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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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지난 2003년 출간된 치아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첫 장편소설이다. <<아메리카나 1,2>> 의 줄거리에 반해 그를 제일 먼저 접하게 될 줄 알았으나, 책을 다 읽고 나니 <<보라색 히비스커스>>를, 그리고 '캄빌리'를 먼저 만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저, 가부장적이고 가학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녀가 알을 깨고 나오는 성장소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 문화, 유럽과 제 3세계까지도 만나볼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20여년의 짧은 내 인생에 접하고 겪은 많은 것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그런 소설이었다.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캄빌리는 매우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숨을 죽이고 산다. 그에게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하여 노력한다. 항상 1등을 유지하기 위해 공부하고, 전축을 틀거나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대신 아버지가 정해주신 일과표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한다. 한창 놀기 좋아할 15세인데도 불구하고 - 심지어 제 나이 또래인 사촌들끼리 모여있는데도 불구하고 -  고모가 가져가버린 일과표에 적혀있을 그녀의 취침시간에 맞춰 잠자리에 든다. 식사시간에는 침묵을 지켜야 하며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하지 않는다. 초반의 캄빌리는  잘 웃지도, 울지도 않는, 마치 감정 없는 로봇과 같다. 


아버지의 말씀은 그녀에게 곧 법이다. 따르지 않으면 혹독한 벌이 온다. 미사 1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을 어겼을 땐 그녀를 도운 오빠와 엄마까지도 매질을 당했다. 이교도인 할아버지와 있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할아버지 집에 있는 것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야 하며, 한 집에 사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캄빌리는 제 할아버지가 걱정되었고, 신경쓰였고, 할아버지와 퍽 가까워 보이는 제 사촌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지만,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버지가 아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캄빌리, 바지를 입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차를 향해 걸어갈 때 이페오마 고모가 말했다. 


"괜찮아요, 고모." 내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왜 고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 치마는 전부 무릎 한참 밑에서 끝난다고,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죄악이라서 나는 바지가 하나도 없다고. 


p.105

그녀가 하는 것, 입는 것, 먹는 것, 그리고 그녀의 미래까지,  그녀 삶의 모든 것은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캄빌리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 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p.124


그런 그녀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고모의 집에 방문한 그 후 부터다. 닭고리 하나를 한 사람이 다 먹을 수 있고, 얼마든지 분유와 탄산음료를 먹을 수 있는 자신의 집과 달리,  닭고기 하나를 삼등분하고, 저녁 시간에는 음료수가 없어 물을 마셔야 하고, 심지어는 변기 물을 제대로 내릴 수도 없는 고모의 집은 좁고 비루했지만,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캄빌리는 여기서 어깨가 늠름하게 벌어져서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닭손질을 척척 해내는 오빠를 본다. 자신과 같이 제 생각을 숨기고 숨죽여 복종하던 오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 성장한 오빠를 본다. 


아버지에 의하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여 기도해야만 하는 백인이 아닌 아마디 신부도 여기에서 만난다. 끊임없이 그녀에게 껍질을 깨고 나올 것을 종용하는, 은수카의 젊은 신부. 캄빌리는 물론이고 여러 아이들이 자신이 할 수 있을리라 믿는 것 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외치는 젊은 신부를 말이다. 



"너는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는구나." 그가 말했다.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p. 222


"고모랑 친구분이 무슨 얘기 하고 계셨던 거야?" 내가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묻지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궁금했겠지만, 그래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p. 271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촌 아마카, 캄빌리나 자자보다도 어린데도 불구하고 듬직한 오비오라, 그리고 그 외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캄빌리는, 그리고 자자는 점차 거대한 담장에 둘러싸여 넒기만 넒지 텅 비어있는 제 집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다. 아버지에게 저항하여 큰 소리로 제 의견을 말하고, 제 고집을 부려보기도 한다. 궁금한 것을 묻고, 웃고 싶을 때에는 웃었다. 바지를 입고, 언덕 위를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된 것 처럼 달리기도 하였다. 



나는 웃었다. 이제는 웃는 것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것이 이젠 쉽게 느껴졌다. 


p. 341



여타 성장소설과는 다르게, 이 소설에서는 종교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성체를 모시는 것, 고해성사를 하는 것, 혹은 식전기도나 묵주기도가 주인공들의 일상을 채우는 중요한 의식 중 하나이다. 가톨릭은 - 아버지에 따르면 '이교도'라고 불리는- 할아버지의 종교인 나이지리아의 토속 전통신앙과는 배척관계에 있는데, 가족 간의 갈등은 꼭 나와 내 가족의 오랜 숙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필자는 가족 내에서 유일한 가톨릭 신자이며, 친가와 외가 모두 개신교 신자이다. 애써 종교 이야기를 하지 않긴 하지만,  장로교와 감리교로 나뉘어 누가 어떤 것을 옳다고 생각 하는지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같은 개신교 내에서도 그 정도인데, 하물며 가톨릭은... 어릴 때에는 괜한 말을 듣기 싫어 모임 자리에 묵주 반지를 빼 놓기도 하고, 기도할 때 성호를 긋지 않거나, 성경책을 소리내어 봉독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름의 버티기를 행한 적도 있다. 성모마리아를 믿는 이단 종교를 믿는다면서, 왜 성당이 옳지 않은 지 시간만 있다면 3일을 밤새워 설명해 주고 싶을 정도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고, 성인이 된 이후 애써 피할 뿐, 언제고 다시 일어날 갈등임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면...? 결혼식이 아니라 내 장례식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묵주기도 중에, 혹은 미사 중에 노래를 부르는 나이지리아인 신부는 문제시되고 백인인 베네딕트 신부는 존중하는 아버지의 태도. 자국 언어인 이보어를 등한시하고, 영어만을 교양있는 언어로써 취급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전형적인 백인우월주의자의 성격을 띄고 있다. 서양의 문물, 교육은 교양있고 수준 높은 것이고, 자국 나이지리아의 것은 수준 낮은 미개한 것으로 보는 그의 시각은 우리 것은 사라지고 외국의 것만 쫓는 세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혹시 그가 민주주의를 옳바른 사회 시스템으로써 바라보는 것 또한, 그것이 대부분의 서방국가 및 선진국가의 시스템이라서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본인의 기준을 기반으로 자식에게 가학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는 2011년 우간다에서 벌어진 동성애자 인권운동가 데이비드 카토 살해사건이 떠올랐다. (이 사건은 학부시절 Cultural Communication 시간에 다뤘던 것으로, '동성애가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기에 심판을 내린 것' 이라고 명시된 자료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다.) 2010년 말, 우간다의 주간지 '롤링스톤(Rolling Stone)'은 100명의 동성애자의 사진과 이름, 주소를 공개하였고, 이에 반발한 인권운동가 데이비드 카토가 이를 고발하며 막 승소한 시점에 벌어진 사건으로, 그는 둔기에 머리를 맞고 사망하였다. 하늘의 뜻을 인간이 감히 어찌 알 수 있으랴. 여기서 혹시 아버지는 제 자신을 신과 동일시하여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한 가지 알고 싶은 점은, 똑같이 가톨릭을 종교로 삼아, 교육 받고 대학 교수까지 하고 있는 여동생과 달리, 캄빌리의 아버지가 어째서 서방의 종교에 목을 매고,자국의 것을 배척하는지, 어째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그렇게까지 악화되었는지 하는 점이다. 그렇게 강압적으로 행동해야만 했던 계기가 있었을지, 어린 시절의 가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지, 선교사들의 교육이 그를 끝없는 빈곤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는지. 딸과 아들과 손주들의 안녕을 빌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었던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캄빌리, 바지를 입는 게 더 편할 것 같은데." 차를 향해 걸어갈 때 이페오마 고모가 말했다.

"괜찮아요, 고모." 내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왜 고모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내 치마는 전부 무릎 한참 밑에서 끝난다고,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죄악이라서 나는 바지가 하나도 없다고. - P105

".... 오빠는 하느님 행세를 그만둬야 해요. 하느님은 다 큰 어른이니까 당신 일은 당신이 하실 수 있어요. 아버지가 조상님의 방식을 따르기로 한 것에 대해 하느님이 벌하실 거라면 오빠가 아니라 하느님이 벌하시게 놔두란 말이에요." - P124

"너는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는구나." 그가 말했다.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 P222

"고모랑 친구분이 무슨 얘기 하고 계셨던 거야?" 내가 물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묻지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궁금했겠지만, 그래도 묻지 않았을 것이다. - P271

나는 웃었다. 이제는 웃는 것이 너무 쉽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것이 이젠 쉽게 느껴졌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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