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슈필라움의 심리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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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정운은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다. 가볍고, 잘난체하고, 오버가 심하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의 책이나 강의를 보고 있으면 쉽고, 시원하고, 재미있고 빠져든다. 그래서 나는 어느새 <노는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에디톨로지>까지 모두 구입해서 최소 두 번씩은 읽은 듯 하다. 강연도 많이 들었다. 여가나 휴식같은 내가 요즘 화두로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많이 다루기 때문에. 남자로서 느끼는 삶과 무게, 문제점에 대해서도 시원한 통찰을 보여준다. 이쯤되면 저자는 내게 애증의 존재에 가깝다. 안좋은 첫인상을 글솜씨와 말솜씨만으로 호감으로 만든 저자의 실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흐름의 연속에서 이번 신작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는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그의 저작이었다. 대학 교수를 그만두고 홀연히 일본으로 동양화를 배우러 떠나 수학하고 다시 여수로 돌아와서 보고 느낀 바를 적은 저자가 또 어떤 재미있는 생각과 통찰을 가지고 찾아왔는지 기대하게 했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에도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던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책의 끝무렵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자는 아주 쉽고도 재기발랄한 글쓰기를 한다. 대학 교수를 역임한 심리학 박사지만 어려운 심리학 용어나 현학적인 문구들은 그의 책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날카로운 비유와 직관적이고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나 삽화가 함께할 뿐.

저자의 이야기는 새롭지만 늘 일관된 흐름을 가진다. 그 중에서 나를 항상 찔끔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창의력의 우수함. 그리고 효율 따지지 말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잘 녹여낸 것은 자신의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다. 그 작업실은 ‘美力倉庫’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루에 배가 3번 왕래하는 바닷가 외딴 곳의 작업실. 그는 책이 썩을 것이라는, 혹은 그런 외진 곳에는 공사비용 지출이 꽤 심할 것이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역창고를 작업실로 삼아 그 곳에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그렇게 그는 자기만의 슈필라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약간의 주저함은 있었지만 하지 않고나서 하는 후회보다 하고난 후에 하는 후회를 택하는 그의 행보는 늘 용기를 준다. (물론 이후에 정말 후회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오늘도 그는 그만의 슈필라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책에 의하면 슈필라움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는 그 오묘한 뉘앙스를 살리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피로에 가득한 삶, 열심히 매일 하루를 보다보니 내가 누구인지 잊은 나에게는 단어를 듣자마자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의 글에 따르면 그는 20대에는 군대를, 30대에는 박사학위 공부를, 40대에는 교수를, 50대에는 일본유학을 다녀온것이 다시 하고싶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이것은 놀지 못했던 시간이었다. 그는 역시 잘 논다. 부럽다. 50줄에 안정된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일본으로 하고싶은 그림공부를 하러 떠날 결심을 했을까. 어떻게 외딴 섬에 떨어져서 그만의 슈필라움을 구축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하루를 충만하게 보낼 수 있었을까. 그가 비단 경제력이 바탕이 된 인기강사여서 뿐만이 아니라, 그는 정말 자기 책에 쓰여있는대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혹은 그의 삶을 책으로 엮은 것이었거나.

그래서 나는 나보다 한참 연배가 되는 인생의 선배지만 그가 싫다. 싫다기보다 얄밉다. 그런데 글을 쓰며 가만히 돌아봤더니 이것은 저자가 미운 것이 아니었다. 저자처럼 용기있게 살지 못하는 내가 미웠던 것 같다. 이제야 저자를 향한 이유없는 적의를 알겠다. 자격지심 혹은 질투심.

그래도 나는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주체적으로 내가 행복한 삶을 살겠다고. 창의를 발휘하고 소비보다 생산하는 삶을 살겠다고 스스로 끊임 없이 다잡으려고 한다. 나는 천성이 안전지향주의라서 한번의 자극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 알고 있다.

앞으로도 나올 저자의 저작은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동력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앞만보고 달리다가 우울감에 허우적대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내 삶을 살으라는 저자의 말이. 아마 나는 계속 저자를 질투하겠지만 그의 책을 또 주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자를 질투하지 않게 되면 나도 나만의 슈필라움을 가지고 잘 노는 사람이 되어있겠지. 그때 낄낄대며 다시한번 저자의 책을 재독하겠노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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