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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 곤란한 일이 끊이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는 어떤 사람이 상대를 신경 쓰지 않거나 두 사람이 서로를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수많은 원한과 적대감이 생기는 원인도 바로 이것이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존중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조화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

중년을 대할 때는 말투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분명히 묻어나도록 해야 한다. 말투 또한 적당히 신중해야 한다

물론, 질문을 많이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에게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긍정적인 면도 있다.

다만, 그 사람의 성격이나 배경을 고려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대화를 발전시키는 데 좋을지 분석해야 한다.

이처럼 사람들의 성향이 제각각인 만큼 대하는 말 또한 같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에게 더 함부로 굴 때가 많다.

밖에서는 부당한 대우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다가 집에 와서 가족에게 스트레스는 푸는 것이 그러한 예다.

내가 어떻게 하든 가족은 나를 너그럽게 받아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러한 심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남 앞에서는 괜찮은 척하지만 가족이나 연인 앞에서는 사소한 일에도 투정을 부리는 일이 잦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의 발산이 부적절한 말로 이뤄질 때다.

즉, 감정이 격해있을 때는 애꿎은 가족을 대상으로 조롱, 왜곡, 과장, 폄하 등 부정적인 언어를 퍼부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든다.

당연히 이런 말을 들은 가족은 상처를 입고 가족 사이에도 충돌이 심해진다.

목소리를 높이면 충동적인 표현을 통제하기 어려워진다.

말하는 속도를 줄이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말이 빨라진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감정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목소리도 높아지고 감정도 격해진다.

가슴을 곧게 펴는 이유는 충동적이고 긴장된 분위기를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흥분해 격렬한 말투를 쏟아낼 때는 자세가 상대를 향해 기울게 된다.

상대는 이러한 태도를 공격적으로 느끼게 되어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

록펠러가 이 관리자의 성과를 정리하며 발견한 것은 그가 과거에 세 번이나 정확한 결정을 내려서 회사에 보탬이 됐고 그로써 회사가 얻은 이윤이 이번에 입은 손실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은 베드포드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그 후에 저도 누군가에게 화가 나면, 자리에 앉아 록펠러처럼 그 사람의 장점을 찾아 적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화가 점차 사그라들지요. 이렇게 들인 습관이 제가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해 입을 수 있는 손해를 얼마나 많이 막아줬는지 모릅니다."

부정적인 감정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건강해지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효과 자체가 이기적인 사고를 키울 수도 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항상 사랑과 관심으로 대해야 할 가족이자 친구다. 그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매우 불공평한 일이다. 내가 아껴야 할 사람들이 상처를 입는다면 그 상처는 곧 내 것이 된다.

공연한 화풀이의 여파는 결국 돌고 돌아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화풀이의 대상이 돌고 도는 방향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바로 나보다 지위가 낮거나 세력이 약하거나 또는 나이가 어린 사람 등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공연한 분노의 화살이 향하기 쉽다.

화를 참지 못하면 이처럼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 쉽다.

절대 일시적인 충동으로 만회하기 어려운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된다면 평판도 나빠질 뿐 아니라, 무엇보다 늘 함께해야 하는 주변 사람들과 관계도 소원해질 수 있다.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는 ‘잔소리는 결혼의 무덤’이라고 했다.

부부 사이의 잔소리는 애정과 관심이 바탕이 된 것이겠지만, 이것도 너무 과하면 관계를 해치게 된다.

상대가 뭔가 개선하거나 고치기를 바라며 하는 잔소리라면, 그 효과는 낙제점이다. 역효과를 내어 부부 관계를 아예 망칠 수도 있다.

배우자의 잔소리는 얼핏 사소한 문제인 것 같지만, 잔소리에 대한 상대 배우자의 피로감이 거듭되면 사랑의 불씨가 꺼질 수 있다.

마치 독사에게 물려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상처 입은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되살리기 힘들다. 이제 잔소리를 멀리할 방법을 찾아보자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잔소리가 더 늘어날 수 있다.

반대로 듣는 것은 더 싫어진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더라도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잔소리는 접어두자

누군가가 꼴 보기 싫다면그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가 내 기분을 상하게 했는가? 나는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했는가? 내가 원래 말하려던 것은 무엇인가? 왜 나는 그것을 말하지 못했는가?’

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 감정은 내 것이다.

좋은 감정도 나쁜 감정도 내가 선택한 것이다.

또한, 내가 싫은 것은 다른 사람 또한 싫다는 단순한 진리도 기억해야 한다.

이 점을 잊지 않는다면 내 화가 미치는 상대의 감정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다.

결국,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하느냐는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의도가 좋은 것이더라도 신랄하고 공격적으로 들리는 감정적인 말로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만 멀어질 뿐이다.

현대 사회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지만, 그럴수록 자신의 단점이나 실수를 너그럽게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실패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며 곧바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행동을 취하기보다 때로는 자신에게 충전과 휴식의 시간을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심리적인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는 내 기준에 따라 섣불리 결론을 내리는 것을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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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 선사와 백이정의 시작은 작고 초라했다. 하지만 작은 물방울 같은 가르침은 수많은 제자들을 불러 모았고, 결국은 역사 속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겨놓았다.

우리의 배움도 마찬가지다. 모든 시작이 미약할 수밖에 없지만, 배움의 시작은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작은 용기를 발휘해서 배움을 시작한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다를 뿐 결국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과 방법에서 차이가 있을 뿐 행복을 향한 도전이라는 본질에서는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많은 만남이 있다. 개중에는 옷깃만 스치는 만남도 있지만 운명을 바꾸는 만남도 있으리라.

어떤 만남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모두 후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운명을 바꾸는 만남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 책이 옛 스님들의 말씀에 얽힌 이야기를 짜깁기한 그저 그런 책이 될지 아니면 운명을 바꾸는 시작점의 역할을 할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아기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이나, 어린아이가 세발자전거에서 두발자전거로 바꿔 타는 것처럼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리라

사랑은 지친 인생을 보듬어주는 휴식 같은 존재다

망상에 빠지지 말라.

_무업 선사

무업 선사가 입버릇처럼 했다는 이 말의 뜻은 앞일을 섣불리 예측하거나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다. 무업 선사는 어릴 적부터 천재성을 발휘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 비유하는 것은 그만큼 종잡을 수 없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수입과 지출을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경제활동이나 땀을 흘리는 만큼 근육이 커지고 살이 빠지는 운동과는 다르다.

돈이나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마음’이다. 망상을 버리고 오로지 마음으로 대할 것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이다."

하루 잘 보내라는 덕담처럼 들리지만, 선사가 전하고자 하는 뜻은 더 깊고 우아하다.

현재라는 관념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이미 과거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시간은 우리가 기뻐하거나 슬퍼하거나 혹은 좌절하거나 반성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물처럼 계속 흘러간다.

거대한 사건도 찰나에 내려진 작은 결정이나 생각에서 비롯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짧고 소소한 만남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오랜 만남이 되고, 결국 결혼으로까지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실패와 착오를 겪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매일 매일이 행복하고 좋은 날이라고 되뇌어보자.

내가 왜 그 또는 그녀를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설득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을 때 상쾌한 바람과 맑은 하늘을 보고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이 변할 뿐이다. 매일 매일 바뀌는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사랑은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엘도라도나 무릉도원 같은 이상향 같은 존재로 남을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피어나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버드나무 가지는 저절로 흔들린다.

_ 조주 선사

눈앞의 현상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고승의 가르침 속에 꽃이 피고 지고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이유는 비와 바람이 아니라 꽃과 나뭇가지에 내재되어 있는 운명 혹은 힘 때문이다.

네가 머무르는 곳의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그곳에서 진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_임제 선사

남과 똑같은 삶이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자기 집 열쇠를 남에게 맡기는 사람은 없듯이 자기 인생을 남에게 맡기는 일도 없어야 한다

해골 썩은 물을 마신 것을 재수 없는 일로 치부하지 않고 그 속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원효 대사의 깨달음은 내 삶의 주인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말과도 통한다.

경쟁 속에서 잊고 지내던 ‘나’를 일깨워주는 말이다.

성공이라는 최면에 걸려 있는 우리의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내려치는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을 남이 모르게
은밀하게 해서 흔적을 남기지 말라.
멈추지 않고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
중요한 가운데서도 으뜸이다.

_동산 선사

아무리 성공이 중요하다고 해도 남의 눈에 띄어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많다. 그 중 하나가 동산 선사가 말한 꾸준히 계속하는 것이다

어렵게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서 나오고 싶지만 주변의 만류로 주저앉는 경우가 많다. 하나같이 배가 부르다, 없어져봐야 소중한 줄 안다는 말로 충고 아닌 협박을 한다. 결국 지옥 같은 생활을 이어나간다.

우리가 안정된 생활이라고 믿는 것은 사실 미친 코끼리를 피해 뛰어든 우물 안에서 쥐가 갉아먹고 있는 칡넝쿨을 의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곧 칡넝쿨이 끊어져버리지만 당장은 괜찮다는 착각을 하는 셈이다

현실에 만족하는 것은 안주가 아니라 퇴보를 의미한다.

시간을 비롯해서 세상은 계속 앞으로 가는데 나만 멈춰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잊고 살아가지만 살아간다는 것을 도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지의 시간과 그 시간 속에 있는 삶을 가로지르는 것이 도전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작은 것은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부풀려진 것들은 치유할 수 없는 갈등으로 번지기 일쑤다.

그러므로 규칙의 장점에 빠져들어 그것이 가진 단점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산호의 가지마다 맺혀 있는 이슬에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비추인다. 달은 하나지만 이슬에 맺힌 모습들은 제각각이다.

그것들 중에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산호의 이슬에 비추인 달은 수백 개이고,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은 단 두 개뿐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다양한 꿈들이 존재한다.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우열을 가릴 수 있지만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것들의 무게는 똑같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상에 보이기 위한 도전이 아닌 나를 위한 도전을 해야 한다

문답은 끝없이 이어졌다. 미쳐서가 아니다. 스스로에게 깨어 있으라는,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라는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암언 선사가 자신을 주인공이라고 부른 것은 뒤처지고 있지만 따라잡을 수 있으며, 그것이 나아갈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했기에 그 역시 천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비록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지만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더없이 위대한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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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르신만 물고기를 낚는 것인가요?"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자네가 조바심을 내기 때문이야.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지. 자네처럼 걸핏하면 낚싯대를 건드리거나 한숨을 쉬지 않지. 내가 고요히 있으니 물고기들도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내 주변으로 와서 미끼를 무는 것이지."

마음이 급한 사람은 모든 일이 자신의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한다.

주변 상황의 변화에 적응할 여유도 없고 자신의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과 교류할 때는 반드시 자기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느리다고 "바보 같다"며 자존심 해치지 말자

학습하는 속도가 느리면 바보 같다고 놀리는 이들이 있다. 행동이 굼떠도 바보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는 신생아인지 모른다. 혼자서 할 줄 아는 것이 없지 않은가? 그래도 그런 아기를 바보라며 깔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바보란 무엇일까?

학급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단체 생활에서 자신을 드러낸 기회도 없는 데다 집에서마저 부모에게 자주 혼이 나는 아이라면 결국 자신감을 잃기 쉽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든 상대의 자존심을 해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비판이나 거절을 해야 하더라도 사실에 집중해야지 상대가 공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은 피해야 한다.

‘나무는 껍질이 필요하고 사람은 얼굴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얼굴’은 곧 자존심을 의미한다.

자존감이 낮아 자아를 잃게 되면 남을 해치는 단계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설령 현재 일하는 곳에서 능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도 생각과 자존심이 있다.

그가 다소 무능해 보이는 것도, 현재 자리가 그에게 맞지 않거나 아직 재능을 발견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특출한 재능이 없더라도 근면하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를 무시할 이유는 없다.

상대가 누구든지 가치를 인정하고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힘든 상대에게 "너 이럴 줄 알았다"면서뒷북치지 말자

‘사후 제갈량事後諸葛亮’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뒷북’을 의미한다.

중요한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나중에야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러게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고 했잖아"라고 말한다.

마치 자기 말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이 된 것처럼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러한 태도는 상대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그렇지만, 더욱이 직장에서 ‘사후 제갈량’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적시에 취하지 않은 행동은 나중에 떠벌려봐야 아무런 가치가 없다.

경영자 입장에서 필요한 인재는 기회를 포착하고 닥칠 수 있는 위험을 미리 경고할 수 있는 사람이지, 현장을 방관하다 나중에야 아는 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태풍이나 지진이 이미 휩쓸고 간 뒤에 경보를 울린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만일 책임을 질까 두려워 한발 물러서느라 입을 열지 못했다면, 차라리 끝까지 모른 척하는 것이 낫다.

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내가 진즉에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을 해서 뭣 하겠는가? 이러한 말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사람을 더 깊은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뿐이다.

아무리 걱정이 되어 한 말이더라도 듣는 처지에서는 위로는커녕 조롱으로 들린다.

간혹 우리는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에 충고를 한다. 이럴 때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내 말에 상대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고 지금의 좋은 관계에 금이 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상대가 꼭 내 충고를 들어야 하는 법은 없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각자 살아가야 할 길이 있다.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최후의 승자가 될 수도 있고 패자가 될 수도 있다.

결과에 따라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한다. 그래도 괜찮은 척한다.

내가 잘못했다고 깨달은 것, 또는 후회하는 것을 내 입으로 말하기 겸연쩍기 때문이다.

옆에서 굳이 사후 제갈량 노릇을 하지 않아도 이미 본인들이 알고 있다.

옆에서 해줄 것은 따뜻한 말 한마디다.

묵묵하게 지금의 어려운 시간을 함께해준다면, 실의에 빠진 상대는 시간이 흘렀을 때 내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따스한 포옹이지 잔소리와 냉소는 아니지 않겠는가?

흘려듣거나 대꾸가 없다면‘내가 우습나요?’로 들린다

비록 지금은 초라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현재 행색이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더라도 내가 그 사람과 나중에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어떤 일을 함께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누구도 쉽게 대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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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제외하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직장인인 셈이다.

인구의 절반이 직장 생활로 힘들어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힘들다는’ 직장에 못 들어가서 안달이고 해고당할까 봐 걱정하는 모순적인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게 다 팍팍한 현실 때문이다.

죽어라 일했는데 이런 괴로움에 시달리는 이유가 뭘까?

전략 부재라고 생각한다.

중력에 익숙해져 늘어진 당신의 희망 근육을 일깨우고, 현실에 안주하느라 게슴츠레해진 당신의 눈에 신선한 바람을 보내며 용기를 북돋워 보려 한다

무엇이 바람직한 선택일까? 초원일까? 동물원일까? ‘

위험한 천국’인 울타리 없는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도 있고, ‘안전한 감옥’인 동물원에서 최소한의 먹이를 보장받는 얼룩말도 있다.

하루의 80%를 직장 생활이 차지한다

여러분의 삶에서 직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어림잡아도 ‘하루 종일’이다. 어쩌면 너무 당연해서 꼼꼼하게 따질 필요도 못 느꼈을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잠자는 7시간을 빼면 실제로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17시간이다.

통상 근무 시간은 8시간이고 점심시간 1시간, 출퇴근 준비와 왕복 이동 시간 3시간을 더하면 우리는 직장을 위해 총 12시간을 쓴다.

가용 시간 17시간 중 12시간은 70%를 차지한다.

70%라는 비율만으로도 직장은 단순한 일터를 넘어 생활의 중심임을 증명하고 있다.

여기에 회사와 관련된 각종 모임, 인간관계에 쓰는 시간까지 더하면 우리가 직장에 쏟는 시간은 총 80% 이상이다.

그는 소수 특권층에게만 부여되던 ‘게으름의 기회’가 모두에게 제공되고 ‘근로가 최고의 미덕’이라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야 모두가 ‘즐겁고, 가치 있고, 재미있는’ 활동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을 위해서는 여가가 필요하므로 ‘행복해지려면 게을러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게으름과 부지런의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 과잉 노동은 언제부터 시작됐고 게으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인간은 일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존재다.

가난한 자는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자는 더 벌기 위해, 직장인은 마지못해 또는 습관적으로 일한다.

"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며 매일매일 성공을 만들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일한다" 헬렌 S. 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강제된 삶’이라고 말했다. 결국 누군가로부터 돈을 받고 일한다는 것은 크건 작건 구속이다.

"직업이나 경력보다 목적을 찾아라. 목적은 훈련과 교차한다. 목적은 당신의 필수적인 요소다. 그것이 역사적으로 이 특정한 시간에 당신이 이 행성에 존재하는 이유다. 고난은 목적에 맞게 당신을 빚는 과정일 뿐이다."

직업은 단순히 돈의 크기, 돈을 모으는 수단을 넘어 인생의 목적을 생각하며 복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의 본질을 보라는 뜻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당신의 현재 직업 혹은 당신이 바라는 직업은 주업인가 종업인가?

직업의 정점은 어디고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 이 직업의 한계는 무엇이고 정점에서 어떤 갈등과 마주하게 될 것인가?

평생 일관되게 처음과 똑같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면 갈수록 지치고 짜증 나고 효율도 떨어진다.

사람은 반복을 싫어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편해지고 싶고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직업을 선택할 때 이런 속성을 미리 염두에 둬야 한다. 노력 대비 얻는 결과치의 효율을 따져 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가 커진 만큼 먹이는 줄어든다.

‘직장인 정신’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습관적 출근이 아니라 전략적 출근이 돼야 한다.

나아가 내가 몸담은 회사의 상사, 임원, 사장의 생각과 나의 삶이 연결됐다고 인식하며 움직여야 한다.

그러면 지금까지 괴롭고 우울하고 단조롭기만 했던 직장 생활이 조금은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흔히 전략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전략은 실천할 때 성과를 낼 수 있고,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결실을 본다.

특히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은 당연히 노력해야 한다.

기득권자라고 다를까? 이미 좋은 성과를 거두고 만족할 만한 직급에 올랐다면 가만히 있어도 그 자리가 유지될까?

내가 보기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 인생은 호수에 떠 있는 오리 보트와 같다.

오리 보트는 페달을 밟지 않으면 바람이 부는 대로 떠다닌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짐작조차 못 했던 곳에 도착하기도 한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직장 생활을 하고 있든지 일단 ‘페달’은 밟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는 게 꼭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노를 젓다 보면 목적지 근처에 다다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도된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항상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존재다.

그래서 행운을 꿈꾼다. 이때 행운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부류가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부류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은 꿈만 야무지게 꾸지만 비범한 사람은 꿈을 위해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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