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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기쁘다 - 한강의 문장들 ㅣ 푸른사상 교양총서 23
민정호 지음 / 푸른사상 / 2025년 4월
평점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저자는 스무 살 시절에 겨울을 버티듯 읽었던 한강의 작품들을 다시 읽어보며, 한강의 문장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해석한다.
20대에는 꾸역꾸역 겨울처럼 읽었지만, 지금은 봄처럼 읽어나가게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는 한강의 문장들이다.
봄처럼 읽을 수 있기까지 가족의 공이 컸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의 글에서 따스함을 느낀다.
지금 나도 내 방에 앉아 이렇게 좋은 문장들을 편히 읽어낼 수 있는 건 가족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친다. 감사한 일이다.
제목인 ‘봄에는 기쁘다‘는 한강의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에 실린 단편 「아기 부처」에 나오는 “겨울에는 견뎠고 봄에는 기쁘다”라는 문장에서 가져왔다.
이 책은 민정호 작가가 한강의 작품을 읽고 사유하며 써 내려간, 조용하지만 깊은 산문집이다.
단순한 독후감이나 문학 비평의 형식에서 벗어나, 한 작가의 문장을 온전히 품은 한 독자의 진심 어린 응답으로 읽힌다.
그는 한강의 문장에 집중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해’가 아니라 ‘공명’이다.
민정호 작가는 한강의 소설에서 흐르는 상처, 침묵, 생명, 그리고 죽음의 기운을 섬세하게 더듬는다.
그리고 그 문장들을 자기 삶의 감정과 기억에 겹쳐놓으며, 마치 우리가 다시 한강을 읽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 책은 단순히 ‘해석’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앓고’, ‘함께 껴안는다’.
그러기에 그의 문장은 비평이 아니라 하나의 서정이 된다.
한강의 세계를 딛고 서서, 자신만의 감각으로 뻗어가는 민정호 작가의 시선은 조용히 내 마음에 닿는다.
『소년이 온다』, 『흰』, 『채식주의자』 등 한강의 대표작들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이 책의 핵심은 그 작품들을 읽어내는 ‘태도’에 있다.
무언가를 빠르게 판단하거나 단정하지 않고, 슬픔과 고요 속에서 오래 머무르며 그 안의 빛을 찾아가는 태도.
그래서 이 책은 독서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책은 한강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감상의 길을 열어주고, 한강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그 세계로 천천히 들어가는 문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한 문장을 진심으로 오래 곱씹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는 책이다.
천천히 읽되,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한강의 책 중 읽었던 책이 나오면 반가웠고, 읽을 때의 기억을 다시금 꺼내어보게 만든다.
봄의 기쁨이 꼭 밝고 경쾌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 책은 조용히 말해준다. 기쁨은 때로 상처 위에서 피어난다는 사실을, 이 따뜻한 사유의 산문은 잔잔히 이것을 일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