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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선생님 4 ㅣ 세미콜론 코믹스
다케토미 겐지 지음, 송치민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몇 달 전 교육부에서 올해 도입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 때문에 실효성이 없으며 성소수자에 대한 교육도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성교육은 교사들에게 껄끄럽고 실제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지도하기 어려운 문제다. [스즈키 선생님] 1권에서도 성교육 문제를 살짝 다루기도 했지만, 다케토미 겐지는 4권에서 이 골치 아픈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3권에서 비중 있는 인물이었던 다케치는 자신의 졸렬한 행동이 부끄러워 집에서 요양을 한다. 통신문을 전해주러 다케치 집에 방문한 여학생 가와베는 다케치와 눈이 맞아 그 자리에서 성관계를 갖게 된다. 스즈키 선생은 다케치와 가와베가 성관계를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차마 조치를 취하지는 못한다. 결국 스즈키 선생이 가와베의 전 남자친구인 3학년 선배 야마기와에게 뺨을 얻어맞는 사단이 벌어진다. 그리고 다케치 집에 가정방문을 한 자리에서 다케치와 가와베, 선배 야마기와, 다케치의 어머니, 여러 학생들이 모여 일종의 토론을 벌이게 된다.
스즈키 선생은 평소 섹스를 할 때는 결코 콘돔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만약 성병과 임신이 키스로도 생기는 세계라면 키스용 콘돔을 끼고 키스하고 싶”냐는 것이다. 스즈키 선생은 교제하려는 여성에게 자신은 콘돔을 쓰지 않는 ‘노콘파’라고 미리 일러주기까지 하는 사람이지만, 그저 자신의 신념에 반하기 때문에 피임 지도를 안 하는 건 아니다. 피임 교육의 실효성은 담보할 수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피임 교육을 받아온 모범생 다케치는 결국 피임을 하지 않고 관계를 가졌지 않은가. 스즈키 선생은 성교육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이 앞으로의 자기 삶이 어떤 모습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좋은지와 연결 지음으로써 효과적으로 펼쳐보인다.
“섹스가 소비물이 아니라 깊은 의미와 무게를 가졌음을 알리”고 싶은 스즈키 선생의 생각은 너무 이상에 치우친 것일까? 이 만화의 독자들 모두가 스즈키 선생의 교육관에 동의하지는 않을 테다. 작가도 무슨 특정한 교육관을 사람들 머릿속에 심고 싶어서 이 만화를 펴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우리가 이 만화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문제의식이다. 만화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마주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독자로서 나는 축복이라고 느낀다. 그런 문제의식과 끝까지 대면하려는 작가의 안간힘일 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도가 사태를 완전히 수습할 수 없고, 학생들을 온전히 바꿔놓을 수 없다는 것을 스즈키 선생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학생들 옆에 바로 서 있어주려 버티고 또 버틴다. 스즈키 선생과 그의 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보며 놀랐다. 사실 한편으로 우리 교육 현장에서 그러한 진지한 대화가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어쩌면 우리 어른들은 어쩌면 아이들이 진지한 대화를 견디지 못할 거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스즈키 선생님]을 읽으면서 이런 선생님을 만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 그러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이 되어줘야겠다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