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을 바꾸었다 하더라도 무의식적인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인생은 바뀌지 않습니다.
제가 환경을 탓하며 자책만 하고 있었다면 인생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 이만큼 극적으로 자신을 바꾸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무의식적인 생각(=마음 버릇), 무의식적인 말(=말버릇), 무의식적인 행동(=몸 버릇)을 가다듬으면서 환경을 정돈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무의식적인 습관을 고치려면 물건을 정리해서 정돈된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우선은 많은 물건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물건을 버릴 것인가. 쓸 만한 물건인가, 그렇지 않은 물건인가로 고르면 사실 대부분이 쓸 만한 물건이 되어 버립니다.
물건이 늘기만 하는 사람을 보면 대개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차곡차곡 쌓아 놓곤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쓸 물건’은 거의 안 쓰기 마련이고, 막상 쓰려고 하면 다른 것을 더 사야 하는 법입니다.
물건도 그 역할을 다하면 휴식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건 전혀 쓰질 않았으니 아직 제 역할을 끝내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경험으로 자신이 그 물건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으니 그 물건은 이미 훌륭하게 제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고마운 마음으로 처분해도 됩니다.
쓰지 않더라도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 좋아하는 물건 등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진다면 그 물건은 그대로 두세요.
나는 내가 더 노력할수록 운이 더 좋아진다는 걸 발견했다. -토마스 제퍼슨
‘운’이 좋은 사람이란 한마디로 충족된 사람, 행복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운’이 좋은 인생이란 많은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인생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은 사람은 수많은 바람을 이루며 삽니다.
‘운’이 없다는 사람은 마음이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향해 있지 않고,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행동도 그 방향으로 향해 있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에 마음이 향해 있지 않으면 다른 것만 보입니다.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자기도 모르고,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원하는 것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즉 ‘운’의 흐름은 ‘마음 버릇’, ‘말버릇’, ‘몸 버릇’의 ‘방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운’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일단 자신이 바라는 쪽으로 마음을 두고(=원한다고 생각할 것),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욕구를 내뱉을 것), 그 방향으로 나아가야(=행동할 것) 합니다
‘방향성’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운’의 방향을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난 원한다고 제대로 말했을까?" ← ‘말’
"정말 이 방향이 맞을까?" ← ‘생각’
"그 방향으로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 ‘행동’
지금의 나의 모습은 바로 내 습관의 집대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자기가 지금 손에 쥔 결과를 역산해서 그것을 만든 습관을 찾아 바꾸는 것이 ‘운’의 방향성을 바꾸는 중요 포인트입니다
만약 지금 운이 나쁘다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까지 무의식중에 반복해온 습관을 파악하고 바꾸어 가는 것이 ‘운’을 바꾸는 중요 포인트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데 쓸데없이 낭비만 하고 계획적으로 저금도 하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그 ‘몸 버릇’을 바꿔야 합니다.
부자가 되고 말겠다고 입으로는 말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 버릇’을 바꿔야 합니다.
돈을 모아 집을 장만하겠다면서 수시로 가게에 들러 뭐라도 하나 사야 직성이 풀린다면 좀처럼 돈을 모으지 못할 겁니다.
습관을 바꾸기란 입으로 말하는 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습관이란 어떤 행위를 무의식 상태가 될 때까지 반복한 결과,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① 일단 줄곧 계속되는 습관의 횟수를 줄임으로써 늦춘다.
② 어느 정도까지 늦춰지면 멈춘다.
③ 원하는 결과를 향해 방향을 바꾼다.
④ 그 방향으로 움직임의 속도를 높인다
① 간식 먹는 횟수를 줄인다.
② 간식을 끊는다(①을 거쳤기에 끊기가 조금은 편해졌다).
③ ‘살이 빠진 나’를 머릿속에 그린다.
④ 새로운 식생활로 갈아타서 그것을 반복해 간다.
늦추다가(완화) 멈추고(중지) 방향을 틀어(수정) 속도를 높임(가속)으로써 습관을 바꾸어 가는 겁니다
매일 독경을 거르지 않고 계속하는 이유는 사소한 행동 습관을 반복하는 데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이 정한 일을 의도한 대로 계속할 수 있다는 자신감(자신에 대한 신뢰)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내가 정한 약속을 스스로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 자기 자신에게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자신감. 이것이 있으면 ‘운’도 반드시 강해집니다.
‘운’은 ‘습관’이 만들므로 일정한 행동을 계속해서 ‘습관화’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면 어떤 ‘습관’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무의식적인 습관의 힘을 알게 되면서 더 이상 겁먹거나 떨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것도 없고 계속 내려가기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날씨가 바뀌듯, 혹은 몸 상태가 좋다가도 나빠지고, 나쁘다가도 좋아지듯, ‘운’이나 인생도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쁘게 느껴지는 때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사람은 대개 싫은 일은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되도록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죠.
그리고 운이 좋은 사람이란 ‘좋은 일만 일어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에게도 나쁜 일은 일어납니다. 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나쁜 일을 호들갑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정도야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받아들입니다. 요컨대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유도로 비유하자면 낙법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상태입니다. 패배도 받아들이므로 넘어지는 법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넘어져도 괜찮습니다.
손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다르다고 할까요. ‘운’이 좋은 사람은 그 그릇의 크기가 터무니없이 큽니다.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도, ‘하긴, 이런 일도 있는 법이지.’, ‘병에다 부상까지, 큰일이네. 그래도 목숨을 건졌으니 괜찮아. 앞으로 어떻게든 되겠지.’, ‘1억을 손해 봤잖아. 하지만 나중에 3억을 벌면 이익이 2억이나 남아.’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낙법을 제대로 익힌 것입니다.
"손해 봐도 괜찮아. 손해 좀 본다고 운이 나쁜 건 아냐. 오히려 손해를 보면 운은 좋아져."라고. 끈질기게 그렇게 타이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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