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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2 - 다양성 너머 심오한 세계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2
브래디 미카코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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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 비해 더 깊어졌다. 다양성, 차별, 혐오 결국 인권에 대한 통찰까지. 아들이 성장하면서 이 가족의 대화는 더 깊어졌고, 풍부해졌다. 그래서 나는 또 반성하고 한편으로 희망을 본다.

같은 제목을 쓴 후속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작가도 출판사도!). 역시나 그러했다. 전작에서 다하지 못한 영국 사회의 현 이슈까지 등장하여 더 다양해진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 않은 것이 이 책의 장점. 간결한 대화에 메시지가 담겨 있어 누구나 쉽게 읽고 그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이것도 작가님의 배려라면 책의 주제와 딱 맞아 떨어지는 작가님의 깊은 마음이다.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관찰력은 남다르다. 나라면 지나쳤을 사소한 일, 대화 안에서도 의미와 변화를 찾아낸다. 내심 부럽기도 하다. 그런 시선과 관찰력을 토대로 그려낸 영국 사회, 아들의 학교생활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했다. 현실을 마주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기. 그것이 가능하다. 작가의 모나지 않은, 어느 곳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관점과 함께라면..

애초에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다. 바꿔 말하면, 사회는 모두 ‘다른 존재’로 구성된 다양성을 기본 전제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양성’이 이제야 화두가 된 것도, 아니 화두가 된 것 자체도 모두 의문이다. 다른 존재인 타인을 인정해야만 나도 인정될 수 있다. 그것이 사회다. 그러니 우리 기본으로 돌아가자.

* 추천사까지 완벽한 이 책을 아직도 안 읽으셨나요?
가을 내음이 스며들기 시작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이 책으로 가을독서 시작하세요!!

* 영국의 교육제도가 궁금해진다. 교육과정이 이래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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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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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 저자 : 켄 리우

* 편역 : 장성주

* 출판사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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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도 모르면서 SF 소설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나의 상상력과 창의성의 한계가 다른 사람의 창조력마저 틀에 가둬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편견을 보란 듯이 깨준 작품이 있다. 바로 테드 창의 <숨>이다. 한때 <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책을 선물할 일이 생기면 <숨>을 건네며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거라 장담했었다. 그 후 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이 나를 또다시 설레게 했다. 테드 창과 비슷하면서도 확연히 다른 상상력으로 미래에 대한 다채로운 관점을 선물해 주었다. ‘사실과 숫자가 인간을 설득하지 못하는 것’을 생생히 보았으며 인간은 오로지 ‘이야기’를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는 켄 리우. 그런 작가가 쓴 이야기의 힘을 넘치도록 느껴보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켄 리우의 데뷔작인 <카르타고의 장미>를 비롯해 <사랑의 알고리즘>, <매듭 묶기>(한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싱귤래리티 3부작’ 등 총 12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 책은 분명 미래에 대한 책이지만 ‘지금, 여기’를 생각하게 한다. 미혼모(... 이 말을 대체할 단어는 없는 걸까? 결혼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가진 엄마 또는 아빠(미혼부)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단어인 것 같다. 수업을 통해 아이들과도 많이 고민했던 부분....) 문제나 인종 차별, 이민자와 원주민 사이의 갈등,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 등 지금 충분히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다룬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인공지능이 뛰어나고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우리 인간의 고민은 가족, 문화, 전통, 삶과 죽음 등 지금과 다르지 않으려나 보다. 그것이 인간 삶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작품은 간병로봇을 통해 화면으로 어머니를 간병하고 임종까지 함께 하는 이야기 <곁>이다.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어 간병로봇으로나마 어머니를 면회하는 주인공의 마음이 잘 그려졌다. 사실은 환상에 불과하지만 기술의 도움으로 서로의 감정을 전하는 장면이 얼마 후 실제 우리의 세상에서 재현이 될 것만 같다. 우리의 일상이 이렇게 바뀌어 간다면 관계의 깊이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고민에 고민이 거듭된다.

 

우리는 인간의 삶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까? 작품들을 읽으며 시간과 공간, 차원을 초월한 다양한 관계에서의 사랑을 떠올렸다. 이성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지 않을까? 앞으로 어떤 미래가 우리를 찾아올지,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또 갈등을 겪기도 하고,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며 살아갈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삶을 어떻게 더 인간적으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겠다. 켄 리우의 작품처럼 따뜻한 이야기와 함께... (SF도 충분히 따뜻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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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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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 전쟁과 가족

* 저자 : 권헌익

* 역자 : 정소영

* 출판사 : 창비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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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에게 6.25전쟁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어떤 해는 한국사 과목의 시수 부족으로 6.25전쟁을 공부하기도 전에 1년 일정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실제 한국사의 수업시수는 일주일에 3시간이 확보되어 있다.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을 모두 수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6.25전쟁의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와 스펙터클한 영화 등은 6.25 전쟁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전달하기에 좋은 자료이다. 글쎄, 그런 자료로 전쟁의 배경/경과/결과 및 영향 등은 간단히 전달할 수 있다 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있을까? 7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를 모두 보여줄 수 있을까? 깊이 반성이 되는 대목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크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인 저자는 관계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복원한다. 미국과 중국, 남한과 북한, 그리고 전쟁이라는 경험을 함께 통과하는 공동체와 가족. 그 관계성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처했던 현실과 폭력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글이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번역을 한 책이라 그렇기도 하겠고,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의 한계이기도 하겠다. 게다가 전쟁의 아픔을 단순히 소비하며 넘어가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있었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읽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덕분이다.) 그 노력 덕분에 조금 더디지만, 책의 메시지에 조금은 더 근접할 수 있었다.                            

 

완서는 전쟁 당시 자신의 가족이 겪었던 일을 자전적 소설에서 회고한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당시 북한군은 숙부의 집을 접수하여 장교 식당으로 사용했는데, 이후 국군과 미군이 서울을 탈환했을 때 이웃이 그 사실을 고발해 즉결처분되었다. 또한 전쟁 전 급진적 정치 운동에 가담했었던 그의 오빠는 북한군 점령기 때 인민군에 징집되었는데 국군이 해방군으로 돌아오자 오빠의 전적이 가족의 생사를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 당시 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생이던 박완서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반공청년단에서 서기로 일한다.

상북도 예천군의 어느 마을, 그 마을 안씨 집안의 장손은 1978년 11월 대공분실로 끌려가 자기 집안의 가계도를 대면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공산주의 활동가였던 숙부의 이름이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그 빨간색 이름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진술하는 것이었다. ‘빨갱이 이념’이 숙부에게서 다른 친족관계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각 인물과 과거사에 대해 상세히 털어놓으라는 것이었다. 심문과 고문이 더해질수록 집안의 가계도는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어갔고, 안씨는 자신의 집안이 공산주의에 물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적 전쟁으로서의 한국전쟁이 가족과 친족에 미친 영향을 잘 전해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가 ‘전쟁’을 통해 정말 공부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참혹했던 냉전 현장이라 표현하고, 현재 세계의 구도 또한 한국전쟁의 결과라고 이야기하면 되는 것일까? 전쟁을 직접 경험하신 분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은 전쟁의 면면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로의 소통을 통해, 교감을 통해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이 이주 서쪽 애월의 하귀리는 2003년 초에 마을 위령비를 새롭게 완공했다. 이 지역에는 원래 4.3사건 당시 반란 진압작전에 동원되어 전사한 경찰과 반공청년단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서 있었다. 자신의 가족과 마을에 폭력을 자행한 자들을 묻은 묘지와 추모비가 마을에 있다는 사실은 이곳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도덕적 소외감의 근원이자 분개심의 대상이었다. 하귀의 새 조상석은 4.3사건의 왜곡된 기억에 대한 반발이자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으로, 한국전쟁 전후에 길고도 잔혹했던 폭력에 희생된 마을 사람들에게 바치는 위령비다.

그래도 참 다행히 서로의 소통을 통해, 교감을 통해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연좌제로 칭해지는 폭력적 수단으로 인해 전쟁의 고통과 피해 흔적은 아직도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참 다행히 조금씩 바로 잡히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또 다른 힘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건강하게 연결해 주고, 결국 미래세대에게까지 전해질 것이다. 미래세대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게 될지. 그 틀이 우리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상적 주체는 절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고 공동체적 관계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책의 구절처럼 역사의 아픔도, 책임도 서로 나누며 더 큰 틀에서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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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 - 일, 관계, 인생의 고민이 사라지는 말 공부
하라 구니오 지음, 장은주 옮김 / 유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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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 듣고 싶은 말을 했더니 잘 풀리기 시작했다

* 저자 : 하라 구니오

* 역자 : 장은주

* 출판사 : 다산북스

* 2020.6.12. /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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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2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말과 칭찬의 힘을 알리고 계신 저자의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상황에 따라 어떤 칭찬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답과 사례들이 담겨 있어 어렵지 않게, 누구든 읽을 수 있다. 일, 관계, 인생의 고민이 사라지는 말 공부를 위한 책으로, 사소하지만 꾸준한 말 습관의 변화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은 ‘말’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는 문장으로 시작한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일상과 언어습관을 돌아보았다. 과연 나는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일까?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잘 하고 있을까? 그 내용은 적절한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 하나하나를 곱씹어 보며 나로 인해 혹여나 상처받았을 지인들을 떠올려본다. 나는 학교에 있어 마음을 담은 칭찬이 얼마만큼 큰 힘을 갖고 있는지 알고 있다. 또한 제대로 전하지 못한 칭찬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갖고 읽어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는 칭찬을, 나도. 잘. 하. 고 싶다.

책 내용에 따르면 어렵지는 않다(^-^;;;). 저자는 진실한 마음을 담은 칭찬의 방법과 디테일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게다가 매일매일 실천할 수 있는 매뉴얼도 알려주어 바로 적용해 볼만하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의지와 마음이겠지. 그리고 이러한 실천이 나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것을 바꿔줄 것이라 믿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나’에게 칭찬하기>인데,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한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칭찬의 언어로 나를 채워야 다른 사람도 칭찬으로 채워줄 수 있다는 내용은 결국 자존감과 연결된다. 높은 자존감으로 단단한 내가 되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고, 하루에 한 번씩은 칭찬을 건네자고 다짐해본다.

하루에도 무수히 많은 말들을 내뱉는 우리는 그 말의 무게에 책임을 지며 살고 있을까? 말의 힘을 충분히 느끼며 살고 있을까? 말이 갖고 있는 무게와 힘은 무시한 채, 그냥 마구 내뱉으며 결국 그 말을 가장 많이 들게 될 자신에게 모진 말들을 쏟아내고 있지는 않을까? 보다 신중한 언행으로 나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또는 일과의 관계를 보다 단단하게 이어가고, 보다 성장하는 우리가 되자.^-^

*** 내게 온 문장

- 사람은 말이 이끄는 대로 살아갑니다. 당신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그리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바꾸고 싶다면, 좀 더 말의 힘을 믿어봅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지금 필요한 말을 들려줄 수 있는 힘을 기릅시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의 인생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 상대가 소중히 하는 것이라면 좋고 싫음의 문제에서 벗어나 일단 자신도 소중히 해줘야 한다. 그것이 모든 관계의 시작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화를 한다면 관계는 더 쉽게 풀릴 수 있다.

- 자신을 칭찬하기까지, 자신을 채우기까지는 한 걸음이 더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긍정의 말을 전하기 전에 나 자신부터 칭찬하고, 자 자신을 채워주자. 나를 들여다보고, 나를 안아주자. 칭찬의 마법을 가장 먼저 거는 사람은 당신 자신이니까.

- 자신이나 주변 사람을 칭찬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어떤 정보가 들어오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해주고, 주변 사람들의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보면 어떨까. 이런 사소한 일들이 인생을 바꿔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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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
박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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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 은희

* 저자 : 박유리

* 출판사 : 한겨레출판

* 2020. 5. 28. / 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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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에 끌려가 성폭행을 당해 아이를 갖게 된 은희. 자신의 출생 과정은 알지 못한 채 폴란드로 입양을 갔다가 엄마와 관련된 쪽지 하나를 전해 받고 한국으로 오게 된 은희의 아들 준. 그리고 준과 함께 자신의 기억을 발판 삼아 모든 것을 되돌려 놓고 싶어 하는 은희의 형제복지원 룸메이트이자 은희의 죽음을 목격한 미연. 이들의 기억과,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간 이야기가 불행하지만 아름답게 찾아왔다.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접했던 형제복지원 사건의 참혹한 진실이 저자의 메시지와 함께 소설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그 시대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개인의 이야기가 결코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의 형제복지원에서는 많은 인권유린이 일어났다. 불법 감금, 폭행, 강간, 강제 노역, 암매장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아니 그 이상의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던 형제복지원의 실체는 방송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전해진 바 있다. 하지만 그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사람들은 몇이나 될까?

 

법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이들은 법의 바깥으로 폐기된 지 오래였다. 법의 보호는 무산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법과 인간의 범위는 검찰 상부가 정한 그들만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법은 세상의 주류가 정한 범위 안에서 죄를 측량한다. 인간 밖으로 폐기된 자들에 대해 법은 무력하다.

 

국가의 복지 정책으로 시작된 형제복지원이기에 법마저도 피해자들 편에 서지 않았다는 이 상황이 나에게만 불합리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그들의 기억에 기대어서라도 모든 것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피해자들이 형제복지원 안에서 보냈던 시간과 그 곳에서 겪어야 했던 모든 참혹함을 우리는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없다. 그러한 무력감이 더해져 우리는 더 비참함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그들의 기억을 토대로 기억을 지우려는 자들에 맞서 우리는 보다 정의롭게 바로 서야 한다. 시대의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개인의 이야기라 치부하기에는 당시 사회가 너무 비정상이었으니까...

 

우리를 가둔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세상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온 두 발을 내려다보며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향해 사죄하지 않는 세계, 내가 사라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세상의 평화로움이 소름끼치게 무서웠습니다.

은희와 미연, 준 그리고 병호의 아픔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형제복지원 특별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않아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허공을 맴돌 뿐이다. 국가 정책에 의해 시작된 일이니 결국은 국가가 나서서 매듭을 지어야 한다. 우리도 목소리를 보태 피해자들의 기억이 피해자들만을 갉아먹지 않도록 연대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또 다른 세상 안에 갇혀 불행한 기억을 쌓고 있는 사람들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지 않은지 늘 타인을 향한 예민함을 드러내야 할 때이다.

 

*** 내게 온 문장

- 기억하지 않는 삶이 더 낫다면, 그녀에게 기억을 강요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 모든 것이 부식되고 사라지고 변하는데 그날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매년 새해 소망은 희미해졌으며 변치 않을 것 같던 약속들은 바람에 흩날렸다. 해가 바뀌면 새 달력이 벽에 걸렸으나 그날의 기억만은 그대로였다.

 

- 그들은 언제나 국회 앞에 서 있었다. 소리쳐도 들어줄 이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형벌을 내렸다. 삭발을 하고, 곡기를 끊고, 마이크를 들고 아무도 듣지 않는 거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곳은 서러운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이는 광장이었다.

 

-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력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커질수록 무력하게 견디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 그들은 빈곤을 모아두면 풍요로워질 것으로 착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바퀴벌레와 쥐 퇴치 운동을 벌이듯이. 그렇게 우리는 청소됐다.

 

- 유전보다 더한 것이 기억이고 습관이었다. 표백할 수 없는 날들이었다. 기억은 그림자 같은 것이었다. 가위를 들고 들러붙은 그림자를 잘라내도 하루가 지나면 잘린 부위에서 새 그림자가 돋았다.

 

- 여기, 시간이라는 기차가 출발하지. 오늘은 어제가 되고, 지금은 그때가 돼. 그걸 막을 수 있나? 신은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유한한 시간을 동시에 줬지. 다 이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결국 시간은 가고 늙어 죽거나 늙기 전에 기억을 잃어. 사람에게 기억이라는 게 뭔가? 편집된 시간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ᄄᆃ 전부로 여겨. 참 한심해. 사람들의 기억에는 불순물이 섞여 있어. 오늘 안에 어제가 있고, 미래 안에 지금이 있지. 내게는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강물처럼 흘러가버리고 마는 거지. 댐에 쌓아둬서 괴물이 되게 하느니, 그저 기억을 방류해버리는 거지.

 

- 어떤 기억도 갖지 못한 준, 기억에서 달아나려다 주저앉은 미연, 그리고 기억을 버렸다는 노인.

 

- 법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이들은 법의 바깥으로 폐기된 지 오래였다. 법의 보호는 무산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법과 인간의 범위는 검찰 상부가 정한 그들만의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법은 세상의 주류가 정한 범위 안에서 죄를 측량한다. 인간 밖으로 폐기된 자들에 대해 법은 무력하다.

 

- 무열은 살려만 달라는 말을 들을 때만큼은 그들의 신이 된 것 같았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세상에서, 살려달라는 말을 들을 때만큼은 무언가가 된 것 같아서 그들이 생을 구걸할 때까지 각목을 휘둘렀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뒈지도록 두들겨 패면 그들은 살아 있기만을 바라는 자들이 되었다. 존엄한 삶은 인간이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본 적 없는 자들은 삶이 아닌 살아 있음을 원했다. 삶을 갈망하다 절망한 자들은 스스로 죽음으로 걸어가지만, 매일 죽음의 위협에 노출된 자들은 죽음으로부터 달아났다.

 

- 우리를 가둔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은 세상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온 두 발을 내려다보며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나를 향해 사죄하지 않는 세계, 내가 사라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세상의 평화로움이 소름끼치게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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