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처럼 서러워서 작은숲 에세이 4
김성동 지음 / 작은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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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선생은 독립운동가 유족들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선생은 정부 초청으로 귀국한 김좌진 장군 외손녀와 허위 선생 증손녀가 한국 국적도 없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말한다.(다행히 몇 년 전 무국적 사망 독립유공자들은 호적을 획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은 자신의 집안사에 대해서 들려준다. 선생의 아버지는 좌익 활동을 하다가 6·25가 일어난 직후 학살당했으며, 6·25 당시 면장을 하고 있던 큰외삼촌은 얼치기 좌익들에게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선생이 연좌제 때문에 중이 되려했고, 결국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선생의 집안이 이 정도로 비참한 일들을 겪어야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선생은 연좌제의 쇠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선생은 우리 역사가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를 알려준다. ‘과대망상증 환자’로 업신여겨지는 궁예, 서경 천도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변화시켜보려 했지만 ‘요망한 중놈’으로 일컬어지게 된 묘청, 평등과 자유를 고갱이로 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가짜 중’으로 알려진 신돈 등 선생의 눈길은 역사의 반역자로 치부된 이들에게 닿아있다. 당에 의존하는 신라에 반해 자주국가를 꿈꿨던 김헌창, 양반들도 군포를 내야한다는 혁명적 주장을 펴던 참 북벌론자 윤휴, 새 세상 남조선(南朝鮮)을 열어젖히겠다고 다짐했던 김개남 같은 이의 뜻도 선생은 받들려 한다. 그에 견주어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선생은 그 진상을 들추려 한다. 민영휘는 평안감사 시절 백성들 재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고종과 민 중전(명성황후라 불리는 여자다. 선생이 부르는 대로 나도 민 중전이라 부른다.)에게 바치게 된 까닭에 ‘민송아지 대감’이라 불렸다고 한다. 민영휘는 백성들 고혈을 짜내고, 일본에 나라 넘긴 공로로 ‘대일본제국 천황폐하’한테 받은 돈으로 대재벌이 된다. 그런 민영휘 후손들은 지금 수십만 평 땅으로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선생은 현재 잘못 쓰이고 있는 한국어를 교정해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크나큰 유익이다. 하기야 이미 [김성동 천자문]이라는 책을 출간했을 정도로 한문에 일가견이 있는 분 아니던가. ‘보편’이란 말에 관하여 선생은 “‘보편(普偏)’이 아니라 ‘보변(普徧)’이라고 쓰고 읽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치우칠 편(偏)이 아니라 두루 변(徧)이 옳기 때문이다. 또한 이서진 주연의 드라마 <이산>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정조의 이름이 ‘이산(李祘)’으로 잘못 읽히고 있는 사정에 관해서도 선생은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한탄한다. ‘祘’이란 글자에는 ‘산’과 ‘성’ 두 가지 음이 있는데, 셈하는 막대기를 뜻할 때나 ‘산’이라고 읽는 것이지, 임금 이름을 부를 때는 두루 살핀다는 뜻으로 ‘살필 성’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렇게 읽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에 앞으로 고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 어원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의 소설을 읽으면서 입에 달라붙은 한국어를 어찌나 절묘하게 구사하시는지 깜짝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마치 작가가 한국어의 끝간 데가 어디까지인지 보여주기로 작정하고 썼다고나 할까. 이번에 선생의 에세이집을 읽고 나니 그러한 한국어 구사가 가능했던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바로 우리 역사와 우리말에 대한 가없는 애정이다. 선생은 그런 애정으로 한평생 글을 썼을 것이고, 그렇기에 얼룩져가는 우리 역사에 대해서 이토록 준엄한 글들을 쓸 수 있었으리라. 선생을 포함해 연좌제로 고통 받은 이들을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선생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스러울까. 비정하고도 비루한 한국 근현대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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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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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를 다룬 소설 [소수의견]을 읽은 지도 벌써 3년이나 흘렀다. [소수의견]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들었고, 개봉이 석연찮은 사정으로 연기되고 있다는 말도 들었다. 대한민국은 [소수의견]이 나왔던 2010년에 비해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진 듯하다. [디 마이너스]는 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는 서울대학교의 학생운동을 주축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다. 용산참사의 진상과 그 법적 투쟁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던 [소수의견]과 마찬가지로 [디 마이너스]에도 역시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생생하게 들어있다. 사실 2000년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간 나는 학생운동이란 것의 실체를 눈으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담배 1’이라는 첫 번째 꼭지를 넘기고 나타나는 페이지에 학생운동의 계보도가 그려져 있는 걸 보고 순간 뜨악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운동권 학생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았던가.

 

학생운동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캠퍼스가 배경인 소설에서 당연히 낭만이 빠질 수는 없다. 개성 가득한 캐릭터들이 손을 들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확실히 이 소설에는 캐릭터들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다. 소설 속 화자 ‘나’(태의)는 미학도다. 미학과 학생들로는 태의가 “그토록 닮고 싶어 했고 사랑했으며 또 숭배해 마지않았던 미와 지의 여신” 미쥬, 음유시인 현승 선배, 실은 체대에 진학하고 싶었다는 도지사 아들 경수, 빼어난 미남이고 동성애자인 민효, 클릭비의 열성팬이기도 한 천재 미학도 수리 등이 있다. 그리고 미쥬의 남자친구인 법학도 대석, 어쩌다 학생운동 학회에 가입하게 된 공학도 진우가 등장한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상처주고, 싸우면서 흩어지고 모인다.

 

태의에게 학생운동으로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신념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미쥬를 숭배해서 철학연구학회에 들어갔고, 그 학회가 ‘전국학생연대회의’라는 학생운동 정파의 관문이었을 뿐이다. 태의는 학생운동에 휩쓸려가면서 그를 둘러싸고 있던 세계는 하나하나 무너져 간다. 대공안실로 끌려간 태의는 진우가 화염병을 던졌다는 진술을 했고, 시간이 흐른 뒤 그로 인해 진우는 구속 기소된다. 손아람 작가가 어느 칼럼에서도 명명했듯이 이른바 “축제 공안”이라는 것인데, 월드컵 기간에 일어날 수 있는 시위의 싹을 잘라내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방침이었다. 태의는 신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끝내려고 합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을 어디까지 도둑질하면 비로소 끝나는 것입니까.” 태의의 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미주를 사랑한 죄, 사랑하는 미주가 정리하지 못한 옛 연인에 대한 마음을 용납할 수 없었던 죄, 진우처럼 자신이 화염병을 던졌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지 못한 죄. 이런 것이 죄가 될 수 있을까. 젊은 시절의 치기나 미성숙으로 보아줄 수는 없었을까.

 

그러나 이런 말들이 무슨 소용일까.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태의가 그것들을 죄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태의는 죄책감을 느꼈고,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혹은 견디기 위해 투쟁선봉대에 합류한다. 투쟁선봉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파업 노동자를 지원하는 단체였다. 태의는 노동자들을 몰아내려는 용역 깡패들에 맞서 싸운다. 마치 자신에게 벌을 주기라도 하듯이. 학생운동은 그들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태의와 진우를 대공분실에서 취조했던 문 경사, 아니 문 경위의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공대 학생회장이 된 진우에게 문 경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세상과 싸우는 게 아냐. ...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빛을 가졌던 놈들. 그리고 언젠가 네 후배들이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 거야.” 단지 그들은 자신의 젊음을 불태울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학생운동이 적합해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소설에서 끝내 내가 마음을 주게 된 인물은 진우다. 음유시인 현승은 졸업해버리고, 태의는 미쥬와 헤어지고, 대석은 입대하고, 민효는 변호사가 되려고 사법고시 준비에 뛰어들고, 미쥬는 유학을 떠난다. 학생운동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던 이들 대부분 떠나버린다. 오직 공학도 진우만 남는다. 진우는 대공분실에서 끝까지 태의의 이름을 대지 않았으며, 법정에 반성문을 제출하지도 않는다.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다 미국 대사관 담장에서 떨어져 한쪽 눈을 실명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사회운동가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다.

 

우리는 사람을 판단할 때 무슨 출신 따위를 들먹이며 판단하려고 한다. 김아무개는 인문학도니까, 이아무개는 공학도니까 등등. 그런 판단에 효율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가장 절실한 영역에선 틀린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소설에서 진우가 증명해 보였듯이. 미학도였던 태의는 삼성전자 홍보실에서 제품들을 칭찬하는 아름다운 문구를 쓰고, 공학도였던 진우는 삼성전자에 대항해 싸운다. 누구나 제각각의 방식으로 세상을 감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누구의 삶이 옳거나 낫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내가 희망을 걸게 되는 쪽은 진우 같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덕분에 이 너절한 세상살이에서 마음이라도 한 자락 걸쳐놓을 수 있으니까.


*소설 끝부분에 실린 “잃어버린 10년”이란 연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소설 속 진우의 모델이 된 듯하다.
 “2003년 3월 26일 연대회의, 한총련, 전학협의 미국 대사관 합동 진격, 경찰 진압 중 연대회의 오기형 씨 추락상 사건.”

p. 300 : "곧 우리나라에서 월드컵이 개최되는데, 너 같은 놈들이 또 후배들 끌고 거리로 뛰쳐나와 활개치게 놔둘 수는 없지. 축제 기간 동안만 잠깐 머리 식히고 나와라. 너만 처넣는 거 아니니까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우가 기소된 실질적인 이유였다. 도로교통법 위반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도, 국가보안법 위반도,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도 아니었다. 독재에 대항했기 때문도, 혁명을 계획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월드컵이 한국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세계인의 축제에 찬물을 끼얹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듬해 축제는 태양만큼 뜨거웠다.
안방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에 올랐다.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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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 - 암을 치유하며 써내려간 용기와 희망의 선언
이브 엔슬러 지음, 정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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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엄마의 몸과 다른 내 몸을 경멸했다. 아빠가 그 안으로 밀고 들어와 더럽혔을 때 내가 비워낼 수밖에 없었던 내 몸. 그래서 나는 계속 내달리고 성취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된 숨 가쁘고 탐욕스러운 기계가 되어 살았다.”(p. 15) 이 책을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나는 내 몸을 곧추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저자 이브 엔슬러에 대해 아는 건 없었다. 이번에 이 책을 만나고 나서야 베스트셀러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이며, 국내에 이미 몇 권의 저서가 번역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 그런 이브 엔슬러의 자궁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날이 2010년 3월 17일이라니, 거의 5년이 다 되어간다. [절망의 끝에서 세상에 안기다]는 암에 걸린 이브 엔슬러가 자신의 암 치료 과정에서 경험한 바를, 정말이지, 질릴 정도로 사실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저자 스스로가 “스캐닝”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이브 엔슬러의 글쓰기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하다. 어쩌면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나는 익명으로 글을 쓰는 이 인터넷공간에서도 감추고 싶은 것은 어떻게 해서는 에둘러 쓸 때가 많은데 말이다. 저자는 아빠에게 당한 성폭력의 경험이나 젊은 시절 난잡한 성생활까지 숨기지 않고 모두 보여준다. 자신의 수술 과정을 묘사하는 대목들도 그 과정이 그대로 머릿속에서 재생될 수 있을 만큼 생생하다. 가령 의사가 관을 삽입해 농양을 빼내는 장면을 묘사한 대목.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도간이 딸린 두꺼운 바늘을 내 수술 부위에 찔러 넣는다. 비명을 지르며 너무 아프다고 말하지만, 그는 멈출 생각도 없고, 제대로 진통제를 놓지도 않고, 내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다. 계속 비명을 질러대지만 그는 그저 자신의 일을 계속할 뿐이다.”(p. 87) 이 대목을 읽을 땐 마치 바늘이 내 몸을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어 내 몸도 아팠다.

 

이브 엔슬러가 이 고단하고 지난한 수술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녀 곁을 굳건히 지켜준 사람들 덕분이다. 먼저 실제 이브 곁을 지키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 함께 했을 콩고 여성들. 강간 때문에 누공이 생긴 콩고 여성들처럼 이브의 몸속에도 누공이 생긴다. 그래서 이브는 수술을 받는 와중에도 “약물이나 컴퓨터 단층촬영, 주머니 같은 호사는 누릴 수도 없는 콩고의 여성들”을 생각한다. 콩고 여성들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이 비로소 일치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동생 루, 여덟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의붓아들, 친구 라다, 오빠 같은 제임스 등이 이브와 함께 해주었지만, 역시 ‘방귀 산파’ 신디를 언급해야겠다. 인공 항문주머니를 제거한 후 이브는 방귀를 뀔 수 있을지 두려워한다. “똥 폐소공포증. 내 몸 안의 모든 게 꽉 막혀서 밖으로 나올 방도가 없고 종국에는 터져버리고 말거라는.” 오래 기다려도 방귀가 나오지 않자, 그런 이브를 위해 찾아온 자원봉사자 신디는 이렇게 말한다. “방귀는 내 귀에는 음악 같아요. 나는 방귀가 아주 반갑답니다. 그래서 내가 온 거예요.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방귀를 뀌어봐요.”(p. 211) 신디의 극진한 안마로 이브가 그렇게 기다리던 “뽕” 소리를 듣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자신이 인간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지닐 수 있었다면 그건 위대한 인물들 덕분이 아니라 경제적 보상에 대한 기대 없이 약한 이들을 돌보는 신디들 덕분이라고 이브는 말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 오래되고 낡아빠진 질문. 그러나 이 질문을 나는 머릿속에서 다시 꺼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깊이 욱신거리는 질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린다고 말하고 상상하기조차 저어하고 있다. 그러면서 혹시 나 자신은 안도하고 있는 건 아닌가. 이 책의 저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이, 콩고의 수십 만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통이 동아시아의 중진국에서 태어난 남성인 나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안도하고 있지는 않는가. 사실 이러한 내 자기 검열마저도 고통의 당사자들에게는 얼마나 먼 이야기일 것인가. “나는 피였고 똥, 오줌, 고름이었다.”(p. 20) “콩고에서 누공은 강간 때문에 생긴다. 특히 집단 강간이나, 병이나 나무 막대기 같은 이물질을 사용한 강간.”(p. 57) 이런 문장과 마주했을 때, 기가 질리지 않기는 어렵다. 상상하는 순간 그 이미지는 섬뜩한 공포가 되어 내 가슴을 비수처럼 찌른다. 여성들의 학대 받는 몸에 대해 나는 얼마나 무감각했던가. 수많은 오락영화 속에서 여성의 몸이 전시되고 폭력의 대상이 될 때, 나는 그 광경을 낄낄거리며 보지는 않았나.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계속 약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작은 것, 부드러운 것, 부서지기 쉬운 것, 연약한 것. 나는 무슨 거대한 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거나, 내가 거창한 일을 해야만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아마 세상 살이에 좀 지쳐 있었나 보다. 그러나 이브 엔슬러의 이야기를 읽고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확인한다. 이브 엔슬러가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그녀가 위대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약함을 숨기지 않고 그 약함으로 약한 자들을 돕기 때문이다. 이브 엔슬러의 마지막 당부는 이 것이다.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강의 일부임을 아는 사람들로부터 변화는 생겨날 것이다. 당신의 질병을 이겨내고 싶다면 아픈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배고픔을 잊고 싶다면 친구에게 먹을 것을 줘라.”(p. 240) 그것을 잊지 말자. 지금 내 현실에 불평하지 말고, 쓸 데 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자.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이것이 이 고통스런 책을 다 읽고 난 나 자신과 하는 약속이다. 지금, 이 시간, 어딘가에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지닐 수 있었다면 그건 위대한 발명가나 예언자적 시인 때문도 아니고 뇌수술 전문의나 심지어 간디 같은 인물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신디 같은 이들, 매일 아침 일어나 가족의 식사를 챙겨주거나 병약한 부모님을 돌봐준 뒤, 눈 덮인 시골길이나 매연 가득한 고속도로를 달려 병원이나 요양원, 정신병원, 고아원 등을 찾는, 눈에 띄지 않고 조용한, 보통 보수가 전혀 없거나 형편없는 보수를 받는 신디들이다. 보통 인정도 못 받는 채 그들은 가난한 이, 잘난 이, 누추한 이, 병든 이, 타락한 이를 돌보는 것이다.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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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행복 플러스 - 행복 지수를 높이는 시크릿
댄 해리스 지음, 정경호 옮김 / 이지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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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왜 ‘10%’일까? 책 제목을 읽고 잠시 생각했더랬다. 너무 소박한 거 아닌가. 자기계발서적이면 100% 정도는 제목에 붙여줘야 하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저자 댄 해리스는 조금 낯선 이름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에 대해 너무나도 궁금해져서 참지 못하고 유튜브에서 ‘Dan Harris’를 검색해보았다. ABC 방송이 엄청 밀어주는 앵커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자기 책을 자기 방송에서 대놓고 소개할 수 있을 정도면 뭐 말 다한 거다. 나처럼 궁금해 할 분들을 위해 동영상 url을 적어 놓는다. http://www.youtube.com/watch?v=4sXBEfIXUno 이 동영상에서는 10년 전 댄 해리스가 뉴스를 진행하는 모습, 그러니까 책에서 불안장애를 느꼈다고 고백한 그 시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몇몇 인물들도 등장한다. 책 후반부에 언급된 페리스 힐튼과의 인터뷰도 연관 동영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책 앞부분에는 저자 댄 해리스가 종교 전문 기자가 되고, 그 후 종군기자로서 세계 분쟁 현장을 종횡무진 사연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몇몇 종교인들 이야기가 나온다. 전쟁터에서 경험한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저자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 결국 우울증, 코카인, 엑스터시에까지 손을 댔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생방송에서 불안장애 때문에 더 이상 방송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저자는 신경 치료를 받게 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테드 해거드라는 목사가 살아가는 것을 보며 세속의 영역 너머에 무언인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테드 목사는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위선적으로 살아온 사실이 밝혀져 교회를 떠나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로서의 삶을 살려고 한다. 저자는 가식적으로 보이는 그 목사가 “나는 단 한 순간도 주님과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라며 자신의 신에게 끝까지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신적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전히 방송국 내 살벌한 경쟁에서 비롯되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있던 저자 댄 해리스. 그는 다행히 에크 하르트 톨레가 쓴 [새로운 지구: 삶의 목적을 일깨우는 소고]라는 책을 통해 머릿속 목소리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부정적 영향을 주는 에고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책에는 머릿속 목소리를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지 나와 있지 않았고, 톨레를 직접 만나고 나서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업무의 일환으로 여러 자기계발 전문가들을 만나보기도 하지만, [끌어당김의 법칙]을 옹호하는 조 비테일 같은 자기계발 전문가들이 나폴레옹 힐이나 노먼 빈센트 필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그러다 마침내 저자는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에 관한 책들을 읽고 나서야 마음의 안정에 이를 수 있는 실마리를 붙잡는다. 그리고 명상 피정 프로그램 참가를 계기로 그의 삶에서 서서히 명상이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그 과정은 매우 지난한 것이었다. 저자는 명상이 누구나 하기 쉬운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명상에 대해 “아주 어려우면서도 격렬한 두뇌 운동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한다. 자신이 구성한 이야깃거리들이 코너 경합에서 탈락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저자의 마음속은 요동치곤 했다. 저자는 그래서 “마음 다스리기만으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로 고민해야 했다.

 

해답은 이것이다. 정당한 분노는 표출하라. 표출하되, 그 방법이 극단적이어서는 안 된다. 요컨대 ‘반발’하지 말고 ‘반응’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상을 통해 부정적 감정들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얻는 것은 무엇인가? 현실적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는 않지만, 그 문제에 대한 섣부른 행동을 억제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명상을 한다고 해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뒷짐 지듯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자존감까지 내버리라는 말도 아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배려심과 사려 깊음을 유지하면서도 열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 저자가 정리한 명상에 관한 고갱이, 이름 하여 ‘The Way of Worrier’을 적어본다.

 

1. 비열한 수단을 통해 이룩한 성공은 불행의 지름길이다.
2. (그리고/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명상 수련을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말라.
3. 명상하라.
4. 불안정을 각오하고 안정을 추구하라. 다만 ‘소용이 있을 때까지’라는 소멸시효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5. 평온한 마음가짐은 창의성의 적이 아니다.
6. 긴장을 풀고 여유를 찾아라.
7. 겸손하면 백가지 난처한 경우를 모면한다.
8. 지나친 자책은 백해무익이다.
9. 결과에 초연한 마음가짐을 가져라.
10.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여전히 명상의 효과에 대해 미덥지 못한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 명상에 관한 과학의 연구 성과를 잠깐이라도 언급해야겠다. 명상가들의 두뇌 회백질 변화는 하버드의 임상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인간의 뇌는 성인기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변하지 않는다’는 신경과학 부문의 오랜 도그마가 무너진 것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하는 수련법인 메타 명상에 관해 말한다면, 메타 명상을 한 피실험자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 분비량이 아주 적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 코티솔은 심장마비, 치마, 암, 우울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호르몬이다. 남을 위한 명상이 실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었다는 말이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나는 겨우 10%가 뭐냐며 작은 불만을 말했다. 그 불만을 거둬들여야겠다. 행복 10% 증가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았으니까. 지금부터 일 년에 10%씩 행복해진다면 10년 후에 나는 지금보다 얼마나 행복한 상태일까?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약 2.6배라는 답이 나온다. 그러니까 10%가 결코 만만한 수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20년 후에는 지금보다 6.7배, 30년 후에는 무려 행복이 17.4배나 증가한다! 내가 명상을 지속적으로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명상의 엄청난 효과를 알게 된 이상 가만있는 건 손해지 싶다. 무엇보다 나도 끊임없이 으르렁거리는 머릿속 짐승을 길들이고 싶다. 그러니까 당장 내가 해야 할 것은 이 책 부록에 있는 ‘명상 수련 지침’을 한 번 더 읽고 실천해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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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시 삼백수 : 5언절구 편 우리 한시 삼백수
정민 엮음 / 김영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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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며 정민 교수의 [우리 한시 삼백수] 5언 절구 편을 펼쳐들었다. 얼마 전 읽은 [잠시라도 내려놓아라]에서 멋진 당시(唐詩)들을 맛보아서 더 그랬겠지만, 좀 더 본격적으로 우리 한시를 읽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던 차에 만난 책이다. 사실 몇 년 전 그런 열망이 나를 찾아오긴 했다. 길을 걷는데 갑자기 <송인>이라는 한시가 떠올랐던 것이다. 그때 정지상의 <송인>을 찾아 읽는데,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해지네”라는 시구가 어찌나 아름답게 느껴지던지... 고등학교 국어시간이나 한문시간에 접했을 때는 별 느낌이 없던 그 한시가 말이다. 그때부터 한시에 관심을 지니고 두루 읽어보고 싶었으나 시중에 나온 책들은 한문을 잘 모르는 내게는 너무도 버거웠다. 그렇지만 이제라도 정민 교수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 한시를 만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삼백수가 담겨있어 제법 묵직한 책 두께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책을 넘기다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인물들의 이름이 눈에 띄어 반갑다. 정도전, 성삼문, 서경덕, 정철, 황진이, 김상헌, 송시열, 박지원, 정약용 등 꽤 된다. 언뜻 보기엔 짧고 단순해 보이는 이 시들에 우리 선조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담아냈겠지,라고 생각하니 책의 무게가 더해지는 느낌이다. 실제로 김수향이라는 분의 한시 <눈 오는 밤에 홀로 앉아(雪夜獨坐)>에 붙은 정민 교수의 설명을 보면, 우리 선조들의 삶에서 한시가 차지하는 자리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김수향은 진도 유배지에서 사약을 기다리면서 이 한시를 지었다고 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하는 상황에서도 한시를 지을 정도로, 한시는 삶과 분리될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을 넘기다보면 우선 발상이 기발한 시들이 이곳저곳에서 눈에 띤다. 먼저 황진이의 <반달을 노래함(詠半月)>이다. “곤륜산 옥 누가 깎아 / 직녀의 빗 만들었노. / 견우와 이별한 뒤 / 속상해서 던졌다네.” 이토록 사랑스러운 위트를 한시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껏 살면서 나는 수없이 반달을 보아왔지만, 반달을 빗으로, 그것도 직녀의 빗으로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뒤에 이어진 “견우와 이별한 뒤 속상해서 던졌다네”라는 말은 또 어떤가. 애절한 사랑의 표본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비틀면서 새로운 자극을 준다.

 

좀 더 화끈한 시를 볼까. “꽁꽁 언 시월 얼음 위 / 댓잎 자리 한기 엉겼네. / 설령 님과 얼어 죽어도 / 새벽닭아 울지 말아라.” 15세기 김수온이라는 사람이 고려가요 <만전춘별사> 첫 연을 번역한 것이라 한다. 수백 년 전에는 10월에도 얼음이 얼었나보다. 그 얼음 위 대나무 잎만 깔아놓더라도 님과 함께라면 얼어 죽어도 좋으니 새벽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이렇게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시를 읽노라면, 이 겨울 조금 추운 것이 뭐 그리 대수겠는가.

 

다음에 볼 송익필의 <산을 내려오며(下山)>는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한 시다. “새벽 풍경 맑게 울 제 / 단장 짚고 내려왔지. / 꽃도 이별 아쉬운지 / 물을 따라 나왔다네.” 시인은 새벽 풍경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지팡이를 짚고 산을 내려오고 있다. 시인의 눈에 시냇물에 떠내려가는 꽃이 보인다. 누구나 보았을 이 풍경을 두고 시인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꽃을 연상한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한시가 형식에 얽매여 있는 낡은 문학 장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을수록 내가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3어절 구문으로 이루어진 5언시 형식은 시를 마주하는 내 상상력에 그 어떤 제약도 가하지 않는다.

 

처음엔 번역문에만 눈이 갔는데, 조금씩 한문 구절에도 눈을 주게 된다. 나는 한자를 잘 모르지만, 음이 달려 있고 본문 아래에 주요 한문 표현에 대한 풀이가 있어서 크게 어렵지는 않다. 강백년의 <산길(山行)>이란 시에서 “十里無人香”이란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인향(人香)”은 사람의 말소리를 뜻한다고 한다. 사람의 말소리를 두고 ‘향기’라고 표현하다니. 사람의 말을 이보다 아름답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인향’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검색해보니, 그와 같은 뜻으로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어여쁜 말이라면 널리 알릴 만한데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이 널리 읽히게 된다면 우리 한시에 등장하는 좋은 표현들도 우리 삶에서 되살아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재기발랄하고 우아하고 기상천외한 한시들을 왜 모르고 살았을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밖으로 나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이를 적절하게 표현해낸 시를 골라 소리 내어 읽고 싶어진다. 그렇게 하다 보면 이 책에 실린 5언시들 앞에서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을 경험한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얼마 전 안나 카레니나에 관한 로쟈 이현우 선생의 글에서 봤던 멋진 말을 빌려 이렇게 쓸 수밖에 없겠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인생을 저렴하게 만드는, 최소한 마흔 일곱 가지 방법을 알고 있다. 한시를 읽지 않는 건 그 가운데 하나다.” 저렴한 인생을 면하게 된 기념으로, 이 책에서 특별히 아끼게 된 한시 한 편을 적으며 글을 닫는다.

 

언제나 짹짹짹 우는 새
어이해 언제나 족한가?
사람들 족함을 모르니
그래서 언제나 부족타.

 

-송익필, <새 울음소리에 느낌이 있어(鳥鳴有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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