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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은애숙 지음 / 상상마당 / 2020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은 소설가 은애숙 작가의 소설집으로 중편 2편([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기다림]), 단편 5편([낙원 새마음운동], [내 안의 호수], [떼소로 미오], [아득한 꿈], [진혼의 노래])이 실려있다. 소설집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소설 제목 때문이었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말이 풍기는 그 구슬픈 정서가 마음에 전해져 나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에 나오는 소설들을 공통적으로 관통하는 메세지는 저자가 서두에 밝혔듯 늘 남성들의 주변적인 존재에 불과한 여성들, 그들이 중심이 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즉 페미니즘의 성격을 띄고 있다. 그리고 작가는 꿈을 소재로 많이 사용했고(3편) 종교와 관련된 인물(3편)과, 이탈리아의 배경(2편)도 하나 이상의 소설에서 쓰인다. 작가 인용하는 이야기로는 한나 아렌트와 추호의 이야기도 두 편의 소설에서 등장한다. 아무래도 7편의 소설을 읽었지만 그 소설을 쓴 작가는 한 사람이다보니 작가가 평소에 즐겨쓰는 이야기, 주인공, 배경이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그 소설들을 연속해서 읽어보는 독자의 눈에는 그런 부분들이 포착된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은 환타지 소설이다. 작가인 홍루나가 평소에 작가계의 대선배로서 존경하던 조선시대 문신 서포 김만중을 만나는 이야기다. 김만중은 한글소설 [구운몽]의 저자로 우리에게 더 유명할 것이다.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1부에서는 홍루나를 중심으로 홍루나가 꿈 속에서 김만중을 마나는 형식이라면 2부에서는 김만중을 중심으로 홍루나가 타이머신으로 과거로 김만중을 찾아오는 형식을 취한다. 꿈 속 이야기라면 그런데로 있을 법도 하지만 타이머신을 타고 미래의 작가가 과거의 작가를 찾아가 작품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설정은 특이하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김만중과 인증샷을 찍고 귀향살이로 만성소화 불량에 시달리는 김만중에게 소화제를 선물하는 설정은 엉뚱하면서도 재밌다. 김만중은 숙종 때 사람으로 귀양살이를 많이 했다. 우리는 숙종보다 어쩌면 장희빈을 더 잘 알것이다. 장희빈의 남자가 숙종이다. 장희빈은 남인계열을 정치적 바탕으로 두고 있었고 김만중은 서인계열이었다. 장희빈과 그 일파가 권력을 위해 숙종의 눈과 귀를 홀렸을 때 김만중은 충심으로 직언을 한다. 하지만 그런 충신의 고언이 들리지 않는 숙종은 김만중을 귀향보내버린다. 아무튼 김만중은 다시 환국으로 돌아 오지만 또 다시 1년도 안되어 정치적 모략으로 귀향을 가게 된다. 김만중의 [구운몽]도 귀향살이할 때 불효하는 아들로써 노모를 기쁘게 해드릴 방도를 찾가다 탄생한 것이다. 아무튼 역사를 다 알고 있는 홍루나는 김만중에게 자객이 올 수 있을 것이라는 귀뜸도 해준다. 김만중과 나누는 대화에서 원자폭탄, 커피, 한류 같은 단어들도 나와 소설이 산으로 간다는 느낌을 살짝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만나고 싶은 과거의 인물을 타임머신을 타고가서 만난다는 설정 자체가 재밌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의 페미니즘 적인 요소가 있다 했는데 여기서는 특히 미래에서 온 홍나루가 김만중에게 조선시대 양반이 일부다처제로써 여러 여인들을 첩으로 두고 산 것에 대해 질책하는 부분으로 나온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라는 제목은 김탁환 작가가 김만중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기원으로 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기다림]
[기다림]에서는 판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아내에게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을 쉽게 행하는 인물이다. 그의 아내는 인내심이 강하고 가족을 위해 모진 희생을 다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시대의 아내다. 사람은 잘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더 잘해줘야 할텐데 어찌된 것인지 잘해주는 사람에게 더 모질게하는 성향이 있다. 판수의 성질과 폭력에 못이겨 결국 아내는 집을 나간다. 가부장적이고 남을 잘 의심해서 주변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판수는 아내가 없어지자 당장 밥도 제대로 차려먹지 못한다. 주변 이웃도 마음을 트고 지는 이들이 없어 외롭기까지하다. 그러다 술에 취해 객사할 뻔한 일이 생기는데 지나가던 천주교 신부에 의해 목숨을 구하고 그 인연으로 종교에 귀의한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내가 돌아온다면 정말 잘해주리라 다짐하지만 자식들도 아내가 어딨는지 모르고 아내의 행방은 묘연하다. 어느날 쓰러지는데 암판정을 받는다. 다행히 종교의 힘으로 마음은 평화롭지만 그토록 기다리던 아내는 마지막까지 돌아오지 않고 소설은 끝난다. 아내한테 있을 때 잘하라는 이야기다. [기다림]은 판수가 칠십 평생 아내에게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늦었지만 이제는 다시 돌아오면 정말 잘하겠노라 다짐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제목에 담았을 것이다. [기다림]에서 중간에 옥수라는 여성이 등장하는데, 그 사연이 참 슬프다. 부잣집 손주가 잠시 데리고 놀다 임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치제높은 부잣집 손주의 창창한 앞길이 머슴딸로 발목 잡힐 수 없다는 판단으로 버림 받게되고 결국 옥수는 자살한다. 판수는 그것을 목격하는데 최부자의 돈으로 사건은 덮혀버린다. 남성의 권위와 돈의 힘 앞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늘 희생하고 참아야만 했던 여성의 삶을 작가는 조명하고 있다.
[낙원의 새마음운동]
[낙원의 새마음운동]도 판타지 소설이다. 루저같이 살고 있는 주인공 이도궁에게 어느날 꿈에 신이 나타나서 일주일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린다면 정치를 할 수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약속을 한 이도궁은 정말로 하나씩 물건을 버리게 되고 무소유을 실천하게 된다. 그런 행위를 통해 얼마나 불필요 한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으며 절제를 배우게 된다. 절제로 탐욕이 힘을 잃게 되자 묘한 해방감을 느끼게 된다. 낙원은 군 이름이다. 이도궁은 낙원군의 군수 후보로 출마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마법같이 후원금이며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리고는 결국 군수가 된다. 그가 필요없는 물건들을 정리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 미담으로 알려지고 사람들도 그에 감동받고 동조하여 필요없는 물건들을 나누는 운동에 동참하다. 이렇게 나온 물건들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팔아 수익을 얻고 다시 그 돈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기금으로 쓰이게 된다. 이런 긍정적 시너지가 선순환을 이루며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해지고 어려운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낙원군은 이름대로 낙원되어간다. 하지만 이도궁도 명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교만의 싹이 트고 권력욕이 솟구친다. 그러다 사고로 한 소녀가 죽게 되고 이도궁은 생명보다는 권력을 선택하게 된다. 결국 신이 나타나 이도궁의 모든 것을 빼앗아갈 운명에 처한다. [낙원의 새마음운동]에서도 작가의 아이디어가 참 돋보인다. 신이 필요없는 물건들을 버리라고 하자 주인공은 처음에는 어색해 한다. 하지만 정치인이 되기위해 비자발적이지만 불필요한 물건 나누기를 실천하면서 점점 비움에서 오는 긍정적인 영향들을 체험하게 되자 점점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게 된다. 작가는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많은 자원을 아낄 수 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하는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낙원 새마음운동]은 그 시물레이션 쯤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실제로 몇몇 환경단체나 시민단체에서는 이런 자원공유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모델을 개발해나가고 있다.
[내 안의 호수]
주인공은 일찍 엄마를 잃는다. 다행이 엄마에 대한 마음의 빈 자리를 채워준 사람이 있었으니 엄마와 잘 알고 지내던 권사 아줌마였다. [기다림]에서 신부님이 나왔다면 여기서는 권사 아줌마가 주인공을 도와준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새엄마를 구한다. 주인공은 새엄마에게는 정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계속 권사 아줌마를 엄마처럼 따르고 있었는데, 새엄마가 권사 아줌마에게 어떤 이야기를 한 이후부터 아줌마는 주인공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고 사회적기업에 다니던 주인공은 새로 직원으로 사람이 그때 권사 아줌마인 것을 알게 되고 둘은 오랜만에 재회한다. 성인이 되었지만 어려서 엄마 없이 자라 생긴 마음의 공허함이 그 무엇으로 채워지지 않았던 주인공은 아줌마와 함께 있을 때면 그것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둘의 나이는 30세 이상 차이나지만 점차 엄마뻘 되는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고 급기야 고백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른다. 그러나 결국엔 아줌마의 둘째 딸과 사귀어 장모, 사위 관계로 인연을 이어가기로 한다. [내 안의 호수]를 읽으며 서른 살 위의 여성에게서 이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사위와 장모의 관계 정도로 소설에서는 마무리 되지만 작가는 그 이후 이야기를 독자의 상상력에 여지를 열어두었다.
[떼소로 미오]
[떼소로 미오]는 로마를 배경으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난 두 여성의 이야기다. [떼소로 미오]에서는 가부장적인 주인공의 남자친구와 독선적이고 권위적인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나온다. 거기서 나오는 한국 남자의 모습은 다소 부정적이지만, 이탈리아 남자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는 모습으로 나와 자연스레 비교가 된다. [떼소로 미오]에서 나오는 주인공의 어머니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하며 자기 없는 삶을 살아오다 자식들이 모두 성장해서 자리를 잡자 기다렸다는 듯이 황혼 이혼을 선언한다. 늘 희생하고 억눌려 살아온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주인공이 엄마가 한국인인 이탈리아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저돌적이고 뜨겁게 들이대는 이탈리아식 사랑법에 많은 여성독자들이 설레일 것 같다. 떼소로 미오는 '내 사랑'이라는 뜻이다.
[아득한 꿈]
[아득한 꿈]은 한 교수의 이야기로 그는 원래 비정규직 시간강사였으나 힘있는 교수의 사위가 되어 승승장구하여 결국 교수가 된다. 아내와는 깊은 사랑의 감정은 없지만 그럭저럭 살아간다. 유산후 아내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단순히 유산에 따른 스트레스인 것으로 알았지만 후에 남편이 싫어하는 행동을 해서 이혼을 하기 위한 아내의 작전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 아내는 자신이 원래 사랑했던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이혼하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아내는 노골적으로 교수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며 직접적으로 이혼을 요구한다. 아내에게 뒷통수를 맞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그의 수업을 듣고 있는 미모의 여대생 연두는 그의 아들에게 개인과외를 해주고 있었다. 아내의 통보로 멘붕이 된 주인공에게 연두는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고 외로운 주인공은 안되지 하면서도 그녀의 도발적인 대시에 넘어 가게된다. 아내는 떠났지만 더 젊고 아름다운 연두가 있어 희망이 있던 그는 우연히 연두가 친구들 앞에서 자신과 잔 것을 떠벌리며 자신을 이용한 것을 알고는 충격을 먹게 된다. 분에 넘치는 이성이 너무 쉽게 다가올 때 '웬 떡이냐'며 좋아하지 말자. 꽃뱀이다.
[진혼의 노래]
[진혼의 노래]는 13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는데 지체높은 부잣집 딸에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여성이 그 많은 고관대작의 자식들이 구애해와도 거들떠 보질 않다가 한 거렁뱅이 수도승에게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라 나섰다가 이단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다. 교황청의 폐단이 극에 달하고 카톨릭이 썩을대로 썩어버려 이에 많은 개혁적인 성직자들이 일어나는 시기였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하게 된다. [전혼의 노래]에서는 돈에 눈이 먼 기득권 종교가 면죄세라는 것을 만들어 돈을 주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며 신을 팔아넘기는 장사치로 전락하는 장면도 나온다. 작가의 다른 소설에서도 종교는 등장하지만 주류가 아니라면 [진혼의 노래]는 종교를 중심 주제로 삼은 소설이다. 거렁뱅이 수도승의 이름은 돌치노(Dolcino)인데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이단으로 나온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기득권인 카톨릭의 입장에서 보면 혁명가인 돌치노는 나쁜 놈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돌치노에 대한 부정적 기록에 대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이단으로 기록되는 돌치노에 대해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긍정적인 모습을 그려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일본의 역사에 안중근 의사가 테러리스트로 기록되었다고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것 처럼 돌치노에 대한 정사의 설명만으로는 그를 평가 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이 점을 염두하여 [진혼의 노래]를 쓴 것 같다.
소설집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 책은 한권이지만 이 속의 이야기는 다른 7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글이 길어진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은 작가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뚜렷한 목적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가족을 위해서 늘 희생하고, 헌신하고, 자기자신은 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삶을 환히 비춰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가 전해진다. <애닯구나, 잊혀진다는 것은>을 읽으며 재미도 느끼고, 한편으로는 차별 받았던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