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식 형의 옛 노래를 들으며 우리의 가버린 청춘이 생각나 아스라이 아파왔고 결국 노래 끝에 울어버렸다.
아무도 신경 안 쓰고 내 생각과 느낌에 갇혀서 하고픈 대로 노래했던 모습을 누군가 지켜봤고 기억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호감과 호기심이 마이크 앞에 나를 앉혔고, 그 마음은 한결같다
언니, 이젠 더 올라간다는 생각 버려도 돼. 그만 내려와. 이제 잘만 내려오면 돼
이렇게 인생의 정점이 찍히는 걸까? 과연 정점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언제까지 노래할 수 있을까?
즐겁게 놀듯이 노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쉽지 않은 얘기다. 슬렁슬렁 놀듯 무대를 누비며, 숨 쉬듯 말하듯 하는 노래. 언제쯤에야 그런 경지에 닿을 수 있을까?
아마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내려올 수도 있겠지.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할 땐, 어린 날 햇병아리도 못 된 아르바이트 달걀 가수 시절에 뼈에 새긴 결심을 떠올린다.
‘내 노래를 들어주는 한 사람의 가슴이 있다면 난 노래할 거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박이 터지는 건 어쩌면 운이지만, 정성은 이쪽 몫이다. 잊지 말자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마냥 흐를 수 있고, 기뻐도 울 수 있고,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한 나머지 울 수도 있다.
객석과 따로 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눈높이를 맞추는 마음으로, 노래가 가슴을 울리며 계속 메아리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노래가 가진 힘일 것이다.
처음 내가 본 그 관객 아저씨의 사막 같았던 마음이 녹아내린다면, 그 눈물이 수년 만에 처음 흘리는 눈물이라면, 가슴이 다시 청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언젠가 대중탕에서 내게 바나나우유를 건네며 "예쁜 사람이라서 사주고 싶었어요" 하신 어느 고운 어르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얼마나 마음 씀씀이가 고우시면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언가를 해주고픈 마음이 생기는 걸까.
얼굴이 다르듯 제각기 다른 가슴과 사연으로 양희은이란 깃발 아래 모여주신 분들의 소중한 시간에 부끄럽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겠다
매달 마감해야 하는 ‘여성시대’ 원고는 왜 꼭 마감 날 새벽에 쓰는 걸까? 미리미리 준비하는 일이 무에 그리 힘들다고.
집에 누가 들락거리는 것도 기운을 흐트러트리는 일이라 손님을 맞거나 밥 차리는 일도 피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기도하는 사람처럼 마음을 단단히 여미고 임한다.
애써 지키지 않으면 일의 뒤끝이 씁쓸해지기 때문이다.
작은 녹음기 앞에서 노래가 완전히 몸에 배고 입에 붙기까지 시간을 들여 한 곡 한 곡 여러 번 연습한다.
시간이 드는 일은 건너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반드시 그만큼 시간을 충분히 써야 한다
노랫말이 안 써진다고 응석을 부린 게 엊그제 같은데 내 몫은 거의 다 해냈다.
혼자 있으면서 가사 쓰고 반주에 맞춰 연습하는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다. 제대로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사람들 앞에 서면 그 잔잔함은 이내 깨진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이 편치 않다.
특히 공연이 시작되면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몫을 혼자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아무도 없이 무대에 혼자 있을 때나, 첫 곡 첫 소절을 던질 때면 그렇게 떨릴 수가 없다.
떠나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공연 무대에 올랐을 때엔 심장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객석에 전해지는 듯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여기서 픽 하고 기절하면 얼마나 편할까!’
만화처럼 픽 하고 쓰러져서 구두 밑창만 보이는 모습을 늘 상상했다.
긴장은 연습을 많이 하거나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공연보다는 공포와 싸운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모든 고수들이 초야에 묻혀 있다는 생각이 무대 공포증의 원인인 것 같다.
더 노래를 잘 알고 잘 부르는 이들이 객석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보면 형제 중에서도 진짜 잘 하는 사람은 나서지 않고, 실력이 그보다 조금 하수인 사람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 같다.
어떤 이가 ‘긴장하는 자세야말로 프로’라고 했단다.
무대를 온전히 즐기고 놀듯이 하는 것이 최고라지만, 긴장을 하지 않으면 일종의 타성이 붙어 객석을 갖고 놀게 된다. 그래, 차라리 두려움으로 떨면서 무대에 서는 편이 훨씬 낫겠다.
예전에는 공연 시작하고 한 시간은 지나야 긴장이 풀렸는데 이제는 20분여쯤 지나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가끔 내 노래에 머리카락이 곤두설 때가 있다. 스스로 위로받는 순간이 그러하다
내 생애 마지막 공연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홀가분할 것 같다. 노래는 언제나 넘어야 하는 높은 산이었으니까.
마지막 무대에서 슬프거나, 혹은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나에게 가수 생활 51년이 어땠는지 묻지만, 난 그 51년이 ‘오~~십일 년’ 이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51년이라 해도 하루하루가 쌓여서 모였으니까.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은 듯이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냥 휙 지나가고 말았다는 어른들 얘기가 맞는 것 같다.
앞으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저 담백한 찌개 같은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래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우리도 사람마다 겪는 일이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르듯, 똑같은 빛도 이렇게 관통시키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이 되어버리는구나.
매일 똑같은 일을 해도 느낌과 깨달음이 그날그날 달라지는 것도 바로 이 탓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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