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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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저택에서 오랫동안 집사로 일해온 스티븐스. 그런 그에게 주어진 일주일의 휴가. 스티븐스는 휴가를 떠나며, 지나온 길과 마을과 풍경을 바라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마치 우리가 예전에 와봤던 곳을 다시 가게 되면 현재와 과거의 기억이 교차하듯이. 그의 현재와 과거를 따라가며 완벽한 집사로 살기를 바랐던 그의 내면이 어떻게 변하는지 비교해가며 읽어보자!

 

“하지만 이따금 한없이 처량해지는 순간이 없다는 얘기는 물론 아닙니다. ‘내 인생에서 얼마나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던가.’하고 자책하게 되는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누구나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내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더 나은 삶을 생각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저는 스티븐스씨 당신과 함께했을 수도 있는 삶을 상상하곤 한답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화를 내며 집을 나와버리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인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곧 깨닫게 되지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남편 곁이라는 사실을. 하긴, 이제 와서 시간을 거꾸로 돌릴 방법도 없으니까요. 사람이 과거의 가능성에만 매달려 살 수는 없는 겁니다. 지금 가진 것도 그 못지않게 좋다. 아니 어쩌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고 감사해야 하는 거죠.” (364쪽)

 

"즐기며 살아야 합니다. 저녁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요. 당신은 하루의 일을 끝냈어요. 이제는 다리를 쭉 뻗고 즐길 수 있어요. 내 생각은 그래요. 아니,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그렇게 말할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372쪽)

 

• 유명하다고 해서 막 집어 든 책 중의 하나였다. sf 소설이나 판타지가 취향인지라 솔직히 읽으면서 재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완독까지 읽을 수 있던 이유는 주인공의 상황이 주는 ‘공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주인공은 소설 전반에 걸쳐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하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또, 옛사랑을 찾아가며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혹시 지금에라도..?”라는 마음을 품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면 점차 그에게 물들어 나 역시 과거에 후회하고 있는 일은 없는지, 젊은 날에 놓쳐버린 기회는 없는지 돌아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이 공감을 불러일으켜, 종이를 넘어 독자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게 스티븐스의 회상과 나의 회상을 번갈아가면 어느새 스티븐스의 휴가는 끝나 있다. 몰입해서 단숨에 팍 읽기보다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인생 사는 얘기를 듣는 것처럼 흐르듯이 읽기를 추천한다. 근래 읽은 책 중에는 <스토너>와 결이 비슷하지 않나 싶다.

 

“하지만 이런저런 순간에 다르게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고 앉아 있어 본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음만 심란하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전환점’이 어쩌고저쩌고하지만 내가 그런 순간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돌이켜 볼 때 뿐이다.”

(2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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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ㅣ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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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에 적힌 글처럼, 미술과 천문학에 만남을 담은 책이다. 2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는 행성 하나마다 담고 있는 미술•예술 얘기를 보여주고 2부는 미술 작품 속 숨어 있는 UFO 얘기를 하거나 작품에 담긴 점성학을 풀어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2부보다는 1부가 행성 단위로 진행되는 점에서 더 체계적이고 흥미로울 거라고 기대했지만, 의외로 나한테는 UFO 같은 음모론 분위기를 풍기는 2부가 더 취향에 맞았다.

 

• 아까 말한 대로 2부 중에서 UFO 얘기가 제일 재밌게 느껴졌는데, 미국 정부와 국방부에서 UFO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도 했고, 이집트 벽화처럼 오래된 그림이나 여러 유물을 보면 굉장히 UFO스러운 애들(?)이 많이 등장하니... 어쩌면 늙어 죽기 전에 외계인을 만나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 유튜브 채널 중에 ‘널 위한 문화예술’이라는 채널이 있다. 공연이나 전시 정보를 주로 다루는데 가끔 미술사 쪽으로 작품과 연관된 비하인드를 풀거나 이슈를 알려주는 등 미술에 좀 관심이 있다면 추천하는 채널이다. 책이 가진 컨셉 덕에 여러 미술 작품의 사진이 등장하는데, 이 흐름이 뭔가 해당 채널이 생각나서 후일담으로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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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인문학 ㅣ 석탑 인문학 시리즈 2
최규홍 외 지음 / 석탑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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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알라딘 매장을 둘러보다가 중고 서적 매대에 꽂혀 있던 이 책을 발견했다. 13년도에 출간되었으며 천문학, 불교, 유학, 기독교, 철학까지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해 각자의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서술한다는 컨셉이 너무 좋게 느껴져서 바로 구매해 버렸다. 하지만, 책의 내용이 어려운 것일까 아니면 내 지적 능력에 한계인 것일까. 완독했음에도 솔직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런고로 오늘은 그냥 시시덕거리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책이 다 좋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책을 다 추천할 수 없는 것처럼!

 

• 첫 부는 천문학이 가져가는데, 초반에는 진짜 우주 얘기만 쭉 나오다가, 부가 끝나갈 때쯤 천문학자가 바라본 하늘나라는~ 이러면서 운을 띄운다. “아 드디어 유토피아든 하늘나라든 천문학적 시선으로 해석을 해주나?” 하는 기대와 달리 하늘나라는 우리의 푸른 지구였다는 내용이 참... 천문학자가 바라본 유토피아는 이런 거라며 해석은커녕, 우주과학책을 읽은 거나 다름이 없다. 각자의 유토피아를 말하는 컨셉이니, 천문학의 유토피아는 지구라는 말이 컨셉적으로도 내용적으로 틀린 건 아니지만. 온갖 우주여행을 하며 도달한 결론이 살기 좋은 지구라는 게 조금은 유치하게 느껴졌다.

다음은 불교인데, 여기도 난관이었다. 정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불교 용어가 등장해서, 검색으로 뜻을 찾아보고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면 또 처음 보는 불교 용어가 등장하고. 불교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어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읽은 부이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래도 불교의 유토피아, 극락세계는 흥미로웠는데, 물질이 절대적으로 풍요로우면 대중들이 깨달음을 속히 얻을 수 있다는 설정이다. 일단 불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비움’이나 ‘무소유’ 이런 것인데, 극락세계는 이런 이미지와는 반대되는 형태라는 게 신기했다.

유학에서의 유토피아는 대동. 모두가 공정한 대동 사회이다. 사람들은 출신 상관없이 능력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고, 약자와 노인들은 배려받으며 도덕적 평화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사회를 최고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학문의 시선으로 보면 유학이 현재까지 성행한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유학의 대동사회가 현재 사회의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게 의외였다. 심지어 유학, 공자가 등장한 시기를 생각하면 기원전 5세기쯤인데... 까마득한 과거의 이상향이 현재의 이상향과 근접한다니.

후반부에 등장하는 부들도 비슷한 형식으로 진행되어서 생략했다. 내용도 많이 어렵고, 239쪽이라지만 독서 피로감이 빨리 쌓이는 느낌이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해도 다 못했는데, 감히 추천하는 게 맞을까 하는 생각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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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관측소 - 유동하는 도시에서 '나'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
김세훈 지음 / 책사람집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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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내용에 앞서, 구성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차례가 시작되기 전에 책에서 다루는 주요 개념들을 설명하는데, 간략하게나마 개념들에 대해 알고 들어가게 하는 점이 친절하게 느껴졌다. 차례는 마인드맵처럼 원형으로 디자인했고, part(부)와 chapter(장)로 구성되어 각 부와 장이 끝날 때마다, ‘관식’과 ‘애순’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서로 얘기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못다 한 얘기를 보충해준다. 첫 문단 띄어쓰기도 문단 소제목이 들어갈 만큼 길게 띄어 쓰고, 쪽수 표기도 한쪽에 두 쪽의 번호를 모두 적어두는 식으로... 책을 구경하는데 솔직히 내용보다는 디자인과 독특한 구성에 이끌려서 구매한 감도 있다. (등장인물이 관식이, 애순인 것도 웃음 포인트)

 

• 여러 사례와 도시들이 등장하지만, 제일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3부 ‘움직이는 도시, 새로 쓰는 규칙들’이다. 기업들은 제조 위주 활동에서 기획과 마케팅 활동을 위주로 변화하고, 초기 도시는 일자리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는데 점차 생활 시설들이 생기며 복합문화 공간으로 변화하고, 정보 통신의 발달로 카페와 약국 등이 선호하는 1층의 입지가 (눈에 띄기 좋은 위치) 줄어들고 있다는 말 그대로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을 담은 부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디지털 관련 얘기가 인상 깊었는데, 일본의 세워진 거대한 건담 동상이나 대형 게임 회사들의 사업 확장, 그런 디지털 콘텐츠를 좋아하는 ‘덕후’들을 위한 오프라인 공간 협업까지. 책에서는 또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 제작을 위해 하드웨어적인 (공간 협력적인) 기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점에서, 온라인 콘텐츠가 흔히 말하는 팝업의 형태로 오프라인으로 넘어오는 것 이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부라고 생각했다.

 

• 책과 좀 비슷하지 않나 싶어 얘기를 꺼내보자면, 오래전 미국의 공장단지 구역이 대거 철수하면서 남는 공장 내부 시설을 개조하여 원룸처럼 방을 대여해주었다. 돈은 없는데 당장 살 곳이 필요한 젊은 예술가들이 그런 공장단지에 모여들고, 거대한 기계가 들어찼던 공간은 점점 갤러리의 형태로 변하고 수집하기를 좋아하는 부유한 사업가, 신인 예술가를 영입하려는 사람 등등 많은 사람을 끌어오고 교류를 만들었다고 한다. 비슷한 흐름으로, 예술 작품을 판매할 때, 갤러리 한 곳에만 출품하는 것이 아닌 정말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출품을 시도하는 것이 유명세도 얻고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었다고 한다. 예술적인 예시로 한정되긴 했지만, 가치를 높이는 것에 있어서 교류와 유통은 정말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여러 이론과 실제 예시(도시)를 제시•분석하며 자신의 가치를 활성화할 장소를 찾는 능력을 키워줄 책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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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1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채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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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작가상. 한국 소설장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신인 작가들을 위한 상이라고 한다. 마음 같아선 7명의 7작품을 모두 글로 써내려가고 싶지만, 분량 문제상... 유독 기억에 남던 작품들 조금만 주저리를 해보겠다.

 

• <별 세 개가 떨어지다> - 김채원

연락이 두절된 할아버지가 잘 계시나 걱정되어 찾아간 두 자매. 자매는 할아버지의 근황에 안심하고 며칠 더 머물기로 하는데, 머무는 동안 할아버지의 밭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그 후에 ~하는 내용이다.

작품집의 첫문을 여는 소설인데, 처음부터 시체 유기라니. 소재가 굉장히 흥미로웠고 그만큼 뒤에 등장할 소설들이 기대되는 장치의 역할도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이 소설을 읽으며 ‘무언의 압박’을 받는 기분이 계속 들었다. 시체에 대한 풀이는 전혀 없고 할아버지는 별 감흥도 없다는 듯이 밭에 묻자고 하는데, 논리적으로는 당장 놀래면서 경찰에 신고해야겠지만, 할아버지의 냉랭한 반응에 우리는 그저 따라가야 한다. 뇌에서는 이건 범죄라며 외치지만, 할아버지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몸은 시체 유기를 하고 있고 “이거 어쩌지, 평생 비밀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주인공 자매들도 이게 진짜 맞나 싶은 반응을 보인다. 시체 유기와 비밀. 하면 안 되는 일인데 이미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압박감. 소설책을 피고 10장 만에 우리는 비밀이 생겼다.

구성적으로 초반에 모과 열매가 떨어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책에 모과 열매의 실사 사진이 같이 실려 있다. 소설에서 실사 사진이라니! 실사 사진 덕분에 뒤에 서술된 내용들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는 생각도 든다.

 

•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 함윤이

어느 산의 천문대에서 사람들이 계속 이상한 짓을 한다는 민원이 들어와 확인차 천문대를 방문하는 노아와 녹원. 마주하게 된 사람들은 어느 종교 집단으로 보였는데, 생각보다 말도 잘 통하고 심지어 2주 뒤에 있을 큰 종교 행사에 참여하라고 선뜻 권유하기까지 한다. 그 행사는 다른 직원들이 보기엔 그저 방화에 불과하지만, 노아에게는 무언가 불을 지피게 한 듯하다.

소설, 영화, 드라마 등 수상한 짓거리를 하는 꼬롬한(?) 단체가 나오면, 보통 정신이 나갔거나~ 우주적인 존재를 섬긴다거나~ 사이비이거나~ 아무튼 코즈믹호러 혹은 공포스러운 내용이 나왔던 거 같다.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에도 사이비가 등장하긴 하지만, 사이비가 중심이 아니라 사이비 때문에 변화를 겪은 사람이 주인공이라니! 새로운 관점의 등장은 언제나 환영이다. 10장 정도 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분량이 더 확보되었다면 한강의 <채식주의자>처럼 변화를 맞이한 주인공의 사건사고를 관찰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는 문득 자신이 집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 어머니 말대로 정말이지 낯선 장소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등뒤의 신축 건물부터 저 멀리에서 반짝이는 차와 집들의 불빛까지. 모든 것이 수상쩍고도 새삼스러웠다. “새로운 세상.” 노아는 중얼거렸다.” (318쪽)

 

다시 돌아와서... 이 소설은 참 ‘단어의 밀도’를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소설 속 사이비들 때문에 노아가 변한 것 같다곤 했지만, 그 변화를 그나마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건 사실 소설의 엔딩 부분이다. 물론 10장 정도 되는 짧은 소설이라는 태생적 한계도 있으니 말이다. 그 분량 속에서 작가는 노아의 “새로운 세상.”이라는 한번에 중얼거림으로 노아에게 변화가 있음을 알린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우리는 찝찝해하고 뒤숭숭한 기분이 들며 자기 전에 막 생각나지 않는가. 새로운 세상. 그 밀도 있는 단어와 엔딩에 갇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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