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마음 없는 일 - 인스피아, 김스피, 그리고 작심 없이 일하는 어떤 기자의 일 닻[dot] 시리즈 2
김지원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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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함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바람

일을 수상하게 하는 것을 사랑하는, 일을 사랑해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저자는 소멸을 앞둔 부서에서 일하던 와중 요새 뉴스레터가 유행이라는 소식을 접한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어색한 틈새에서 낯선 방식으로 나름의 고집을 부려 새로운 기회를 잡는다.

여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책 읽고 해찰하는 뉴스레터 <인스피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책은 인스피아를 운영해온 기자 김지원, 김스피의 이야기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였던 ‘기자’라는 직업. 기자가 하는 일, 기자로서의 생각과 기사 안 쓰는 기자로서 살 길을 찾은 저자의 그간의 삶이 담긴 이 책을 읽고 있자니 일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물씬 느껴졌다. 자연히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하며(…) 살짝 나름의 반성이랄까, 나는 그럼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일해야 할까, 라는 살짝 막막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노는 게 좋은 걸 어떡해요ㅠ)

이과 출신에 의료계에서 일하는 나는 책 리뷰를 올리는 이 계정을 운영하기 전까진 글 쓰는 일과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처음 책에 대한 리뷰를 쓸 땐 리뷰의 방향을 잡는 것부터 내가 느낀 것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에 대한 고민, 이 계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다랄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이 항상 따라왔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글을 쓰는 감각, 글을 대하는 방식, 피드백에 대한 생각 등등 글에 대한 애정과 자존감이 물씬 느껴지며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의 틈을 찾아, 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즐기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쉽게도 올해 7월, 인스피아는 막을 내렸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동력으로 또 한 번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날을 기다린다.

“쓰기는 괴로움인 한편, 내게 있어서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기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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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6
위수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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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가면 아래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가면에는 틈이 존재한다.
내면의 욕망을 가려주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가는
이 책의 네 인물 기옥, 윤주, 상호, 태인.

기옥과 태인이 주연을 맡은 연극 ‘밤으로의 긴 여로’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뒷풀이 자리.
술에 취한 태인이 기옥에게 꽂혀 갈등을 일으키자
매니저 상호는 태인을 데리고 자리를 벗어난다.
그리고 다음날 뉴스에는 태인의 사망 소식이 도배된다.

태인의 죽음(끝)을 통해 드러나는
기옥, 윤주, 상호의 진심은 이 책의 시작이 된다.

태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무도 태인의 죽음에 마음 깊이 슬퍼하지 않는다.
진정한 애도란 없는 듯 보인다.
그들의 머릿속을 채운건 오로지 본인에 대한 자기 연민과 욕망 뿐.

화려하게만 보였던 연예계, 배우와 매니저의 삶.
하지만 결국 사람 사는 세계는 다 똑같고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며
자신의 비극 앞에선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면을 쓰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가면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기옥은 알고 있었다”

가면을 바라보게 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
오히려 그 가면을 더 다듬으며
자신의 진심을 더욱 더 꽁꽁 숨길 뿐.

+)
제가 읽은 위수정 작가님의 fin은 이랬는데요,
해석이 저에겐 좀 어려웠어요..
혹시 이 책 읽은 분, 다들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밤으로의 긴 여로의 내용에 대해 알았다면 좀 달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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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
박원재 지음 / 샘터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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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죽었다’, 충격적인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책. 저자는 어떤 의미에서 예술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가 생각하는 예술의 죽음과 죽은 예술을 되살리기 위해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어디일까.

위의 질문을 대답하기 전에 먼저 나는 예술이 어렵다, 라고 느끼던 사람이다. 미술관을 가면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보단 뒷사람들에 치여 도슨트만을 허겁지겁 삼킨 채 앞으로, 앞으로 밀려만 가다 미술관을 나오곤 했다.

이 책의 장점은 이런 나같은, 예술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예술이 왜 죽었는지를 쉽게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자본주의의 발달로 예술은 단순한 투자 대상,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또한 순수한 미적 경험을 내세운다며 창작된 예술은 기준의 부재로 혼란을 낳으며 소수의 엘리트가 정의하는대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어려운’ 예술이 되었다. (이를 예술-종교의 평행선이라 비유하며 서술하는 저자의 방식은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본디 예술은 삶이었다. 예술은 이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대상이 아님을 저자는 여러 예시를 통해 강조한다. 예술은 우리의 감각을 활성화하여 작가의 경험과 감각을 전이시키고, 우리는 그 잠시동안 작가의 삶을 대신 ‘살아보는’ 경험을 한다. 그 과정에서 이해는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다. 예술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되어야한단 저자의 말에 고개를 마구 끄덕이게 된다.

저자는 책의 제목대로 ‘예술은 죽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극단적인 표현에 오히려 예술을 향한 애정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 글을 끝까지 읽는다면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예술은 죽지 않았다. 아직. 이렇게 예술이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 둘 자리 잡아 지금부터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예술은 죽을 수가 없다.

이 책을 통해 예술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알던 예술은 예술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예술의 싹이 다시 트고 있다. 앞으로 내가 마주할 진짜 예술이 기대된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나 더 많은 정보가 아니다. 다시 느끼고, 다시 연결되고, 다시 살아내는 감각이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언어이며,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유다. 삶의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우리는 다시 예술로부터 배워야 한다. 정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관점으로 말이다.”(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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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죽었다
#박원재 #원앤제이갤러리
#샘터 #샘터사
#예술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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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문체부 제작지원 선정작
복일경 지음 / 세종마루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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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걸려 오는 전화는 언제나 그녀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끌어내리곤 했다.
“실종 신고하셨죠?”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일상이 무너져있던 윤주의 삶을 구원해 준 건 시어머니였다. 시어머니는 고향의 집과 땅을 팔고 윤주의 집으로 들어와 손녀 예린을 돌보며 윤주가 직업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나 점점 안정되어 가고 있다고 느꼈던 일상도 잠시, 시어머니가 중증 치매 진단을 받게 되며 다시 일상은 무너지고 만다.

밤늦게까지 공부방을 운영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등교하는 예린과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챙기는 윤주와, 학교를 마친 뒤 일찍 돌아와 할머니가 어질러 놓은 집안을 치우는 예린. 집안에서 가시지 않는 악취와 돌봄 노동에 지쳐있던 두 사람에게 또 다른 구원자가 나타난다. 윤주의 어머니이자 예린의 외할머니였다. 그렇게 세대도 다르고 성씨도 다른 네 여자가 한집에 모여 살게 된다.

‘치매가 아니었다면 시어머니의 돌봄은 죽을 때까지 계속될 일이었다. 그것은 여자란 이유로, 또 가족이란 이유로 끝없이 계속되는 굴레’라는 문장에 왠지 서늘해졌다. 윤주의 가족만이 이 굴레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많은 여성들이 이 굴레를 경험했거나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복일경 작가가 그려내는 이 여성 서사가 우리에게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어딘가에 갇힌 듯한 답답한 느낌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결말에 다다르고 나서도 안심할 수 없는 책이다.

윤주는 다짐한다. ‘그 굴레를 예린에게까지 물려주지 않겠다고. 예린의 시간만큼은 돌봄이 아닌 자유로 채워지기를 바란‘다고. 과연 윤주의 이 다짐은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이 굴레는 과연 끊어질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내 윗세대에 대한 부양의 책임을 다하고 나면 내가 어느새 돌봄을 받을 처지에 놓여있는 인생의 사이클 속에서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해와 달의 뜨고 짐, 빛의 명도를 묘사하는 문장으로 주인공의 심리와 다가올 앞날을 대변하며 저수지에 뜬 두 개의 달이 비추는 윤주의 모습으로 막을 내리는 이 책, 거센 파도처럼 밀려드는 기억의 조각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 마음을 가라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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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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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가을, 등단한 지 십 년 이상이 된 작가들의 단편 소설에 주어지는 김승옥문학상이 발표되었다. 봄에 발표되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가을에 발표되는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국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꼭 챙겨봐야할 작품집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대상은 최은미의 「김춘영」에게 돌아갔다. 내게는 어느 하나 고를 수 없을 정도로 마음에 남는 작품이 많았다.

최은미의 「김춘영」•*¨*•.¸¸
“내가 완성할 텍스트의 주인은 김춘영이었다”
탄광촌의 여성들을 주체로 세워 생애사를 연구하는 정윤은 마지막 면담일, 4월의 설산에 갇혀 ‘김춘영‘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녀의 집에서 하루 머문다는 것은 기존의 면담과는 다른, 밀도 자체가 다른 일이 되어 ’김춘영‘이라는 사람을 우리가 더 잘 알게되는 시간이 될 것이란 기대에 차게 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갑작스런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해 방해 받게 된다. 그리고 ’말을 잘하는 귀한 자원‘을 가졌다는 이 인물이 사실은 탄광촌에서 술집을 운영하며 매춘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나를 편견 속에 가둔다. 설산이라는 공간과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길 꺼리는 김춘영의 모습, 그녀와의 시간을 싹둑 잘라내듯 등장하는 인물들에 이 글을 읽는 동안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한 인간이 가진 여러 면과 그것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강화길의 「거푸집의 형태」•*¨*•.¸¸
나와 닮은, 자매라고 종종 오해받았던 이모의 죽음 이후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난 젊은 여자. 그녀로 인해 드러나는 이모를 향한 애증의 여성서사. 마지막까지도 서로를 닮은 모습으로 만난 두 사람의 모습과 다시금 곱씹게 되는 제목의 ’거푸집‘이라는 단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소름이 돋게 하던. (역시 강화길...)

김혜진의 「빈티지 엽서」•*¨*•.¸¸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며 낭만이라곤 일절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현실적인 성향을 가진 남편과 함께 살던 중 만나게 된 헬스장의 남자. 그와 빈티지 엽서를 번역하는 일을 하며 느끼게 된 ’진짜 내 모습‘. 그러나 예의보다 오해가 앞서는 현실 속 나의 선택. (글의 전반에 흐르는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그녀의 문체가 너무 좋다 ㅠㅠ)

최진영의 「돌아오는 밤」•*¨*•.¸¸
친한 친구의 죽음을 기점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던 인물이 12.3 계엄으로 인해 마주한 인간의 폭력적인 면과 그 사이에서도 비집고 나오는 생을 향한 마음.

작품집을 읽으며 인간의 다층적인 면과 정상적인 척, 괜찮은 척 하는 모습 한꺼풀 아래 숨겨진 욕망, 편견, 경계심, 혼란 같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 모두가 각각의 개성을 품은 채 존재감을 뚜렷이 뿜어내고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익숙한 문체들이 주는 안정감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내게 단편소설의 묘미는 짧지만 깊은 뜻을 함축하고 있어 천천히 곱씹으며 읽고, 두번, 세번 읽게 된다는 것인데, 역시 이번 수상작품집도 텍스트를 하나하나 씹어 삼키며 깊어지는 가을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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