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시켜서 혹은 남을 따라서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찾아 하는 경험은 굉장히 소중하다.

꼭 성공하거나 끝까지 할 필요는 없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그만둬도 된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다 보면 정말 내가 어떤 일에 행복을 느끼고,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이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일을 해낼 때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된다.

나는 내 인생에 대해 남들보다 훨씬 많은 책임을 지고 있다. 그래서 훨씬 더 깊이 고민해본 사람이다. 그 걱정들을 나라고 안 했을까?

걱정스러운 조언을 던져주는 사람의 걱정은 조언하는 순간에서 끝이다. 그 이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이미 내가 고민을 끝낸 문제에 대해 상대방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하면 나는 반박하지 않고 웃으면서 "네, 호호, 그러게요"라고 대답하고 만다. 그러고 나서 그냥 신경 쓰지 않고 하던 대로 한다.

나는 이미 내 선택을 책임 질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의 조언을 듣지 않고 마음대로 하다가 힘들어서 후회한 적도 많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를 배우고,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을 하나 더 가져보는 것이다.

이건 해보니까 되더라, 또 어떤 건 해보니까 힘들더라 하는 경험을 하나 더 쌓는 것이다.

훗날 누군가 때문에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도 못 했다며 원망하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덜 구질구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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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하루하루가 쌓여 사람마다 꺾이는 각도가 달라진다

창식 형의 옛 노래를 들으며 우리의 가버린 청춘이 생각나 아스라이 아파왔고 결국 노래 끝에 울어버렸다.

아무도 신경 안 쓰고 내 생각과 느낌에 갇혀서 하고픈 대로 노래했던 모습을 누군가 지켜봤고 기억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호감과 호기심이 마이크 앞에 나를 앉혔고, 그 마음은 한결같다

언니, 이젠 더 올라간다는 생각 버려도 돼. 그만 내려와. 이제 잘만 내려오면 돼

이렇게 인생의 정점이 찍히는 걸까? 과연 정점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언제까지 노래할 수 있을까?

즐겁게 놀듯이 노래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하지만 쉽지 않은 얘기다. 슬렁슬렁 놀듯 무대를 누비며, 숨 쉬듯 말하듯 하는 노래. 언제쯤에야 그런 경지에 닿을 수 있을까?

아마 끝까지 해내지 못하고 내려올 수도 있겠지.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할 땐, 어린 날 햇병아리도 못 된 아르바이트 달걀 가수 시절에 뼈에 새긴 결심을 떠올린다.

‘내 노래를 들어주는 한 사람의 가슴이 있다면 난 노래할 거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고 박이 터지는 건 어쩌면 운이지만, 정성은 이쪽 몫이다. 잊지 말자

가만히 보면 눈물도 여러 가지다.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이 마냥 흐를 수 있고, 기뻐도 울 수 있고,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한 나머지 울 수도 있다.

문제는 객석과의 공명이고 공감이다

객석과 따로 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 눈높이를 맞추는 마음으로, 노래가 가슴을 울리며 계속 메아리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노래가 가진 힘일 것이다.

처음 내가 본 그 관객 아저씨의 사막 같았던 마음이 녹아내린다면, 그 눈물이 수년 만에 처음 흘리는 눈물이라면, 가슴이 다시 청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언젠가 대중탕에서 내게 바나나우유를 건네며 "예쁜 사람이라서 사주고 싶었어요" 하신 어느 고운 어르신의 모습이 겹쳐졌다.

얼마나 마음 씀씀이가 고우시면 가족도 아닌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언가를 해주고픈 마음이 생기는 걸까.

얼굴이 다르듯 제각기 다른 가슴과 사연으로 양희은이란 깃발 아래 모여주신 분들의 소중한 시간에 부끄럽지 않도록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겠다

매달 마감해야 하는 ‘여성시대’ 원고는 왜 꼭 마감 날 새벽에 쓰는 걸까? 미리미리 준비하는 일이 무에 그리 힘들다고.

집에 누가 들락거리는 것도 기운을 흐트러트리는 일이라 손님을 맞거나 밥 차리는 일도 피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기도하는 사람처럼 마음을 단단히 여미고 임한다.

애써 지키지 않으면 일의 뒤끝이 씁쓸해지기 때문이다.

작은 녹음기 앞에서 노래가 완전히 몸에 배고 입에 붙기까지 시간을 들여 한 곡 한 곡 여러 번 연습한다.

시간이 드는 일은 건너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니 반드시 그만큼 시간을 충분히 써야 한다

요즘 매일매일이 노래 연습이다.

노랫말이 안 써진다고 응석을 부린 게 엊그제 같은데 내 몫은 거의 다 해냈다.

혼자 있으면서 가사 쓰고 반주에 맞춰 연습하는 시간들이 너무너무 좋다. 제대로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잔잔한 행복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다.

그런데 사람들 앞에 서면 그 잔잔함은 이내 깨진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이 편치 않다.

특히 공연이 시작되면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몫을 혼자서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

무대에 설 때마다 말도 못하게 긴장한다.

아무도 없이 무대에 혼자 있을 때나, 첫 곡 첫 소절을 던질 때면 그렇게 떨릴 수가 없다.

떠나 살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오랜만에 공연 무대에 올랐을 때엔 심장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객석에 전해지는 듯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여기서 픽 하고 기절하면 얼마나 편할까!’

만화처럼 픽 하고 쓰러져서 구두 밑창만 보이는 모습을 늘 상상했다.

긴장은 연습을 많이 하거나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었다.

공연보다는 공포와 싸운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모든 고수들이 초야에 묻혀 있다는 생각이 무대 공포증의 원인인 것 같다.

더 노래를 잘 알고 잘 부르는 이들이 객석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보면 형제 중에서도 진짜 잘 하는 사람은 나서지 않고, 실력이 그보다 조금 하수인 사람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 같다.

어떤 이가 ‘긴장하는 자세야말로 프로’라고 했단다.

무대를 온전히 즐기고 놀듯이 하는 것이 최고라지만, 긴장을 하지 않으면 일종의 타성이 붙어 객석을 갖고 놀게 된다. 그래, 차라리 두려움으로 떨면서 무대에 서는 편이 훨씬 낫겠다.

예전에는 공연 시작하고 한 시간은 지나야 긴장이 풀렸는데 이제는 20분여쯤 지나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가끔 내 노래에 머리카락이 곤두설 때가 있다. 스스로 위로받는 순간이 그러하다

내 생애 마지막 공연을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마 홀가분할 것 같다. 노래는 언제나 넘어야 하는 높은 산이었으니까.

마지막 무대에서 슬프거나, 혹은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사람들은 나에게 가수 생활 51년이 어땠는지 묻지만, 난 그 51년이 ‘오~~십일 년’ 이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51년이라 해도 하루하루가 쌓여서 모였으니까.

세월이 얼마 지나지 않은 듯이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냥 휙 지나가고 말았다는 어른들 얘기가 맞는 것 같다.

앞으로 노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그저 담백한 찌개 같은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노래를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우리도 사람마다 겪는 일이 다르고 사는 모습도 다르듯, 똑같은 빛도 이렇게 관통시키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이 되어버리는구나.

매일 똑같은 일을 해도 느낌과 깨달음이 그날그날 달라지는 것도 바로 이 탓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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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쓸 수 있으면 나도 쓸 수 있겠지
예전에도 프렙 쓰기 책 읽었었는데
실천을 안 했더니 기억이 안 난다
초등학생용이니 더 잘 기억할 수 있겠지!


초등학생의 글쓰기 실력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심각한 수준을 넘어 손쓰기 어려운 지경이라 백약이 무효라고도 합니다.

그 이유를 지나친 스마트폰 사용으로 돌립니다. 다른 이유로 독해력 저하를 들기도 하고, ‘글쓰기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초등학생도 글쓰기에 대해서는 짜증을 넘어 두려움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글쓰기의 기술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 이른바 사고력입니다.

논리력과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해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글쓰기가 쉬운 사람은 드물지요. 내 생각이 고스란히 원고지에 드러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의 수준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하는 고백과 함께 자신의 민낯을 들여다보기 때문입니다.

‘내 머릿속에 무엇이 있기에 문자로 옮기기가 이토록 어렵단 말인가?’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쓰기입니다.

글을 쉽게 쓰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입니다.

편지 한 장을 쓰기 위해 편지지를 수차례 구겨본 사람은 잘 압니다.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이나 글을 쓰는 직업인이나 결론은 같습니다. 글쓰기는 어렵고 머리 아픈 일입니다

이 책에서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글쓰기는 의사소통과 논리력 향상을 위한 것입니다.

남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써야 할까,를 고민한 책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으로 학습하고 나면, 두려움에서 벗어나 쉽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의 구조를 알면 쉽게 쓸 수 있습니다.

글의 구조란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형식입니다.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학생들에게 글의 구조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글이든 내용과 구조가 있습니다.

우리는 구조보다 내용에 치중해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글을 ‘쓰기’보다 ‘짓기’에 초점을 두었던 지난날의 글쓰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글짓기라고 하지 않고 글쓰기라고 합니다.

이 책은 감정을 담아내는 글쓰기(Impress)보다 자기 생각을 상대방에게 분명하게 전달하는 의사소통을 위한 글쓰기(Express)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생각을 분명하게 주장하고 바르게 전달하여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글쓰기의 구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프렙을 플랫폼으로 하면 일기 쓰기, 독후감 쓰기, 편지 쓰기, 주장하는 글쓰기, 논술형 평가 등이 수월해집니다. 프렙 구조는 글쓰기 플랫폼입니다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글쓰기입니다.

글쓰기에는 생각도 필요하고 내용도 필요하고 형식도 필요합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남과 다른 생각이나 감성, 관점도 필요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만한 설득력도 있어야 합니다.

이 모두를 글에 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길이가 길면 읽으려 하지 않습니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바쁩니다. 읽기도 전에 결론이 뭐냐고 묻거나 결론이 보이지 않으면 바로 고개를 돌립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학교 현장의 쓰기도 ‘글짓기’에서 ‘글쓰기’로 바뀌었습니다. 쓰기가 ‘무엇을’ 쓸 것인가에서 ‘어떻게’ 쓸 것인가로 변한 것입니다

말하기 연습을 마친 후에 프렙 쓰기로 이어가기를 권합니다.

글을 쓰기 전에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라는 과제와 문제를 발견하여 쓰라는 과제입니다.

‘문제 해결형’의 대표적인 과제가 답안지 쓰기입니다.

주어진 문제를 읽고 답안지에 작성하면 됩니다.

프렙 쓰기 초반에는 주제를 주고 쓰게 합니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한다’, ‘책을 읽어야 한다’ 등이 대표적입니다.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는 이유와 사례를 들어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연습입니다.

‘문제 발견형’의 대표적인 쓰기가
독후감입니다.

책을 읽고 자신이 느낀 점을 주제로 잡아서 쓰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방법이 아닌 프렙 구조로 독후감을 쓰려면 자신의 주장이 무엇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를 읽은 책에서 근거로 제시하고 실제로 경험한 사례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정에서 아이의 글을 어떻게 수정해주어야 할 것인가를 안내합니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이들은 시험지의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도 말합니다.

글쓰기는 어렵습니다.

눈만 뜨면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유튜브 세상에 무슨 쓰기란 말입니까?

쓰기의 기회가 줄어드는 것도 무시 못 할 사회적 변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건 이상의 문자로 소통합니다.

이것도 쓰기지만 우리가 바라는 쓰기는 아닙니다.

내가 쓴 글을 읽은 상대가 내 뜻을 알아주고 이해하기를 기대합니다.

기회란 ‘할 수 없는 이유’보다 ‘할 수 있는 이유’가 많아지는 것을 말합니다.

프렙 쓰기는 남보다 더 잘 쓸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줍니다. 이제 이를 피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요

1. 프렙(PREP) 쓰기를 해야 하는 이유

1) ‘무엇을’과 ‘어떻게’를 동시에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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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리더십, 특히 리더 개개인이 지성과 남다른 수준의 능력, 개성의 힘, 탁월한 설득력 등으로 성취할 수 있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겼다.

다양한 유형의 인물들이 어떻게 실제 리더가 되어 지속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그래서결례를 무릅쓰고 리더들을 처음 만날 때마다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에 대해 묻는 습관이 있었다. 

‘당신을 탁월한 리더로 만든 결정적 요인은 무엇인가?‘ 

‘운, 추진력, 재능, 훈련, 경험 또는 그 밖의 다른 요인은?‘ 

‘리더십을 어떻게 발견했고, 어떻게 키워나갔는가?‘ 

‘리더십을 어떻게 실행에 옮겼으며, 어떤 인상적인 결과를 얻었는가?‘

저명한 비즈니스 업계, 정부기관, 문화계 리더를 거의 매달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2016년 블룸버그 TV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쇼 피어 투 피어 Peereer toPeer)(2018년부터 PBS에서도 방송)를 시작하면서 ‘리더들이 하는 행동‘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다.

이 책은 이러한 수많은 인터뷰의 결과물이다. 

다양한 리더들의 통찰력 있는 관점을 제시해 독자들이 스스로 리더십을 계발하는 데 좋은 동기부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필하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리더십 관련 책들을 읽는다고 해서 모두 리더가 될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리더들에 관한 이야기는리더가 되어야 하는 사람들의 삶과 커리어에 큰 유익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다룬 인물들은 아이디어와 추진력만 갖고 시작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리더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가치를 발견하며 인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야기마다 깨닫는 바가 많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그토록 리더가되고 싶어 할까?

먼저 리더는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키는 변화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리더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셋째, 리더는 충족감과 행복을 주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쓴 이유는 강인한 결단력과 재능을 갖춘 리더들이 인류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뛰어난 리더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분명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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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을 지극히 당연하게 하는 것이다."

링컨의 말뜻을 자기 비하에서 나오는 지나친 겸손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겸손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아요’를 남발하는 이유는 자신의 말에 확신이 없어서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을 못 하고 오락가락 망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 의견을 밝히다가 끝맺을 때 대충 ‘같아요’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이 말투는 자신의 인상에도 문제지만 대화할 때 장애를 만든다. 상대가 말끝마다 ‘같아요’, ‘같습니다’ 식이면 누가 그를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신뢰를 쌓겠는가?

"자신감 없어 보이는 표현도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표현을 쓰면 대화가 꽉 막혀 의미 없는 소리에 머물고 만다.

그래서 자신감 없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도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니, 책임지는 걸 싫어하는 거 아니야?

‘아무거나’라고 말하면 안 된다. 이는 함께 밥을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절대 아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정하지 못했고 중요한 결정은 타인에게 의존했으며 자신의 결정이 잘못될까 봐 걱정했다.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아무거나요’라고 하는 증상이 심할 경우에 ‘의존성 인격 장애’로 진단한다.

이를 앓는 사람은 부모에게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자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인이 돼서도 독립적으로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지 못해 타인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보인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견을 물으면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고 ‘아무거나요’를 남발한다

직장 상사가 어떤 프로젝트가 좋으냐고 물을 때, 이성 친구가 어떤 이벤트가 좋으냐고 물을 때, 친구가 함께 보낼 휴가 여행지를 물을 때 ‘아무거나’라고 하지 말자.

‘아무거나요’는 결코 배려의 표현이 아니다.

자기 의견을 분명히 밝혀야 대화할 때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말할 때마다 ‘때문에’를 붙이는 사람이 있다. 말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쌓인다.

스스로 자기 말 습관, 말버릇을 알아차리기란 힘들다.

하지만 자신이 자주 쓰는 말의 의미와 뉘앙스를 인식한다면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구실부터 대려고 한다.

책임을 전가하려는 마음이 도사리고 있어서다.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하는데 상대방이 자꾸 핑계와 변명을 대고 책임을 외부에 전가하려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한마디로 비호감이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때문에’를 자주 쓰면 오해받을 일도 많고 비호감으로 보이므로 자제해야 한다.

그 대신에 ‘덕분에’를 자주 쓰자.

‘때문에’를 아예 쓰지 않기가 쉽지 않다면 ‘때문에’를 한 번 말할 때 ‘덕분에’를 반드시 세 번 말하자

"대화의 목적은 설득이 아니라 이해와 공감입니다."

상대방이 나의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실망할 이유가 없다.

대화는 설득이 아니라 상대의 생각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주장을 주입하고 상대를 설득하지 못해서 실망할 사람은 영업직만 해당할 뿐이다.

이들에게는 설득이 곧 대화의 목적이자 영업자로서 존재 이유이니까 말이다.

아들에게 늘 ‘틀렸다’며 스트레스를 주는 엄마, 직원에게 ‘틀렸다’고 지적하며 퇴사 욕구를 일으키는 상사는 대화 습관을 바꿔야 바람직하다.

습관적으로 ‘아니’라고
말해 버린다
심리적 안정장치

먼저 말하는 사람의 심리가 매사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현상을 두고도 유독 부정적인 면만을 본다.

이들은 유리컵에 물이 반만큼 채워진 상태를 보고 부정적으로 "반밖에 안 차 있네"라고 말한다. "반이나 차 있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도 부정적인 면을 먼저 보고 이 또한 부정어로 표현한다.

다음으로 부정어를 자주 쓰는 사람들은 안정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다. ‘(무엇을) 한다’고 해도 될 것을 그 반대말인 부정어 ‘(무엇을) 하지 않는다’를 써서 심리적 안정장치를 마련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한쪽이 애정을 확인할 때 심리적 안정장치를 마련하고자 하는 상대방은 이렇게 답한다.
 
"나를 사랑해?"
"사랑하지는 않아."
 

부정어가 들어간 이 대답은 애매모호해서 오해를 사기 쉽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부정어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부정적인 성향의 사람이 내뱉는 부정어는 상대의 기분을 해친다.

그리고 부정어는 의미가 애매모호해 의사를 부정확하게 만든다

장황한 말은
의미도 쓸데없게 만든다

말의 목적은 공감과 소통하는 데 있다.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의견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더욱이 쓸데없이 많이 쏟아 낸다면 그 자체로 소통에 장애 요소가 된다.

사람들은 그리 한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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