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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530/pimg_7188771283428053.jpg)
소설은 죽음을 오픈하고 내달린다.
밤이 시작되는 곳은 밤이 없는 듯 어둠에 적응한 유체이탈된 청춘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냥 돌아다니면 안된다. 규칙이 있다. 아픔이 문신처럼 새겨져 삶의 무게를 온 몸에 지니고 살아가는 재호와 마리가 있다. 이상하게도 죽음은 벚꽃 찬란하게 흩날리는 봄 날에만 유난스럽게 찾아온다.
그들은 정규직엔 취직을 못하고 장례식장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하루 근간을 버틴다. 이들에게 장소와 시간은 자신들이 살아있음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연결된 삶을 버티는 명분을 검증하는 중요한 단서다. 맥도날드, 그리고 봄날,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가르는 하얀 뱀의 허물들.
재호가 안고 있는 죄책감은 목조르기 놀이를 하다 누나를 죽였다는 1급 비밀이 짙게 깔려있다. 이로 인해 가정이 해체되고 아빠는 아죽사 즉,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임을 통해 자신의 헛헛한 관계를 이어 나가게 되고, 엄마는 재혼을 했음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자꾸 누나 방을 맴돌다 다시 떠난다고 여긴다.
감정없이 노동만 하는 기계 조각상 해머링 맨,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과 24시간 맥도날드 불고기 버거. 재호와 마리에게 위안을 주는 애착물들은 어떤 날의 광화문을 지나 청계천을 가로질러, 그날의 인왕산까지 이어지는 활주를 통해 죽음을 소화하고 물고기가 되어 튀어 올랐다. 이 라이딩 장면은 일상에 매일 벌어지는 푸른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며 진짜 밤이 시작되는 하얀 뱀과의 마주함을 무슨 힘으로 이겨내는가에 대한 반문으로 바퀴를 돈다. 빨간 정장차림으로 장례식장을 조문하는 아죽사의 진정한 대안처럼 각자가 극복해야 하는 슬픔은 정형화된 애도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안부를 책임져 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많은 생각들을 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저울질하며 어느 쪽이 먼저 시작되어야 그 다음 단계의 성장이 수월할 수 있을까. 조금만 돌이켜보면 재호와 마리가 매일 밤 맡는 육개장 냄새, 국화 냄새, 그리고 향 냄새는 내가 아침에 눈을 떠 감사히 밥 먹고 사는 일상 냄새와도 맞물린다. 내가 하룻동안 만나는 모든 패배, 상처와 아픔이 변신을 꿈꾸면서 그들처럼 정처를 두고 배회할 때, 우리의 시작되는 밤의 고요한 기억들은 한 때에서 한 시절로 옮겨가는 아름다운 준비가 될 것이다.
*책좋사 서평 이벤트와 도서출판 나무옆의자에서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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