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귀에도 단점은 있다.
이곳저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는 게 문제다. 내가 인용하고 싶은 글귀는 다른 사람도 탐낼 것이다.

세상 누구나 인용하는 좋은 글귀는 정체성이 바뀔 수도 있다. 좋은 글귀에서 흔한 글귀로

흔하게 보는 글의 단점은 무얼까?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신선하다는 느낌이 없다. ‘또 이 소리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멋있으라고 좋은 글귀를 썼는데 오히려 지겨운 글이 되는 역작용이 생긴다.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는 글귀를 또 본다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느낌이 덜하다. 너무 흔해지면 감동보다 식상함이 앞선다

그래도 쓰고 싶다면 일부를 나만의 언어로 바꿔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다. 문장 순서를 바꿔서 비슷하지만 새로운 느낌을 줄 수도 있다

행복한 가정은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내가?’ ‘감히?’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고 말 그대로 언감생심,
그런 마음을 품기 어려웠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내가?’에서 ‘나도!’로 확 바뀌었다.

읽지 않는 사람은 쓰지도 못한다. 공부하고 깨우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책을 쓸 수 없다. 책 한 권을 쓰려면 관련된 책
100권은 읽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다

책을 쓰려면 온몸을 내던져야 한다. 마음을 다해서 써야 한다. 스스로 뿌듯한 책을 써야 한다. 읽고 읽고 또 읽어야 그런 책을 쓸 수 있다.

나를 채우고 또 채워야 한다. 할 말이 쌓이고 쌓여 터져 나올 때 책을 써야 한다. 책을 읽지 않겠다면, 책 한 권 사는 돈도 아깝다면, 책 쓸 준비가 안 된 것이다. 저자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모든 글에는 메시지가 있다. 읽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전하려는 내용이 메시지다. 글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글을 읽은 사람이 ‘아, 이런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써야 한다.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으면 글은 존재 의미를 잃는다. 읽은 사람이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야 한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글인데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읽는 사람이 체감할 수 있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이어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글쓰기는 큰 차이가 난다

킹은 독자가 글을 머리와 눈으로만 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는 독자에게 상황을 보여주고 직접 판단하도록 이끈다. 독자를 독자의 자리에만 머무르게 두지 않고 글 속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것이다. 주인공의 생각이나 감정, 느낌을 직접 판단하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글에 빠져든다.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자리에서 글을 읽는다. 이 정도면 글의 흐름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맡기게 된다. 그래서일까? 스티븐 킹의 소설은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 무척 혼잡했다"와 "지하철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고개를 돌리면 옆 사람과 입맞춤을 할 판이었고 키가 작은 나는 한쪽 발이 허공에 살짝 떴다"라는 표현은 읽는 사람에게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지하철을 타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려면 ‘혼잡했다’라는 말은 안 해도 된다. 독자가 그 지하철에 타고 있는 느낌이 들도록 표현해야 최고의 효과를 끌어낸다. 독자를 글 속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이제 독자는 그 지하철을 타고 글 속의 주인공들과 함께 달려간다. 필자가 의도하는 대로 따라오게 만든
것이다

글을 쓰다 독자에게 직접 말해주고 싶을 땐, 스티븐 킹의 말을 한번 떠올려보라. "직접적 표현을 한다면
실패한 것이다." "독자가 결론을 내리게 하라."

그는 ‘주인공은 심각한 고뇌에 빠졌다’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 고뇌
자체를 세세하게 묘사한다. 주인공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각들을 얼개로 삼아 글을 펼쳐낸다. 독자는 주인공의 고뇌를 읽지 않는다. 문장으로 본다. 읽지 않고 볼 수 있게 하는 게 바로 글의 디테일이다

목적이 있고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글이라면 나(쓰는 사람) 보기에만 좋은 글이 아니어야 한다. 나(쓰는 사람)보다 그대(읽을 사람)가 보기에 좋은 글이어야 한다. 글의 초점을 읽는 사람이 원하는 것에 맞추는 게 우선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읽기 힘들다면 좋은 글이 아니다. 읽기 힘든 글은 메시지를 잘 전달하지 못한다. 글은 무조건 쉽게 쓰는 게 좋다.

사람은 어디에서든 자연스럽게 자기의 언어를 사용한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한다

글을 쓴 사람은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건 물론이고 유명한 사람이니 대부분 안다고 생각하기 쉽다. 오판이다. ‘그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냐?’ 한다면 오만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헤밍웨이를 알 필요는 없다

다양한 목소리가 뒤섞여 화음을 만드는 게 민주주의 사회의 특징이다. 남과 다른 자기만의 목소리를 얼마든지 낼 수 있다

너무 많은 음식을 차려놓은 뷔페처럼 너무 많은 메시지를 담은 글은 읽는 사람에게 어떤 메시지도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너무 많은 내용을 늘어놓으면 어떤 것도 전달되지 않는 역효과만 커진다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늘어놓기가 아니라 몰아가기의 글쓰기를 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글에 대한 악마의 편집이 필요하다

길을 잃지 않고 글을 쓰는 방법이 있을까? ‘제목 먼저 정해놓고 쓰기.’ 이 방법이 효과적이다

어떤 형태든 가제목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정한다. 그 제목이 과녁이다. 내 글로 쏘아야 할 단 하나의 과녁. 가제목은 과녁이 되어 글을 쓰면서 지향해야 할 목표 지점을 보여준다. 과녁이 있으니 아무 곳에나 화살을 날리는 일은 없다

글 한 편에 하나의 메시지만 담는 것. 그래서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 글을 쓸 때 한 놈만 팬다는 건 그런 의미다. 원 샷 원 킬.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저격수다. 하나의 총알로 하나의 목표물. 하나의 원고에 하나의 메시지. 그렇게 쓸 때 글의 요지가 명확해지고 읽는 사람도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는다.

글은 글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글이 곧 저자다. 잘못된 글을 쓰고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거짓된 사람이다. 독자와 세상을 속인 것과 같다. 작은 단어 하나, 이야기 하나가 생각지도 않은 결과를 불러온다. 별것 아닌 표기 하나도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어떤 형태든 가제목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먼저 정한다. 그 제목이 과녁이다. 내 글로 쏘아야 할 단 하나의 과녁. 가제목은 과녁이 되어 글을 쓰면서 지향해야 할 목표 지점을 보여준다. 과녁이 있으니 아무 곳에나 화살을 날리는 일은 없다

정말 필요하다면, 문장의 맛을 더 살릴 수 있다면 사용하는 게 좋다. 단어 하나를 선택하는 데도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글쓰기다

문제는 안 써도 될 곳에 ‘을, 를, 가’를 아무 생각 없이 쓴다는 데 있다. 의미 없이 문장 속에 자리한 이런 글자는 삭제해도 괜찮다.

‘을, 를, 가’를 빼버리면 한결 밀도 있게 느껴진다. 문장이 단순해지고 쫀쫀해진다. ‘고’는 꼭 써야 할 것 같지만, 문장에서 역할이 없을 때가 꽤 있다. 필요 없는 ‘고’를 빼면 문장이 한결 탄탄해진다.

글 한 편에 하나의 메시지만 담는 것. 그래서 그것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 글을 쓸 때 한 놈만 팬다는 건 그런 의미다. 원 샷 원 킬.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저격수다. 하나의 총알로 하나의 목표물. 하나의 원고에 하나의 메시지. 그렇게 쓸 때 글의 요지가 명확해지고 읽는 사람도 저자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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