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었는’데도, 지금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는다.
신이 ‘선택의 주사위’만은 자신의 손에 맡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면 날마다 설렘과 기대, 미칠 것 같은 성취감과 소리치고 싶은 흥분에 휩싸일 것이다.
그 흥분과 감동이 ‘보람’이며, 나는 사람이 그것을 맛보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가장 충만한 시기의 수십 년이라는 인생을 바칠 커리어이니, 어차피 일할 것이라면 ‘보람’이 있는 길을 고르고 싶지 않은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이유는 뭘까?
어떤 것들이 있는지, 옵션(선택지)을 모르기 때문인 걸까?
취업하는 데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그 하나하나를 잘 몰라서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모르는 걸까?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중심축’이 없어서란다.
네가 사회로 나가는 문 앞에 서 있는 지금의 시기까지 어쩌면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중심축을 세우지 못한 것일지 몰라.
자신에게 기준이 되는 ‘중심축’이 없으니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하다.
채점 기준이 없으면 자신이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눈앞의 연기가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라고 해도 반응할 수 없다.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눈앞에 사과와 귤이 있다면 아무 목적 없이 고를 수 있겠지만,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직업 선택은 그렇지 않다.
사람이 중대한 선택을 해야만 할 때 ‘중심축’이 없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의 원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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