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대리인, 메슈바
권무언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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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IMF외환위기 시절에 직장을 잃고,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 그리고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이 참 많았다.  자선단체들이 도움을 주고는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느 여름 늦은 밤,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주택들 사이 사이에 수 많은 붉은 십자가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많은 교회에서 좀 더 도와주면 TV에 매일 매일 나오는 어려운 사람들을 좀 더 많이 도와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나도 제대로 된 봉사 하나 못했으면서 주제 넘는 생각이었다.  이때의 감정은 뭐랄까, 평상시에 '사랑'을 몹시도 외치던 사람들이, 막상 위기가 닥쳐도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는듯해서,겉과 속이 다른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감정을 느꼈기때문이다.  다행히, IMF가 끝나고, 풀린 돈때문인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면서 나타난 특징 중의 하나가 '대형화'였다.  뭐를 하나 해도, 이전처럼 작게 하기보다는 크게, 더 크게 하는 것이 먹혔다. 사람들은 이왕이면 큰 곳으로 가서 싸고 좋은 물건을 샀다.  언제 IMF위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주말마다 도로에는 행락객들의 차량으로 넘쳐났다.  조금있다가 깨닫게 된 것이지만, 전체적으로 모두가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건물이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그늘이 깊어지듯이, 우리는 높아지는 만큼 그 건물의 그늘을 보지못하고 있었다.

'신의 대리인, 메슈바(권무언 저)'를 읽었다.  모처럼 읽은 장편소설이다.  이 글은 메가처지에 대한 픽션이지만, 대형교회와 관련한 현실적인 문제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읽는 중간 중간에 소설이라기 보다는 시사적인 글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내용이 많다. 대략의 줄거리는 대성교회의 담임목사인 명수창이 고생 고생을 하여 교회를 부흥시킨다. 본인의 병도 고친다. 신도가 늘어나고, 주변에는 칭찬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돈과 명예에 눈이 먼다. 어느날 부터 명수창목사는 김일국 장로를 통하여 SO(Special Offering)을 만들어 운용한다. 명수창 목사는 초기에는 성령으로 가득한 대단한 목사였는데 점차 예수님보다는 교회 자체와 물질적인 확장과 개인의 명예에 집착으로 한다. 성전을 크게 짓고, 해외활동도 하고, 교회의 외형을 엄청키우는 등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보다는, 외형을 키우는데 집착을 한다.  키운 교회는 반대에도 무릎쓰고 아들 명정환 목사에게 넘겨주고야 만다. 그 누구보다도 뒤에서 고생 고생하여 내조를 한 조성은 사모가 남에게 교회를 물려줄 수 없는 터, 아들을 잘 설득한다. 김일국 장로는 교회 초창기때부터 같이 동고동락한 인물로서 SO를 맏아 관리를 하며 돈을 불리고 있었는데, 명수창목사의 욕심이 과했다. 잘못된 투자를 하여 손실을 많이 본 김일국 장로는 책임을 혼자지게 되고, 결국 유서와 알듯 말듯한 메모를 남기도 교회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투신자살을 한다.  이후, SO의 정체가 드러나고, 기사화되는 등 위기가 오지만, 돈과 권력을 활용하여 누르고, 아들 목사에게 대성교회를 세습하여 준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손자인 세득이 가지고 노는 공룡을 보며 공룡(대성교회)의 멸종을 암시한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전달하라고 했더니, 교회를 크게 짓고, 돈과 명예의 노예가 된 성직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읽었던 책의 글귀가 생각난다.  마르크스가 종교개혁시기의 로마 카톨릭 교회를 비판한 내용이다.  인간과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이라는 두 존재가 있다.  인간과 하나님을 매게하기 위하여 예수가 출현했다고 한다.  예수와 성도를 매개하기 위하여 교회가 생겨나고, 교회와 성도를 매개하기 위하여 성직자가 생겨나면서, 인간이 도달해야 할 하나님과 점점 더 멀어진다는 비판이었다.  또, 성직자가 교회보다, 교회가 본질적인 하나님보다 우선시되며 무력한 성도들에게 군림하게 된다는 뜨끔한 지적이라고 한다.  교회가 아니라, 목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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