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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가엾다. 불쌍하다. 애처롭다. 동정하다. 
그냥 주르르 떠 오르는 말들이다.
문제는 어느 하나 명확하게 이 말은 바로 이런것이다 하고 단정할 수가 없다는 거다.
대체적으로 착한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 정도로 인식하고 말 것인가.

그런데 이런 감정에서 근원한 행위는 도덕적인것인가?
감정만 가질뿐이지 이것이 어떠한 행위에도 연결 되지 않는다면 그걸 위선이나 가식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저런 감정을 유발하는 근원적인 기저는 무엇일까?

도덕적인 행위라는 건 대부분 자기 이익에 반한다.
물론 저 높은 곳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채점하여 낙제시 심각한 고문을 할 신이 있다고 믿는다면 모든 도적적 행위는 순수하게 이기적인 것이다.
또는 그 행위가 자신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되 돌려 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근사한 이유중의 하나가 될 수 있겠다. (방콕의 구걸자들은 당당하다. 그네 주장은 자기들이 선행을 할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는 그런 행위가 자신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공공으로 부터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이 또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런데 그도 저도 아니면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무엇인가?

도덕심,도덕관념, 도덕성 등 관념적인 표현도 있지만 도덕이란건 절대적으로 행위의 문제이며 집단 구성원간에 상충되는 이해관계에 결부된 교묘한 룰이다. 도덕이란건 근본적으로 대가성이 전제된 것이다.
그래서 연민에 기인한 행위들은 도덕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실제로도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높히 평가되는 행위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연민은 고통의 감정이입 이다.
타인에게서 벌어졌지만 자신의 것으로 공조할 수 있는 감각능력이다.
따라서 연계된 행위는 애시당초 도덕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자신에게 이입된 통증의 완화를 위한 것이다.
그래서 진통제를 살 요량으로 지갑을 여는 행위가 벌어진다.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통증은 좀 더 오래갈것이다. 거기다 터무니 없이 자해까지 한다면 상처는 더 커지겠지만.
 
나는 특별히 할머니와 어린아이들에게서 고통이입이 잘 된다.
어린아이 울음소리는 금속판의 스크래치 소음과 동급 고통을 제공하는 관계로 어떻게든 울지않게 해결하여야만 한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좌판을 지키고 있는 할머니는 제대로 만난거다. 전혀 소용치 않는거라도 어째든 먼가
사야만 된다. (종로에서 돈 내주신 님에게 감사드린다. 도움이 없었으면 아마 족히 하루는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해서, 나의 이런 성향이 미화되는 걸 매우 경계한다.
그저, 감각의 문제일 뿐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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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8-10-30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글을 올렸을 때 누군가 달아줬던 댓글을 따라 달아볼래요.
전 이곳에서 많은 생각과 약간의 실마리를 얻고 있습니다.
님에게도 무언가 의미가 되기를.
http://blog.naver.com/simont

hanalei 2008-11-01 10:00   좋아요 0 | URL
넘 어려워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