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가 되는 존재인 건 서로가 마찬가지다. 남편도 내게 그런 존재이다. 단둘뿐인 가족이라는 사실이 더 그렇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결혼 8년 차, 이제 40대 중반에 접어든 우리는 서로의 약해짐을 보고 있다.
생리통, 두통, 위장병이 아닌… 늙음, 약해짐을 대할 때 마음이 좀 달라진다. 약간 서글프다. 아마 관리할 것들은 점점 더 많아지겠지. 잘 낫지 않는 눈처럼, 다른 곳들도 약함이 드러나겠지. 그때 옆에서 서로 보듬어주며 요양원 들어갈 때까지 무탈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게, "애도 안 낳고 그렇게 살 거면 동거를 하지"라는 말을 했다. 굳이 결혼해서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염려였는지, 무지로부터 온 비아냥인지 그 의도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병원을 오가며, 이 사람이 아플 때 바로 옆에서 그를 보살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내가 아프면, 남편도 나와 같은 공포와 고통을 느끼겠구나’ 싶으니 남편을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자가 있다는 건, 고통이나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은 존재가 있다는 기분 좋은 책임감을 준다. 그가 내 옆에서 오래 건강하게 살아줬으면 좋겠다. ‘아재 개그’를 하는 정도로 구박했던 걸 반성한다. 나 역시 건강하고 쌩쌩하게 그의 옆에서 아줌마 수다를 늘어놓고 싶다.
매일 겨우 한 시간씩 하는 운동이 뭐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하는 운동이 쌓여서 나중에 한두 달이라도 더 요양원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거동할 수 있게만 된다면 나는 성공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그도 나도 조금 멀쩡할 때 요양원에 들어가겠지. 그때 조금이라도 허리가 덜 꼬부라지고, 음식도 적당히 소화시킬 수 있는 상태로 들어갔으면 한다. 그 바람으로 내일 운동 시간 알람을 맞춘다.
생리통이 급격하게 심해진 건, 난임병원에서 호르몬 주사를 맞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호르몬이란 놈은 참 대단해서 온몸의 통증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그간 모르고 살았던 배란통을 느낀 건 깜찍한 수준이었다. 마치 배를 칼로 쑤시는 듯한 생리통도 처음이었다.
남편 손은 약손이라 절대 기계는 이 손맛을 따라오지 못할 것을 장담한다. 이 다정함이 유지되고 있는 건 그의 의지이겠지. 그 의지가 계속 되고 있음에 기대 나는 SOS를 치고 있다.
혈연도 아니면서 지구상에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사람. 산책할 수 있는 날씨면 유독 보고 싶은 사람.
현재 지구상에서 내 마음을 가장 잘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이 사람이다. 신기하지. 나랑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그간 지지고 볶은 탓에 이런 편안함이 따라오는 건가? 아이 없는 이 삶을 함께 살아가는 남편은 나에게 어떤 사람일까
말다툼 끝에 의견을 맞춰가는 건 상당히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를 뿐인데, 이야기 하다가 감정이 상한다. 나도 모르게 눈꼬리가 올라가고 말투가 딱딱해진다. 누구 한 사람이 선을 넘게 되면 전쟁 시작이다.
우리의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 한다면 바로 매일매일 쌓이고 있는 산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고,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 시간. 한 사람을 조금 더 알게 되는 시간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시시껄렁한 남편의 농담과 꽈배기 하나에 훌훌 털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평소 책이나 영화 취향이 아주 다른 우리는 취미로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철학책을 읽는 그와 대체 무슨 책 이야기를 해야 한단 말인가. 취향이 다르다는 건 대화에 있어서 참 힘든 장애물이다. 그렇다면? 공통된 취미를 찾아야 한다. 아이가 없는 우리는 점 하나 찍으면 남이고, 이혼도 속전속결로 끝난다. 한 사람의 마음이 돌아서면 이별은 초스피드다.
결혼 차수가 올라갈수록, 사이가 좋은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가 아주 분명하게 나뉘는 걸 주변에서도 흔히 보는 터라, ‘부부관계를 어떻게 잘 유지해 나갈까?’ 하는 고민을 늘 하고 있다. 그중 가장 손쉬운 방법이 공통된 취미이다.
알아보고, 이리저리 비교해보고, 서로 새로 알게 된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이 정말로 즐겁다. 차를 보는 눈도 생기니 일석이조다.
‘둘이 하니 즐겁다!’를 하나둘 늘려나가는 것. 그와 즐겁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쭉.
그래서 와인 ‘주도’는 원샷이 아니다. 내가 마시고 싶은 만큼, 내 속도로 천천히 마시는 술. 변화를 즐기는 술이다. 덕분에 ‘만취’란 잘 있을 수 없고, 시간을 가지고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으니 둘이서 기분 좋게 한잔하기에 딱이다. 손쉽게 매치시킬 수 있는 안주로는 닭꼬치, 족발, 순대, 보쌈을 추천한다. 적당한 음악을 틀어주면 우리 집 거실은 언제든 와인 바로 변신 완료.
영화처럼, 책처럼, 우리의 와인 취향도 극과 극이라 서로가 좋아하는 와인들을 번갈아 마셔보고 "자기는 나랑 어쩜 이렇게 입맛이 다르니? 깔깔" 하며 이 와인의 어떤 맛이 맘에 드는지, 오늘의 안주는 이 와인과 어울리는지를 떠들기 시작하면 취기와 함께 대화도 길어진다.
맛있는 와인이 한 병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벨을 누르길 권한다. 최고의 안주는 내 앞에 있는 당신이라는 거 잊지 마시고.
참 다행이다.약간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면 우리 둘의 관계는 꽤 즐겁다.
둘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시간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아는 이와 모르는 이의 행복지수는 극명한 차이가 있다.
매주 되풀이되는 일상이지만, 그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아주 확실한 행복을 챙기고 있다. 남편이 이렇게 좋아하며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남편과 내가 가장 잘 맞는 부분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이다.
남편과 내가 가장 잘 맞는 부분은 일상의 소중함에 대한 감사이다.
그는 성장기에 가정불화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돌아가고 싶은 집’이 가지는 의미가 그에게 아주 중요했다. 따듯한 목소리와 농담이 오가는 가정을 그는 늘 바랐다.
우리에게 남들처럼 커다란 기쁨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소한 행복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괜찮은 시간들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도한다.
남편과 나는 가끔 달이 뜨는 걸 본다. 그 시간에 맞춰서 창가에 앉거나 일부러 산책을 나간다. 둘 다 건강하게, 싸우지 않고 함께 달을 보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우리에게 남들처럼 커다란 기쁨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소한 행복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괜찮은 시간들을 만들어 나가기를 기도한다.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 신일숙, 《아르미안의 네 딸들》 중에서
일상을 크게 비트는 큼직한 사건들은 내 예상을 전부 빗나갔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었다. 주변을 봐도 큰일들은 예고 없이 닥친다.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는데 걱정을 당겨서 하는 행위는 멈추기로 했다.
우리는 늘 ‘후회’를 의식한다. ‘가성비’니 ‘가심비’니 ‘꿀팁’이니 하는 단어는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모든 걸 성공해보고 싶다는 욕망일 것이다. 거기엔 실패를 허락지 않는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정석대로, 정답대로, 가성비 좋게 사는 것이 내 인생일까?
일상을 크게 비트는 큼직한 사건들은 내 예상을 전부 빗나갔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었다. 주변을 봐도 큰일들은 예고 없이 닥친다. 어떤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는데 걱정을 당겨서 하는 행위는 멈추기로 했다.
후회하지 않느냐, 그래도 애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아직 늦지 않았다, 아프면 어떻게 할 거냐, 그러다 이혼한다 등등 타인의 오지랖에서 여유로워졌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일랑 필요 없다. 그것은 현실을 낭비하는 행위일 뿐이다. 나는 오늘 하루를, 이번 한 달을 충실하게 살면 된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정했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앞으로 무엇을 준비하고,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야 할까?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지만, 마땅히 질문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면 책인가 싶어서 동네 도서관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딩크’ 검색하면 ‘히딩크’가 첫 페이지에 주루룩 떨어지는 우리나라 출판계에 헛웃음이 나왔지만, ‘아이 없는’, ‘무자녀’로 검색어를 넓혀가며 걸리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쉬웠던 책은 로라 스콧의 《둘이면 충분해》였다. ‘Two is Enough’이라는 원제도 마음에 들었다. 작가는 무자녀 부부에 대한 통계가 그다지 없다는 점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려 했다. 그리고 무자녀 부부를 ‘초기 결정자’, ‘미루는 자’, ‘동의하는 자’, ‘미결정자’로 구분하고 있었다. 그럴 법하다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팔린 엘렌 워커의 《아이 없는 완전한 삶》은 질투가 났다. 시월드와 경력단절, 난임 시술이 없는 서양 무자녀 부부들의 삶이 참 여유로워 보였다. 일본은 ‘논마마’(일본에선 이렇게 표현하는 거 같다)를 다룬 에세이들이 꽤 있었다. 같은 동양 문화권이다 보니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
사카이 준코의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를 읽으며, 결혼도 안한 여성에게 ‘그래도 애는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을 건네는 이웃들의 모습에 ‘한국이랑 똑같네’ 하며 씁쓸했다.
마스다 미리의 《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은 아이 없는 부부의 일상을 그린 만화이다. 아무도 이들 주인공 부부에게 왜 아이가 없냐고 묻지 않는 점이 신기했고, 이들 부부의 작은 말다툼부터 따듯한 일상에서 뭔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10여 년 전 지하철 출퇴근 시간을 꽉 채워주었던 책들이, 지금은 더욱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의 헛된 오지랖보다, 내 삶에 도움 되는 조언들과 가슴 따듯한 위로가 언제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찾기만 하면 된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하나 생겼을 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누군가와 대화하듯 즐겁다.
기억하고 싶은 대화는 잊지 않도록 SNS에 기록을 남겨둔다. 내 SNS는 좋은 책과 와인을 저장해놓은 공간이다. 내 머릿속을 정리해두는 기분이라 가끔 목록만 쭉 읽어봐도 ‘그래, 그랬었지’ 하며 웃음이 나온다.
우리 부부는 일주일에 한두 번 산책길에 도서관에 들른다. 서로 떨어져 책을 읽다가 다시 도서관 입구에서 만난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콘 하나씩 물고 그날 본 책들을 이야기한다.
책으로 이렇게 일상까지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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