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평점 :
용산참사를 다룬 소설 [소수의견]을 읽은 지도 벌써 3년이나 흘렀다. [소수의견]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었고, 개봉이 석연찮은 사정으로 연기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대한민국은 [소수의견]이 나왔던 2010년에 비해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진 듯하다. [디 마이너스]는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서울대학교의 학생운동을 주축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용산참사의 진상과 그 법적 투쟁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소수의견]과 마찬가지로 [디 마이너스]에도 역시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생생하게 들어있다. 사실 200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간 나는 학생운동이란 것의 실체를 눈으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담배 1’이라는 첫 번째 꼭지를 넘기고 나타나는 페이지에 학생운동의 계보도가 그려져 있는 걸 보고 순간 뜨악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운동권 학생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았던가.
학생운동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캠퍼스가 배경인 소설에서 당연히 낭만이 빠질 수는 없다. 개성 가득한 캐릭터들이 손을 들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확실히 이 소설에는 캐릭터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소설 속 화자 ‘나’(태의)는 미학도다. 미학과 학생들로는 태의가 “그토록 닮고 싶어 했고 사랑했으며 또 숭배해 마지않았던 미와 지의 여신” 미쥬, 음유시인 현승 선배, 실은 체대에 진학하고 싶었다는 도지사 아들 경수, 빼어난 미남이고 동성애자인 민효, 클릭비의 열성팬이기도 한 천재 미학도 수리 등이 있다. 그리고 미쥬의 남자친구인 법학도 대석, 어쩌다 학생운동 학회에 가입하게 된 공학도 진우가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상처주고, 싸우면서 흩어지고 모인다.
태의에게 학생운동으로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신념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미쥬를 숭배해서 철학연구학회에 들어갔고, 그 학회가 ‘전국학생연대회의’라는 학생운동 정파의 관문이었을 뿐이다. 태의는 학생운동에 휩쓸려가면서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는 하나하나 무너져 간다. 대공안실로 끌려간 태의는 진우가 화염병을 던졌다는 진술을 했고, 시간이 흐른 뒤 그로 인해 진우는 구속 기소된다. 손아람 작가가 어느 칼럼에서도 명명했듯이 이른바 “축제 공안”이라는 것인데, 월드컵 기간에 일어날 수 있는 시위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방침이었다. 태의는 신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끝내려고 합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어디까지 도둑질하면 비로소 끝나는 것입니까.” 태의의 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미주를 사랑한 죄, 사랑하는 미주가 정리하지 못한 옛 연인에 대한 마음을 용납할 수 없었던 죄, 진우처럼 자신이 화염병을 던졌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지 못한 죄. 이런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젊은 시절의 치기나 미성숙으로 보아줄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일까.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태의가 그것들을 죄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태의는 죄책감을 느꼈고,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혹은 견디기 위해 투쟁선봉대에 합류한다. 투쟁선봉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파업 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였다. 태의는 노동자들을 몰아내려는 용역 깡패들에 맞서 싸운다. 마치 자신에게 벌을 주기라도 하듯이. 학생운동은 그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태의와 진우를 대공분실에서 취조했던 문 경사, 아니 문 경위의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공대 학생회장이 된 진우에게 문 경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세상과 싸우는 게 아냐. ...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빛을 가졌던 놈들. 그리고 언젠가 네 후배들이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 거야.” 단지 그들은 자신의 젊음을 불태울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학생운동이 적합해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 끝내 내가 마음을 주게 된 인물은 진우다. 음유시인 현승은 졸업해버리고, 태의는 미쥬와 헤어지고, 대석은 입대하고, 민효는 변호사가 되려고 사법고시 준비에 뛰어들고, 미쥬는 유학을 떠난다. 학생운동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던 이들 대부분 떠나버린다. 오직 공학도 진우만 남는다. 진우는 대공분실에서 끝까지 태의의 이름을 대지 않았으며, 법정에 반성문을 제출하지도 않는다.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미국 대사관 담장에서 떨어져 한쪽 눈을 실명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사회운동가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무슨 출신 따위를 들먹이며 판단하려고 한다. 김아무개는 인문학도니까, 이아무개는 공학도니까 등등. 그런 판단에 효율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가장 절실한 영역에선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소설에서 진우가 증명해 보였듯이. 미학도였던 태의는 삼성전자 홍보실에서 제품들을 칭찬하는 아름다운 문구를 쓰고, 공학도였던 진우는 삼성전자에 대항해 싸운다. 누구나 제각각의 방식으로 세상을 감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누구의 삶이 옳거나 낫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내가 희망을 걸게 되는 쪽은 진우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 너절한 세상살이에서 마음이라도 한 자락 걸쳐놓을 수 있으니까.
*소설 끝부분에 실린 “잃어버린 10년”이란 연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소설 속 진우의 모델이 된 듯하다.
“2003년 3월 26일 연대회의, 한총련, 전학협의 미국 대사관 합동 진격, 경찰 진압 중 연대회의 오기형 씨 추락상 사건.”
p. 300 : "곧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데, 너 같은 놈들이 또 후배들 끌고 거리로 뛰쳐나와 활개치게 놔둘 수는 없지. 축제 기간 동안만 잠깐 머리 식히고 나와라. 너만 처넣는 거 아니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우가 기소된 실질적인 이유였다. 도로교통법 위반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도, 국가보안법 위반도,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도 아니었다. 독재에 대항했기 때문도, 혁명을 계획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세계인의 축제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축제는 태양만큼 뜨거웠다.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에 올랐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그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