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쓴 에세이
기대했던 내용은 아니지만
신경쓰지 않았던.
생각해보지 않았던
신체 기관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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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들은 얼굴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얼굴은 언제부터 인생을 향해 의미를 던지고, 용모를 중시하게 될까?

누군가는 얼굴 때문에 손해를 보지만, 누군가는 덕분에 우위를 점한다. 이 외모의 도시에서 무섭게 생긴 얼굴은 일종의 보호기제가 될 수 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니타를 만난다면, 어쩌면 그녀의 얼굴에서 요동치는 세월을 알아차릴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정말로 그녀의 얼굴에만 시간이 멈춰 자잘한 손해를 보는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카락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냄새와 기름때, 비듬, 헤어 왁스의 찌꺼기, 심지어는 머릿니, 버짐, 서캐가 숨어 있다. 곱슬머리, 직모, 구불구불한 모양, 나선 모양, 검은색, 적갈색, 황금빛…. 모든 가닥은 한 사람의 체질 정보가 기록된 DNA 암호다.

머리카락과의 접촉은 손이 맞닿는 것보다 나를 더 불안하게 한다

머리카락은 머리에서 자란다.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고 외형을 완전히 바깥으로 드러내지만, 실은 지극히 내향적이다.

나는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할머니는 전화를 받을 때, 수화기 저편의 멀고 낯선 세상과 마주할 일이 두렵고 불안하셨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청력이 퇴화하면 세상은 거대한 무언극의 무대가 된다.

귀는 나이를 향해 독재를 뻗치기 시작한다.

우리의 만년을 침묵 속에 가두는 것이다. 하지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침묵은 일종의 보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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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속으로 ‘이봐, 나 좀 봐 달라고!’라며 소리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리 상담사에 대한 나의 분노도 "나 좀 이해해 줘, 나를 이해해 달라니까, 나를 이해해 줘"라는 외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느 날 심리 상담사에게 이런 내 욕구를 큰소리로 외치고 난 후에야, 나는 분노의 뿌리를 파악하게 되었다.

단 한 번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은 부모님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한 일을 나한테 강요만 했을 뿐, 내가 왜 부모님 말씀을 듣지 않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는지에 대해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느끼는 분노도 그렇다.

‘왜 그렇게 자기 절제력이 없니? 왜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네가 멍청하기 때문에 내가 무능력하고 실패한 엄마처럼 느껴진단 말이야.

잘 좀 해 봐. 나도 좋은 엄마라고, 능력 있는 엄마라고 느끼게 해 줘. 나한테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줘. 내가 대단하다고, 좋은 엄마라고 말해 줘’라는 뜻이 숨어 있다.

모든 분노에는 다 ‘네가 필요해, 네가 정말 필요해. 네가 정말 너무너무 필요해’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날 돌봐 줘, 배려해 줘, 이해해 줘, 위로해 줘, 보호해 줘, 지지해 줘, 존중해 줘, 날 먼저 생각해 줘, 날 봐 줘. 내 마음속의 욕구를 네가 채워 주길 간절히 바라.

그런데 왜 너는 날 충족시켜 주지 않는 거야?

왜!

왜!!

왜!!!

이토록 만족을 갈구하는 이유는, 당신 내면에 뭔가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떤 일로 분노했다면, 그 일은 허울에 불과하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당신이 경험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그 일 때문에 분노했을 리는 없으니까.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당신이 경험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하필 그 일 때문에 분노했을 리는 없으니까.

그 일은 당신의 두 가지 감정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크다.

 

① 결핍감

② 무력감

뭔가를 간절히 바라지만 스스로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이 순순히 내어 주기만을 바란다.

그런데 이때, 나처럼 대단한 존재를 몰라보고 원하는 걸 주지 않으니 분노를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당당하게 고수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타인이 알아서 존중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강요당하면 분노한다.

자신의 가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타인이 알아서 인정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부정당하면 분노한다.

자신의 가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은, 타인이 알아서 인정해 주길 바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부정당하면 분노한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결핍감은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부모님이 아이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힘이 없으면,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면, 타인에게 자신의 결핍을 채워 달라고 요구하고 요구를 들어 주지 않으면 화를 낸다

화가 나면 곱씹어야 할 말, ‘도와줘요’

분노를 해소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내가 내 감정에 책임지는 것이다.

1단계: 분노를 분석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살핀다.

2단계: 내 감정적 욕구는 내가 책임진다. 내 감정적 욕구를 채우고자 다음과 같은 행동을 취해도 좋다.

화가 날 때마다 분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당신은 상대방이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가?

당신이 원하는 건 뭔가?

이 감정은 예전에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누구한테 받은 상처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했는가?

화를 내지 말라거나,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을 그만두라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화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화를 내고 으름장을 놓고 위협하고 통제하고 압박해서 뭔가를 억지로 하게 만들거나 행동을 고치게 하면, 당신도 만족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분노하는 행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분노하는 행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상대방이 행동을 바꾸지 않아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도, 고집을 꺾지 않고 자기주장만 내세우며 당신의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켜 달라고 요구할 건가?

당신이 화를 내더라도 현실과 결과가 바뀌지 않을 때도, 원하는 걸 얻고자 분노라는 방법을 선택할 건가?

답답함을 풀기 위해, 속이 후련해지라고 화를 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해서 당신의 욕구가 충족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당신을 분노하게 만드는 감정적 욕구는 철저히 당신만의 것이다.

당신 말고는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욕구다.

그래도 1단계를 완료했다면 화가 조금씩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울컥 화가 나더라도, 분노의 감정을 슬픔으로 바꾸는 방법도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상대방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걸 당신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은 결핍되고 불쌍하고 외롭고 한 번도 만족한 적 없는, 상실감에 빠진 어린 시절의 당신이 느꼈던 감정이다.

앞으로 화가 나면 ‘도와줘요’라는 네 단어를 곱씹어 보자.

이성을 되찾은 후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 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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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감정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연습

특히 낮은 자기효용감 때문에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며 산다.

주로 부정적인 그 감정들은 우리를 자극한다. 또 제각기 할 일로 바쁘고 저마다의 스트레스에 짓눌려 산다

시대의 거센 흐름에 휩쓸려, 우리는 쉽게 ‘난 부족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나의 존재를 부정하곤 한다.

내 마음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말, 행동, 기분으로부터 마음을 잘 지켜 내지 못하고 자신에 대한 회의를 자주 느낀다. 지금 이대로 충분한데도 말이다.

어떤 분야에서 조금이라도 뛰어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람이다.

이 세상엔 날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내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이가 날 미워한다는 뜻은 아니다.

반면, 누군가가 여전히 날 좋아한다면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속엔 평화, 안정, 굳센 의지가 있고, 자기수용감과 자기존중감을 느낀다.

살면서 겪은 소소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이 책을 통해 당신은 타인의 말, 행동, 기분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세계를 단단하게 세울 것이다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용기와 마음의 질서를 되찾는 법을 배울 것이다.

또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난 정말 대단해’라며 스스로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나와 타인의 성숙한 관계를 위한 심리 기술의 일환이다.

많은 사람의 잠재의식에는 ‘저 사람이 나한테 화난 걸 보니, 내가 잘못했나 봐’라는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당신 스스로도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을 느끼고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라며 자책한다.

반면 스스로 떳떳하다고 생각하면, 억울함과 두려움을 느끼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잘못했을 때만 내게 화를 낼 수 있다’는 잠재의식의 논리를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내게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비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타인의 분노를 받아들이지 못해 두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다.

타인이 화내며 자신을 부정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 두려움을 느끼는 거다.

반대로 부모가 엄하지 않으면, 아이는 부모가 약하다는 걸 깨닫고 말썽꾸러기로 자라나 부모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다.

아이보다 부모가 훨씬 세면, 아이는 혼이 나도 마음속 분노를 해소할 곳이 없어 약한 동물을 학대할 수 있다.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분노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고양이 걷어차기 효과’라고 하는데, 고양이는 아이보다 약하기 때문에 아이의 분노가 고양이에게로 흐르는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에겐 죄가 없다.

자신보다 약한 대상에게 분노나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고양이 걷어차기 효과’라고 하는데, 고양이는 아이보다 약하기 때문에 아이의 분노가 고양이에게로 흐르는 것이다. 하지만 고양이에겐 죄가 없다.

분노는 옳은 개체에서 그른 개체로 흐르는 게 아니라 강한 개체에서 약한 개체로 흐른다.


어떤 사람의 잠재의식이 당신을 자신보다 약하다고 인식하는 순간, 그의 분노는 당신에게로 흐른다.

그의 분노를 맞받아쳤다면, 당신의 잠재의식이 ‘그래도 내가 너보단 훨씬 강하지’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더 많은 힘을 가진 사람은 관계라는 시스템에서 우위를 점하기 마련이고, 자연스레 더 많은 화를 낼 수 있는 ‘화낼 권리’를 가진다.

계급 시스템에서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 사이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요구 사항과 눈에 보이지 않는 암묵적인 요구 사항이 존재한다.

표면적인 요구 사항이란 ‘업무 지시에 잘 따르고 나를 잘 보필해야 한다’와 같은 공적인 요구 사항이다.

반면, 암묵적인 요구 사항은 ‘너는 내 분노를 받아들이고, 알아서 소화하고, 또 감정적으로도 날 돌봐야 해’와 같은 감정적인 요구 사항이다.

타인의 분노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그의 감성 지수를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감성 지수가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 순으로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

 

① 억울해한다 ② 맞받아친다 ③ 회피한다 ④ 소화한다

분노란, 힘을 상징할 뿐 옳고 그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틀렸더라도 상대방보다 더 강하다면, 틀린 것도 옳게 만들 수 있고 그런 당신에게 아무도 화를 내지 못한다.

반면, 당신이 약한 존재라면 아무리 옳은 행동을 하더라도 틀렸다고 비난받으며 화풀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가 당신에게 화를 낸다면 그는 자신이 당신보다 계급이 높고 힘 있는 존재라고 판단한 것이다.

분노는 옳고 그름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당신의 감성 지수 이해도는 차차 높아질 것이다.

떠날 수 없다면, 감정을 격리해야 한다.

감정적 격리는 분노에 대응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감정적으로 선을 그어, 타인의 분노가 당신에게 머무르지 않고 통과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당신에게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이라면, 멀리하거나 화를 낼 때 반격해도 좋다. 그러나 당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라면, 참고 견뎌야 한다.

타인의 분노에 당신이 반응하는 이유는, 그의 분노가 어린 시절의 약한 당신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포용하기는, 참고 양보하는 것과는 다른 독립된 태도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떼쓰는 아기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가 울음을 그치면 ‘착하고 예쁜 우리 아기’라며 아기를 달래 주듯 어른스러운 태도로 그를 위로해 주면 된다.

높은 감성 지수를 가지면 얼마든지 포용할 수 있다.

타인의 분노를 소화할 의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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