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음을 비웃음을 비웃기.








"그보다는 선생님의 책들이 허세 덩어리라는뜻입니다. 그리고 그 점이 그 책들의 매력이기도 하지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제가 느낀 건,
의미로 가득한 알찬 단락과 완전무결한 허풍뿐인텅 빈 문단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다는 겁니다.
왜 완전무결한 허풍인고 하니, 그 허풍에 저자도 속고 독자도 속기 때문이지요. 찬란하게 무의미하고 엄숙하게 비상식적인 객담들을 심오하고 긴요한 담론들인 양 꾸며대면서 얼마나 희열을 느끼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선생님 같은 거장한테 그건 분명 기막히게 재미난 놀이였을 겁니다."

"웬 헛소리를 늘어놓는 거요?"

"그건 저한테도 아주 재미난 놀이였답니다. 허위를 깨부수기 위해 투쟁하노라고 주장하는 작가의 글 곳곳에서 허위의식을 찾아낼 수 있었던 건정말 유쾌한 경험이었으니까요. 계속 허위로만일관했다면 짜증스러웠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끊임없이 진실과 허위를 오락가락하는 것이, 파렴치의 극치를 보여주더군요."

 예전 상태에서 조금도 잃어버린 것 없이, 조금도 더한 것 없이. 그냥 읽은 거지. 그게다요. 기껏해야 ‘무슨 내용인지 아는 거고,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오. 지성인이라는 사람들한테 내가 몇 번이나 물어봤는지 아시오. ‘그 책이 당신을 변화시켰소?‘라고 말이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날 쳐다보는 거요. 꼭 이렇게 묻는 것 같았소, ‘왜 그 책 때문에 내가 변해야 하죠?"

..
아, 정말 중요한 건 그거요! 시선 바꾸기. 바로 그거요, 우리가 말하는 걸작이란."
...

‘사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읽는다 해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해도 잊어버린다.‘

"그럼 그렇지. 읽었으면 아셨을 텐데, 인간을미워할 이유는 무수히 많다오. 내 생각에 그 중가장 큰 이유는 허위요. 결코 떨쳐낼 수 없는 특성이지. 요즘만큼 허위가 승승장구하는 시대는없었소. 아시다시피 난 여러 시대를 살았다오. 하지만 단언할 수 있소. 이 시대만큼 가증스러운 시대는 없었다오. 한마디로 허위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대요. 허위적인 건 불성실하거나 이중적이거나 사악한 것보다 더 나쁘지. 허위적이라는 건 우선 자기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뭔가 양심에 걸리는 게 있어서가 아니라
‘체면‘ 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말로 장식되는 졸렬한 자기만족을 맛보기 위해서 말이오. 또 남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정직하고 사악한 거짓말, 남을 궁지에 빠뜨리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지. 암, 아니고말고, 사이비거짓말, ‘라이트‘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러니까 미소를 띤 채로 욕을 해댄다고, 호의를 베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오.."

단어들은 스스로 소리를 질러대거든. 자기 안에서 울려 나오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되지.

"선생님을 직업적 강박 행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강박 관념에 사로잡힌 작가답게, 선생님께선 등장인물들 간에 신비스런 상관관계가 전혀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실 수가 없는겁니다. 진정한 소설가들이란 자기가 족보학자인줄 모르는 족보학자들이죠.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선생님께 전 생면부지의 타인일 뿐입니다."

.....

"그 말씀은 못 믿겠습니다. 선생님께선 소설을 완성해야겠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계시거든요. 제가 선생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게 밝혀지자 낙담하시더니, 이제는 억지로 관계를 만들어내려 하시네요. 다급하게 사랑 이야기를 지어내려 하신다고요, 선생님께선 무의미한 것을 열렬히 증오하는 분이셔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수만 있다면 어떤 거짓말도 불사하실 겁니다."
"엄청난 착각이오, 니나! 사랑은 무의미한 것이라오. 그렇기 때문에 신성한 것이고."


상징으로 가득한 동화적인 소설,
원죄, 즉 인간 조건에 대한 몽환적인 은유‘ 운운.
그러니 읽기는 하지만 읽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밖에! 밝히기 위험천만한 사실을 난 얼마든지 글로 써도 되오. 다들 은유로만 볼 테니까. 별반 놀라운 일도 아니오. 사이비 독자는 잠수복을 갖춰입고, 유혈이 낭자한 내 문장들 사이를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유유히 지나가게 마련이거든. 가끔씩 탄성을 지르기도 할 거요. ‘멋진 상징인걸!‘ 이런 게 이른바 깔끔한 독서란 거요. 기막힌 독서법이지. 잠자기 전 침대에 기대앉아 책을 읽을 때쓰기 딱 좋은 방법이오..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데다 이불호청을 더럽히지도 않으니까."

"그건 너무 단순한 방법이잖소. 암, 최고로 세련된 방법이란 건 말이오. 수백만 부가 팔려도 읽는 사람이 없게끔 글을 쓰는 거요."

"독자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없는 건 왜일까요?"
"그건 말이오, 아까와는 달리 아주 쉽게 설명할수 있소.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지. 따지고 보면 내가 대단한 성공을 거둔 이유도 아마거기 있을 거요. 내가 이렇게 유명해진 건 아무도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라오.."
"역설이시겠지요!"
"천만에. 그 한심한 사람들이 실제로 내 책을 읽으려고 애를 써봤다면 아마 날 찾아와 내 멱살을 잡았을 거요. 그리고 그렇게 헛수고를 하게 만든 데 대한 앙갚음으로 나를 까맣게 잊어버렸겠지. 하지만 내 책을 읽지 않으니까 나를 편안한사람, 호감 가는 사람, 성공할 만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거요."
"정말 탁월한 논리로군요."
"비범한 이유라니까. 나 같은 작가에게 위안이되는 이유잖소? 진정한 작가, 순수한 작가, 위대한 작가, 천재적인 작가는 자기 책을 읽는 사람이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단 말이오.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고독의 한가운데에서 은밀히 탄생시킨 그 아름다운 것들이 천박한 시선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나면 말이오."
"천박한 시선을 피하실 양이었으면 아예 출간을 안 하셨으면 되잖습니까?"
"그건 너무 단순한 방법이잖소. 암, 최고로 세련된 방법이란 건 말이오, 수백만 부가 팔려도는 사람이 없게끔 글을 쓰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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