에 쓰이는 메뉴얼도 있지만 메뉴얼이라는 것이 결국엔 행동양식의 정규화, 획일화를 뜻한다.


결혼적령기라는 말이 있다. 아이를 낳는다는 관점에서는 생물학적으로 정적 시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오직 아이를 낳고 정부의 인구정책에 기여하기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결혼적령기 같은 보이지 않은 메뉴얼이 정해져 있어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노총각, 노처녀가 되고 명절때 어른들의 잔소리를 듣는 신세가 된다.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해본 사람은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이라 해서 정형화되고 공식화된 결혼식의 메뉴얼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죽어서도 과거와 달리 요즘은 모두 상조회사에 연락해서 거기서 장례지도사가 시키는 메뉴얼 대로 따를 뿐이고 다른 방식은 선택지에 없다. 이러한 획일화는 사람을 스스로 생각할 수 없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저자는 이런 행동양상도 시험중심인 사회에서 기인한 것임을 분석하고 설명한다.


답이 정해져 있는 사회, 그 답을 잘 맞추는 것을 훈련하면 살아남고 그렇지 못하면 낙오되는 사회에서 시험은 굉장한 권력이 되고 통치의 수단이 된다.




책에서 서울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이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다. 어떤 시험 문제에 답을 할때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다르지만 본인이 충분히 생각해낸 좋은 답안을 가지고 있는 경우 자신의 답을 쓸 것인가 교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답을 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거기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설사 자신만의 좋은 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답을 쓰겠다고 답한다. 우리 사회에 시험을 통해 선별되고 성공을 향해 가까이 가있는 사람일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하기보다는 사회가 정한 답을 찾는 기술에 능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생각하지 않을 수록 점수는 높아진다는 아이러니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말을 한다.


이렇게 책은 전방위적으로 고부담 시험이 만들어내는 문제점을 고발하고 이런 것이 산업화과정에서는 유용했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우는 지금의 시대와 앞으로의 미래에서는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그리고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그 대안이 될 만한 '단서'들을 제시하며 '탈시험인간'만이 우리 사회가 도태하지 않고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음을 강조하고 모두 함께 노력하고 고민하자고 호소한다.


교육부가 교육정책을 바꾼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노동부가 노동정책을 바꾼다고 될일 도 아니다. 단순히 정부만이 나서서 될 일이 아니라 온 국민의 의식과 사고가 바뀌어야 가능한 것임을 <시험인간>은 시사한다. 우리는 이 사회에서 오래 살고 너무도 적응해 있다보니 이러한 문제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해결을 하려면 일단 문제를 알아야 한다. <시험인간>은 그 명확한 대안과 분명한 해답까지는 제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을 부각시키고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서 모두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그래서 집단지성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한다. 우리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다. 그래서 더욱이 우리는 '나는 이제 입시도 지났고 취업도 했어'라고 뒷짐질 상황이 아니다. 모두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시험인간>을 통해 익숙해서 잘못된 것인 줄 몰랐던 불편한 사실들을 마주해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가져보면 좋겠다. 문제의식이 없다면 해결 가능성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