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엔 끝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평생 배워도 남을 만큼 배움에는 즐거움이 있다는 뜻도 된다.

내가 항상 불안하고 불완전해 보여도 스스로에게 조금 관대해질 필요가 있었다.

1년차엔 1년차 나름의, 2년차엔 2년차 나름의 배움이 있다. 운동 3년차, 나는 여전히 날마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중이다.

뭐든지 잘하면 더 재밌기 때문이다. 즐기려면 어느 정도는 잘할 수 있어야 한다

요가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것들이 있다. 먼저 작은 근육에 감각을 불어넣는 방식이다.

새로운 동작을 배울 때마다 내 몸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근육들을 일깨우는 느낌이었다.

웨이트를 할 때도 미세한 근육들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곤 하지만, 마른 심지에 불을 켜듯 작은 근육에 천천히 숨을 불어넣는 요가의 방식은 확실히 웨이트의 방식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부상 가능성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이건 프로든 아마추어든 마찬가지다. 빈도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들은 무언가에 집중할 때 곧잘 눈을 감는다. 하지만 제어하기 어려운 무게를 다룰 때 눈을 감아버리면 몸의 균형,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거울 속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스스로와 대화를 나눈다.

‘열심히’란 단어에 씌워진 환상은 매우 강하다. 하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면서 ‘열심히’란 단어의 위험성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노력엔 죄가 없다. 다만 ‘열심히’가 만들어내는 자기도취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자기반성과 객관화가 더해진 ‘열심히’와 눈을 감은 자기도취의 ‘열심히’는 엄연히 다르다.

운동하면서 어느 정도 다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고통은 잘못된 자세나 부하를 알리는 신호다

‘개썅마이웨이’는 타고난 배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배워가고 숙달돼 갈수록 실력에 따른 자신감이 붙고, 그게 곧 배짱이 된다. 그것을 위해선 일단 한발, 밖으로 나와야 한다

운동에 있어서 목표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향하는 삶과의 균형, 기준 등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운동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닌, 삶의 활력을 위해 운동을 도구로 삼으려는 이들이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극기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절대 기준이 될 필요는 없다

"수요일 아침 10시부터 글을 쓰기 시작할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라. 그리고 그 말을 당신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려라··· 가능한 빠른 속도로 작업하라. 작업 과정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이면서.
_ 도러시아 브랜디(Dorothea Brande),
《작가 수업(Becoming a writer)(1981)》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좋은 점(?)은 뭘 하든 일단 지르고 보는 게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정통한 분야에 대해 충분한 여유를 갖고 기사를 쓴다고 해서 항상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고,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단기간에 울면서 ‘지르듯’ 기사를 써도 가끔 두고두고 보고 싶은 기사가 나온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니 ‘하면 될 수도 있다’가 좌우명이 되었다.

일단 신청이라도 해두면 울면서라도 공부하겠지 뭐.

예전엔 ‘헬스 1년 한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헬스 하다가 자격증까지 딴 사람’이 되었다.

사실 트레이너를 하지 않을 내겐 별 쓸모없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지만 불과 종이 하나로 마음가짐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격증 취득은 분명히 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본격적인 취미를 갖는 것. 그것은 내가 선 자리가 아닌 또 하나의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목적이 없는 수동적인 취미는 나를 그렇게까지 행복하게 하진 못했다.

삶에 가벼움과 유머를 곁들이기 위해선 얼마간의 떨어짐이 필요하다

그 재료가 무엇이 되어도 좋다. 운동이든 뜨개질이든 명상이든 목공이든.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위하여. 앞으론 인생 취미를 찾는 직장인이 한 명이라도 더 많아지길

일본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에세이집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아침의 맨손 체조다."

위대한 일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거창하게 갈 것 없다. 일단 둥근 해가 떴으니 자리에서 일어나서 씻고 밥을 먹어야 한다.

하루하루 일상의 작은 조각이 모여 큰 그림이 되어간다.

더 나은 수면과 식사, 움직임이 내 삶의 조각들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내 몸을 돌보는 기술이다. 차가 굴러가기 위해선 정기적으로 최소의 기름칠을 해주어야 하듯 말이다

집에서 폼롤러로 하는 스트레칭 ‘운동’, 천변 걷기 ‘운동’, 108배 ‘운동’, 이것들도 굉장히 훌륭한 운동이다.

내게 운동은 자기계발이라기보다는 마음에 든 재료로 만드는 요리나 진심을 기울인 방 청소 같다. 일상에 기름칠을 하고 가꾸는 일이다.

초보 때는 운동 일지를 적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따로 노트를 만들지 않고 남는 다이어리에 적어도 무방합니다.

월별 달력엔 출석 날짜를 체크하고 주~일별 스케줄 표엔 그날 한 동작을 간단히 정리합니다

사람의 습관이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주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되는데, 그날그날 간단하게라도 일지를 적으면 본인의 경향성이 보입니다.

꾸준히 적으면 성장이 보이는 부분도 소소한 보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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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최악이라고 느꼈지만, 지금은 그때 일에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는커녕, "그러고 보니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입니다

옛날의 저는 스스로 불행하다고 믿는 마음 버릇의 색안경 때문에 불운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똑같이 색안경을 쓰고 있지만 행복합니다. 지금 색안경에는 나는 행복하다고 믿는 마음 버릇이 칠해져 있으니까요.

현실은 그저 눈에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 일어난 사실일 뿐입니다.

그런 일에 운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저마다의 색안경, 즉 ‘마음 버릇’의 작용입니다.

현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은 행운이라고, 혹은 불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낀 ‘마음 버릇’이라는 색안경이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겁니다.

만약 ‘운’이 나쁘다는 생각에 그런 색안경을 고집스럽게 끼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벗고 ‘운’이 좋은 색안경으로 바꾸어 낄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운’이 좋은 사람의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흉내를 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 사람이 전제로 삼고 있는 세계관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저렇게 되고 싶진 않아’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아니라 ‘저렇게 되고 싶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모방하면 됩니다.

‘운’이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면 ‘운이 좋아 보이는 사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찾아내 그 사람과 친해지고 되도록 함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행동, 말버릇, 사고방식이 전염됩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정해야 할 때 ‘운 좋은 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점점 잘못 판단하는 일이 적어지고, 거기서부터 ‘운’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운이 나쁜 사람은 사방팔방 다 막힐 때까지 시도하지도 않습니다. 한두 번 찔러보고는 ‘어쩐지 안 될 것 같다.’라며 포기하고 맙니다.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 ‘운’을 망가뜨립니다. 체념해버리기 때문에 ‘운’이 찾아올 길이 없습니다.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성공할 때까지 계속하는 사람입니다. 멈추어 서기보다 돌파할 길이 없는지 깊이 생각해 보세요.

도전은 헛되지 않습니다. 도전한 수만큼 경험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운의 정체는 방향성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결과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세요. 그렇게 하면 반드시 무언가 빛나는 것이 보일 테니까요."

‘가능성’을 포기하지 마세요.

‘이제 다 틀렸다’고 단정 짓지 마세요.

‘어차피 안 된다’고 삐딱한 고집을 부리지도 마세요.

이것이 막다른 골목에서 ‘운’을 열 수 있는 3원칙입니다.

이것을 뒤집으면 ‘불운’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사례가 만들어집니다.

다시 말해서 그저 한탄하거나 두려워하며 포기할 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 지을 때, 움츠러들거나 자포자기해서 비뚤어질 때, ‘불운’이 파고듭니다.

마치 빈 집에 도둑이 들 듯 마음의 빈틈을 타고 불운이 찾아옵니다.

마치 빈 집에 도둑이 들 듯 마음의 빈틈을 타고 불운이 찾아옵니다. 불운을 부르는 습관적인 마음가짐, 곧 마음 버릇을 고쳐먹으면 ‘불운’을 떨쳐낼 수 있습니다.

마음에 빈틈이 생긴 까닭은 어차피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태도로 자기 본심을 얼버무려왔기 때문입니다.

자기 본심을 꾹 숨기고 반대되는 말을 하거나(=말버릇), 얼버무리거나(=몸 버릇), 참으며(=마음 버릇) 살아왔기 때문에 포기하고, 단정 짓고 비뚤어지는 버릇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단은 자기가 자기 속마음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마음속 빈틈을 파고든 불운이라는 도둑을 쫓아내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를 찾아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부정하지 말고 자기 마음과 충실히 마주하여 진짜 속마음을 탐색해 보세요.

나를 살리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합니다

아직 알 수 없다고 한다면 차라리 정반대의 ‘마음 버릇’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내게 나쁜 일 따윈 절대로 안 생겨’, ‘잔업 양이 많긴 하지만 제대로 하면 콘서트는 보러 갈 수 있을 거야’, ‘약속 시간에 안 늦으면 좋겠네. 설령 늦더라도 누구 하난 감싸 주겠지’라고.

철저하게 자기 좋을 대로 ‘마음 버릇’을 들이는 게 좋습니다.

참고로 ‘마음 버릇’은 기분에 영향을 받는 부분도 있으므로 기분전환을 잘하는 것이 ‘마음 버릇’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오감이 깜짝 놀랄 만한 쾌적한 체험’은 기분전환에 즉각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최고로 아름다운 물건을 곁에 둔다거나 장엄한 풍경을 보거나 근사한 음악을 듣거나 정성 들인 재료로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마사지나 피부 관리 등 몸이 기뻐하는 쾌적한 경험을 하면 기분이 전환되면서 시점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옛날 사람들은 아침 7시부터 9시까지를 ‘진시’, 즉 ‘용의 시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시간대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집 안의 묵은 공기를 내보내고 신선한 공기를 들였습니다.

마치 잠들어 있는 집의 눈을 깨우고 행운의 스위치를 켜듯이 말입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가 활기를 북돋아 주었을 겁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기분이 바뀌면 ‘운’의 흐름도 바뀝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돈을 저축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쁜 충고다.

모든 돈을 저축하지는 마라.

자신에게 투자하라.

-헨리포드

부자가 되고 싶다면 돈의 본질을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돈을 내건 받건 돈을 주고받을 때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교환해야 합니다.

나와 상대방 모두 ‘기쁜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돈의 본질을 이해했다면 돈에 대한 마음도 달라질 것입니다

돈을 내거나 받을 때는 일단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할 것. 물론 실제로 입 밖으로 말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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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근육이 이렇게까지 없어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요? 살려면 운동 좀 해야 해요."

육체는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지만, 그간 한 번도 내 그릇이 기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해볼 기회가 없었다.

체력은 생선가시 수준임에도 몸이 마른 편이라 그간 운동 필요성을 크게 못 느낀 점도 치명적이었다.

어떤 운동이든 여자 타깃으로 홍보할 경우 ‘단기간에 지방을 잡아 빼는 시술’이 되곤 한다. 20대 때는 주변, 광고의 영향으로 ‘마른 몸 = 예쁘고 건강한 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업무 강도 조절 브레이크가 고장 나자 상황은 달라졌다.

작대기 같은 몸에 에너지를 담을 공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매일 얕은 접시에 담긴 물을 간신히 떠먹는 느낌이었다.

다치지 않고 오래 운동하기 위해 공부도 해서 2018년엔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땄다.

그 이후로도 책을 보며 운동과 공부를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목표는 하나다. 정신을 담는 그릇을 지금처럼 건강하게 유지하기.

그래서 40~50대에 지금보다 더 괴상하고 제멋대로 살아도 지치지 않기

지루함이라는 블록들이 쌓여 만들어내는 마시멜로우 같은 순간들도 내겐 소중하다.

어제는 힘이 달려서 한 번 밖에 못했던 턱걸이를 언제 그랬냐는 듯 쑤욱 5번이나 할 때. 40킬로그램짜리 바벨을 지고 스쿼트하는 사람을 부러워했던 내가 어느새 60킬로그램짜리 바벨을 지고 안정적으로 스쿼트를 수행해낼 때.

사실 나는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웨이트 트레이닝의 멋짐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근육이 붙기 시작하면 얼마나 자기 효능감이 올라가고, 주변의 칭찬이 없어도 자존감이 얼마나 높아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운동과 사랑에 빠지는 일의 진짜 효능은 ‘살이 찌든 빠지든 내가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면 항상 수많은 갈림길이 존재한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우리 몸엔 적정량의 체지방이 필수다. 체지방은 체온을 보존하고 유사시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여성 호르몬의 영향으로 남성에 비해서 체지방이 높은 편인 여성의 경우, 체지방량이 지나치게 낮으면 생리불순, 불임 등의 치명적인 호르몬계 이상이 생길 수 있다

근육은 우리 몸의 뼈나 관절 등을 붙잡아 고정시키고 일상적인 활동에서 파워를 내고 부상을 예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근육이 적으면 신체를 구성하는 뼈와 관절 등이 제대로 자세를 잡지 못한다

내가 못한다는 걸 진솔하게 받아들이는 경험이야말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한 핵심 단계다

혼이 났다는 것, 즉 내가 못하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목적에 맞는 운동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있어 가장 큰 목표는 더 많은 근육과 건강이다

운동을 하면 몸이 항상 가뿐하고 최상의 컨디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운동을 하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건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다. 꾸준하게 운동하다 보면 안 아픈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다. 근육통 때문이다.

운동으로 근육을 찢고, 찢긴 근육을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근육이 커진다.

아무리 몸이 커다랗고 힘이 센 사람이라고 해도 근육을 더 크고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선 몸이 아플 정도로 ‘조질’ 수밖에 없다.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근육통이 일상인 이유다.

근육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초보자에게 근육통은 ‘그날 운동이 잘 됐는지’를 가늠할 유일한 단서이기도 하다.

한동안 혼자 운동하던 시절, 자세를 봐줄 사람도 없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조차 아리송할 때, 다음 날 한발 늦게 찾아오는 근육통만이 내가 전날 운동을 제대로 했는지 알려주는 성적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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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바꾸었다 하더라도 무의식적인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환경을 탓하며 자책만 하고 있었다면 인생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 이만큼 극적으로 자신을 바꾸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환경을 바꾸는가.

나는 어디를 향하고 어떻게 되고 싶은가.

무의식적인 생각(=마음 버릇),
무의식적인 말(=말버릇),
무의식적인 행동(=몸 버릇)을 가다듬으면서
환경을 정돈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무의식적인 습관을 고치려면 물건을 정리해서 정돈된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우선은 많은 물건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물건을 버릴 것인가. 쓸 만한 물건인가, 그렇지 않은 물건인가로 고르면 사실 대부분이 쓸 만한 물건이 되어 버립니다.

물건이 늘기만 하는 사람을 보면 대개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차곡차곡 쌓아 놓곤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쓸 물건’은 거의 안 쓰기 마련이고, 막상 쓰려고 하면 다른 것을 더 사야 하는 법입니다.

물건도 그 역할을 다하면 휴식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건 전혀 쓰질 않았으니 아직 제 역할을 끝내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경험으로 자신이 그 물건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으니 그 물건은 이미 훌륭하게 제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고마운 마음으로 처분해도 됩니다.

쓰지 않더라도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 좋아하는 물건 등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면 그 물건은 그대로 두세요.

나는 내가 더 노력할수록
운이 더 좋아진다는 걸 발견했다.
-토마스 제퍼슨

운이 좋다고 말해야
운이 들어온다

‘운’이 좋은 사람이란 한마디로 충족된 사람, 행복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운’이 좋은 인생이란 많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은 사람은 수많은 바람을 이루며 삽니다.

‘운’이 없다는 사람은 마음이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향해 있지 않고,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행동도 그 방향으로 향해 있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에 마음이 향해 있지 않으면 다른 것만 보입니다.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자기도 모르고,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원하는 것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즉 ‘운’의 흐름은 ‘마음 버릇’, ‘말버릇’, ‘몸 버릇’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일단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마음을 두고(=원한다고 생각할 것),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욕구를 내뱉을 것),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행동할 것) 합니다

‘방향성’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운’의 방향을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난 원한다고 제대로 말했을까?" ← ‘말’

"정말 이 방향이 맞을까?" ← ‘생각’

"그 방향으로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 ‘행동’

지금의 나의 모습은 바로 내 습관의 집대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자기가 지금 손에 쥔 결과를 역산해서 그것을 만든 습관을 찾아 바꾸는 것이 ‘운’의 방향성을 바꾸는 중요 포인트입니다

만약 지금 운이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까지 무의식중에 반복해온 습관을 파악하고 바꾸어 가는 것이 ‘운’을 바꾸는 중요 포인트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데 쓸데없이 낭비만 하고 계획적으로 저금도 하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그 ‘몸 버릇’을 바꿔야 합니다.

부자가 되고 말겠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 버릇’을 바꿔야 합니다.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겠다면서 수시로 가게에 들러 뭐라도 하나 사야 직성이 풀린다면 좀처럼 돈을 모으지 못할 겁니다.

습관을 바꾸기란 입으로 말하는 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습관이란 어떤 행위를 무의식 상태가 될 때까지 반복한 결과,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① 일단 줄곧 계속되는 습관의 횟수를 줄임으로써 늦춘다.

② 어느 정도까지 늦춰지면 멈춘다.

③ 원하는 결과를 향해 방향을 바꾼다.

④ 그 방향으로 움직임의 속도를 높인다

① 간식 먹는 횟수를 줄인다.

② 간식을 끊는다(①을 거쳤기에 끊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③ ‘살이 빠진 나’를 머릿속에 그린다.

④ 새로운 식생활로 갈아타서 그것을 반복해 간다.

늦추다가(완화) 멈추고(중지) 방향을 틀어(수정) 속도를 높임(가속)으로써 습관을 바꾸어 가는 겁니다

매일 독경을 거르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는 사소한 행동 습관을 반복하는 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이 정한 일을 의도한 대로 계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자신에 대한 신뢰)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내가 정한 약속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 자기 자신에게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 이것이 있으면 ‘운’도 반드시 강해집니다.

‘운’은 ‘습관’이 만들므로 일정한 행동을 계속해서 ‘습관화’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면 어떤 ‘습관’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무의식적인 습관의 힘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겁먹거나 떨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것도 없고 계속 내려가기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날씨가 바뀌듯, 혹은 몸 상태가 좋다가도 나빠지고, 나쁘다가도 좋아지듯, ‘운’이나 인생도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쁘게 느껴지는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사람은 대개 싫은 일은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되도록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죠.

그리고 운이 좋은 사람이란 ‘좋은 일만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에게도 나쁜 일은 일어납니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나쁜 일을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정도야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받아들입니다. 요컨대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유도로 비유하자면 낙법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상태입니다. 패배도 받아들이므로 넘어지는 법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손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고 할까요. ‘운’이 좋은 사람은 그 그릇의 크기가 터무니없이 큽니다.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도, ‘하긴, 이런 일도 있는 법이지.’, ‘병에다 부상까지, 큰일이네. 그래도 목숨을 건졌으니 괜찮아. 앞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1억을 손해 봤잖아. 하지만 나중에 3억을 벌면 이익이 2억이나 남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낙법을 제대로 익힌 것입니다.

"손해 봐도 괜찮아. 손해 좀 본다고 운이 나쁜 건 아냐. 오히려 손해를 보면 운은 좋아져."라고. 끈질기게 그렇게 타이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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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1기. 2기 전부 보고 만화책도 보고있다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게 더 좋지만♡♡
만화책은 애니메이션에 없는 내용도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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