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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독재 - 강제와 동의의 사이에서
책세상 / 2004년 4월
평점 :
대중독재 1-3 임지현외 비교역사문화연구소
나치를 지지하고 유태인 학살에 침묵했던 독일대중은 죄가 없는걸까?
일본의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혹은 반대하지 않았던 일본민중들은 무죄한가?
한국에서 여전히 독재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저 속임수에 넘어간 순진한 사람들인가?
모든 잘못을 대중/민중이 배제된 구조와 권력에게만 묻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대중/민중에게도 독재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악의 평범성'에서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 체제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판단 능력을 앗아간다고 말한다.
전체주의 체제는 대중/민중에게서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제거해버리고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어서 사람들을 순응하게하고 인종학살과 같은 범죄에 대해 참가하게 하거나 무관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넘어서 어떤 구조에서건 독재와 인간에 대한 억압은 단순히 지배적인 사상과 언론통제, 관료제 또는 위로부터의 명령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전체주의 사상이 대중/민중의 생각을 바꿨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결합한 출세욕과 조직을 유지하려는 욕구, 상부에 잘 보이려는 충성심 경쟁과 과시욕, 경제적인 이익같은 다양한 동기와 요인들이 독재자를 탄생시키고 유지시킨 원동력이었다는 것이 최근 연구 결과이다.
이제는 더이상 '대중'을 특정 지도자에 의해 이끌려가는 하위 계급의 군중으로 파악하지 않고 '익명의 대중 사회'에서 자신의 욕망을 독재자를 통해 실현해 가는 주체로 본다.
대중독재 혹은 합의 독재는 그러한 대중/민중론을 기반으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독재권력에 대한 한국사회의 이해는 참으로 소박하다.
좌우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적 좌파와 우파는 근대 독재체제를 이해하는데 소박한 악마론적 코드를 공유한다.
그것은 악마적 지배권력의 억압성과 수탈성 반민족성과 반민중성을 강조하고 선량한 민중의 고통과 저항을 그것의 대립항으로 배치하는 단순한 이항대립적 회로판에 근대권력의 복합적 현실을 가두어버린다
소수의 나쁜 ‘그들’과 다수의 결백한 ‘우리’라는 설익은 도덕주의와 이분법으로 복잡한 현실을 재단하려는 기존 연구자들의 시각이 문제다."
"근대독재에 대한 악마론적 코드의 특징은 국가기구의 폭력을 통한 강제와 억압에 일방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소수의사악한 가해자’ 와 ‘다수의선량한 피해자 라는 이분법과 짝을 이루면서 민중은 순결한 희생자이자 영웅적인 투쟁과 저항의 주체여야 한다는 영웅주의적 코드와 결 합한다"
‘대중독재’ 패러다임이 파악히는 역사현실의 민중은 유동적이다
민중의 일상적 삶은 국가권력이 침투하지 못하는자율적 일상세 계와 ‘생활세계의 식민지화’ 로 표현되는 권력의 ‘내적식민지’ 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동적인 것이다.
‘강제와 동의’ 혹은 ‘억압과 저항’ 의 이분법에 대한 ‘대중독재의’ 비판적 시각은 바로 이러한 민중적 삶의 유동성을 비판이나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그대로끌어안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그것은 “일상에서의 저항이 체제 전체에 대한 동의와 공존하기도 하고, 독재를 지지하는 원천으로서의 근대성이 저항의 동력이 되기도 하는 등 지배에 포섭된 저항과 저항을 낳는 지배의 복합적 현실":에 주목한다.
그 복합적 현실이야말로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대중의 양면성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역설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에 대한 갈망이 정의에 대한 욕구보다 앞서는 사회에서 구조적 혁명과 대중/민중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의 혁명은 분리될수 없다.
책의 출판이후 조희연 과의 논쟁은 흥미진진하다.
요는 대중독재론이 저항담론을 해체시킬 우파의 무기가 될수있다는 우려와 독재자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걱정이다.
강자에게는 사람을 살리는 수술용 메스도 약자를 죽이는 무기가 된다.
메스를 만든 사람을 탓할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