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재벌도 살다보면 궁핍할때가 있는 법, 지난 4주 정도 전용 대형차량을 지하에 숨겨 놓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였다.
물론 대중들이 재벌의 궁핍함을 알게되면 패닉상태에 빠져들 우려가 큰지라 서민의 애환을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해서 라고 해 두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대중교통수단에 전혀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
한번 버스나 전철을 타게 되면 극도의 피로상태에 돌입하고 그날은 더 이상 정상적인 생태상을 보여 줄 수가 없다.
처음에는 나 자신의 익숙하지 않음을 탓 하거나 요즘 급격히 딸리는 체력문제 혹은 버스기사의 난폭한(혹은 미숙한) 운전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으나 물론 아니었다.
원인은 내가 대중을 싫어하다는데에 있다.
경계거리 내에 누군가 들어오면 바로 긴장상태가 유지되며 타인의 몸에 닿는다거나 하면 신경이 곤두서고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 생체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해 버리는 탓이다.
이런 나에게 타인들로 가득 채워진 버스나 전철을 탄다는 것이 가혹한 중노동에 해당됨이 분명하다.
팔을 잡는다거나 등을 만진다거나 어깨에 손을 올린다거나 등의 통상 친밀함의 표현이란거에 대해서 난 무자비한 적의로 대응해준다. (물론 쌍방 모두 거로에게 친밀함을 느낀다면 별 문제지만서도)
그렇다면 내게 심각한 대인공포증이나 무대공포증이 있나 하면 전혀 아니다.
차라리 대인무시증이나 무대불감증 같은 게 있다면 그런데나 해당 될 것이다.
존경하는(일찍 죽어버려 더 존경스런) 형은 일찍히 나의 이런 습성을 성장기 애정결핍의 파생이며 좌절된 스킨쉽의 욕구가 분노로 변이된 것이라는 3류소설 멘트를 남겼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개무시하기도 어렵다.
확실히 안는것 보다는 안기고 싶어하니 말이다.
2.
오래전에 어떠 어떠한 경로를 통해 순백의 캐시미어 담요를 (절대 '카시미롱' 이 아니다) 입수한게 현재 내 잠버릇의 시작이다.
이 캐시미어의 촉감이 죽인다는 건 다들 알고 있겠지만 그 촉감을 몸 어느 부위의 피부로 느끼냐에 따라 죽음의 정도가 틀리다는 것 까지는 모를 것이다.
가장 완전한 사망을 위해서는 발가벗은 상태에서 캐시미어만 둘둘 말고서 자야한다.
하여간 이렇게 시작된 습관은 이제 캐시미어 유무와는 상관 없이 지속되고 있다.
생각과 달리 이 습관은 겨울날 더 빛을 발한다.
난방꺼진 방에서 (어느정도 온기는 있겠지만) 두텁지만 냉냉한 담요속으로 파고들어 오직 체온만으로 데워질때의 그 아늑함이란...행복할 정도다.
('모비 딕'에서 아주 장문으로 이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소름 돋은 맨살갗은 보통때보다 훨씬 민감해져 있어 나체의 쾌감을 한껏 더 맛보게 해준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게 아니라면) 자기 집안에서 조차 프라이버시 보장이란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