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알베르 카뮈 지음, 이주영 옮김, 변광배 감수 / 코너스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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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무슨 숙제를 하듯이 해외 고전소설들을 읽은 사람들중에 제대로된 의미를 알고 읽은 사람들은 아마 많지 않을 것 같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지금 그 소설들을 다시 읽어보게 되는데 "이방인(알베르 까뮈 저"을 읽어보기로 했다. 코너스톤에서 출판한 책이다. "이방인"은 잠시 앉아서 읽어도 금방 다 읽을 수 있는 적은 분량의 소설으로 1부와 2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뫼르소라는 주인공이 양로원에 있는 어머니의 부고장을 받으며 시작하는 내용이다. 까뮈의 "이방인"하면 적어도 이 시작문구 "오늘 엄마가 죽었다.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르겠다."는 부분을 많이 기억할 것 같다. 여기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어째 무덤덤하거나 무관심하거나 그러하고 앞으로 이어질 소설의 흐름을 가늠하게 해준다.

알베르 까뮈는 아버지 그리고 본인을 거치는 동안 세계1차대전(아버지 전사)과 세계2차대전(본인의 젊은 시절)라는 전쟁들을 관통하던 격변의 시절을 살았고 프랑스인이지만 식민지인 알제리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인물이다. 그의 어린시절이나 청년시절은 결코 넉넉하지도 못했다. 그런 그의 시대적인 배경을 염두해 두고 이 책을 다시 읽어 내려갔지만 어째 내용이 전혀 낯설지가 않고 뭔가 작금의 현실과 통하는 면이 있어서 70여년전에 쓴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시대를 특정할 수 있는 주요 장면이나 배경의 자세한 설명은 거의 없다. 그리고 주인공 뫼르소를 비롯한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도 의도적으로 절제하고 있는듯 하다. 이번에 새로 읽으며 든 생각이다. 좀 더 온전히 한 개인의 불행을 통하여 내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시선간의 부조화를 최대한 부각하려는듯 했다.

이 책의 첫줄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뭔가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 대한 기대를 하게되지만 철학적 사회적인 해석이라는 것을 빼고 보면 그냥 한 개인의 사사로운 생활과 살인 그리고 사형이라는 평범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이 풍족한 물질문명을 살면서 이러 저러한 물품을 보게 되면 이 물건은 "뭐하는 물건인가?"하고 궁금해 하며 어떤 기술이 들어간 것인지 그 기술이 뭔지를 알고 싶어하듯 이방인이란 소설도 분명 글속에 숨어있는 나름의 철학이라든가 메세지라는 기술이 숨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소설을 무슨 테크놀러지로 얄팍하게 설명하며 낮추려는 것은 물론 아니고 이 소설의 분량이 그다지 길지 않고 내용도 평범하지만 뭔가 나름의 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부족하나마 그렇게 쉽게 설명하고 싶고 또 그들 통해서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뿐이다.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1부는 어머니의 죽음과 그의 아랍인 살인을 다룬다. 2부는 뫼르소의 살인에 대한 재판, 변호, 사형 그리고 사제와의 대화/갈등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1부는 자유롭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머니의 관을 앞에 두고 밀크커피와 담배를 피우는 모습, 마지막으로 관을 열어 어머니의 모습을 보겠냐는 질문에 보지 않겠다고 하는 모습, 마리와의 사랑에 대한 태도, 레몽이 친구맺자고 하는 것에 대한 반응, 살라마노 영감과 개를 바라보는 모습 등등 그의 생각과 행동은 무척 자유롭다. 2부에서는 앞서 1부에서 보여진 뫼르소가 재판과정에서 그런 그의 자유분방하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기존의 제도(재판, 변호, 사제, 배심원)로부터 일종의 자기 자신이 아닌 자신을 강요하거나 자신을 소외시키고 그들 나름대로 기득의 관례로 판단하고 심판을 하려함으로써 뫼르소를 타자와 하는 상황에서 뫼르소는 "이방인"되 버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마지막 재판장이 덧붙여 말하고 싶은 것을 묻자 "아랍인을 죽일 의도는 없었다...나의 말이 우스꽝스러워 질줄 알면서도 그것은 태양때문이었다."고 말함으로써 그는 웃음거리가 되고 극악무도한 놈이 되고 말았다. 결국 사형!

이 짧은 소설에서 줄곳 나오는 내용은 주인공 뫼르소의 솔직한 심정은 무시된다는 점이다. 사회적 통념으로 무장된 검사, 판사, 변호사, 배심원과 마지막 순간에도 사제의 말을 통해서 뫼르소는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로 강요됨으로써 철저한 "이방인"이 되고 만다. 뫼르소의 살인에 대한 재판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양로원의 원장, 관리인 등등이 등장하여 살인과 직접적으로 관련없는 그의 태도를 가지고 그를 규정하고 몰고 가는 모습은 요즈음에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현대인들도 뫼르소같은 사람이면서 매일 매일 타인들이 원하는 모습의 뫼르소로 보여지고, 판단되고, 규정되는 "이방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한 아이에게 다른 쌍둥이 형제의 이름을 불러댈때 그 아이는 바로 잡으려 노력하는 영상이 있다. "그건 내가 아니고 나는 나입니다, 아빠!"하는 듯 하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이방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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