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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처럼 서러워서 ㅣ 작은숲 에세이 4
김성동 지음 / 작은숲 / 2014년 9월
평점 :

김성동 선생은 독립운동가 유족들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선생은 정부 초청으로 귀국한 김좌진 장군 외손녀와 허위 선생 증손녀가 한국 국적도 없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 말한다.(다행히 몇 년 전 무국적 사망 독립유공자들은 호적을 획득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생은 자신의 집안사에 대해서 들려준다. 선생의 아버지는 좌익 활동을 하다가 6·25가 일어난 직후 학살당했으며, 6·25 당시 면장을 하고 있던 큰외삼촌은 얼치기 좌익들에게 학살을 당했다고 한다. 선생이 연좌제 때문에 중이 되려했고, 결국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선생의 집안이 이 정도로 비참한 일들을 겪어야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선생은 연좌제의 쇠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니, 그 고통이 얼마나 참담했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선생은 우리 역사가 어디서부터 꼬여버렸는지를 알려준다. ‘과대망상증 환자’로 업신여겨지는 궁예, 서경 천도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변화시켜보려 했지만 ‘요망한 중놈’으로 일컬어지게 된 묘청, 평등과 자유를 고갱이로 한 개혁을 시도했지만 ‘가짜 중’으로 알려진 신돈 등 선생의 눈길은 역사의 반역자로 치부된 이들에게 닿아있다. 당에 의존하는 신라에 반해 자주국가를 꿈꿨던 김헌창, 양반들도 군포를 내야한다는 혁명적 주장을 펴던 참 북벌론자 윤휴, 새 세상 남조선(南朝鮮)을 열어젖히겠다고 다짐했던 김개남 같은 이의 뜻도 선생은 받들려 한다. 그에 견주어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지금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선생은 그 진상을 들추려 한다. 민영휘는 평안감사 시절 백성들 재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고종과 민 중전(명성황후라 불리는 여자다. 선생이 부르는 대로 나도 민 중전이라 부른다.)에게 바치게 된 까닭에 ‘민송아지 대감’이라 불렸다고 한다. 민영휘는 백성들 고혈을 짜내고, 일본에 나라 넘긴 공로로 ‘대일본제국 천황폐하’한테 받은 돈으로 대재벌이 된다. 그런 민영휘 후손들은 지금 수십만 평 땅으로 호의호식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선생은 현재 잘못 쓰이고 있는 한국어를 교정해주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크나큰 유익이다. 하기야 이미 [김성동 천자문]이라는 책을 출간했을 정도로 한문에 일가견이 있는 분 아니던가. ‘보편’이란 말에 관하여 선생은 “‘보편(普偏)’이 아니라 ‘보변(普徧)’이라고 쓰고 읽어야” 한다고 일갈한다. 치우칠 편(偏)이 아니라 두루 변(徧)이 옳기 때문이다. 또한 이서진 주연의 드라마 <이산>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정조의 이름이 ‘이산(李祘)’으로 잘못 읽히고 있는 사정에 관해서도 선생은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한탄한다. ‘祘’이란 글자에는 ‘산’과 ‘성’ 두 가지 음이 있는데, 셈하는 막대기를 뜻할 때나 ‘산’이라고 읽는 것이지, 임금 이름을 부를 때는 두루 살핀다는 뜻으로 ‘살필 성’이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렇게 읽는 것이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에 앞으로 고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 어원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선생의 소설을 읽으면서 입에 달라붙은 한국어를 어찌나 절묘하게 구사하시는지 깜짝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마치 작가가 한국어의 끝간 데가 어디까지인지 보여주기로 작정하고 썼다고나 할까. 이번에 선생의 에세이집을 읽고 나니 그러한 한국어 구사가 가능했던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바로 우리 역사와 우리말에 대한 가없는 애정이다. 선생은 그런 애정으로 한평생 글을 썼을 것이고, 그렇기에 얼룩져가는 우리 역사에 대해서 이토록 준엄한 글들을 쓸 수 있었으리라. 선생을 포함해 연좌제로 고통 받은 이들을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선생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스러울까. 비정하고도 비루한 한국 근현대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