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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로 가야겠다
도종환 지음 / 열림원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이 시집은 고요하다. 소요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고요로 가야겠다” 라는 메시지는 많은 것들을 내포한다.
이번 시집에서는 그의 언어가 과거보다 더 부드러워진 것 같다.
시집은 고요라는 개념을 단순한 정적인 상태로 제시하지 않는다. 고요는 회복이자 성찰의 공간이며, 행동의 전제 조건이다. 소요로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지혜롭고 균형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분노나 소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그는 본다. 이 지점에서 시집은 윤리적·철학적 메시지를 품고 있다.
시집은 여덟 부의 나뉘어져 있고, 시를 쪽마다 나눠 배치하는 전개, 마지막에 전체 시를 다시 보여주는 구조 등이 독특했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고 깊다. 분노, 슬픔, 외로움, 사랑, 이해 등이 시 속에서 자유롭게 오간다.
이 시집은 현대인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을 잠시 멈추고, 고요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기를 권한다. 동시에 그 고요가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회복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요는 결심을 담은 선언문이다. 삶의 소요가 잠시 멈춘 순간, 그는 그 틈을 지나 고요로 향한다. 이 ‘고요’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의 상태가 아니라, 삶의 중심을 다시 찾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이다.
이월은 겨울이 떠오른다.
‘이월’은 계절적으로 겨울의 끝자락으로, 가장 추우면서도 봄을 가장 가까이 두고 있는 시기다. 시인은 이 계절적 분위기를 이용해, 가장 차가운 순간이 오히려 삶을 정제시키는 때임을 보여준다.
슬픔을 문지르다는 제목을 한참 들여다보게 했다.
슬픔을 ‘감당’하거나 ‘극복’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대신 어떤 사물을 닦듯이 “문지른다”.라니.
문지른다는 행위는 폭발도, 외면도 아닌 천천히 다가가는 행위이다.
슬픔을 문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나도 내 슬픔을 스윽 문질러본다.
달팽이는 시집의 중요한 상징 이미지다. 달팽이는 느리고, 작고,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집을 등에 지고 묵묵히 간다.
이는 시인이 말하는 고요의 성질과 닮아있는 것 같다.
당신의 동쪽에서 화자는 누군가의 삶의 동쪽이 되어주고자 한다.
소리 없이, 조용하게.
도움을 주되, 강요하지 않고.
함께하되, 방해하지 않고.
이 시는 관계에 대한 성숙한 거리를 보여준다.
사랑은 붙드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옆에 서주는 것이라는 결론을 제시한다.
이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며 독자를 자연스럽게 ‘고요의 자리’로 이끈다.
한 편 한 편을 천천히 읽을수록,
그 속에서 우리가 잊었던 마음의 결이 다시 보인다.
그리고 시집은 말없이 이렇게 권한다.
“너도, 잠시 고요로 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