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병:맛 2 - 청록, 얼얼하고 질긴
스튜디오 어중간 편집부 지음 / 스튜디오어중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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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과 아픔을 나란히 하는 콘텐츠의 부족, 그런 점에서 잡지는 신선했다. 나 역시도 어쩌면 평생 질병과 함께 해야 하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과정은 지난하고 우울하다. 정신질환을 안고 산다는건 겉으로 티나지 않기에, 더욱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나는 외로운 병이다. 스스로 회복의 길을 찾아야만 삶을 지속할 수 있다. 그렇게 내가 찾은 것은 책이었고, 글자를 탐독해 나갔다. 활자 위주로 집착해가던 나에게 잡지를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방향이었다. 청년의 아픔에 공감하면서도 각자의 이야기를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가는 과정을 글과 사진으로 표현해내는 시도들이 새로웠다. 그렇게 상처 난 표지, 그 상처를 감싼 붕대, 붕대가 감싼 청록맛 청년들의 이야기를 읽어냈다.

🔖 파란색과 초록색을 섞으면 나오는 색, 청록. 블루그린부터 아쿠아마린까지 사람마다 떠올리는 색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보니 내가 채집한 청록도 뭔가 딱 부러지지 않는다. 모호해서 자꾸 말을 더하게 된다. _107p

🐧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이 매거진의 존재 이유를 당사자가 아닌 시선에서도 받아들여 줄까 궁금했다. 취지도 내용도 난해했다. 하지만 마음은 잘 와닿았다. 이것으로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가 설명되지 않을까. 병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맛이 청록, 그 이상의 맛이기를 응원한다.

🔖 한 사람의 아픔이란 온전히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겠죠. 하지만 고통의 곁에 잠시라도 서 보면 알게 됩니다. 한 사람의 고통은 이미 내 삶 속에 다른 얼굴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요._1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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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병:맛 2 - 청록, 얼얼하고 질긴
스튜디오 어중간 편집부 지음 / 스튜디오어중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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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질병과 함께 해야 하지만 스스로를 돌보는 과정은 지난하고 우울하다. 병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맛이 청록, 그 이상의 맛이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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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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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영, 유명한 작가의 신간이다. 기대감은 충분했다. 끝없는 광야를 헤메는 듯한 시간 속에 서있는 모든 이들에게, 혹은 스스로에게 건네는 듯한 한마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 우리는 매번 삶을 새로이 살아낼 수 없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죽음마저도 처음이다. 나는 윤회 사상과 사후세계를 믿지만 어쨌든 죽음이 다가온다는 사실은 처음 느끼는 어떠한 것이다. 작가님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어떻게 살고 싶어?


🔖 “나는 좀 고요하고 싶어.”

이 질문과 대답은 화두처럼 내게 남았다. 내게 있어서 혼자란 것이 자유라고 서서히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과 외로움 혹은 결핍 대신._26p


🐧 안온한 삶을 꿈꾸며 써내려간 글과 직접 찍은 사진에는 작가님의 내면이 온전히 담겨 있다. 문득 참으로 섬세한 사람임을 느낀다. 생생한 밤하늘의 별, 내 성을 물려받은 강아지 공동백, 유다 광야의 황량함. 찰나의 순간 한번에 내 삶이 또 하나 새겨지는 일들. 사진에는 찍은 사람이 살아온 궤적, 작가님의 삶이 보였다. 지리산에서의 삶은 예루살렘 여행기로 이어지고, 드넓은 광야에 섰을 때 무엇을 마주할 것인가.


🔖 끝도 없는 광야.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물 한 방울 없는 광야. 유백색의 메마른 광야는 나를 매혹했다. 이곳에 머무르며 어둠까지 내린다면 그때는 신과 내가 대면하는 그런 순간이 오는 것은 아닐까._154p


🐧 삶의 어딘가에서 헤메고 있는 이들, 그저 마음이 공허할 때 누군가의 글을 읽어내려가며 다시 공허함을 느낀다는 것, 그러면서 누군가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끼며 마음 한구석이 채워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 안에 떠오른 질문을 책을 읽으며 채워갈 수 있었다.


🔖 죽음을 거쳐온 사람들, 사랑에 상처 입은 사람들, 주린 이들과 배고픈 이들, 그리고 샘물을 갈망하는 사람들, 밤새 광야를 헤맨 사람들에게 내 책을 전하고 싶다. 그들은, 아니 어쩌면 그들만이 이 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나의 벗이다._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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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하여 - 숲과 평원과 사막을 걸으며 고통에서 치유로 향해 간 55년의 여정
배리 로페즈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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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다시 다음 세대에게 남긴 베리 로페즈 작가 사후에 나온 에세이 모음집이다. 고통에서 치유로 향한 그의 여정을, 리베카 솔닛은 ‘성배를 찾는 여정’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삶의 대부분 자연과 함께 글을 쓰며 사유했던 기록들을 따라가면서, 회복에 대한 영감을 얻어보고 싶은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 그는 학대로 얼룩진 아동기를 보냈고, 하늘 한 조각, 바람에 흔들리는 이파리들, 흘러가는 물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환경 덕분에 버텼다고 말한다.


🔖 무리 지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 머리 위의 새들을 올려다볼 때, 흔들바람에 마른 유칼립투스 이파리들이 소용돌이 칠 때, 인적 드문 샌타모티카 산자락 어디쯤에 혼자 앉아 코요테나 브러시토끼가 나타나길 기다릴 때,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기운이 솟았다._108p


🐧 가슴 벅찬 것들이 오래도록 남아주길 바란다.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단지 인간이기에 누리지만, 우리의 존재에 비하면 우리가 누리는 것들은 너무나 풍요롭고 에너지가 넘친다. 감히 우리가 재단할 수 없는 존재다.


🔖 이 순간에도 여전히 가능할까? 운집하는 어둠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지구라는 대상을 향해 그리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향해 어색해하지 않고,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일이? 이 불타는 세계를 두려움 없이 부둥켜안을 수 있을까?_255p


🐧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에겐 현재 우리 손에 가장 소중한 것들이 주어져 있을 것이다. 자연을 돌아보는 법을 배웠다면 소중히 간직하고 다짐하자. 손에 쥐었어야만 했던 것보다 현재 나를 살게 하는 힘을 찾아보자고.


🔖 그 때 묻지 않은 시절에 대한 갈망이 때로 걷잡을 수 없이 차오를지언정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게 내가 가졌던 것, 혹은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을 더 사랑하는 법을 배워간다._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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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치유하는 뇌 - 개정판
노먼 도이지 지음, 장호연 옮김 / 히포크라테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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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글에서 뇌와 회복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평소 뇌와 뇌질환, ADHD, 치유와 회복은 관심분야였다. 뇌를 뜨개질 하는 듯이 보이는 표지 디자인의 독특함에 감탄 한번 하고,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 책이 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뇌에는 회복의 힘, 그것도 스스로 치유하려는 힘이 존재한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뇌가 신경가소적이라는 것인데, 신경가소성은 뇌가 정신적 경험에 반응하여 스스로 구조와 기능을 바꾸는 속성을 말한다. 우리를 치유하는 일에 뇌도 크게 한몫을 한다는 것이다. 통증을 줄여, 회복과 치유를 돕는 것도 뇌의 역할이다. 고통의 만성화에도 가소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놀랍고 흥미로웠다. 만성화된 트라우마, 우울, 불안 등 심리적 통증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 심리적 이유로 우리는 통증에 사로잡히면 처벌받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무의식적인 죄책감과 연관되는 특정한 신경증적 갈등을 제외하면, 뇌와 신경계는 통증을 겪는 사람을 ‘벌주려고’ 하지 않는다. 생명 체계가 다 그렇듯이 뇌도 항상 안정적인 상태를 지향한다. 문제는 뇌가 가끔은 만성통증의 상태로 안정화된다는 것이다._47p


🐧 그렇다면 가소성을 발휘한 치유에는 어떤 메커니즘이 있는가. 책에서는 파킨슨 증후군, 난독증, ADHD등을 사례로 들며 어떻게 왜 작용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특히 8장인 ‘소리의 다리’는 음악과 뇌의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평소 감각이 예민한 편이고, 특히 청각이 가장 날서있는 편인데 이 점은 ADHD 당사자의 집중력을 더욱 뺏어가는 면이 있다. 그래서 책에 나온 사례와 음악이 뇌에 주는 영향을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 신경세포가 음악과 일치하여 발화하므로 음악은 뇌의 리듬을 바꾸는 방법이다._493p


🐧 신체와 관련된 책을 읽으면 늘 놀라운 점은 우리 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혹은 그 이상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치유하는 뇌’도 마찬가지다. 뇌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을 넘어서 스스로 치유하며,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남은 것은 우리가 뇌의 치유력을 믿는 것이다.


🔖 그러나 진정한 경이는 치료 기법이 아니라, 수백만 년의 세월 동안 뇌가 진화시킨 정교한 신경가소적 능력과 독특한 방법으로 회복을 지휘하는 뇌의 독특한 과정이다._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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