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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의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바꿔보기로 했다 - 동기부여 천재 개리 비숍이 던지는 지혜의 직격탄
개리 비숍 지음, 이지연 옮김 / 갤리온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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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감정들‘ (두려움, 성공, 사랑, 상실과 같은)을 중심으로 어쩌면 우리가 때론 너무 일상적이고 당연해서, 또는 하찮아서 모른척 넘어갔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글이 어렵지 않고 간단해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이전 책을 좋아하셨던 분이라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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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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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cm의 큰 키에 50킬로가 넘지 않는 마른 체형의 기자 리카는 <주간 슈메이>의 기자다. 세 남성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가지이를 인터뷰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고심하던 그녀는 친구 레이코의 조언에 따라 ‘레시피’를 빌미로 그녀와 만나는 데에 성공하게 되고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매번 특종을 터트리는 실력 있는 기자, 리카는 첫 여성 데스크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삼십 대 중반의 여자이자 남자친구도 있지만, 결혼이라는 것,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보다는 기자로서의 성공과 성취를 지향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근 600쪽에 달하는 긴 소설 속에서 집안일을 잘 하고 요리를 잘 하고 싱크대를 잘 닦는 여성들과 리카가 비교되어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카의 요리도 어쩌면 그런 맥락에서 그녀에게 만족감을 주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누군가가 아닌 나를 위한 파스타, 나의 만족을 위한 초대 말이다.


가지이는 세 남자를 죽음으로 내몬 마성의 여자이다. 아니, 외로움이라는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결핍이 가득한 존재이다. 아니, 어쩌면 그 어떤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다. 작가의 의도대로 가지이에 대한 나의 감상이 바뀌었는지, 다른 독자들도 나처럼 다른 감정을 느꼈는지, 아니면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지이는 리카가 그녀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차 다른 인상을 주는 인물이었다. 처음엔 사건의 진실이 궁금했고, 중간에는 리카를, 레이코를, 또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이게 하는 그 마성의 매력(?)이 궁금했으며, 마지막에는 그럼 그렇지 하다가도 괘씸한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실감 나는 음식 묘사는 절로 입맛을 다시게 한다. 그녀의 레시피를 따라 파스타 면을 삶고 싶어지고, 또 버터를 입안 가득 머금고 싶어진다.


리카가 50킬로에서 55킬로, 56킬로, 59킬로가 되면서 맞닥뜨려야 하는 사람들의 시선과 일본 사회의 통념을 깨부수는 것, 그리고 어떤 점에서 보면 완벽한 커리어 우먼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또 다른 방식으로 성장시키는 리카의 모습은 참 흥미롭다.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이들, 특히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해주는 친구의 존재에 감사하다 말하지만, 어쩌면 그런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고 계속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아니었나 싶다. 누가 부탁한다고 그 부탁을 척 다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니던가.


가지이와 '버터'를 중심으로 한 요리들을 통해 리카가, 또 리카의 주변인들이 겪는 일들, 또 가까웠던 관계가 멀어지고 얽혔던 관계가 풀어지는 것,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던 트라우마를 벗어던지는 주인공의 성장기를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리카는 리카가 없는 곳에서 리카를 아는 사람들끼리 친해져서 새로운 관계가 생겨도, 여러 방향에서 리카 얘기를 해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지? 그런 사람 상당히 드물어. 다들 손해 보지 않으려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지키는 데 필사적이잖아. - P450

당신 대신에 내가 먹고, 느끼고, 봐요. 당신 몸의 일부가 되어 세상과 만나고 있어요. 내가 이곳에 오는 한, 당신은 적어도 영혼만은 자유예요.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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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메리카나 1~2 - 전2권 - 개정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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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메리카나>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작가의 세 번째 국내 출판작이다. 온라인 서포터즈 활동으로 접했던 그녀의 <보라색 히비스커스>보다도 먼저 알았고, 더 큰 기대를 하고 있었던 책. 원래 시간이 날 때 마다 조금씩, 조금씩 틈틈히 독서를 하는 편이지만, 이 책은 뭔가 단숨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를 온전히 투자하였다.

소설 속 이페멜루는 교수의 자식도, 원한다면 언제든지 해외로 밥먹듯이 나갈 수 있는 무거운 여권을 가진 나이지리아 특권층도 아닌 중산층이 되고 싶은 지극히 평범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난 나이지리아 여성이다. 그녀가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공부를 잘 했고, 사람들이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외양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유학은 어쩌면 교수들의 잦은 파업으로 75퍼센트의 부분장학금에 기댄 도피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혹시나 거절당할까 마음을 졸이며 비자를 신청하고, 미국에 도착해서는 다른 이의 ID를 빌려 알바자리를 알아봐야 했다. 나이지리에서는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고급인력이라면 고급인력인 그녀가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레스토랑 서버, 주유소 알바, 혹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환자의 간병인 정도. 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다. 도대체 왜 거절당하는지, 왜 갈 자리가 없는지 고뇌할 세도 없이 그녀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보이고, 결국 벼랑끝까지 내몰린 그녀는 저 밑바닥까지 자신을 놓아버리는 선택까지 하고야 만다.

"그럼 미국에는 머리 땋은 의사가 한 명도 없다는 거야?" 이페멜루가 물었다.

"난 그냥 들은 대로 말하는 거야. 지금 우리는 외국에 있잖니. 성공하고 싶으면 하라는 대로 해야 돼.

1권, p. 202

많은 사람들이 부푼 가슴을 안고 미국으로 향하지만, 이페멜루가 접한 미국은 결코 녹록치 않았던 것 같다. 좋은 인연을 만나, 그녀 말고는 흑인이 하나도 없는 비싼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기도 하고, 직장을 얻고, 누군가는 세금 신고 하지 않는 일을 세 개나 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영주권 발급을 손쉽게 받아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녀 자신이 홀로 이뤄낸 것이 아님을 이페멜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잘생기고 부자인 백인 남자친구 없이는 눈썹 제모 받는 것도 거부당하고, 직장을 얻기 위해서는 머리 두피가 다 벗겨지도록 아픈 릴렉서로 고통받아야 했으며, 좀 더 미국인처럼 들리기 위해 발음을 고쳐야 했다. 극 초반, 면접 자리에 가기 전 마치 백인의 머리칼과 같이 독하디 독한 릴렉서로 머리를 펴고, '고용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아프리카인의 자세'(와도 같이 읽히는) 를 따라하며 유난을 떠는 고모에게 다소 부정적이었던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직장을 얻기 위해 그와 같은 모습을 취한다. 자신이 허드렛일을 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오빈제의 어린시절 농담 속 사람들처럼,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 나의 일이 되는 법이다.

그녀는 고마운 가운데서도 약간 분했다.

커트가 전화 몇 통으로 세상을 재배치하고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뭔가를 쓱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1권, p.340-341

"어쩌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아버지가 흑인이라서 투표권이 없을 때 우간다인의 아버지는 국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거나 옥스퍼드를 다녔을지도 모르죠"

1권, p.284

이 소설 속 미국에서는 진짜 아프리카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철저하게 구분된다. 교내 학생회 조차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프리카인들이 분리되어 있을 정도다.(한국계 미국인이라고 하면 '한민족'으로 일반화하곤 하는 한국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사실 한국계 미국인들과 유학생만 비교하더라도, 자라온 환경이 다른데,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프리카인이 같을 수가 있겠는가. 아프리카라고 통칭되나 나이지리아, 케냐, 콩고.. 얼마나 많은 민족과 문화가 뒤섞여 있는가.) 하물며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연애하는 이페멜루는. 그녀의 부모님을 포함하여 주변의 아프리카인들에게 과연 어떤 인상을 주었을까. 소설 속에서는 간접적으로 언급하나, 마냥 긍정적이 아닌 것을 쉬이 알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아프리카인들이 처한 다른 입장과 역사 또한 주목할만 하다. 흔히 말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흑인 노예제 폐지로 자유민이 된 이후에도 흑백분리정책으로 인한 차별의 역사를 겪어낸 이들의 자손들이다. 이에 반해, 미국에 있는 아프리카인의 경우, 고학력자이거나 부자인 경우부터, 택시기사나 에어컨도 되지 않는 더운 방에서 미용실을 하는 사람들까지 그 출신과 상황이 다양하다. 투표권은 물론, 한 사람으로써 인정받지도 못했던 미국의 흑인과 대학 교수 내지는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부를 누리며 살았던 상위층 아프리카인들은 미국에서 어떻게 인식되는가. 차라리 미국인들을 더 낫게 쳐주지 않을까. 미국인들은 특히 아프리카인이라면 언제든지 '남아공에서 1달라가 없어서 굶어 죽는다는데...'라고 나이지리아 사람에게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그들이 보는 '아프리카'는 그런 이미지이기때문에.

"...저는 인종이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에서 왔어요. 한 번도 스스로 흑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미국에 와서 흑인이 됐죠."

2권 p. 109

'스스로 흑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는 말은 내게 꽤나 큰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한 나라에서 주류이던 아프리카인들은 미국에 가서 비주류, 소수자가 된다. 이는 마치 한번도 '황인' 또는 '아시아인'으로써 내 자신을 굳이 구분하지 않았던 내가 스스로를 '아시아인'으로 인식했던, 아니, 해야만 했던 과거의 경험과 너무나도 닮은 말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살 때만 하더라도 한 무리의 일원으로써 묻어갈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미국에서의 나는 튀어도 너무 튀었다. 나는 다른 큰 도시와 다르게 백인의 수가 집중적으로 많은 주에서 유학을 했다. 선거기간에는 지도 위가 빨간색으로 물들고 (보수), 그렇게 인기가 많던 오바마에 반대하는 어른들을 꽤나 흔히 만날 수 있던 동네였다. 학교 자체에는 중국인 학생 수가 워낙 많아 아시아인의 수가 꽤 많았지만, 전공 내 아시아인이 적었던 터라, 한 반의 인원을 20명이라고 가정할 때, 수업의 인종 비율은 다음과 같았다. 백인 15명, 흑인 4명, 그리고 나. (심지어는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 100명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오직 나만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미국에 가기 전 까지 18년 동안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고 했다면, 미국은 내가 아시아인으로써 각성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이페멜루도, 그 외에 아프리카인들도, (아마도 그들이 나이지리아인, 세네갈인으로써 불리는 대신 '아프리카인'으로 불리는 그 순간부터) 그들의 인종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일 것이라 사료된다.

"이 나라에서는 인종에 관한 솔직한 소설을 쓸 수 없어. 사람들이 실제로 인종에 의해 어떤 영향을 받는지 쓴다면 너무 뻔한 이야기가 될 테니까....

아니면 그냥 백인 작가가 쓴 책을 읽어. 백인 작가들은 인종에 대해 직설적으로 얘기해도 그 분노가 위협적이지 않아서 운동가라는 소리나 듣고 마니까." 그레이스가 말했다.

2권 p. 183 - 184

지난 2014년에 8월에 있었던 미주리주 퍼거슨시 사건은 백인 경찰이 쏜 총에 흑인 소년 브라운이 죽으며 촉발되었다. 흑인들은 이에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백인들 또한 이에 반대한 시위로 응수하였더랬다. 그래도 조금 지나면 잠잠해지겠지 했으나, 이 일은 주변 도시까지 퍼졌고, 추수감사절 방학 기간 동안 내가 있던 곳 까지 확대된다는 소식에 한국계 미국인인 지인은 내게 '흑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감이 유색인종에게까지 퍼졌으니, 방학 기간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혹시나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어떡하나, 아파트 세탁실로 가는 것 마저도 주저하며 보냈던 일주일의 시간을 아직 기억한다.

전공 특성 상, 발표할 일이 많아 하루가 멀다 하고 프레젠테이션 인생을 살았던 학부 시절, 하루는 비즈니스 상황에서 바이어들을 설득해야하는 가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는 두 명의 백인 학생과 한 명의 흑인 학생의 뒤를 이에 발표에 임했고, 내 발표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는 매우 간단했다. "제일 신뢰가 가고 신빙성이 있는 프레젠테이션은 키가 180cm정도 되는 중 저음의 백인 남성이 진행하는 것 뿐"이라고. 나는 그후에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이 되지 않는 나와 같은 사람 (작은 키,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 그리고 동양인인 여성)이 어떻게 바이어들로 하여금 신뢰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 추가적인 강의를 기대했으나, 수업은 그대로 끝났고, 나는 발표수업 사상 제일 낮은 점수(B-)를 받았다. (그럼 흑인학생의 점수는 어땠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상황이 이렇더라도 동양인인 내가 인종과 관련된 어떠한 이야기를 하는것은 허락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의 백인 동료들과 이야기 할 때 사용한  colored races (people of color, 유색인) 라는 단어에 포함된 'colored'라는 말이 흑인이 아닌 나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역정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 동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지위를 가지는 것인가? 백인들이 쓴 모호하고도 명확하지 않은 인종에 대한 소설들과 그들이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묘사들을 듣는 것만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주류 사회에서 숨죽여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내가 미국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 광채가 사라졌어. 내가 가진 게 미국을 향한 열정뿐이었을 때는 비자를 주지 않더니 달라진 계좌 잔고를 보여 주니까 비자 받는 게 굉장히 쉽더라고...."

2권 p. 338

미국... 참 어렵다. 다문화 국가인가, 아니면 또다른 선긋기와 차별의 장인가?

"그럼 미국에는 머리 땋은 의사가 한 명도 없다는 거야?" 이페멜루가 물었다.
"난 그냥 들은 대로 말하는 거야. 지금 우리는 외국에 있잖니. 성공하고 싶으면 하라는 대로 해야 돼.

- P202

그녀는 고마운 가운데서도 약간 분했다.



커트가 전화 몇 통으로 세상을 재배치하고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뭔가를 쓱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 P340

"어쩌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아버지가 흑인이라서 투표권이 없을 때 우간다인의 아버지는 국회 의원 선거에 출마하거나 옥스퍼드를 다녔을지도 모르죠"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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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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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지난 2003년 출간된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첫 장편소설이다. <<아메리카나 1,2>> 의 줄거리에 반해 그를 제일 먼저 접하게 될 줄 알았으나, 책을 다 읽고 나니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그리고 '캄빌리'를 먼저 만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가부장적이고 가학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녀가 알을 깨고 나오는 성장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 문화, 유럽과 제 3세계까지도 만나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20여년의 짧은 내 인생에 접하고 겪은 많은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그런 소설이었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캄빌리는 매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숨을 죽이고 산다. 그에게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하여 노력한다. 항상 1등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하고, 전축을 틀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대신 아버지가 정해주신 일과표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한창 놀기 좋아할 15세인데도 불구하고 - 심지어 제 나이 또래인 사촌들끼리 모여있는데도 불구하고 -  고모가 가져가버린 일과표에 적혀있을 그녀의 취침시간에 맞춰 잠자리에 든다. 식사시간에는 침묵을 지켜야 하며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하지 않는다. 초반의 캄빌리는  잘 웃지도, 울지도 않는, 마치 감정 없는 로봇과 같다. 


아버지의 말씀은 그녀에게 곧 법이다. 따르지 않으면 혹독한 벌이 온다. 미사 1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을 어겼을 땐 그녀를 도운 오빠와 엄마까지도 매질을 당했다. 이교도인 할아버지와 있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할아버지 집에 있는 것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야 하며, 한 집에 사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캄빌리는 제 할아버지가 걱정되었고, 신경쓰였고, 할아버지와 퍽 가까워 보이는 제 사촌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버지가 아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캄빌리, 바지를 입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차를 향해 걸어갈 때 이페오마 고모가 말했다. 


"괜찮아요, 고모." 내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왜 고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 치마는 전부 무릎 한참 밑에서 끝난다고,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죄악이라서 나는 바지가 하나도 없다고. 


p.105

그녀가 하는 것, 입는 것, 먹는 것, 그리고 그녀의 미래까지,  그녀 삶의 모든 것은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캄빌리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 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p.124


그런 그녀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고모의 집에 방문한 그 후 부터다. 닭고리 하나를 한 사람이 다 먹을 수 있고, 얼마든지 분유와 탄산음료를 먹을 수 있는 자신의 집과 달리,  닭고기 하나를 삼등분하고, 저녁 시간에는 음료수가 없어 물을 마셔야 하고, 심지어는 변기 물을 제대로 내릴 수도 없는 고모의 집은 좁고 비루했지만,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캄빌리는 여기서 어깨가 늠름하게 벌어져서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닭손질을 척척 해내는 오빠를 본다. 자신과 같이 제 생각을 숨기고 숨죽여 복종하던 오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성장한 오빠를 본다. 


아버지에 의하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백인이 아닌 아마디 신부도 여기에서 만난다. 끊임없이 그녀에게 껍질을 깨고 나올 것을 종용하는, 은수카의 젊은 신부. 캄빌리는 물론이고 여러 아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을리라 믿는 것 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젊은 신부를 말이다. 



"너는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는구나." 그가 말했다.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p. 222


"고모랑 친구분이 무슨 얘기 하고 계셨던 거야?" 내가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묻지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궁금했겠지만, 그래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p. 271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촌 아마카, 캄빌리나 자자보다도 어린데도 불구하고 듬직한 오비오라, 그리고 그 외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캄빌리는, 그리고 자자는 점차 거대한 담장에 둘러싸여 넒기만 넒지 텅 비어있는 제 집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다. 아버지에게 저항하여 큰 소리로 제 의견을 말하고, 제 고집을 부려보기도 한다. 궁금한 것을 묻고, 웃고 싶을 때에는 웃었다. 바지를 입고, 언덕 위를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된 것 처럼 달리기도 하였다. 



나는 웃었다. 이제는 웃는 것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것이 이젠 쉽게 느껴졌다. 


p. 341



여타 성장소설과는 다르게, 이 소설에서는 종교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성체를 모시는 것, 고해성사를 하는 것, 혹은 식전기도나 묵주기도가 주인공들의 일상을 채우는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이다. 가톨릭은 - 아버지에 따르면 '이교도'라고 불리는- 할아버지의 종교인 나이지리아의 토속 전통신앙과는 배척관계에 있는데, 가족 간의 갈등은 꼭 나와 내 가족의 오랜 숙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필자는 가족 내에서 유일한 가톨릭 신자이며, 친가와 외가 모두 개신교 신자이다. 애써 종교 이야기를 하지 않긴 하지만,  장로교와 감리교로 나뉘어 누가 어떤 것을 옳다고 생각 하는지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같은 개신교 내에서도 그 정도인데, 하물며 가톨릭은... 어릴 때에는 괜한 말을 듣기 싫어 모임 자리에 묵주 반지를 빼 놓기도 하고, 기도할 때 성호를 긋지 않거나, 성경책을 소리내어 봉독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름의 버티기를 행한 적도 있다. 성모마리아를 믿는 이단 종교를 믿는다면서, 왜 성당이 옳지 않은 지 시간만 있다면 3일을 밤새워 설명해 주고 싶을 정도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성인이 된 이후 애써 피할 뿐, 언제고 다시 일어날 갈등임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면...? 결혼식이 아니라 내 장례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묵주기도 중에, 혹은 미사 중에 노래를 부르는 나이지리아인 신부는 문제시되고 백인인 베네딕트 신부는 존중하는 아버지의 태도. 자국 언어인 이보어를 등한시하고, 영어만을 교양있는 언어로써 취급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자의 성격을 띄고 있다. 서양의 문물, 교육은 교양있고 수준 높은 것이고, 자국 나이지리아의 것은 수준 낮은 미개한 것으로 보는 그의 시각은 우리 것은 사라지고 외국의 것만 쫓는 세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혹시 그가 민주주의를 옳바른 사회 시스템으로써 바라보는 것 또한, 그것이 대부분의 서방국가 및 선진국가의 시스템이라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본인의 기준을 기반으로 자식에게 가학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2011년 우간다에서 벌어진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데이비드 카토 살해사건이 떠올랐다. (이 사건은 학부시절 Cultural Communication 시간에 다뤘던 것으로, '동성애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기에 심판을 내린 것' 이라고 명시된 자료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2010년 말, 우간다의 주간지 '롤링스톤(Rolling Stone)'은 100명의 동성애자의 사진과 이름, 주소를 공개하였고, 이에 반발한 인권운동가 데이비드 카토가 이를 고발하며 막 승소한 시점에 벌어진 사건으로, 그는 둔기에 머리를 맞고 사망하였다. 하늘의 뜻을 인간이 감히 어찌 알 수 있으랴. 여기서 혹시 아버지는 제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여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한 가지 알고 싶은 점은, 똑같이 가톨릭을 종교로 삼아, 교육 받고 대학 교수까지 하고 있는 여동생과 달리, 캄빌리의 아버지가 어째서 서방의 종교에 목을 매고,자국의 것을 배척하는지, 어째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악화되었는지 하는 점이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행동해야만 했던 계기가 있었을지, 어린 시절의 가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 선교사들의 교육이 그를 끝없는 빈곤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딸과 아들과 손주들의 안녕을 빌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었던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캄빌리, 바지를 입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차를 향해 걸어갈 때 이페오마 고모가 말했다.

"괜찮아요, 고모." 내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왜 고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 치마는 전부 무릎 한참 밑에서 끝난다고,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죄악이라서 나는 바지가 하나도 없다고. - P105

"....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 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 P124

"너는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는구나." 그가 말했다.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 P222

"고모랑 친구분이 무슨 얘기 하고 계셨던 거야?" 내가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묻지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궁금했겠지만, 그래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 P271

나는 웃었다. 이제는 웃는 것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것이 이젠 쉽게 느껴졌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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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했습니다. 제가 산 책이 리커버인 줄 몰랐는데, 딱 봐서 너무 반가웠어요 ㅎㅎ https://www.instagram.com/p/B0c9DpQhkv0/?igshid=yxnlv1053f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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