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이고 여성적이고 가족적인 소설.
이런 소설을 이토록 강렬하게 세세하게 썼던 작가가 있었던가.
모처럼 즐거웠던 책 읽기.
한국판 제목인 <그저 좋은 사람>보다 <길들지 않은 땅unaccustomed earth>이 나는 제일 좋았다.
줌파 라히리의 다른 작품들도 차근차근 읽어볼 생각이다.

아내가 죽고 나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자기도 언제 그렇게 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죽음을 그렇게 가까이서 경험한 일이 없었다. 부모와 친척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항상 멀리 있었기에 죽음이 수반하는 끔찍한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아내의 죽음조차 지키지 못했다. 아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 그는 병원 카페테리아에서 차를 마시며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렇다고 죄책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보단 모든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수술이 잘될 거라고, 아내가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집에 돌아올 거라고, 2주가 지나면 친구들이 집에 찾아와 저녁을 먹을 거라고, 또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면 아내가 프랑스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게 잘못이었다. 아내의 수술이 인생에서 겪는 대단치 않은 시련이라 생각했지, 그게 마지막이라곤 생각지도 않았었다. 그날 루마는 어릴 때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거나 벌에 쏘였을 때처럼 자기 팔에 안겨 울었다. 그때처럼 아빠 노릇을 하느라 정작 자신은 아내의 죽음에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했다.
<길들지 않은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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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 벽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다 읽고 깨달았다.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하루키는 이 책을 1985년에 출간했으니, 30년 된 이야기이다. 본인 나이 서른여섯에 책이 나왔으니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같은 나이 서른다섯에 썼겠구나 짐작한다.

˝나는 확실히 어느 시점부터 내 자신의 인생과 삶의 방식들을 비틀듯이 하며 살아왔다. 그런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략)
내 소멸이 아무도 슬프게 하지 않는다 해도, 또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공허함을 안겨주지 않는다 해도, 아니면 거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나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확실히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은 나 자신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잃어버린 것들의 앙금이 일몰 뒤의 빛처럼 남아 있어 나를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351쪽(2권)

일상을 잘 지키며 살아왔는데, 최소한의 관계만을 맺고 나름의 규칙대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세계가 끝이 난다고 가정해보자. 겁이 덜컥 나지 않을까. 살아오면서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 화분의 달팽이가 눈에 들어오고 친절하게 대해준 점원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세계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래 줄은 스포 주의)
그래서 하루키는 주인공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한다. 슬프게도 현실은 아니다. 주인공의 머릿속 `세계의 끝`. 그 세계에서 주인공은 `마음`을 잃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각자의 마음을 찾아주겠지.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모든 것이 없는 그 세계에서. 그것이 더 행복하다면 옳은 선택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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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상륙 작전 1 - 해방과 혼란 인천 상륙 작전 1
윤태호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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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육이오가 미치는 영향이 어떠한지, 그걸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님의 말씀처럼
가슴 아프고도 비참한 역사를 생생하게 그려준 고마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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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3
김이설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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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올해 처음으로 읽었던 책이
김이설 작가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 소설집을 읽고 나는 머리가 멍했던가.

이번에 <선화>를 읽었다.
여러 차례 책 귀퉁이를 접었다.
그리고 오늘 북콘서트를 다녀왔다.

이 책을, 이 작가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다.

˝살아 있어봤자 소용없는 인간이었다.˝

어쩜 이런 문장을 속 시원하게 쓰지.

오늘 김혜나 작가님이 말하기를, 소설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진실을 얘기한다고, 진짜를 보여준다고 했다. 그런 소설이다, 김이설 작가님의 소설은.

묵묵히 쓰겠습니다.

작가님의 약속이 미덥다! :)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모두들 어서 할머니가 죽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살아 있어봤자 소용없는 인간이었다. 늙어가는 아버지가 더 늙은 어미에게 하루 세 끼 해 먹이고, 일주일에 한 번씩 씻겼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가 받아야 할 마땅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자기 어미만 두둔해온 아들의 죗값이라고 생각했다. 14-15쪽

"내가 먼저 공포를 느끼면 상대방은 즐기더라고요. 내가 어려워하면 금세 권위를 세우고, 내가 수그리면 상대는 더 꼿꼿이 목을 쳐들고요. 그래서 처음부터 아무렇지 않다고 여겨야 돼요. 나와 상관없다고 치는 거죠."
77쪽

병준은 운명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학습된 기억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를 가진 것들은 상처를 겪은 것들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인 특유의 냄새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인 상처가 곪고, 물러터진 후에 딱지로 내려앉아, 거친 흉터로 남기까지의 세월이 만든 냄새였던 탓이었다. 그것을 알아내는 감각은 직관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경험으로 훈련되어 발달된 감각이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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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슬픔과 기쁨 우리시대의 논리 19
정혜윤 지음 / 후마니타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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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다른 말이 더 필요할까. 우리 시대의 슬픔, 그리고 연대의 기쁨.
정혜윤 작가님의 곧은 시선. 완벽했다.
놓치지 말아요, 쌍차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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