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채송화 - 개정판
현고운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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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똑같은 책을 읽었었는데... 분명히 같은 책일 텐데 내가 읽은 책이 맞을까 싶게, 소개글이 생소하다... 내가 읽었던 책은 이런 소개글의 느낌보다는 단정하면서도 위트가 넘쳤는데... 너무 '새 책' 같은 이미지를 주려니 무리수를 두는 것 같다.  이 책은 매우 위트가 있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진지한 로맨스 책이다. 
(작가님의 명성에 힙입어 다시 한번 드라마로 띄우려고 하나?..아, 물론 이책은 충분히 그럴만한 재미와 감동이 있긴하다. ^^)

 백일도 되기전에 엄마를 잃은 채송화는 마치 신데렐라 처럼 계모와 두 자매를 얻었다.  

언니인 박양지는 새엄마의 전남편 소생이었고, 동생인 채장미는 아빠와 새엄마의 소생이었다. 새엄마의 화려한 인물을 닮아서인지 송화를 뺀 나머지 두자매(언니인 양지는 변호사,동생인 장미는 국민요정이라 불리는 배우) 는 똑똑했고 아름다웠다.  

그에 반해 송화는 완전 친탁을 해서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은 보통이었으며, 건설현장에서 감독을 맡을만큼 씩씩하고 튼튼했다. 그런 송화가 어느날 현장에서 사고를 당할뻔한 사람을 기발한 순발력으로 구해내느라 발목을 접찔리게 된다. 그렇게해서 운명처럼 그녀는 <자양 한의원>의 원장인 윤상엽 만나게 된다. 

너무나 씩씩하고 용감한 송화지만, 그녀는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이 싫었다. 거기다 그렇잖아도 끔찍한 침을 놓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반말을 찍찍해대는 동안의 잘생긴 한의사가 있어서 더 싫었다. 그래서 마침내 일주일간의 치료가 끝났을때 송화는 드디어 그 젊어보이는 한의사에게 한방을 먹인다. "야, 너 몇 살이야?" 라고. 황당해서 그가 대꾸할 말을 찾는 틈을 타서 그녀는 한번만 더 반말하면 '죽는다' 는 협박 아닌 협박을 남겨놓고 기분 좋게 한의원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얼마후에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집으로 한약상자가 배달되어 왔고, 그녀는 내내 찜찜한 마음에 결국 약상자를 들고 한의원을 찾아간다. 물론, 돌려주러.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윤상엽에게 사귀자는 프로포즈를 받는다. 이번엔 송화가 기가막혔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가 한 말에 결국 송화는 은혜갚는 까치의 심정으로 그에게 밥을 한번 사기로 약속한다. 사연인즉, 공사마감이 도래하고 준공 즈음이 되서 술자리가 많아진 요근래, 아침이면 술냄새를 폴폴 풍기며 지하철을 타야했는데, 그때마다 전철안의 수면가스로 정신없이 졸아댔고 일주일전쯤 꿈속의 왕자님과 키스하기 바로 직전 누군가 '양재역' 이라면서 깨워준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남자 윤상엽이란다. 그 남자는 더불어 자신의 비싼 아르마니 양복에 침까지 묻혀놨으니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다. 책임감하면 채송화였으니, 어쩔수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한 저녁 약속에서 상엽은 그녀에게 분명한 바가지를 씌웠고, 더불어 다음 데이트까지 약속 받는다. 기습 키스 두번으로. 
 

어떻게? 당황한 송화가 손목을 잡힌채로 머리를 들이받아서 상엽의 입술이 찢어진 것이다. 그런 사연으로 다시 사죄의 의미로 두번째 약속을 잡고, 여지없이 졸면서 출근하는 지하철에서 다시 만난 상엽은 여전히 송화에게 사귀자며 조른다. 송화는 자신에게 운명이라며 우겨대는 상엽을 보며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제안한다. 자신이 이기면 바이바이 지면 사귀는 게임. 상엽은 처음엔 확률게임을 거부하지만,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라는 말에 가위바위보를 하고 정말 운명처럼 송화는 지고만다.  

그래서 정말 애들 장난처럼 둘은 공식적으로 사귀는 커플이 된다. 드디어 그들의  공식적인 첫 데이트날, 상엽은 예상치못한 복병을 만난다. 그것은 채송화의 동생인줄 아무도 모르는 채장미의 방문을 받은것. 사실 장미는 너무 타이트한 스케줄에 며칠 쉬고 싶어서 꾀병을 부리려 왔다가 집안빵빵하고 수재에 잘생긴 상엽을 보고는 유혹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주변에 널려있는 꽃처럼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수많은 여자들을 보면서 자란 상엽에게는 장미가 떨어대는 아양과 애교등등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물론, 입원도 거절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장미의 상엽에대한 도전의지는 한없이 더 커져버렸고 장미를 거절하고 첫데이트 약속에 늦게 온 상엽은 분홍과 흰색이 섞인 귀여운 느낌의 '키위장미'한다발을 선물했다. 순수 순진의 꽃말을 갖고있는 그 꽃은 송화에게 잘 어울렸고 그 날의 데이트도 다른 커플들과는 차별화된 '찜질방' 데이트였다.  

상엽도 자신이 왜 데이트 코스를 찜질방으로 했는지 의문스러웠지만, 가잔다고 순순히 오는 송화도 특이하긴 했다. 첫 데이트에 샤워에 맨얼굴을 다 보여야하는 여자로서는 피하고 싶은 코스임에 분명했지만 덕분에 상엽은 송화의 맨얼굴이 깨끗하고 맑고 나이보다 어려보이고 귀엽기까지 하다는걸 알게된다. 점점 그녀의 내면의 아름다움이 보이기 시작하자 상엽은 갈등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는 대그룹 명성전자의 후계자 계열에 속해있는 사람이었지만, 정략결혼으로 -게다가 어머니의 일방적인 계략으로 맺어진- 불행한 부모님의 결혼생활에 상처받고 할퀴어져 겉보다는 속이 차가운 인물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즉흥적인 '앞으로 명성전자의 후임자는 제일 빨리 태어나는 증손주다' 라는 말에 온 집안이 들썩여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사업에는 관심도 없었고, 한의사라는 직업도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오로지 명성전자의 안방이 목적으로 아버지를 유혹해 친구의 남자를 가로챈 어머니로서는 아들을 닥달하지 않을수 없었고, 그 귀찮음을 잠시나마-다른 사촌중에 누가 얼른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때까지- 미루기 위해 씩씩하고 무감한 여자가 필요했던 거였다. 그래서 선택한 여자가 송화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진면목을 보면 볼수록 너무나도 진실되고 바르기만한 그녀에비해 자신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던 것이 양심에 걸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나기 시작한 둘은 점점 서로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중간에 동생 장미가 상엽을 유혹하기 위해 스캔들도 만들고 덕분에 마음고생도 하지만,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과정에서 상엽은 선물처럼 송화가 자신을 선택했다는것을 알게된다. 가위바위보라는 게임을 통해서 연인이된것이 운명이라 했지만, 사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한번도 게임이라는 것에서 이겨보지 못했던 송화만의 선택이었던것. 장미의 스캔들 소동으로 몸과 마음이 다 힘들었던 둘은 약속대로 2박3일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서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약속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상엽은 송화의 집에 인사를 드리고, 자신의 집에는 통보를 한다. 예상대로 어머니의 반응은 거셌지만, 결정적으로 아버지가 손을 들어줘서 결국 상견례 날짜를 잡게되었다. 운명의 그날. 상견례 자리에서 상엽의 어머니는 송화에게서 남편의 첫사랑 얼굴을 보았고, 평생을 친구의 남자를 빼앗은 죄로 사랑받지 못하고 불행하게만 살아온 상엽의 어머니는 이제 죄책감이 아니라 분노만이 남아서 송화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송화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사자들인 상엽과 송화만이 이 상황에 당황했고, 억울했다. 그리고 상엽은 분노의 화살을 어머니에게 돌렸고 결국 그날밤 어머니는 치사량의 수면제를 먹은 채 병원으로 실려갔다. 마침내 상엽과 송화는 다시 만나 두번째 가위바위보로  이별을 결정한다. 운명이 아닌 선택. 사랑하면서도 헤어져야만 하는 두 연인은 마지막으로 이별여행을 떠나고 상엽은 그녀의 손에 커플반지를 선물한다.  'Always with me'란 글씨가 새겨져 있는 그 반지는 그후 송화의 손에서 빠지지 않는다. 그와 이별 여행을 다녀오고 한달 후. 그녀는 신문을 통해 상엽의 (또 하나의 귀찮음을 피하기 위함이었지만)약혼소식을 알게되고 동시에 임신 사실을 알게된다.  

10개월후 그녀는 100일이 얼마 남지 않은 아기의 미혼모가 되어 있다. 그 아기의 100일을 축하하기 위해 장미가 온식구의 제주도여행을 제안했고 공항에서 10개월만에 상엽과 재회한다. 단10분. 그들에게 허용된 시간이었다. 여전히 서로를 향해 마음이 뜨거운 사람들. 여전히 서로의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들. 하지만, 헤어졌고 여전히 그들을 헤어지게 하는 상황은 변함이없었다.......
 

 역시…나의 사랑 현고운님이다. 어쩜 이렇게 글들을 맛있게, 입에 쩍쩍 달라붙게 잘 쓰시는지 너무 즐겁게 너무 감동적이게 너무 가슴졸이면서 재밌게 잘 봤다. 
이 글속에 나온 송화도 예쁘고, 남주인 상엽도 너무 좋다. 말도 재밌게 하고 성격도 좋고, 음… 다분히 현실적이다.
멋있긴 하지만, 너무 카리스마적인 남주들은 현실적이지 않은데, 상엽은 충분히 현실적이면서도 충분히 멋있다. 그래서 좋다. 귀엽고, 다정하고, 유머있고, 능력있고, 사랑스럽고. ㅋㅋㅋ
(그래봤자 남의 남자지만! ) 


"그렇게 성격이 까칠한 거 몸이 허해서 그럴 수 있어요."
상엽의 느긋한 진단에 송화는 대놓고 혀를 찼다.
"까칠한 성격은 약 먹으면 낫는다 치고, 그 밥맛없는 성격은 뭘 먹어야 고친대요?"
"다들 나더러 성격 좋다고 하던데."
성격이 좋긴. 개뿔. 성격 좋은 사람이 다 죽었다.
"관두죠"
"우리 사귑시다."


"가만, 잠깐만요. 그럼 일주일 내내 당신이 날 쫓아다녔단 말이에요, 지금?"
"설마. 비싼 아르마니에 침 묻히고 자는 여자를 쫓아다닐 만큼 한가하진 않다고. "
"누가 침을 묻혀요?"
"누가 하는 여자가."
혹시나 하는 두려움으로 잔뜩 긴장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며 상엽은 피식 웃고는 미소를 지었다.


"미치게 귀여운 정도는 아니고."
"그럼 왜 네가 그렇게 목을 매고 사귀자고 사정을 하는 건데?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니잖아."
"아마 이런 여자는 또 없을 거 같아서.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대기실에서 소리 지르면 원장실까지 다 들린다. 주먹도 세고. 아니,주먹질은 아니고 머리뼈가 정말 튼튼하더라."
"침 흘리고 자던 여자가 대기실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주먹을 휘두르니까 막 애정이 샘솟는다면, 그건 네가 변태라는 뜻인데."  
---->(난, 이 친구의 논리정연함이 너무 웃겨서 죽을 뻔 했다. ^^)
"변태가 아니라 여자 보는 눈이 높은거지" 
 

"그여자, 전철 안에서 졸기는 해도 아마 지각은 안할거야. 매 시간 칼같이 같은 시각에 지하철을 타는 걸 보면. 매일같이 숱을 마신다는 건, 술 마실 친구가 충분하다는 뜻이고. 강제로 키스한 남자, 상처까지 걱정하는걸 보면 정도 많은거고."  ............윤상엽


"나한테는 충분히 매력적이야. 귀여워 죽겠어."  ..............윤상엽


"미치겠구만." ..............상엽의 친구


"내가 왜 필요한지는 몰라도 너무 애쓰지는 말아요. 사람 일은 진심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애를 쓰고 무리를 해도 소용없는 짓이니까."       ..............채송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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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日月 - 상
이리리 지음 / 가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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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후궁이 되어라...." 소개글과 작가님의 지명도 때문에 선택한 책. 비슷한 소재의 여러글과 비교해보았을때, 최은경님의 '화월'은 남주의 '서민화'였던데 비해 '일월'은 끝이 만족스러워 좋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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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모아 G+ 중간고사 대비 단원평가 예상문제 5-2 - 2011
에듀모아 초등연구회 엮음 / 이야기(주)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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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주문하면<내일수령가능>은장식인가요?주문한지3일이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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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풀하우스 소설 풀 하우스 1
원수연 원작, 서유미 지음 / 북하우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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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싸가지에 제멋대로인 듯 하지만 알게모르게 마음 따뜻한 남자와 오직 <풀하우스> 하나만 덩그러니 남겨진 채 홀로서기 해야할 여자가 만나 싸우다 정들어 사랑까지 하게되는 이야기.


  채은수 그녀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으로 어려서 엄마를 잃고 얼마전 아버지마저 돌아가셔서 완벽하게 혼자였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버지가 설계하시고 엄마가 만들어주신 집, <풀하우스>가 있다.


  이진후 그는 요새 한창 뜨고있는 잘나가는 영화배우다.

본명은 민지훈. 대대로 사업가 집안에 뚱딴지 처럼 '딴따라'가 되겠다고 나선 놈이 맘에 안들어서 눈만 마주치면 버럭거리는 아버지가 있고, 본처의 아들이 있는 대기업 오너의 두번째 부인이 되서 낮이나 밤이나 아들이 눈밖에 나지 않도록 동동거리는 어머니에, 생모를 잃고 계모와 냉정한 아버지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혹시나 배다른 동생에게 사랑을 뺏길까 전전긍긍하는 형까지 둔 조금은 자기 멋대로에 까칠한 성격까지 덤으로 가지고 있는, 아 그리고 서울 변두리에 몇년전 보아둔 괜찮은 <집>도 한 채 가지고 있는 남자다.

  그와 그녀가 처음으로 만난것은 호텔 화장실이었다.
그날도 은수는 친구를 쫒아다니는 귀찮은 남자를 떼어주는 '꽃미남 애인'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남장 차림이었고, 진후는 사촌의 결혼식에 의무적으로 참석한 상태였다. 생각없이 여자화장실에 들어섰다가 남장차림임을 자각해 얼른 후다닥 일을 보고 나오리라 뛰어든 남자화장실에서 마침 펜들을 피해 화장실에 숨어있던 진후와 맞닥뜨렸고 순간적으로 또 남장을 망각한 은수의 '변태' 외침과 얼결에 맞은 뺨...그리고 화가나서 잡아챈 멱살 밑으로 느껴지는 이물감....

  "트렌스....젠더?"

후다닥 도망친 은수를 뒤쫒기엔 너무 피곤했다. 하지만, 이 만남이 둘의 앞날에 아주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줄이야.

  바로 그 둘의 소동을 카메라에 찍은자가 있었고, 악의적으로 진후를 매장시키려고 그를 "동성애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여태껏 남성적 카리스마를 표면에 내걸었던 그로서는 커다란 타격이었고, 예정됬던 계약이 파기되기 시작했으며 한동안은 숨어서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질 날만 기다리는것이 좋겠다는 결론이났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그가 예전에 사 놓았던 집, <풀하우스>였다.

  진후의 매니저와 기획사 사람들에 의해 자신의 집을 앉은 자리에서 빼앗긴 은수는 한동안 억울하고 분했지만,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의 필체와 인감으로 된 계약서엔 어쩔수 없이 두 손들고 빈 몸으로 쫒겨날 수 밖에 없었다. 풀하우스 안의 내부 가구까지 모두 통째로 소유권이 넘어가 버렸기때문에 그녀에겐 극히 개인적인 옷가지와 코펠, 텐트만이 남았다. 하지만, 갈곳이 없었고 아직은 집주인 '민지훈'을 만나지 못한 상태라 한번이라도 따져보기위해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와의 첫만남은 결코 당당하지 못하게 한쪽은 도둑으로, 또 한쪽은 속옷차림의 민망함으로 이루어졌다. 마침 그가 새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아직 꺼내오지 못한 트렁크의 옷을 꺼내기 위해 현관을 나섰을때 은수는 쫒겨날 때 미처 챙기 못했던 오이피클등 밑반찬등을 꺼내가기 위해 부엌 창문으로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들어서던 그와 나가려던 그녀가 현관에서 맞닥뜨렸고 순간적으로 그녀는 이집의 소유권이 이제 없음을 망각하고 그를 쫒아내고 말았다. 황당하고 화가난 진후가 경찰에 신고한다는 협박에 어쩔수 문을 연 은수. 둘의 첫 만남이었다. 

  자신에게 집을 팔았던 남자의 딸. 어디선가 본 듯도 한... 여자치곤 큰 키에 바락바락 소리치며 죽어도 잘못했다는 말은 안하는 피곤한 여자였다. 물론, 하루아침에 쫒겨났으니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지난 몇년간 세도 없이 이만큼 사정을 봐주었으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자가 오이피클같은 짐들을 챙겨서 코가 빨개진채 문을 나설때도 오만한 인상을 펴지 않았다. 그 여자가 '새 집' 담벼락에 쓰러질듯 기대있던 텐트를 열고 들어섰을 때까지도. 그래서 그날 밤 비가 억수같이 퍼붓지만 않았어도 결코 그녀를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았을 거였다. 그렇게 그 둘의 기묘한 동거는 시작되었다.

  그녀한테 남겨진 단 하나 <풀하우스>를 차지한 왕싸가지 남자 민지훈.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이진후와 닮은 남자. 호텔 화장실에서 만났던 '변태'.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기억력 나쁜 남자가 첫 인상만큼 아주 나쁜 인간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건, 폭우속에서 떨고 있는 그녀에게 퉁명스럽지만 손을 내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보게된 그의 아픈 짝사랑도. 

  고열로 앓고 있는 그를 위해 약을 사갖고 왔을때 그녀는 그의 '형수가 될 여자' 세린을 보았고, 진후의 눈빛에서 그녀가 단순히 미래의 형수가 아님을 알수 있었다. 그 둘은 과거에 연인이었지만, 어느 순간 세린은 그를 떠났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채 그를 피하던 그녀는 어느순간 형의 약혼녀로 나타난것이다. 소리지르며 묻고 싶었지만, 행복해하는 형을 보며 그냥 자신의 감정을 죽이는 것으로 대신할뿐이었다. 

  이때쯤 매니저로부터 집주인 '민지훈'이 영화배우 '이진후'의 본명임을 알게되었고, 잘 나가던 그가 이렇게 시외의 집에 은둔하면서 시간을 죽이게 된것도, 줄줄이 계약이 파기된 것도 모두 자신과의 본의 아닌 '소동'때문이었음을 알게된 은수는 죄책감에 당분간 <풀하우스>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악착같이 돈을 벌어 다시 되찾기로. 그래서 마지막으로 그에게 따스한 밥을 차려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해준다. 실제로 그의 연기를 볼때면 느끼곤 하던 거지만, 그는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인물>자체가 된듯했고, 충분히 그가 바라는 시나리오의 역을 할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래서였을까? 진후는 따스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잘 될거라' 말하고 동시에 '잘 있으라'고 말하는 그녀를 떠나보내기 싫어졌다.그녀가 이 집에서 나가는것이 당연한 일이고 잘 된 일임에도 이젠 그녀를 보내기 싫어진 것이다. 

  떼를 쓰듯이 어이없는 이유로 그녀를 붙잡고 있을때 진후의 기획사에서 <동성애자>란 오명을 벗기기 위해 퍼뜨린 <이성과 연애중>이란 스캔들을 확인하기위해 무서운 진후의 아버지가 나타난 것도 그때. 똑같은 성질과 닮은 얼굴로 버럭대던 부자간의 싸움에 얼떨결에 '온전한 정신을 가진 채' 그의 곁에 서게 된 '여자'가 되버린 은수는 지기 싫어하는 진후의 순간적인 치기로 <결혼할 여자>까지 되버렸다. 물론, 똑똑한 은수는 풀하우스의 공간중에 서재랑, 베란다랑, 정원, 자신이 쓰던 방까지 돌려받기로 하고. 

  이제 은수는 싫어도 진후의 약혼녀 역할을 해야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진후를 바라보는 것이 습관처럼 되버렸다. 왕싸가지에 제멋대로에 형의 여자가 될 여자를 아직 못잊어서 사랑을 거부하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나타나는 그의 선善함이, 연기에 대한 천부적인 열정이, 자신을 향한 이따금씩 반짝거리는 미소가 그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보이면 안되는 위험한 감정임 또한 알아서 은수는 자신의 그런 감정을 숨기고 진후의 형과 세린의 약혼파티에 참석한다. 

  그 파티에서 은수가 입은 옷도 진후의 선물이었는데, 세린이 지나가는 말처럼 '내가 좋아하는 색'이란 말을 하고 그 말은 곧 은수의 가슴에 생채기를 냈다. 그리고 그날밤 진후와 세린의 대화를 듣게된다. 형을 사랑하느냐는 말에 편해서 좋다는 그녀. 왜 떠났냐는 진후의 물음에 그의 너무 커다란 사랑과 열정에 자신이 너무 초라해보여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거란 생각에 편안한 규하의 사랑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진후는 허탈하고 기가막혀하고 오히려 뒤에 서서 듣던 은수가 세린에게 화를 낸다. 너무 아파하고 힘들어했던 그를 대신해서, 이 순간까지도 그녀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죽이는 그가 불쌍해서. 또,아직까지 그녀를 잊지못해 자신에게 그녀가 좋아한다는 색깔의 옷을 선물한 그가 미워서...

  하지만, 곧 진후의 무시무시한 표정과 억센 손아귀에 끌려 나오게 되었고, 창백한 표정의 세린을 숨은 그늘에서 부들부들 떨며 지켜보는 한 남자, 규하가 있었다....그리고 얼마안가 상처받은 표정의 은수를 보고 또 자신의 손에 의해 보랗빛으로 물든 그녀의 손목을 보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진후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억울한 것은 있었다. 오늘의 이 옷은 그녀, 은수만을 위해서 그가 고른것이었는데...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왜 그녀는 이 옷이 맘에 안든다는 것일까?

  항상 진후가 주목을 받았다. 자신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동생이 아무리 말썽을 피워도 자신은 늘 두번째였다. 아버지의 사랑을 뺏기지 않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새어머니한테 구박받지 않기위해 착하게 행동했지만, 규하의 마음은 항상 허전했다. 그런 허전함을 달래주던 세린의 미소가 자신을 선택했다는 것만이 유일하게 잘난동생을 제친것이었는데, 동생의 여자였다니....

  그래서 규하는 복수를 결심한다. 마침 그때 그에겐 진후를 따라다니던 악질 기자의 수첩까지 들어온 터라 아주 손쉽게 <동거>라는 치명적인 스캔들을 낼 수 있었다...이제 겨우 진후가 그토록 원하던 배역을 맡아 한창 그 인물 속에 빠져 살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자신 때문에 그 배역을 못하게 될거란 생각이 들자 은수는 결심을 한다. 기획사 사람들과 매니저에게 끌려나가는 그에게 "그 영화를 꼭 멋지게 성공시키라'는 말과함께. 그리고 곧 기자들이 떼거지로 <풀하우스>로 모여든다.,,,,
 

  사실...책을 반납해서 줄거리도 아쉽고, 대사들도 아쉽다. ...ㅠㅠ;;

비와 송혜교가 나와서 대박을 터뜨린 만화 원작의 소설. 하지만, 이것은 흔히 드라마로 각색되어진 것들이 그러하듯이 내용이 많이 다르다. 드라마에선 배다른 형제도 아니었고, 세린(드라마상에서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이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사람은 형인 규하였으며, 나중에 진호가 계약결혼을 하자 그때부터 마음을 내보였던 걸로 아는데,...


  드라마를 (유일하게) 먼저 보고 원작을 본 경우인데 내 경우엔 둘 다 느낌이 괜찮았다. 드라마는 유쾌했고, 책은 <소녀틱>했다. 드라마와 원작은 '다른것'일뿐 '달라서 틀린것'은 아니었으므로. 


  아, 각각 아쉬운 점은 있었다. 드라마에서 내가 비보다 더 좋아하고 맘에 들어했던 '사촌형'의 존재가 원작에선 너무 미미하고 소심한 존재로 나오는것이 마음 아팠고, 책에선 세린에대한 지난 사랑보단 같이 커온 배다른 형에대한 배려심이 더 나타났는데 드라마에선 설정상 그게 안됬었기에 송혜교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었다는 것. 

(아무래도 지난 사랑에 대한 감정을 오래 갖고 있는 남주는 별로이니까)


  어쨌든, 드라마가 됬었던 책을 찾아 읽어보는것도 재밌었다. 하지만, 먼저 영상물을 보면 책을 읽을때 영상들이 오버랩이 되서 상상의 나래를 방해하는 경우가 있어서 역시 난....아직은 영상보단 활자가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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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 - 상
지영 지음 / 아름다운날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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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금으로부터 400여년전 왜국의 장수와 조선에서 전쟁포로로 끌려온 여인이 만난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 힘들고 어렵고 고달프다. 하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는 가슴의 아릿함으로 남아 오래전 읽은 책장의 표지만 보아도 손끝으로 한번 쓰다듬어 주게 된다.

  임진왜란의 끝무렵. 본국으로 도망가던 왜병들은 닥치는 대로 조선양민들을 관선(船:배)에 싣고 노비로 끌고 갔다. 그 속에 요양차 강릉에 머물다 붙잡혀온 모녀가 있었으니, 윤이규 도지사영감의 처와 그의 무남독녀 딸 윤설연(렌)이었다. 당시 11살이었던 그녀는 병든 노모를 구환하며 일본에서 말그대로 천비의 신세로 연명하게 된다.  

  그러다 강릉 산사에 있을때 인연이 닿아 목숨을 구해주었던 일본의 무사 신겐을 만나 그의 양딸이 된다. 어머니는 결국 지병으로 돌아가셨지만, 렌 어머니의 단아하고 고운 모습에 반했던 신겐은 렌에게라도 아비노릇을 하고 싶었던것이다. 하지만 덕분에 렌의 나이 18세때 그가 주군으로 모시고 있던 가토 당주(지방수령정도)의 눈에 띄게 되어 정략적 목적으로 히타치의 다이묘(수령) 키타가와 류타카 측실로 바쳐지게 된다.  가토 당주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간자 역할이었고 그녀의 거부할 수 없는 족쇄는 일본에 같이 끌려왔던 사촌오빠의 목숨이었다. 

  키타가와 류타카는 당시 일본내의 실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하나뿐인 조카로서 어린 나이에 생모가 히타치성에 침입한 원수 가문인 아시카가家의 장손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죽은것을 목격한다. 그 때 이미 그의 마음은 정이라곤 발 붙일수 없이 말라버렸고, 오직 살의와 공격만이 남게되었다.  

  폭력은 분노를 낳고 분노는 복수를 잉태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류타카의 부친은 복수를 다짐하고 도쿠가와의 힘을 빌어 아시카가를 친 후 두 딸을 데려와 하나는 자신의 측실로 하나는 아들 류타카의 정실로 삼는다. 그녀들 역시 피해자였지만 이미 감정이 말라버린 두 부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건 냉대와 멸시 뿐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히타치의 다이묘는 류타카가 되었지만 아시카가에서 온 두 자매는 각각 죽은 전 다이묘의 측실로 하나는 현 다이묘의 정실로 남게되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끌려와 분풀이 상대밖에 되지 못했던 전 다이묘의 측실, 즉 류타카의 서모인 마사코는 이제 34살이 되었다. 비참함에 자살하려던 그녀를 살게 해준건 뜻하지 않게 생긴 전 당주의 아들 요시노와 다시 자신을 찾아와 준 어린 시절의 정혼자였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이를 갈며 복수를 꿈꾼다. 그 복수엔 저보단 나은 편에 속했던 여동생도 포함되어 있어서 정략적인 목적으로 받아들인 류타카의 측실 6명을 선동해 아기를 갖은 여동생에게 독을 먹이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단지 정실이라는 이유만으로. 결국 동생은 시기보다 앞당긴 난산으로 아기는 어렵게 낳았지만 끝내 죽어버리고  이 사실을 알게된 류타카는 정실에 대한 정때문이 아니라 여자들이란 존재에 질려서 차마 그녀들의 친정을 생각해 죽이지는 못하고 측실들 모두 북쪽 동실에 유폐해 버린다. 그것이 4년전의 일이었다.

  이제 그 아이, 세이쥰은 4살이 되었다. 하지만, 어미도 없이 잔정없는 아비 속에서 자란 아이는 타고난 영민함을 밖에 보이기도 전에 말을 더듬게 되었고, 점점 포악해지기만 했다. 렌과 류타카가 첫만남도 렌이 가토 당주의 문사로서 히타치를 방문했을때 세이쥰이 죽은 생모가 연못에 있다는 요시노의 거짓말을 믿고 뛰어든것을 마침 곁에 있던 렌이 구해주면서 이루어졌다. 그때 렌은 맑고 담담하게 "히타치의 다이묘는 군자가 아닌 소인배"란 말을 함으로써 류타카에게 날카로운 첫인상을 남긴다.

  첫만남부터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 그녀는 일본의 전열도를 호령하는 도쿠가와의 앞에서도 당당하고 명민했다. 처음 가토 당주가 뇌물처럼 내민 계집을 받을 마음이 추호도 없던 류타카였지만 그녀에게로 향하는 호기심과 외숙부의 명을 어길수 없어 그녀를 히타치의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히타치에 혼자 남겨진 렌은 두번의 자살(?)시도를 막았다는 이유로 세이쥰에게 미움을 받지만 차츰  아이의 숨겨진 외로움과 영민함을 알아본 렌의 노력으로 친해지게 되자 그의 메노토(아이를 교육시키고 돌봐주는 사람)가 된다. 말도 안하고 포악하기만 하던 아이가 렌을 만나면서 보통의 아이처럼 웃고 떠들기 시작하자 다들 신기해했고 그 가운데 류타카도 있었다.

   류타카가 처음 본 렌은 사람을 잡아끄는 맑음과 탄복할 만한 영민함, 아무나 무시할 수 없는 당당함을 지닌 어린 계집애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너무나 따스하고 보드라워서 어려서 그를 떠난 어미의 품속을 떠올리게 했다. 언젠가 부터 그녀를 쫒는 자신이 낯설어 처음엔 일부러 밀어내려 하지만, 시나브로 렌을 가슴에 품게된다. 그리고 그녀를 일곱번째 측실로 삼는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짙고 깊은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을 수 있었던 렌. 하지만, 조선인 포로로 끌려온 렌의 입장으로선 어머니를 병들어 죽게하고 조국을 침략한 왜장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그녀의 혼란은 그녀 자신뿐만이 아니라, 류타카도 힘들게 하였지만, 류타카의 끊임없는 구애에 그녀 역시 류타카를 어느새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만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기에 류타카는 항상 그녀의 사랑에 목마르고 애타했다. 그녀가 떠나버릴 것 같아서.

  이런 와중에 히타치의 비어있는 정실 자리에 다시 정략적인 이유로 혼인을 강요하는 도쿠가와. 완강하게 거부하려는 류타카를 렌이 아픈 마음으로 설득한다. 아무리 아끼는 조카일지라도 열도의 엄격한 쇼군 체계에서 주인의 뜻을 거슬려서 그에게 불이익이 올까 두려운 마음에서였지만 류타카는 렌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라 생각하고 서운한 마음에 울분을 터뜨린다.결국 모두에겐 좋은일이고 두 사람에겐 악몽같은 그의 두번째 혼인식이 도쿠가와의 성에서 거행된다. 

  혼례가 있고 이레 동안만 정실곁에 머물던 그는 다시 렌에게 아무일 없다는 듯 돌아오고, 정실 하루는 철저히 무시된다. 너무나도 감출 줄 모르는 그의 '애첩사랑'은 하루의 대단한 가문을 불편하게 했고, 결국 렌은 도쿠가와의 호통에 무릎끓은채 하루낮하루밤을 정실 하루의 전각 앞마당에서 석고대죄를 해야했다. 류타카는 이를 갈며 온밤을 지새운다. 자신의 성으로 돌아온 류타카는 하루가 우레(신부가 처음으로 시댁의 문을 넘는것)를 하기도 전에 문앞에서 렌만 말에 태우고는 보름간의 휴식을 찾아 떠난다. 산속 깊은 온천지역에 렌을 데려온 류타카는 그동안의 미안함에서 나온 어색함을 풀고, 렌 역시 그 순간만은 모든것을 다 잊고 그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행복하고 서글픈 밀월여행이었다.

   그들이 아쉬운 보름을 보내고 돌아온 날 하루의 회임소식을 듣게된다. 모든것이 두쪽으로 쫙 갈라졌다. 하늘도 땅도. 온세상은 암흑으로 변했지만 렌은 소리칠 수 없었다. 류타카 역시 한발 다가온 렌이 이제 자신 때문에 다시 두발 물러날 것을 생각하니 미칠듯 했다. 또한 텅빈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원망하는 말 한마디, 속을 내비치는 울음하나 보이지 않는 렌에게 괜스레 화가 났다. 그 순간 칼을 들어 모든것을 끝내리라 결심하는 류타카에게 울음을 터뜨리며 렌이 매달린다. 사랑에 빠진 류타카는 울부짖는 렌을 보듬어 안으며 사과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마음을 내보이는 렌이 마냥 고마워서. 하지만, 끝내 무슨 말인가를 해주려던 그는 하지 못하고 삼켜 버린다.   

  다케 가문의 장녀 하루는 사실 사랑하는 정혼자가 있었다. 지난 전쟁터에서 죽지만 않았다면 그녀도 이런 취급을 받으며 히타치에 머물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혼자의 아기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 자리를 지켜야했다. 그러기 위해선 류타카의 마음을 다 차지하고 있는 렌을 치워야했다. 그래서 하루는 렌에게 제발 아이에게서 아버지를 뺏지 말아달라며 그의 곁을 떠나 달라고 말한다. 렌은 순간 갈등한다. 그때즈음 그녀는 이미 자신의 지병 '궐심통'-흔히들, 사랑을 하면 죽게된다는 심장병-을 알고 있었기에 절대 그녀의 자리를 뺏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사실대로 말하고 매달려 볼까... 그냥 그의 곁에 이렇게 머무르게만 해달라고...하지만, 그녀는 차갑고 담담하게 소도(刀칼)까지 꺼내보이며 자해까지 언급하는 하루를 엄하게 나무라며 생각할 말미를 달라고 말한다. 물러나오는 길에 그녀는 속울음을 울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죽어도 갖을 수 없는 류타카의 아기를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려고 한다는것이 화가나면서 서글펐다.. 

그리고 마침내 어렵게 자신을 찾아와 준 사촌오빠와 함께 탈출을 결심한다. 떠날날이 잡히자 그녀는 하루하루가 애틋했다. 류타카는 전에 없이 애정을 표현해주고 먼저 손 내밀어 주는 렌을 보며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여 준것에 한없이 기쁘고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다 마지막 밤. 

  잠든 류타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슬픔에 눈물짓던 렌의 눈물방울이 그의 잠을 깨우지만, 잠든 줄 알고 빠져나가는 렌의 뒷모습에 배신감과 분노에 치를 떨면서도 그녀를 이렇게 놓칠까 두려워 한다. 결국 탈출은 실패를 하게 되고 같이 잡힌 남자가 사촌 오라비라는 걸 알게 되지만 류타카는 더 화가 난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그대로 떠나려 한 그녀에게. 하지만, 오라비와 같이 며칠을 감금된 채 물한모금 안 넘기던 렌이 쓰러지자 류타카는 심장이 무너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제서야 렌의 병명을 제대로 알게된다. 류타카는 오라비를 조선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렌은 그의 곁에 남아야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를 보낼 자신이 없었다. 렌은 류타카에게 자신의 결정으로 그의 곁에 남는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떠나려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이성을 잃은 그의 모습에 더 가슴이 아파서, 죽더라도 가족과 조국을 버리더라도 그의 곁을 지키고 싶을만큼 그를 사랑한다는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얼마 후, 키타가와家에 전쟁의 희생물로 시집와 복수의 칼날을 갈던 류타카의 서모는 자신의 친정과 내통하여 히타치의 성을 기습 공격하고 불에 휩싸인 곳에서 렌은 임신한 하루를 위해 호위무사를 양보하고 자객과 불에 맞서야했다. 불기둥과 연기가 그녀를 덮치는 순간 그녀의 가장 큰 후회는 류타카에게 자신의 사랑을 한번도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 

류타카 역시 쏟아져 들어온 기름과 불방망이, 숨어들어온 자객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간신히 렌을 찾지만, 어디에서도 그녀가 보이지 않자 불타는 집으로 뛰어들려한다. 말리는 수하들의 손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오열하는 그의 맘속엔 그녀에게 사랑한단  말을 하지 못했다는 후회만이 가득했다.....

 

 

참,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슬프고, 그러면서도 멋있는 얘기다. 명성만큼이나 짜임새있고, 인물들의 캐릭터들도 확실하고, 곱고, 멋있다. 임진왜란 때의 일본이란 배경도 그렇고 자칫, 일본이란 나라의 선입관 때문에 남주의 이미지가 참 조심스러울법도 한데, 전혀 거부감이 없이 너무나 멋있다.  

현실적으로 봐서는 처,첩이 일곱이나 있는 사내의 두번째 부인자리. 그게 여주의 자리라니, 기막힐것 같은데도 이 이야기 속에서는 아름답게만 비쳐지니. 

나도 류타카처럼 '렌'에게 홀렸나보다...^^  

아니, 난 사실 투박한 무장 류타카의 짧고 기교없는 문장 속 '밀어'들에 홀렸다... 

반복되는 말…'피식' 웃었다. 라는 말이 '싱긋'이라는 서양식 웃음보다 정서에 맞아서 더 좋았다. 그리고, 이 소설의 시점이 여주도, 남주도 전지전능도 아닌 다소 복합적이라는 것이  참, 읽는 내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로맨스소설에선 흔치않은 남주와 여주의  죽음.

물론,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으로 같이 죽어 해피엔딩이라고 주장하듯이 이 글 역시 둘이 미워해서 헤어진것이 아니니 새드엔딩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슴이 짠하고, 그렇게 서로를 사랑했는데, 사랑하는 여자를 먼저 보내고 남은 세월동안 어떻게 살았을지....류타카가 너무 가엾었다.   

이제 같이 있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고 기분이 좋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이면 연못을 바라보며 렌을 그리워하는 류타카가 떠오를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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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는개 가득한 靑山 아래 홀로 핀 매화꽃이 

햇귀 드리운 못가에 곤히 잠든 연꽃을 보고는 

꽃송이째 물위로 떨어진다. 

볕 아래 꽃 피우는 계절이 다르기에 서로 닿을 연이 아니건만, 

精은 그보다 깊은지라 꽃으로 하여금 제 철을 잊게 하니, 

보는 이의 애를 긋는다. 

하늘의 飛雪은 두 꽃의 설움인 양 눈물인 양 물위로 젖어들고 

희미한 달빛 아래 남겨진 것은 닷오는 마음뿐이라. 

사람의 한뉘 덧없다지만, 이내 눈물 드리워 기다린다. 

빗속의 잘패향이 운무처럼 멀리 퍼져 아련해지면 오시는 님이여, 

그대 닷오는가, 진정 닷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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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흰눈이 나리면 내 가슴이 두근거릴 것 같다. 

400년전 렌과 류타카를 볼 수 있을것 같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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