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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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 : 전쟁과 가족

* 저자 : 권헌익

* 역자 : 정소영

* 출판사 : 창비

*3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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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에게 6.25전쟁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어떤 해는 한국사 과목의 시수 부족으로 6.25전쟁을 공부하기도 전에 1년 일정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실제 한국사의 수업시수는 일주일에 3시간이 확보되어 있다. 하지만 교과서의 내용을 모두 수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상황에서 6.25전쟁의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와 스펙터클한 영화 등은 6.25 전쟁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전달하기에 좋은 자료이다. 글쎄, 그런 자료로 전쟁의 배경/경과/결과 및 영향 등은 간단히 전달할 수 있다 치더라도, 그 안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담을 수 있을까? 7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아물지 않은 전쟁의 상처를 모두 보여줄 수 있을까? 깊이 반성이 되는 대목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크리니티칼리지 석좌교수인 저자는 관계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복원한다. 미국과 중국, 남한과 북한, 그리고 전쟁이라는 경험을 함께 통과하는 공동체와 가족. 그 관계성을 따라가다 보면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들이 처했던 현실과 폭력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글이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번역을 한 책이라 그렇기도 하겠고,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자의 한계이기도 하겠다. 게다가 전쟁의 아픔을 단순히 소비하며 넘어가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있었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읽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덕분이다.) 그 노력 덕분에 조금 더디지만, 책의 메시지에 조금은 더 근접할 수 있었다.                            

 

완서는 전쟁 당시 자신의 가족이 겪었던 일을 자전적 소설에서 회고한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했을 당시 북한군은 숙부의 집을 접수하여 장교 식당으로 사용했는데, 이후 국군과 미군이 서울을 탈환했을 때 이웃이 그 사실을 고발해 즉결처분되었다. 또한 전쟁 전 급진적 정치 운동에 가담했었던 그의 오빠는 북한군 점령기 때 인민군에 징집되었는데 국군이 해방군으로 돌아오자 오빠의 전적이 가족의 생사를 위협하는 문제가 된다. 당시 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생이던 박완서는 가족의 생존을 위한 절박한 마음으로 반공청년단에서 서기로 일한다.

상북도 예천군의 어느 마을, 그 마을 안씨 집안의 장손은 1978년 11월 대공분실로 끌려가 자기 집안의 가계도를 대면하게 된다. 일제강점기 당시 공산주의 활동가였던 숙부의 이름이 빨간색으로 쓰여 있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그 빨간색 이름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진술하는 것이었다. ‘빨갱이 이념’이 숙부에게서 다른 친족관계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각 인물과 과거사에 대해 상세히 털어놓으라는 것이었다. 심문과 고문이 더해질수록 집안의 가계도는 점점 붉은색으로 물들어갔고, 안씨는 자신의 집안이 공산주의에 물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회적 전쟁으로서의 한국전쟁이 가족과 친족에 미친 영향을 잘 전해주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가 ‘전쟁’을 통해 정말 공부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참혹했던 냉전 현장이라 표현하고, 현재 세계의 구도 또한 한국전쟁의 결과라고 이야기하면 되는 것일까? 전쟁을 직접 경험하신 분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지금은 전쟁의 면면을 이해하고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로의 소통을 통해, 교감을 통해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이 이주 서쪽 애월의 하귀리는 2003년 초에 마을 위령비를 새롭게 완공했다. 이 지역에는 원래 4.3사건 당시 반란 진압작전에 동원되어 전사한 경찰과 반공청년단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서 있었다. 자신의 가족과 마을에 폭력을 자행한 자들을 묻은 묘지와 추모비가 마을에 있다는 사실은 이곳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도덕적 소외감의 근원이자 분개심의 대상이었다. 하귀의 새 조상석은 4.3사건의 왜곡된 기억에 대한 반발이자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으로, 한국전쟁 전후에 길고도 잔혹했던 폭력에 희생된 마을 사람들에게 바치는 위령비다.

그래도 참 다행히 서로의 소통을 통해, 교감을 통해 역사를 바로잡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연좌제로 칭해지는 폭력적 수단으로 인해 전쟁의 고통과 피해 흔적은 아직도 우리를 따라다니고 있지만, 그래도 참 다행히 조금씩 바로 잡히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또 다른 힘이 되어 과거와 현재를 건강하게 연결해 주고, 결국 미래세대에게까지 전해질 것이다. 미래세대는 한국전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하게 될지. 그 틀이 우리 손에서 만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상적 주체는 절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고 공동체적 관계의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책의 구절처럼 역사의 아픔도, 책임도 서로 나누며 더 큰 틀에서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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