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작은 구원 - 아버지 없이 자란 한 사람의 내면 일기
고아롬 지음 / 책나물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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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가 삶의 구원이었던 작가는 왜 자신이 불행한지 고민했다. 결론은 아버지의 부재였다. 내면의 일기를 솔직하게 써내려갔다는 문장들이 어쩐지 마음에 까슬하게 와닿았다. 책나물과 함께 읽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고,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 누군가의 ‘부재’란 어떤 의미인가? 버려진 아이에게 부모의 부재는 있지만, 아이를 버린 부모에게는 아이의 부재가 있을까? 열두살의 아이에게 엄마의 재혼은 부재이자 버림받았다는 상처였다. 그래서 가끔 엄마를 만날 때마다 체취라도 기억하기 위해 내내 붙어있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귀찮아했다. ‘아, 나에게는 당신이 부재이지만, 당신에게는 내가 부재가 아니구나. 없어도 그만이구나.’ 부재란 씁쓸한 감각이란 것을 열두살의 나는 서글프게 깨달았다.

🐧 부재. 작가님의 글에는 전체적으로 부재가 담겨 있다. 부재에는 수없이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때로는 이중성을 가진다. 울면서도 웃어야 한다. 이상한 일이다. 이미 나에게서 없는 것 때문에 울음이 터져나오면서도 웃어야 한다니. 부재는 때로 약자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들켜서는 안된다.

🔖 엄마는 갑작스레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시작했다. 엄마에게 아빠의 부재는 나와 다른 의미였을 것이다. 남몰래 눈물짓고 남편이 없는 설움을 묵묵하게 견뎌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형제에게 웃어주었을 것이다._24p

🐧 부재는 소멸하면서 생성된다. 음식의 결핍이 배고픔을 만들듯이, 사람의 부재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고 질문을 만든다.

🔖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나에게 끌려다닌다. 아버지의 부재는 어떤 나를 만들었을까. 아버지의 부재가 만든 나는 버려야 할 나일까, 간직해야 할 나일까. 원한다면 버릴 수는 있는 종류의 것이기는 할까. 마침내 나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 안에서 들끓는 질문들이다._34p

🐧 이 모든 시작은 결국 한 사람에게로 향한다. 글에는 눈물, 쓴웃음, 약자성, 가난, 설움, 분노 등 먹먹한 감정들이 가득 차올라 넘친다. 자신을 잠식하던 한 사람을 향한 모든 감정을 이제는 내면을 향한 솔직한 고백으로 스스로를 억눌린 감정에서 끌어올린다.

🐧 나를 구원한 것은 혹은 구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아보여도 좋다. 당신의 결핍이 당신의 모든 것을 뺏어가게 두지 말기를. 당신의 결핍이 때로는 당신을 구원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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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마약 변호사를 하는가 - 당신이 알지 못하는, 약한 사람들의 이야기
안준형 지음 / 세이코리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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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 변호사라니, 정말로 낯선 조합이다. 마약사범과 형사에 대한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변호사는 들어보지 못했던 이야기라 흥미롭고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인 작가는 마약 사범 이전에 사람에 대해서,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죄질이 아주 나쁜 사람이 마약을 하는 것만은 아니라고, 평범한 삶의 한 가운데 갑자기 정신 차려보면 마약의 구렁텅이 한 가운데서 정신을 못차리는 경우가 무척 많다고 말한다.

🔖 많은 이가 마약은 아주 별난 사람, 또는 질이 안 좋은 몇몇 사람들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마약 사건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_29p


🐧 책에는 마약과 관련한 변호 사건 사례들이 주를 이루지만, 이외에도 마약에 관한 오해들, 마약사범 주변 가족과 사람들의 이야기, 법에 대한 정보 등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마약 관련 정보를 나누는 것은 대한민국 내에서의 마약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경각심을 가지길 바라는, 그래서 변호사인 자신을 만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들어봐주길 바란다. 누구나 마약을 처음 손댄다면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도 너무나 낯설고 당황스러울 테니까.

🔖 마약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약과 마약 투약자에 대한 이해와 인식의 공감대를 갖추는 일.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_97p


🐧 ‘약’한 사람들은 ‘약해진다’. 초범인 경우도 그렇지만, 재범인 경우에는 주변의 단절과 인권침해 등으로 더욱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 단약의지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마약사범을 둘러싼 환경 중 언론의 책임을 묻기도 한다.

🔖 지금까지 마약 사건과 마약 범죄자를 대해왔던 언론의 태도를 주의 깊게 돌아보고, 마약 범죄 감소를 위한 언론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_151p


🐧 어찌 보면 결국에는 투약자들을 변호하는 것 아닌가,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오해 전에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살면서 출구가 간절하게 필요한 때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 하지만 ‘절대’는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굳은 결심과 치열한 노력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필로폰을 끊고 일상에 복귀한 사람이 분명 존재하니까. 나는 믿는다. 출구는 있다._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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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말린 날들 -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 짓기
서보경 지음 / 반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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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이 주는 희망.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서로 반전을 주는 단어들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까. 바이러스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과 사유할 기회를 던져주지 않을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 인류학자인 작가는 자신도 감염에 휘말려 들었다며, 적극적으로 휘말리기를 권한다. 삶에서 감염이 던지는 문제들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탐구하고, 질문하기를 바란다. 감염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다. 단순히 감염 ‘당하는’ 것을 넘어서서 휘말리는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 나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HIV에 휘말리기를 바란다. 감염이 야기하는 난제를 삶에서 직면하기 바란다._26p


🐧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HIV만의 역사, 감염과 감염병, 그리고 질환의 의미를 되짚어본다. 우리는 어떤 낙인을 만들고 있는가. 그런 우리는 어떤 책임과 돌봄을 건네야 하는가. 무엇보다 읽는 내내 감염을 바라보는 나의 통념을 건드려볼 수 있었다. 감염과 정신질환에는 사회적 죽음이 담겨 있다. 당사자 외에도 모두가 발벗고 나서서 애초부터 없는 존재로 만드려 한다. 정상의 궤도에 다리를 부러뜨려서라도 맞춰서 세워놓으려 한다. 사회에서 부정당하는 것들에는 비슷한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닐까.

🐧 질환과 낙인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면 최근 오월의 봄에서 나온 『미쳤다는 것은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이 책도 무척 추천한다.


🔖 한국에서 에이즈는 생물학적 죽음보다 사회적 죽음을 먼저 불러왔다._86p


🐧 사회적인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게 된다. 읽는 내내 감염에 휘말린 사람들의 고통이 전해져서 마음이 아팠다. 책은 두껍고 방대한 양이 들어있지만 감염과 질병에 대해 새롭게 사유해볼 수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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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상담소
이충현 지음 / 담앤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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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마, 보통 업業으로 알고 있던 개념이다. 그래서 카르마 상담이라는 개념이 낯설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 카르마를 통해 삶의 인과관계를 보다 깊숙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엉켜있는 듯한 삶을 헤메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런 내면의 고통을 바로 마주해보고 싶었다. 어떤 치유의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 고대 인도에서 기원한 이 개념은 본래 ‘행위’를 뜻한다. 즉 카르마는 내가 행한 바대로 그에 따른 과보果報를 나 자신이 어떻게든 받는다는 인과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_6p

🐧 왜 카르마인가? 과도한 경쟁과 결과중심적 사회분위기, 이로 인한 정신 건강의 적신호까지. 급변하는 사회에 결과에만 집착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원인’을 놓치게 된다. 이 결과가 왜? 생겨났는지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하지 않는 사고는 결과만을 추구하며, 고여버리게 된다. 결과중심적 사고에서, 원인과 결과를 연결하고 헤아리는 사고인 인과적 사고가 필요한 때이다. 이 사고에서 필요한 핵심이 카르마의 인과다.

🔖 원인을 등한시할수록 결과중심적 사고가 강해지게 된다. 따라서 결과만큼이나 원인도 중요함을 알고 이 둘의 연결성을 제대로 고려하고 확인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_31p

🐧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업이 카르마고, 카르마의 인과를 아는 것은, 삶에서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되돌아오고, 되풀이 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과도 마찬가지다. 반드시 일어난 원인이 있다. 내적 통찰과 카르마를 통해 이번 생을 이해한다면 심적 고통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카르마 상담이다.

🔖 자기 통제력이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심적 고통의 핵심이다._36p

🐧 카르마도, 상담도 어렵고 난해한 주제에다 불교라는 종교적 사상도 담겨있다. 그렇지만 내 삶의 인과관계를 되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카르마를 공부해본다면 좋겠다. 가령 나는 어린시절 학대의 경험으로 다양한 트라우마 증상이 있어서, 상담 사례 2번에게 적용된 상담 원리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사실 ‘뻔한 얘기 아닌가요?’ 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카르마를 통한 고통의 접근은 매력적이다. 내면의 고통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다.

🔖 우리는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의 고통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지지하며, 피해자로서의 그들에게 도움을 제공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고통의 경험을 통해 더 성숙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로 일상에 복귀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_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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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 수업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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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 이전 책을 재밌게 읽었고, 하루하루 철학이 채워지는 경험이었다. 스토아 철학의 메시지를 통해 나와 나의 마음을 다정하게 읽어내보고 싶었다.


🐧 이 책은 스토아 철학의 핵심 메시지를 담은 스토아 철학 4부작 중 두 번째 책이다. ‘절제 수업’의 부제는 ‘내 안의 충동에서 자유로워지는’으로, 내 육체가, 기질이, 영혼에서 충동이 일어날 때 절제해야 하는 이유, 절제할 수 있다는 믿음, 이후 나에게 찾아오는 행복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절제의 삶을 실천했던 인물들의 경험들이 함께 나오는데, 이를 통해 현재 나의 삶에 적용해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해볼 수 있다.


🔖 우리가 이 책에서 살펴볼 사람들은 몸소 자제와 헌신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_22p


🐧 저자는 끊임없이 육체를 단련하라고 말한다. 육체를 장악하지 못하고 잠식 당한다면 찾아올 일은 앞으로의 삶에 새겨질 것이다.


🔖 모든 결과는 몸에 새겨진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매일같이 조용히 그리고 때로는 그리 조용하지 않게 우리의 존재에, 우리의 외양에, 우리의 기분에 항상 기록된다._156p


🐧 행동을 절제했다 하더라도 ‘기질’, 즉 타고난 본능과도 같은 이것을 다스릴 수 없다면 습관화 되지 못하고 도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끈기를 가지고 기질을 다스릴 줄 알아야만 한다.


🔖 우리는 항상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하루하루 견디는 인내만이 아니라 오래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다._208p


🐧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이뤄냈다면, 이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삶을 통째로 흔드는 시련이 찾아온대도 나를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것이 바로 이 ‘무언가’, 영혼이다.


🔖 지독한 병과 유배 생활을 겪은 세네카는 “때로는 산다는 것 자체가 용기를 요구하는 행위다”라고 썼다. 산다는 것은 또한 절제 그 자체기도 하다.


🐧 절제하라, 참아라, 인내하라. 우리는 삶의 미덕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늘 그렇듯 실천하기 어렵다. 이 책에는 선례가 있고, 그 경험을 통해 체득한 이들의 삶을 정리하여, 철학적 사유로 건네는 훌륭한 저자가 있다. 삶의 주도권을 손에 쥐어본 적 없어도 괜찮다. 우리의 삶은 주인을 닮았다. 타고난 절제의 마음으로 우리가 스스로 삶의 방향을 잡아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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