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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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샬러츠 빌에서 일어난 백인우월주의 폭력시위,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수많은 인종차별 소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은 우리에게 있어 드림랜드이다. 일상 속에서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다가,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팝송을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꿈꾸는 미국은 말 그대로 꿈속에나 있을 법한 나라다. 다양한 기회가 있는 땅, ‘헬조선이라고 칭해지는 한국 사회와는 다르게 좀 더 세련된 사회, 살기 좋고 평화로운 행복의 땅일 것만 같은 미국의 이미지가 우리에게 오래된 미국의 신화인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한다.

 

신정순 작가의 드림랜드는 꿈이 이루어지는 땅으로 생각하는 미국으로 이주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보기만 해도 달달한 칵테일 같은 분홍빛과 주홍빛의 책 표지는 마치 드림랜드라는 단어가 주는 희망을 추상적으로 시각화 한 느낌이다. 그러나 달짝지근하고 경쾌할 것만 같은 표지와는 다르게 드림랜드는 결코 우리가 꿈꿔온 달짝지근한 드림랜드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다. 빛나는 네온사인 같은 드림랜드라는 단어가 보여주지 않고 숨겨둔 어둡고 씁쓸한 현실. 그것이 신정순 작가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드림랜드이다.

 

 

미국에 오면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냐고. 말도 안통하고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내가 한국에서처럼 자신감 있고 쾌활하게 살아갈 수 있냐고.

-드림랜드-

 

 

드림랜드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30대 이상의 중장년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미국으로 건너가 처음 자리 잡는 1세대인 것이다. 한국말과 한국 문화 속에서 몇 십 년을 살아온 그들에게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공간인 미국은 낯설고 어렵다.

 

한국에서 아무리 내가 뛰어난 인재였다고 해도 미국에서 그것을 드러내기는 어렵다. 바로 언어의 장벽 때문이다. 설사 내가 영어를 잘한다 해도 네이티브 앞에 가면 얼어붙기가 부지기수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 해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내가 아무리 좋은,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게다가 그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문화를 체화시키지 못했다는 점도 그들이 미국 사람들의 일상에 익숙해지기 어렵게 만든다.

 

언어의 굴레와 문화의 차이로 관계 맺기의 시작인 대화를 제대로 맺을 수 없어, 혹은 그렇다고 생각해서 위축되고 소외되고 마는 씁쓸한 드림랜드 속 이주민은 그들이 동양에서 온 이민자라는 정체성에 맞물려 한정적인 사회적인 계층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며시 세탁소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깜짝 놀랐다. 세탁소에 가려 할 때마다 거절하기에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은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이런 곳일 줄은 몰랐다. 손님이 기다리는 곳과 그가 일하는 공간 사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검은 쇠창살이 가로놓여 있었다. 쇠창살 안에 들어 있는 그는 감옥에 갇힌 죄수 혹은 동물원 우리에 갇힌 한 마리 짐승 같아 보였다. 이게 뭐지, 알 수 없는 광경 앞에서 나는 아득함을 느꼈다.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떨어뜨릴 뻔 했다.

-드림랜드-

 

 

흔히 보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높디 높은 빌딩 속 사무실 어딘가에 앉아 노트북 앞에서 자판을 두들기며 클라이언트와 통화하는 직장인의 모습은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다. 네 편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각자 다 다르지만 그들의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핑크빛 꿈을 품고 간 사람이건, 힘들 것을 각오하고 간 사람이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들에게 미국 사회는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자신이 가진 것을 탈탈 털어 꿈과 희망을 쫓아 미국까지 온 그들이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 미국 사회의 틈은 남들이 그다지 먹고 싶지 않아 남은 파이에 불과하다.

 

치안이 좋지 못해 강도가 종종 든다는 자리에라도 가게를 내서 당장 먹고 살 돈을 모아야하는 1세대 한인의 고충이 이 책에는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언어 문제와 문화 차이를 비롯해서 경제적인 요소 등 다양한 요소가 엉켜 이민자들의 생활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안정한 이민자의 삶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 요소를 강화하며 불행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게만 만든다.

이렇게 솔직하게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작가 자신이 1982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이중 문화와 이중 언어의 고충을 겪으면서도 치열하게 살고있는 이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경희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엘리트였던 그녀가 도미한 이후 직접 겪고 주변에서 보이고 또 들려왔던 이민자들의 삶이 이 소설에는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것을 우리는 페이지를 넘기며 깨닫게 된다.

 

 

드림타워 건물에 하나둘 불이 켜진다. 꼭대기 전광판에도 전기가 들어와 네온 글자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미국의 꿈은 단지 꿈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그 꿈입니다. 빗물과 어우러지면서 전광판의 글자는 붉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드림랜드-

 

드림랜드가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작가는 이민자들의 삶이 마냥 불행하다고만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본 드림랜드는 미국이 도피처나 꿈을 이루는 곳은 아닐 수 있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미국도 영화가 아닌 현실 속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것이 다섯 편의 소설에 녹아나 있었다. 각자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계기는 다르지만 드림랜드에서 그들은 치열하게 자신들의 삶을 산다. 불안정하기 때문에 같은 처지의 이민자들과 서로 기대며, 자신의 삶을 지키려고, 더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치는 그들의 모습은 한국에 사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어쩌면 아직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당신에게, 미국에 살고 있는 그들이 마냥 부럽기만 한, 그들의 삶이 영화나 미드와 꼭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 권해주고 싶다. 영화와 미드보다 더 현실적인 드라마로 이 소설은 짧지만 묵직하게 당신에게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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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대문 2 : 노장과 병법 편 - 잃어버린 참나를 찾는 동양철학의 본모습 고전의 대궐 짓기 프로젝트 2
박재희 지음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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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학을 하고 교양인이 되어 보고자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나 배웠던 동양 철학을 도전해보려 했지만 문턱이 너무 높았다. 모든 철학이 다 그렇지만 동양 철학이라고 하면 어째서인지 늘 다가가기 어렵다. 한자로 쓰인 개념과 시처럼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도 그렇지만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사람들과 철학관이 떠올라 종교적인 색채까지 묻어난다고 느껴져서 굉장히 멀게 느껴지고는 한다. 어떤 책을 봐야 동양 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을까? 서점에 가서 철학 도서 코너를 기웃거려도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 고르기 쉽지 않았다.

 

나와 같이 동양 철학에 관심이 가지만 어떻게 다가가야할지 고민인 사람들에게 고전의 대문시리즈를 강력히 추천해주고 싶다.

 


 

동양 철학 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의 사상을 정리해둔 부류의 책을 처음 접할 때에는 원문을 보는 것보다 해설서를 읽는 것이 조금 더 다가가기 쉽다. 그렇지만 해설서는 항상 그 해설의 관점 차이에 따라 원문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사상의 해설서를 고를 때에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저술한 것인지 고민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고전의 대문시리즈는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저작일까?

 

이 시리즈의 저자인 박재희 교수는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웠으며 성균관 대학교 동양 철학과를 나와 동양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전번역원을 졸업하고 동양 철학의 본 고장인 중국의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도가 철학을 연구한 후 여러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다가 현재는 민족문화콘텐츠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송매체와 국회, 대기업 등에서 사람들에게 동양 철학과 관련하여 여러 차례 강연을 해왔다고 한다. 이 정도면 동양 철학을 정말 속속들이 잘 알고 계실 법한 권위자라는 생각이 든다.

 

고전의 대문시리즈 중에서도 나는 두 번째 책인 노장과 병법 편을 읽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히는 잘 모르는 <도덕경><장자>, <손자병법>을 다룬 고전의 대문 2는 도덕경 두 편, 장자 한 편, 손자병법 세 편으로 구성해 총 여섯 개의 챕터에 걸쳐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만 해도 어려울 텐데 어떻게 단 여섯 챕터로 이 사상들을 정리한 걸까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 이해할 수 있다.

 

고전의 대문 2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저자의 직강(현장 강의)’을 듣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구어체를 활용하여 사람들에게 좀 더 부드럽게 동양 철학 사상을 전달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설명 중간 중간 저자가 정리한 내용을 표 형식으로 정리한 자료를 제시하여 어렵고 헷갈릴 수 있을 법한 내용을 한 눈에 들어오게 해둔 것이 꽤나 도움이 된다. 마치 수능 공부할 때 요점이 잘 정리된 참고서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다. 또 그냥 보면 어려울 한문 원문 바로 밑에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해석이 원문에 대한 거리감을 확 줄여준다.

 

153 페이지

 

심재는 마음을 비우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입니다. 의도와 결과를 바라지 않고 텅 빈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어떤 갈등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물건을 팔려고 하는 마음 없이 손님을 대하면 상인은 편해집니다. 물건을 팔려고 억지로 강요하거나 허위 광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손님이 사지 않아도 마음에 불쾌함이 남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큰 요소는 박재희 교수가 들어주는 친절하면서도 찰진 사례들이다. 왜 현대인인 우리가 동양 고전을 읽어야하는가에 대해 한번쯤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동양 고전이 우리의 일상과 무슨 연관이 된다고? 박재희 교수는 노장과 병법을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일상으로 끌어올 수 있을지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일상의 사례를 들어 제시해주고 있다. 이렇듯 마음에 확 와 닿는 이런 일상적인 비유들과 여러가지로 이해를 돕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이 보이는 박재희 교수의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아 동양 철학 생각보다 낯설고 어렵지 않구나 하며 책장을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283 페이지

 

인생에도 이런 속도 조절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기다릴 줄도 알고, 때로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앞을 향해 돌진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힘들면 숲처럼 쉬어가기도 하고, 집중하면 불같은 열정으로 몰입하는 인생, 참으로 손자가 꿈꾸는 경쟁의 달인입니다.

경쟁의 본질은 빨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안전하게 빨리 가는 것이 경쟁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빨리 가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 페이스를 유지하며 흔들리지 않고 가는 것이 경쟁의 목표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섯 번째 대문인 때로는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손자병법>3’에 나온 내용이다. <손자병법>은 전쟁에서 어떻게 싸워야 잘 싸울 수 있을지를 다룬 책이다. 그렇지만 병법을 단순히 병법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 이 이야기야 말로 아주 어릴 때부터 대학을 잘 가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시험을 보고, 자라서 성인이 되어서도 먹고 살기 위해 경쟁해야한다고 하는 요즘 한국 사회에 곡 필요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계속해서 온 힘을 다해 노력하여 달려가지 않으면 남들에게 뒤처지고 만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정말 피 터지게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남들과 비교하며 마냥 뛰기만 하는 경쟁은 사람을 탈진하게 만들어 자신의 목표에 다다르기를 오히려 방해하고는 한다. 자신만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냥 달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손자병법>에서 말하듯이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자신을 알고 완급을 조절해 가며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처럼 마냥 먼 옛날의 이야기인 것만 같던,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인 것 같고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것 같은 동양 철학은 생각보다 우리의 일상과 가깝다.

 

33 페이지

 

다양한 시대에 그 시대의 요구에 맞춰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철학이나 사상이 보편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시대와 공간을 넘나드는 보편성, 그것이 고전입니다. 잠깐 유행하다 사라지는 베스트셀러는 그런 보편성이 없기에 고전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인간에 대한, 현실에 대한 보편성, 그것이 고전의 힘입니다.

 

계속해서 우리가 동양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관한 콘텐츠가 나온다는 것은 그 사상이 시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지혜를 담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한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옛 현인들의 지혜로운 생각을 가볍고 쉽게 알아보고 싶다면 꼭 한 번 고전의 대문 시리즈를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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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나오미 울프 지음, 윤길순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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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신화가 진화나 성, 성별, 미학, 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면 대체 어디에 근거한 것일까? 그것은 친밀한 관계와 성과 삶에 관한 것이라고, 여성을 찬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감정적 거리와 정치, , 성적 억압으로 구성되었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절대 여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남성의 제도와 그에 따른 권력에 관한 것이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35pp. “

20세기 미국의 각종 차별과 사회적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진보적 사회적 비평가이자 페미니스트인 나오미 울프는 아름다움이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이유와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가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다고 본다. 1990, 저자가 스물여덟 살이던 해에 그녀는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원제: 아름다움의 신화 The Beauty Myth)를 통해 유독 여성들에게만 요구되는 아름다움이 정말 그렇게 여성들에게 중요한 미덕이고 당연히 갖추어야할 덕목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반문을 제기한다.

 

사실 사회는 여성의 외모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여성이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가질 수 있고 무엇을 가질 수 없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말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을 지켜보는 것은 좋은 여성이 되라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165 pp.”

 

저자인 나오미 울프는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이 일종의 현대판 종교-신화와도 같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왜 아름다움은 여성들에게 강요되는 것인가? 저자는 그것이 기득권층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기득권층은 단순히 남성 일반이 아니다. 우리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아름다움이 단순히 외모의 다양성을 묶어두려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행동과 정신을 묶어두려는 것임을 파악해야한다. 저자는 아름다움의 신화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들어와서 작용하고 있는지를 일, 문화, 종교, 섹스, 굶주림, 폭력(성형 수술)이라는 여섯 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의 매력은 무엇보다도 아름다움의 신화라는 그녀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증거들이다. 약간은 투박하고 딱딱하게 읽힐 수 있는 문체와 우리가 마치 불고의 진리와 같다고 알고 있던 아름다움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오미 울프의 책을 억지 주장이라고,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모두 저자가 내세운 법원의 판례, 실제 광고 카피 및 각종 통계와 인터뷰 등의 증거가 그녀의 가설을 탄탄히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울프는 그 증거들을 논리적이고 유기적으로 잘 연결하여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설득력 있게 잘 풀어서 이야기 한다.

 

저자의 가설에서 주목할 만한 점 중 하나는 바로 아름다움이 강요되는 이유를 단순히 성(sex)에서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흔히 여성의 섹슈얼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아름다움이 강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오미 울프는 현대의 여성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에는 겉으로 보이는 섹슈얼함만이 아닌 이면의 다른 요소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현대 여성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이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나올 수 없는 철의 여인이라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이상향을 꿈꾸게 해서 여성의 내면의 자존감을 낮추었다고 본다. 또한 지나치게 마른 몸매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불평등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없게, 자신을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치장하는데 바빠 제대로 일에 몰두할 수 없고, 피학적인 섹스의 이미지로 섹스를 진정으로 즐길 수 없게 만들어 여성들이 자신들을 드러내고 인생을 즐길 권리를 앗아갔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다각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아름다움이 여성에게서 앗아간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앗아간 것인지를 탄탄하게 그려낸 책은 많지 않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를 나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는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 사회는 남자 대 여자의 대결 구도로 갈등하는 양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더 심한 갈등 구조로 가는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페미니즘의 방향에 대해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여성의 인권을 앗아갔고, 누가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가? 나오미 울프의 책은 여성들을 억압하는 아름다움의 신화라는 장치가 단순히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남성 중에서도 사회 권력 구조에서도 가장 위의 권력을 차지하고 시장을 움직이는 자들이야 말로 여성의 권리를 갉아먹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는 적이라고 지적한다.

 

섹스를 한낱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미지, 미인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이미지, 그녀를 에로틱하게 포장해 고문하는 이미지가 정치적·사회경제적으로 환영받는 것은 그것이 여성의 성적 자부심을 무너뜨리고 여성과 남성이 서로 떨어져 적대시해야 굴러가는 사회질서에 그들이 함께 손잡고 맞설 가능성을 낮추기 때문이다. ···(중략)··· 이성애는 경제에 피해를 줄 위험이 있다. 사랑하는 남녀 간의 평화와 신뢰는 세계 평화가 군산복합체에 나쁜 만큼이나 소비 경제와 권력구조에 나쁠 것이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 233pp.

 

하지만 한국에서 여성 차별을 논할 때에는 종종 그것이 제도의 문제가 아닌 남자들의 문제인 것 마냥 여겨지고 있다. 울프가 말하는 아름다움의 신화로 드러난 여성 차별은 여성이 여성으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들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연대하여 기득권층에 반발할 수 없도록 우리를 떼어놓는 것이다.

 

우리 모두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남녀 모두 평등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는 여성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는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여자와 남자의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한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사랑하고 존중하며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을 다르게 볼 줄 아는 눈도 키워야한다고 말해준다.

 

흠 없는 미인에 중독된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라는 말처럼, 단 한번이라도 나의 외모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 그 반대로 남에게 외모를 지적해본 적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긴 여성의 아름다움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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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08-1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오미 울프의 책을 10여년 전에 읽어서...
Beauty Myth가 꽤 늦게 번역되었나봐요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 오은영 박사의 불안감 없는 육아 동지 솔루션
오은영 지음 / 김영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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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즈 카페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아이들을 자주 만나고 있다. 하루에 적게는 두 명에서 많게는 사십 여 명 정도의 아이들과 함께하며 내가 느낀 것은 아이들은 어떤 엄마와 아빠의 밑에서 자라고 있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예의바르고 착해서 사랑스러운 아이와 제멋대로 굴고 심술만 부리는 아이를 함께 돌보다 보면 정말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과연 내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을까?”

 

비혼주의자에 애를 낳을 생각도 없던 나조차도 내 아이도 아닌 남의 아이들을 잠깐 맡아 돌보며 이런 걱정과 고민을 하는데 하물며 부모들은 어떨까?

 

부모에게 있어 육아는 나의 인생이기도 하지만 아이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진 책임감에 부모들이 더욱 더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실수를 해서 이 아이가 제대로 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없지 않을까하는 애정 어린 불안과 걱정이 있는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걱정과 불안은 부부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는 그런 불안한 엄마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왜 그런 불안이 생기는지, 그 불안의 양상이 왜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분석한 것을 쉽게 설명해주며 어떻게 내 아이를 키울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당신은 왜 그렇게 애한테 냉정해? 당신 애 아빠 맞아?”

당신은 왜 그렇게 애한테 안달복달이야?”

TV 프로그램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로 우리에게 친숙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는 아이에게 무관심한 아빠의 반응과 불안해 하는 엄마의 반응의 심리적 원인을 불안으로 꼽으며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한 조언을 시작한다.

 

부모라면 누구나 불안하고 두렵다.

그것은 내 안에 모성과 부성이 존재한다는 증거이다.

내 불안과 당당히 마주해야만 내 안의 모성과 부성이 

올바른 양육의 길로 나를 안내한다.”

 

-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서문 -

 

  모성과 부성 모두 불안의 증거라는 점은 사뭇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다. 모성과 부성이 있다면 우리는 저절로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근데 왜 우리는 모성과 부성이 내 안에 있는데 불안해 한다는 것일까?

불안은 인간이 스스로를 위험 상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인 감정이다. 불안이 적당히 있어야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 상황으로부터 적절히 보호할 수 있다. , 불안은 내 안의 모성과 부성이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같은 불안, 다른 대응과 갈등

 

  그렇다면 같은 불안에서 시작된 것인데 왜 엄마와 아빠의 불안한 심리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오은영 박사는 이를 생리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다양한 각도로 접근하여 쉽게 설명하고자 했다. 엄마의 불안은 원시 인류부터 DNA에 저장되어 내려온 보호 본능과 함께 사회·문화적으로 쌓여온 죄책감, 미안함, 욕심 그리고 엄마 스스로의 정체성의 혼란이 기저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아빠의 불안감은 원시 인류 때의 사냥꾼의 본능과 가부장적인 사회 ·문화에서 온 고집, 회피, 불신, 경계심에 있다.

이렇듯이 불안의 기저가 다르기 때문에 엄마는 아이를 걱정하는 태도로 대하지만 아빠는 무심한 태도로 아이를 대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와 아빠 모두 아이를 사랑하고 있지만 아이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에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계속 갈등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를 자신의 상담 사례를 통해 피상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어떻게 아이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부부 간의 육아에 대한 의견 차이를 어떻게 좁힐지에 대한 세세한 솔루션은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 실천할지 몰랐던, 혹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짚어주고 있다.

 


많은 부모들은 불안하면 아이한테 화를 낸다

자신의 불안의 원인이 아이가 아님에도 부모는 내 아이에게 화를 낸다

아이에게 화를 내는 부모의 속마음은 무얼까

아마도 약한 존재라 만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는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화를 내도 금방 용서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서문 中 -


 

  특히 저자는 아이들이 부모의 부속물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인격체임을 항상 기억하며 아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 아이의 감정에 부모가 충분히 공감해주며 차분히 아이가 옳은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은영 박사는 자칫하면 아이를 키우는데 급급해 부모가 종종 잊어버리는 육아의 본질을 세심하게 짚어준다.

 

  그녀가 이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부모가 행복해야지 아이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스스로 불안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극복하며 의연하게 아이를 돌봐야 아이도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충분히 사랑 받고 엄마 아빠를 모범 삼아 훌륭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자마자 여자가 정말 아이에게 평생을 헌신할 정도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모성 본능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아마 그것은 나뿐 만이 아닐 것이다. 모성 본능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 이 책을 내 또래의 젊은 여성들은 약간 불쾌해 할지도 모른다. 사회에서 모성 본능이라는 좋은 말을 내세워 여자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대두되고 있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성 본능이라는 말은 현대 사회에서 여성에게만 육아를 독박 씌우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2017년 개정판을 내며 오은영 박사는 위와 같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엄마의 걱정과 아빠의 무관심을여자의 혹은 남자의 그것으로 

이해하기보다 부모의 것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여자와 남자라는 경계를 두고 이해하기보다

부모의 불안은 사람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감정인 듯 모습을 바꾸어 

표출될 수 있음을 이해했으면 한다. ···(중략)··· 

우리의 양육 방향은 여자의 모성 반과 남자의 부성 반이 합쳐져

부모성(父母性)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부모성 하나와 남자의 부모성 하나가 만나 

불안에 흔들릴지언정 결코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하나의 부모성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서문 中 -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모성과 부성을 일종의 책임감으로 받아들이고 읽으면 좀 더 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은영 박사가 개정판 서문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것이 남녀의 특징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모성과 부성을 달리 설명한 것은 이제까지 저자가 상담을 하며 만난 가족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좀 더 일반론적인 설명을 하려 했던 것이지 엄마는 이렇고 아빠는 이렇다라고 딱 떨어지는 정의를 내리려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아닌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된 20대 여성인 나는 이제까지 나를 키우며 엄마 아빠가 내게 보여준 많은 모습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도 부모가 된 것은 처음이기에 많이 불안하고 어떻게 키우는 것이 나를 잘 키우는 방법인지 몰라서 갈등하며 나를 키워 오신 것을 부모님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보이는 엄마 아빠의 갈등 사례가 마냥 낯설지 않은 것을 보면 우리 부모님이 마냥 나를 잘 키우신 것은 아니지만 나를 잘 키우려고 늘 걱정하며 나름 노력하셨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오은영 박사의 세심한 조언은 키즈 카페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유아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내게 갑자기 애들과 놀아주라고 하니 나는 좀 어렵게만 느껴졌었다. 다른 유아교육을 전공한 아르바이트 선생님들을 보며 어깨너머로 배워 아이들과 놀아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좀 더 존중하고 정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이들이 잠깐이나마 안정적으로 놀 수 있을지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움직일 수 있었다.

 

  인생이 처음이라 부모 역할이 처음인 이 세상 모든 부모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았지만 부모가 될 계획인 사람들에게도 무척이나 추천하고 싶다. 육아의 달인인 오은영 박사의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는 단순히 육아라고 해서 아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엄마 아빠 개인과 둘의 관계에까지 초점을 맞춰 가족이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오은영 박사의 조언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게끔 만든 특별부록과 자신의 불안도를 체크해 볼 수 있는 질문지, 그리고 매 장마다 핵심적으로 상황을 짚어주고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요약한 깨알같은 조언을 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오은영 박사의 책 끝에 쓴 것처럼 이 책을 읽는다고 당신의 육아 방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이 책을 재밌게 열심히 적어도 저자의 조언이 당신의 머릿 속에 남아 아주 조금씩 변화를 일으켜 모두가 행복한 육아를 할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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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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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 인생이다이것이 삶인 것이다유로 있으려 하면서 무로 가는 것끝까지 스스로의 유를 보존하려 하다가 속절없이 무로 스며들고 마는 것누가 인간의 이러한 현실과 실상을 부정할 수 있으며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영원과 사랑의 대화>야 말로 이 책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영원은 인간의 유한성이 주는 무한함에 대한 그리움을 말한다.

언젠가는 소멸하고야 만다는 그 유한성이 우리에게 영원에 대한 갈망을 심어준다.

하지만 그 영원이라는 이상과 언젠가 죽는다는 현실의 사이는 좁힐 수 없다.

그런 간극이 사람들에게 유한한 삶에 대한 고민을 가져온다.

 

어떻게 하면 끝이 있는 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저자 김형석은 유의미한 삶으로 꼽는다.

 

그가 본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책을 앞을 주로 읽는다는 것을 아셨는지 감사하게도 그 요약을 이 책의 시작인 생활의 좌표에 넣어주셨다한 문장으로 더 짧게 요약해보자면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이웃()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내가 이 에세이에서 본 사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에로스만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이웃과 감사한 이들의 사랑살았던 곳에 대한 애정 그리고 더 나아가 신이 내게 주는 사랑까지도 지칭하는 것이었다.

 

유한한 인생에서 우리는 혼자 살아가지 않음을 김형석은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모든 파트에서 그는 그의 주변 사람들과 신의 사랑을 강조한다.

 

왜 그는 사랑을 강조한 것인가?

 

인생은 혼자 살다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서로 조금씩 결이 다른 사랑을 주고받아 연대하며 살아나가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나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을 논할 때 사랑을 빼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신이라는 논란이 많은 존재의 사랑을 얘기하는가?

그는 단순히 그의 신앙을 전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철학자이자 신앙인으로 신을 얘기한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무한과 영원에 대하는 고독은 누구도 해결 지어줄 수 없는 고독이다죽음을 앞에 대하는 것보다도 정신적으로는 더 뼈저린 고독이다무한이라는 무궁히 긴 시간을 혼자 영원히 걸어가야 하는 인간의 고독이다.’

···(중략)···

인생의 강가에 서서이제는 넘어야 할 허무의 흐름만이 있는 석양의 피안 저쪽에서 찾아주는 영원한 음성의 주인공이 사랑이다우리는 그를 신이라 부르기 때문에 영원에의 그리움과 갈망에서 오는 고독은 영원만이 해결지어 주는 것이다.’

 

인류학에서는 종교가 죽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죽음을 목격한 인류는 자신들이 무한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 주는 허무감과 공포를 달래기 위해 인간은 자신들과 달리 영원을 살 수 있는 신과 내세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다.

그 상상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며 그에 따라 가치 있는 삶을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정교화 되면서 종교가 된 것이다.

 

신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세계를 관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탄생을 관장하기도 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를 창조하고 우리 인간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종교에는 반드시 포함된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것들을 사람이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듯 내리 사랑을 보여준다.

 

우리는 신을 영원과 사랑 그 자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하지만 영원을 그리워하는’ 철학자로서 저자는 신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통해 인생을 보고 있지만 이 책은 사실 전혀 어렵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1920년에 태어나 현재는 연세대학교 명예 교수를 하고 있는 저자의 삶의 이야기가 정말 진솔하게 펼쳐져 있다그가 살아오며 체득한 그의 수많은 정체성들이 녹아 내려 있는 그의 이야기들은 마치 시골집에 내려가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요새 말하듯 꼰대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노오력을 하라고 잔소리 하는 책이 아니다.

첫 챕터를 읽고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그의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저자가 젊은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차분히 그의 인생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설득하는 에세이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늦은 저녁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본 아버지께서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느냐 물어보셨다. 1세대 철학자인 김형석 씨의 에세이를 읽는다하자 아버지께서는 사뭇 놀라며 젊을 적 그 분의 글을 좋아하셔서 김형석 씨의 책은 다 읽어 보셨다며 반가워하셨다.


56년 전 세상에 나온 책을 왜 지금 다시 낸 것일까?


그것은 아버지가 읽었던 책을 딸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지만 진솔하게 인생의 정수를 담은 에세이집이라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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