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이란 결국 부단히 나에게 이르는 길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보다 나에게 성실하게, 보다 진정한 실존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중에서
온전한 나를 위해 부단히 읽고, 쓰고, 달리며 나를 찾으려 했습니다.
숱하게 휘청거렸고 그때마다 마음을 지탱하는 문장의 부축을 받으며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면 일정 기간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돌봄을 받는 것처럼, 저 역시 미숙하고 온전하지 못한 자신을 위해서 돌봄이 필요했습니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내면으로 바꾸어 저를 응시했습니다.
읽고, 쓰고, 달리면서 저를 관찰하고 기록했습니다
굽이굽이 순간마다 다가오는 불행도 내 편일 것이라고,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어쩌면 불행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행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고 제게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읽고, 쓰고, 달리며 사색한 기록 저변에는 위태로운 순간마다 저를 지켜 준 문장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문장에 기대기도 하고, 때로는 문장을 통해 낡은 생각을 벗고 점점 나다워 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색의 기록이 당신에게 기댈 수 있는 하나의 문장으로 남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 집니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중에서
무감하게만 보냈던 평범한 일상이 어쩌면 내가 죽을 때까지 그리워할 특별한 시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하얗게 질려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가장 사랑하는 아이와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둘째 아이가 나를 가장 많이 자라게 했고, 지금보다 어리고 미숙했지만 두 배로 용감하게 살았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도대체 누굴 위한 ‘좋은 사람’인가.
결국 나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무조건적인 희생은 아이들에게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쳐 주는 행동이나 다름이 없었다
누구도 아이들에게 다 주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던 일이었다. 내가 나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섣불리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나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그렇게 마음껏 엄마를 응원하다 보면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하고 싶은 일을 꿈꿀 것이다
엄마로서 느끼는 행복함 뒤에는 못 견딜 만큼 고단한 불행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나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을 하고 싶을 때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궁리할 때 생겼다.
이렇게 새로운 일의 시작은 불행한 나를 알아차리고 나에게 응답했기에 가능했다.
나의 평범한 사색과 노력을 좀더, 좀 더 깊게 본질에 닿는 것 같은 태도로 살자. - 전혜린,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중에서
사춘기도 무난하게 지나왔는데 생에 처음으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 섰다.
망망대해에 나침반도 없이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 막막함을 채우기 위해 폭식하듯 책을 읽어댔고, 틈만 나면 강연을 들으러 다녔다.
여러 독서 모임에 나가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도 열심히 만났다.
텅 비어 있는 나를 채울 수 있다면 뭐든지 다 해 볼 심산이었다.
하지만 때려 넣기 식의 활동은 무거운 마음을 잠시 잠재우는 진통제일 뿐이었다.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는,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자위일 뿐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에게 동의하지 않는 모습으로 살지 않기 위해 시작한 일은 평생 글을 쓰고, 시 쓰며 살고 싶다는 꿈에 데려다주는 운송 기관이 되었다.
이제 그 힘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움직이는 능동적인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수술실 간호사에서 논술 교사로의 경력 환승은 성공적이었다고, 꿈으로 이르는 길에 필연적인 환승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자기 계발에 집착해 책을 읽어 댔지만 제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던 내 모습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를 채우기 위해 했던 수많은 활동이 실은 도망이었다는 것을, 무거운 질문을 애써 회피하려는 시도였음을 느꼈다.
노력하며 산다는 명목으로 나의 몸과 마음은 돌보지 못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과 중요하게 대하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스스로를 중요하게 대하는 마음이었다.
온전히 시간을 내어 나를 마주하고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달리는 동안 들었던 생각은 나중에 떠올리려 하면 닿을락 말락 하다가 하늘로 날아가는 풍선처럼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
생각이 휘발되어 없어지기 전에 달리면서 사색한 내용과 그날의 컨디션을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달리기는 내 몸을 단단하게 하고 내 마음에 숨을 불어넣는 활동이 되었다. 달릴 수 있는 거리만큼 나와도 가까워졌다.
《잃어버린 영혼》이라는 책을 보면 영혼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사람이 나온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하면서 가끔 모눈종이 위에서 움직이는 좌표가 된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 간다
우리는 왜 영혼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한 걸까.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했다.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달리면서 보이는 많은 것을 허겁지겁 내 항아리에 채워 넣었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서 나의 어제를 인정하지 않고 무작정 달아난 것은 아닐까?
내 삶에서 나를 겉돌게 하는 이 바쁨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쩌면 나는 아직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도하게 증명하려 애쓰는 것은 아닐까?
견고한 일상 위에서만 이상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 성장은 그 안에서만 이야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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