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 책을 읽을 때 벽에 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다 읽고 깨달았다. 마음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하루키는 이 책을 1985년에 출간했으니, 30년 된 이야기이다. 본인 나이 서른여섯에 책이 나왔으니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같은 나이 서른다섯에 썼겠구나 짐작한다.

˝나는 확실히 어느 시점부터 내 자신의 인생과 삶의 방식들을 비틀듯이 하며 살아왔다. 그런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누구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중략)
내 소멸이 아무도 슬프게 하지 않는다 해도, 또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공허함을 안겨주지 않는다 해도, 아니면 거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은 나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확실히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잃어버릴 것은 나 자신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내 안에는 잃어버린 것들의 앙금이 일몰 뒤의 빛처럼 남아 있어 나를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이 세계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지 않았다.˝
-351쪽(2권)

일상을 잘 지키며 살아왔는데, 최소한의 관계만을 맺고 나름의 규칙대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세계가 끝이 난다고 가정해보자. 겁이 덜컥 나지 않을까. 살아오면서 애정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 화분의 달팽이가 눈에 들어오고 친절하게 대해준 점원이 떠오른다. 그리고 이 세계를 떠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래 줄은 스포 주의)
그래서 하루키는 주인공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기로 한다. 슬프게도 현실은 아니다. 주인공의 머릿속 `세계의 끝`. 그 세계에서 주인공은 `마음`을 잃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각자의 마음을 찾아주겠지.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모든 것이 없는 그 세계에서. 그것이 더 행복하다면 옳은 선택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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