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심장
마커스 보그 지음, 김준우 옮김 / 한국기독교연구소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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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rt of Christianity : Rediscovering a Life of Faith

성서학당 교재로 같이 읽고 싶은 책

오늘날의 교회는 '신의 무덤'이다. 
진정 기독교의 심장은 무엇인가?
오늘날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고 교회는 어떤 역활을 해야 하는가?

역사적 예수 연구의 권위자 마커스 보그가 '기독교가 오늘날에도 말이 되며 의미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갈등과 변화의 시대에 '과거의 기독교 이해방식이 더 이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열정으로 자신의 '학문적 연구, 체험, 기억을 통합한 책'이다.

성서와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전통이 기독교의 심장이다. 
문제는 이것을 이해하는 방식(paradigm)이다.
과거 성서를 '사실' 로 받아들이는 과거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예수의 삶을 근거로 ‘ 역사적’ '은유적’ ‘성례전적' '관계적' '변혁적' 으로 성서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읽어야 한다.

예컨대 “예수는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다” 라는 고백은 “성전의 용서 독점권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의 독점권을 부정하는” (156쪽) 체제전복적 은유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뭔가를 요구하고 보상으로 상을 주거나 벌을 내리는 군주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그들을 자비의 길로 초대히는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이다.
그리스도교는 요구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 관계와 변화에 관한 것이다. (129 쪽)

저자가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얇은곳" (thin places) 이라는 표현이다. 
'얇은 곳’ 이란 실재의 두차원(하나님과 나) 사이의 경계선이 부드러워 서로 스며들고 투과할 수 있게 되는 장소(241쪽)를 상징한다.
그것은 자연 혹은 광야처럼 지리적 공간일 수도 있고, 문학과 예술일수도 있으며 또한 생의 한계상황인 질병이나 고통 혹은 애도의 순간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영은 이런 얇은 곳을 통해 활동하신다. 
예배는 얇은 곳을 창조하는 일이다 
신앙을 통한 마음의 변화, 곧 자아가 하나님과 신성함에 대해 열리는 것을 가리켜 저자는 마음의 부화(238쪽) 라 일컽는다. 
부화된 마음의 특색은 공감의 능력이며,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것이다.

성서에서 중심적 모티프가 되는 이야기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백성, 새로운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구원이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삶에 관한 이야기(276쪽) 이다.

기독교인의 삶이 관계를 맺는 것이고 또 변화하는 것이라면 거기에 꼭 필요한 것은 ‘수행(’practices) 이다.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고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서, 기독교인의 정체 성과 성품을 형성하기 위해서, 양육되기 위해서, 함께 아파하며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 길’을 살아내기 위해서(288쪽) 수행은 필수적이다.

저자는 매우 실천 적인 수행의 길을 제시한다. 
수행의 기본은 교회에 소속하는 것이다. 
그 까닭은 현대 문화가 제시하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삶의 비전을 확증하는 기억의 공동체에 소속되어 기도, 명상, 묵상, 독서, 봉사, 일상의 성화에 참여할 때 비로소 새로운 존재의 길로 접어들 수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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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와 저항
도로테 죌레 지음, 정미현 옮김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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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주의는 곧 저항이다,

오늘날 '영성' 이나 '신비'는 잘 포장된 상품 혹은 자기계발의 도구가 되어 종교상점에서 팔리고 있다. '신비' 나 '영성'은 특별하고 신령한 무언가로 여겨져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개인적 토템처럼 취급되고 있다.

그러나 '신비'는 유년시절 우리가 가졌던 경이로움의 기억, 하지만 이제는 사소하고 쓸모없게 간주되어지는 바로 그 경험이다. 신비주의는 우리 모두에게 감추어져 있는 그 감수성을 다시 허용하고 사소한 것들 안에서 끄집어내는 것이다.

천박한 내면주의를 기반으로 팔리는 오늘날의 '신비'는 영성과 은둔을 가장한 도피처로 이용되기도 하며 이치에 맞지 않는 궤변이나 열광적이고 기복적이며, 자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에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비주의에 대한 왜곡은 종교를 개인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에서 기인한다. 
종교를 개인적인 것으로 보는 자본주의적-근대적 관념은 신비주의의 불꽃을 도무지 알수가 없다. 전혀 다른 생명의 실채를 따라 자기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는 그 강렬한 불꽃을 말이다 
기쁨이라든지 행복, 신과의 연합을 개인적인 것으로 만드는 경향을 탈피하는 것이 신비주의가 진정 하고자 하는 일이다

“우리가 자연 속에서, 혹은 역사 속 해방의 경험에서 만나는 압도적인 놀라움이 없다면 그리고 아름다움의 경험이 없다면 우리를 하나됨으로 인도하는 신비주의의 길도 없다"

진정한 신비, 하나님을 직접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 세상의 권세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신비주의의 경험은 개인적 삶과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불의에 대한 저항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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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이야기 - 2015년 제3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김숨 외 지음 / 문학사상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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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이야기..김숨

일본군성노예였던 고모할머니, 입양아인 미술가,그리고 철거민처럼 강제로 뿌리뽑힌 사람들의 이야기

"태어나 수십 년을 서 있던 자리에서 뿌리 뽑힐 때 나무가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나 공포가 있을 것 같거든요. 나무는 그런데 자신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 말을 못 하잖아요?”(작가의 인터뷰 중에서)

〈뿌리 이야기〉에는 나무뿌리를 오브제로 작업하는 미술가 그리고 그와 진전 없는 연인관계를 이어가는 여자가 이야기를 이루어간다. 
입양아인 미술가는 ‘하루아침에 제자리에서 들려 내쫓긴 뿌리’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뿌리가 들릴 나무가 감당해야 하는 공포에 대해서는 어째서 생각 못하는걸까 ..
뿌리 뽑힐 듯 흔들리는 메타스퀘어들보다 그는 더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날아가지 못하도록 나는 그의 발등에 못이라도 박아 넣고 싶었다. 
그를 붙잡아둘 수 있다면 발가락마다에라도 발가락 마디마디에라도
·
얼마나 공포를 느꼈을까? 
뿌리 뽑힐 때 메타세퀘어들이 얼마나 공포를 느꼈을까?"
.
땅에서 들린 뿌리에게 허공은 죽은 어머니의 자궁 속과 같을 거야.
허공을 향해 절규하고 있었어. 
저 사철나무 뿌리가……잔뿌리 한 가닥 한 가닥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신경증적으로 구볼거리는 잔뿌리들 이 마치 내 머리카락 같아서였을 거야 
내 머리카락 한올한올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니까. ”.

여자는 서서히 굳어가는 뿌리를 보며 일본군성노예였던 고모할머니를 떠올린다. 
‘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박제새처럼 기척조차 내지 않던’ 고모할머니. 
"한방을 쓰던 고모할머니의 손이 바닥을 더듬어 여자의 손에 깍지를 껴올 때 뿌리가 감겨오는 것 같았다."

"미술가가 뿌리를 패널에 고정시키고 한 방울 한 방울 촛농을 떨어뜨릴 때 여자는 그와 돌아가신 고모할머니의 만남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하루아침에 뿌리 뽑힌 나무와 하루아침에 뿌리 뽑힌 사람들의 삶은 이렇게 연결된다. 
.
실뿌리에 대고 전지가위의 날을 벌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정말로 그럴까? 
태어난 자리에서 뿌리가 들릴 때 니무들은 공포를 느낄까? 
뿌리를 단딘단히 내리고 있는 땅이 삽이나 곡괭이질에 파헤쳐질 때 나무들은 가위에 눌린 것처럼 공포에 떨까? 
이식한 나무가 어쩌다 말라 죽는 것은 뿌리 내리고 있던 자리에서 들리던 순간의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서일까?"

작가 김숨은 
"콘크리트 벽애 박힌 못 같은 사람들에게 더 관심이 많아요
과감하게 떠나는 사람보다 한곳에 꼼짝없이 박힌 채 살아가는사람들에게 시선이 가고 그틀의 인생이 제게는 더 흥미홉게 읽혀요 
한곳에 박혀 있는 못이 시간이 지나면 부식되고 헐거워지는 것과 같이, 천천히 미미하게 변화하는 일상을 반복하듯이 살아기는 사람들.... . "

뿌리의 깊음과 애달픔을 알기에 강제로 뿌리가 뽑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절규를 예민하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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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젠더 나남신서 1467
스즈키 유코 지음, 이성순.한예린 옮김 / 나남출판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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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성노예(이하 일반적인 명칭인 위안부로 사용) 문제는 여러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어서 이해와 해결방법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나만 그런건지도 모르지만..)

알아야 반대도 하지...

"똥은 안 먹고 냄새만으로도 아는 사람" 은 책을 안읽어도 모든 내용을 파악할수 있고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을 느끼는 사람" 은 책을 보지 않아도 된다지만 불행히도 난 그런 부류가 아니라 모르면 일단 읽어야 된다.

학술적으로 가치있는 책들이 별로 많지가 않은 실정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몇 개의 분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로 민중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역사적 측면에서 일본군의 관여와 책임, 피해자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관련된 연구로 자료를 발굴하여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전쟁범죄와 국제법위반, 성범죄, 민족차별이라는 복잡한 문제 속에서 존재하였음을 밝히는 연구이다.

두번째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젠더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로서 가부장적인 한국/일본 사회를 비판하면서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루고 있다.

세번째는 일본군‘위안부’문제를 국제법적인 측면에서 연구한 논문이다.

네번째는 일본사회에서 ‘위안부’문제가 어떻게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가를 다룬 연구도 있다.

주로 많을 글들이 첫번째와 세번째(한일협정과 외교문서에 관련되서 논문이 많다..ㅡ.ㅡ;;)에 집중되어있으며 특히 잘 알려진 대부분의 한국의 책들은 첫번째 연구를 기반으로 대중적 호소와 동참을 위해 감정적 글들이 많은 편이다.

젠더적 관점의 연구는 한국과 일본에서 꾸준히 이루어 지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는 '적'과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든다고 외면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위안부’ 문제의 방치를 일본인의 전쟁관·전쟁의식 / 식민지배에 대한 무반성 / 천황의 전쟁범죄·전쟁책임 면책 / 가부장적성의식 이렇게 네가지로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스스키 유코는 1991년 9월에 정식으로 ‘성과 천황제를 생각하는 모임’을 조직해서 일본사회에 뿌리 깊게 내려오는 가부장제와 공창제도 그리고 천황제 문제가 위안부 문제와 연관 되어있음을 밝히고 천황제 페지까지 주장하고 있다.

저자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강제성을 띤 국가적인 동원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강제란 단지 연행당할 때의 물리적 강제성이나 직접적 폭력을 행사하는 곳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기만, 취업사기, 유괴, 인신매매 등 다양한 연행형태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여성들의 자유의사와 무관한 강요된 성행위는 강간이라고 고발한다.

일본군이 공창제도를 이용해서 군위안소제도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고 "국가에 의한 범죄는 그 성격상 마땅히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피해자는 국가의 성범죄 피해자로 인정되고 침해당한 인권의 일부라도 회복할 수 있다."(217쪽)고 서술한다.

"또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라는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여성에 대한 조직적인 성폭력과 성범죄가 간과되고 말았으며, 현재까지도 이 조직적 성범죄가 처벌되지 않은 상태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218쪽)

이와 같은 ‘위안부’ 범죄가 심판 받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 이것이 여성문제이고 이 문제의 미해결 뒤에는 엄연한 성차별주의가 존재한다

무엇보다 위안부 범죄가 방치되는 이유중의 하나인 일본인의 성의식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일본이 근대 공창제도를 두고 여성을 성적 도구로 취급하고 성을 국가가 관리한 역사적 경험이 결국 국가의 위안부 범죄에 이르렀다고 서술하고 있다.

여성의 성을 상품화해서 해외로 수출했던 일본의 성산업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위안부’ 문제를 분석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일본여성의 해외매춘을 묵인하고 심지어 권장했으며 일본의 식민지가 된 지 얼마 안되는 타이완에서는 창부수출론과 공창설치론이 일기 시작했고 또한 청일전쟁에 이어 러일전쟁 승리 후 조선에까지도 유곽촌을 만들었다.

다른이야기지만 일본의 조선 지배 역사는 조선에 공창제도를 심어놓은 매춘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국가적 성폭력 시스템 아래서 근대 일본여성들은 해외로 나가 '가라유키상'으로 현지에서 강제 매춘을 한 것이다.

일본여성들을 이러한 시스템에 가두었던 국가권력이 타민족의 여성들, 특히 일본 강제점령 하에 있던 여성들의 인권을 존중할 리 없었고 그녀들의 인권을 유린한 전형적인 예가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그녀들을 일본군 장병의 위문품 곧, 성노예화했던 위안부제도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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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독재 - 강제와 동의의 사이에서
책세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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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독재 1-3 임지현외 비교역사문화연구소

나치를 지지하고 유태인 학살에 침묵했던 독일대중은 죄가 없는걸까?
일본의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혹은 반대하지 않았던 일본민중들은 무죄한가?
한국에서 여전히 독재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저 속임수에 넘어간 순진한 사람들인가?
모든 잘못을 대중/민중이 배제된 구조와 권력에게만 묻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대중/민중에게도 독재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악의 평범성'에서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판단 능력을 앗아간다고 말한다. 
전체주의 체제는 대중/민중에게서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해버리고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순응하게하고 인종학살과 같은 범죄에 대해 참가하게 하거나 무관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넘어서 어떤 구조에서건 독재와 인간에 대한 억압은 단순히 지배적인 사상과 언론통제, 관료제 또는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체주의 사상이 대중/민중의 생각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결합한 출세욕과 조직을 유지하려는 욕구, 상부에 잘 보이려는 충성심 경쟁과 과시욕, 경제적인 이익같은 다양한 동기와 요인들이 독재자를 탄생시키고 유지시킨 원동력이었다는 것이 최근 연구 결과이다.

이제는 더이상 '대중'을 특정 지도자에 의해 이끌려가는 하위 계급의 군중으로 파악하지 않고 '익명의 대중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을 독재자를 통해 실현해 가는 주체로 본다.

대중독재 혹은 합의 독재는 그러한 대중/민중론을 기반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독재권력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해는 참으로 소박하다. 
좌우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적 좌파와 우파는 근대 독재체제를 이해하는데 소박한 악마론적 코드를 공유한다. 
그것은 악마적 지배권력의 억압성과 수탈성 반민족성과 반민중성을 강조하고 선량한 민중의 고통과 저항을 그것의 대립항으로 배치하는 단순한 이항대립적 회로판에 근대권력의 복합적 현실을 가두어버린다
소수의 나쁜 ‘그들’과 다수의 결백한 ‘우리’라는 설익은 도덕주의와 이분법으로 복잡한 현실을 재단하려는 기존 연구자들의 시각이 문제다."

"근대독재에 대한 악마론적 코드의 특징은 국가기구의 폭력을 통한 강제와 억압에 일방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소수의사악한 가해자’ 와 ‘다수의선량한 피해자 라는 이분법과 짝을 이루면서 민중은 순결한 희생자이자 영웅적인 투쟁과 저항의 주체여야 한다는 영웅주의적 코드와 결 합한다"

‘대중독재’ 패러다임이 파악히는 역사현실의 민중은 유동적이다 
민중의 일상적 삶은 국가권력이 침투하지 못하는자율적 일상세 계와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로 표현되는 권력의 ‘내적식민지’ 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동적인 것이다. 
‘강제와 동의’ 혹은 ‘억압과 저항’ 의 이분법에 대한 ‘대중독재의’ 비판적 시각은 바로 이러한 민중적 삶의 유동성을 비판이나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그대로끌어안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것은 “일상에서의 저항이 체제 전체에 대한 동의와 공존하기도 하고, 독재를 지지하는 원천으로서의 근대성이 저항의 동력이 되기도 하는 등 지배에 포섭된 저항과 저항을 낳는 지배의 복합적 현실":에 주목한다.
그 복합적 현실이야말로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대중의 양면성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역설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에 대한 갈망이 정의에 대한 욕구보다 앞서는 사회에서 구조적 혁명과 대중/민중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혁명은 분리될수 없다.

책의 출판이후 조희연 과의 논쟁은 흥미진진하다. 
요는 대중독재론이 저항담론을 해체시킬 우파의 무기가 될수있다는 우려와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걱정이다.

강자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수술용 메스도 약자를 죽이는 무기가 된다.
메스를 만든 사람을 탓할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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