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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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토카르추크의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는 단편집이지만, 각각의 이야기가 흩어져 있다는 느낌보다는 하나의 큰 질문을 여러 방식으로 변주하는 책에 가깝다.
수록된 단편들은 소재와 분위기가 매우 다양하다. 작가와 분신의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 고립된 섬에서 인간의 몸과 역할이 뒤바뀌는 이야기, 병든 사람들의 망상 속에서 병든 시대가 드러나는 이야기, 사라져가는 작은 세계를 지키는 이야기, 여성의 몸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소비되는 이야기 등 각각의 작품은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모두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방식에 균열을 낸다는 점에서 긴밀하게 연결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감각은 ‘낯섦’이다. 토카르추크는 인간이 당연하게 믿고 있는 것들, 이를테면 자아, 역할, 몸, 일상의 주도권 같은 것들을 정면으로 무너뜨리기보다 조금씩 비틀어 보여준다. 그 결과 독자는 익숙한 세계를 낯선 각도에서 다시 바라보게 된다.
토카르추크의 장점은 거대한 사건보다 작고 낯선 순간을 통해 세계를 흔드는 데 있다. 이 책의 단편들은 명확한 결론보다 질문을 남긴다. 나는 정말 내 삶의 주체인가, 내가 맡고 있는 역할은 어디까지 나의 것인가, 내가 믿는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단단한가. 이런 질문들이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래 이어진다.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는 토카르추크의 넓은 상상력과 치밀한 서사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단편집이다. 한 편 한 편의 완성도도 높지만, 전체를 읽고 나면 여러 개의 이야기가 하나의 진동처럼 이어진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올해 만난 단편집 중 가장 오래 남을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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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의 인생 수업 - 세기의 지성이 건네는 24가지 지혜
성기철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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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은 사랑, 지식, 교육, 불행, 행복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사상가다. 이 책 역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기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삶의 문제들을 차분하게 다시 짚어본다. 그래서 무엇을 새롭게 배웠다기보다, 익숙한 단어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랑에 대한 시선이었다. 러셀은 사랑을 일방적인 헌신이나 소유의 감정으로 보지 않고, 서로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상대의 자아를 동등하게 존중하는 관계로 설명한다. 사랑은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둘 사이에 이해의 공간을 남겨두는 일이라는 관점도 오래 남는다. 성 윤리에 대한 태도 역시 예상보다 개방적이고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지식에 관한 부분에서는 과학과 검증의 중요성을 중시하는 러셀의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감정이나 신념만으로 세계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점에서 매우 이성적인 사상가로 보이지만, 동시에 지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인간에 대한 감각이 함께해야 한다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이 점에서 러셀은 단순히 논리적인 철학자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을 함께 생각하는 사상가로 읽힌다.
교육에 관한 장에서는 호기심, 정직, 좋은 습관 같은 덕목보다도 부모의 권력욕이라는 문제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자녀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부모의 욕심이 앞설 수 있고, 과도한 개입이 오히려 아이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은 지금 읽어도 충분히 유효하다. 교육이란 더 많이 해주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해볼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는 일이라는 생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불행에 대한 논의도 깊게 남는다. 러셀은 삶의 시선을 자기 안에만 가두지 말고, 타인과 세계로 넓혀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에게 과도하게 몰두할수록 삶이 더 무거워질 수 있다는 그의 관점은 단순한 위로나 낙관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제안처럼 느껴졌다.
행복에 대한 장에서는 게으름과 여유의 가치가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에, 러셀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와 멈출 수 있는 여유 역시 중요하다고 말한다. 행복을 성취나 성공으로만 설명하지 않고, 인간을 덜 소모시키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철학을 어렵게 설명하기보다, 삶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교양서에 가깝다. 러셀의 사유를 통해 사랑, 지식, 교육, 불행, 행복이라는 오래된 주제를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연결해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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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밤 을유세계문학전집 148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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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게네프의 『전날 밤』은 사랑과 대의의 갈등을 다루는 소설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읽고 나면 말과 행동의 차이에 더 가까운 작품으로 남는다. 작품은 누가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말을 하는가보다, 누가 실제로 자신의 삶을 걸고 선택하는가를 묻는다.
소설 속 모스크바의 젊은이들은 예술, 사상, 자유를 이야기한다. 그들의 언어는 세련되고 지적이지만, 대체로 관념의 차원에 머문다. 그런 점에서 인사로프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그는 불가리아의 독립을 위해 삶 전체를 내맡기기로 한 인물이며, 이 소설에서 가장 분명하게 행동의 영역에 서 있는 사람이다. 인사로프의 존재는 작품 전체의 긴장을 형성하는 핵심 축이 된다.
그러나 『전날 밤』을 인사로프만의 이야기로 읽기에는 엘레나의 비중이 작지 않다. 엘레나는 수동적으로 누군가를 따라가는 인물이 아니다. 자신이 속한 환경과 익숙한 삶을 벗어나 스스로 선택하고 감당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인물의 대의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도, 동시에 그 선택에 응답하는 또 다른 의지를 함께 보여준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랑은 호감이나 열정에 머물지 않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결단에 가깝게 제시된다. 그런 점에서 사랑과 대의는 단순히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의 무게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맞물린다.
결말 역시 낭만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투르게네프는 행동하는 삶을 영웅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뜻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도달하는 것은 아니며, 결심이 곧 완성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행동하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쉽게 중단될 수 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 점이야말로 이 소설을 단순한 이상주의 서사에 머물지 않게 한다.
『전날 밤』은 단정한 문장과 절제된 구성 안에서 사랑, 조국, 행동, 결단 같은 주제를 다룬다. 읽고 나면 결국 오래 남는 것은 말의 설득력이 아니라 실제로 내디딘 발걸음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고전이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현재적인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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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밤 #을유문화사 #을유세계문학전집 #을유문화사_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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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힘 : 인간력
다사카 히로시 지음, 장은주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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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얻는 힘 인간력』은 인간관계에 대한 책이지만, 단순한 처세서로 읽히지는 않는다. 책의 중심에는 상대를 설득하거나 관계를 유리하게 이끄는 방법보다,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내면과 태도가 놓여 있다.
저자는 인간력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총체적인 역량으로 설명한다. 이 정의만 보아도 이 책이 좁은 의미의 사교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하다. 인간력은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능력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신뢰를 형성하고 유지하게 하는 힘에 가깝다.
이 책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외부 원인만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 안의 ‘작은 자아’를 언급하면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어려울 때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상대의 결점을 먼저 찾게 된다고 말한다. 이 대목은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자기 성찰의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또 하나 오래 남는 표현은 ‘마음의 거울’이다. 인간력을 기르는 일이란 결국 흐려진 마음의 거울을 닦아가는 과정이라는 설명은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관계의 문제는 상대를 잘 몰라서 생기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과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생기기도 한다는 점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관계를 넓히는 기술보다 관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다룬다. 즉각적인 실용성을 기대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인간관계를 통해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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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전면 개정판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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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교수는 건축을 미적 결과물로만 보지 않는다. 공간에 담긴 질서와 권력, 문화를 읽는다. 이 책은 그 읽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교회는 한 방향으로 시선을 모은다. 긴 복도 끝에 설교자가 있고, 첨탑은 수직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신자는 앉아서 올려다본다. 절은 다르다.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직선이 아니라 굽은 길을 걷는다. 자연 안에 스며들고, 머물고, 비워진다. 같은 종교 공간인데도 사람을 맞이하는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건물 하나에 동양과 서양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도시의 길도 마찬가지다. 파리는 개선문에서 방사형으로 뻗는다. 모든 길이 중심을 향한다. 왕이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통제하려 했던 구조다. 뉴욕 맨해튼은 격자형이다. 어디가 중심이랄 것 없이 균등하다. 누구든 어디서든 출발할 수 있다. 도로 하나의 형태가 이미 그 사회의 성격을 말해준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을 하나씩 펼쳐 보인다. 길의 모양, 건물의 배치, 광장의 역할, 창문의 크기, 천장의 높이까지. 왜 유럽의 광장에는 사람이 모이고 한국의 광장은 비어 있는지, 왜 골목이 있는 동네가 살아남고 넓은 도로가 오히려 죽는지, 공간의 형태가 곧 삶의 형태라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로 보여준다.
공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대가 달라지면 쓰임도 달라진다.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곳을 넘어 누군가의 시간제 거실이 되었고, 서점은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이 되었다. 뉴욕은 비어가는 상업 시설을 주거 공간으로 바꾸려 한다. 살아남는 공간은 결국 변화에 맞춰 진화하는 공간이다. 도시도 생명체와 다르지 않다.
10주년 기념 전면 개정판은 그 시선을 오늘로 가져온다. 경의선 숲길에 사람들이 왜 모이는지, 성수동에 팝업스토어가 몰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그것이 SNS를 통해 어떻게 확산되는지까지 함께 읽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오래된 책의 개정판이라기보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공간을 다시 읽게 하는 책에 가깝다.
건축에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매일 건물 사이를 걷는 사람이라면 충분하다. 읽고 나면 출근길의 풍경이 달라진다. 그게 이 책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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