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방학
연소민 지음 / 열림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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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집을 떠나버린 그날 이후, 엄마와 솔미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졌다. 남겨진 모녀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균형은 무너져갔다. 처음에는 솔미를 위해 씩씩하게 생활을 이어가던 엄마는 점점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저장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집은 물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지고 음식물 냄새까지 겹쳐 결국 이웃의 신고까지 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엄마는 결국 자신의 고향인 고흥으로 내려가지만, 그곳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생활은 반복될 뿐이었다.


고흥에서 솔미는 잦은 이사로 인해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다. 옷에서 냄새가 날까 늘 불안했고, 섬유유연제를 과하게 쓰며 자신을 감추려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수국과 수오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따뜻한 우정을 경험하게 된다. 수국 부모님의 빵집, 수오 아버지의 목공방에서 보내는 시간은 솔미에게 소중한 안식처였다. 특히 목공을 배우며 느낀 나무 향과 손끝의 감각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또다시 산더미 같은 짐을 두고 서울로 도망치듯 떠나고, 솔미의 불안은 깊어만 간다.


서울에서 엄마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그런 엄마를 지키겠다는 결심으로 솔미는 대학 전공을 심리학과로 선택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엄마 치료비와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던 솔미는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목공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헌신 속에서 엄마는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영어 공부를 하고, 운전면허를 따며 중고차까지 마련하는 등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엄마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사라졌다. 연락도 받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솔미는 무기력 속에 빠져든다. 그러던 어느 날, 캐나다로 떠났던 수오와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수오와 함께 고흥으로 향한 솔미는 밤바다와 밤하늘, 엄마의 친척과 외할머니 집, 그리고 옛 친구들과의 만남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을 돌아본다.


그 과정에서 솔미는 깨닫게 된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은 늘 단단해지려 했지만, 그 매몰찬 태도가 오히려 엄마를 더 힘들게 했을 수도 있음을. 사랑은 지켜내는 것만이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함께 걸어가는 것임을 뒤늦게 알게 된다. 《가을 방학》은 그런 깨달음을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그려낸 이야기다.


연소민 작가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무게를 보여준다. 때로는 돌봄이 억압이 되고, 때로는 거리가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독자는 이 책 속에서 마주한다. 성장과 치유, 그리고 용서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가을 방학》은 단순히 모녀의 아픈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는다. 삶의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며 조금씩 다가가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책장을 덮고 나면, 내가 힘들다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매몰차지 않았는가, 혹은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그만큼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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