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유리창을 통해 엷은 햇빛이 흘러들어서 희미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그 빛은 그릇과 카드 위까지 투영되고, 그 그림자가 푸른 천장에 반사되어 흔들리고있었다. 크눌프는 빛에 눈이 부신 듯 눈을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2월의 햇빛의 희롱, 고요하고 평화스러운 방, 친구의 건실하고 부지런한 일꾼의 표정, 아름다운 부인의 의미 있는 듯한 눈초리….…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에게 무슨 목적이나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만약 건강하고 지금이 겨울이 아닌 여름이라면 이런 곳에 잠시도 앉아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피혁공에게 부인에게 충고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친구의 고통을 생각하면 참견하기 싫었고, 또 남들이야 선하든 악하든 참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
(....)
그리고 가족이니 결혼의 행복이니 하고 설교를 하던 피혁공의 말에 대해서도 경멸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의 행복이나 미덕에 대해 자랑하며 떠들어도 그것은 아무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양복점 주인의 신앙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의 어리석은 일을 보고 웃거나 동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스스로 선택하여 걸어가는 길에 참견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깊은 생각에 잠겼던 크눌프는 한숨을 쉬며 우울한 감정을 떨쳐버리려고 했다.
고목이 다 된 밤나무에 몸을 기대고 다리쪽을 향해 서서 다시 여정을 생각했다.  - P41

결국 사람은 다 자기 나름의 세계를 지니고 있을 뿐이지. 결코 다른 사람과 공통의 것을 지닐 수 없는 거야.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의 영혼과 섞어 놓을 수는 없는 것일세. 두 사람은 서로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하고, 서로 함께 있을 수 있지. 그러나 두 영혼은 꽃과 같아서 각각 한곳에 뿌리를 박고 있기 때문에 어떤 영혼도 다른 곳으로 옮길 수는 없는 것이. 그렇게 하려면 뿌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면 안되니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야. 꽃은 서로 가까이 하기 위해 향기를 보내고 씨를 보내는 것이지. 그러나 씨가 적당한 곳으로 가게 하는 데에 꽃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네. 그것은 바람이 하는 일이지. 바람은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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